'이주의 고전'으로 혜강 최한기의 <운화측험>(한길사, 2014)을 고른다. '운화'라는 말은 접해보았지만 <운화측험>은 처음 듣는다. 관련서를 읽어본 적이 있으니 책명을 보긴 보았을 테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은 모양이다. 소개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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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화측험(雲化測驗)이란 운화를 관측·측정하여 검증한다는 뜻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기의 운동과 변화를 관측·측정하여 증험함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철학자 최한기가 이탈리아 선교사인 알폰소 바뇨니의 저서 <공제격치>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저술된 것이다. <공제격치>를 접한 최한기가 <운화측험>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에 대한 4원소의 불합리한 기계적인 적용과 지구 우주중심설과 정지설, 비합리적인 과학이론, 그리고 신학적 목적론 등이다. 이로써 최한기는 서양의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과학에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학문인 주자성리학과 서양의 기독교를 비판·극복하고 새로운 보편적인 학문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만년에 완성한 기학(氣學)이다. <운화측험>은 이러한 기학의 세계관을 이루는 자연철학적 저술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만년 저작 <기학>이 주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그 철학의 존재론적 기반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순서상 알폰소 바뇨니의 <공제격치>(1633)가 먼저 나와주어야 할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역자가 그 일을 이미 해놓았다. <공제격치>(한길사, 2012)를 먼저 번역하고 <운화측험>을 마저 옮긴 것이다. 역자의 성실한 학문적 태도가 인상적이다(역자는 혜강의 주요 저작 중 <기측제의>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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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함께 조선 후기 학문을 대표하는 혜강 최한기의 그의 기학에 대해서 처음 접한 건 김용옥의 <독기학설>(통나무, 2009/2004)을 통해서였다. 이후에 나온 <혜강 최한기와 유교>(통나무, 2004), 손병욱 역주의 <기학>(통나무, 2004)에까지 손이 갔으나 대략 어림만 할 뿐 독파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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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국문학자 박희병 교수의 <운화와 근대>(돌베개, 2003) 덕분에 최한기를 다시 상기하게 됐다. 2003년이 혜강의 탄생 200주년 되는 해였고, "이 책은 혜강의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여 최한기의 사회사상과 정치학을 중심으로 사상사적 음미를 시도한 책"이었다. 이 두 저자의 이름 옆에 이제 이종란 박사의 이름도 적어두어야겠다. 성균관대학에서 최한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공자인데, <최한기의 운화와 윤리>(문사철, 2008)이란 연구서를 갖고 있다(아마도 학위논문을 보완해서 펴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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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에 입문하려는 독자라면 <독기학설>이나 <정약용 & 최한기>(김영사, 2007) 등으로 워밍업을 하고서 <운화측험>과 <기학>의 세계로 넘어가면 좋을 듯싶다. 나부터도 그런 독서계획을 꾸려본다. 혜강에 관한 연구서는 몇 권 더 나와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산과 연암을 다룬 고미숙의 라이벌 평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북드라망, 2013)처럼, 다산과 혜강의 철학을 비교하는 좀더 묵직한 책도 기대해본다...
14. 0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