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15주년 행사로 활동 기록이 올라와 있길래 들어가봤다(http://aladin.kr/e/l140701_15th_records). 어떤 방식으로 산출해낸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라딘에서 (4991일 동안) 7336권의 책을 만난 걸로 돼 있다. 회원으로서는 48번째로 많은 페이지의 책을 만난 거라고 한다(분발하라는 뜻인가?). 아무튼 애용하는 서점이 15년 동안 잘 버텨주어 다행이다. 앞으로 15년도 꾸준하길 바라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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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 건너뛴 '이주의 저자'도 골라놓는다. 이미 알라딘 블로거베스트셀러에서 확고하게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 2014)를 제쳐놓을 수 없겠다. 지난해에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생각의길, 2013)에 이어서 '파워라이터'의 파워를 보여주는 책.

 

직업정치인의 옷을 벗고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이후 펴낸 첫 번째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 이어 유시민이 야심차게 선택한 주제는 바로 한국현대사다. 이번에는 대중의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본 한국현대사 55년의 기록이다.

 

두번째는 스피노자 읽기의 새로운 기준이 돼 가고 있는 스티븐 내들러. 평전 <스피노자>(텍스트, 2011)와 <에티카를 읽는다>(그린비, 2013)에 이어서, <신학정치론>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글항아리, 2014)이 이번에 출간됐다. "<신학-정치론>에 담긴 스피노자의 성경 해석학과 정치철학을 국내 처음으로 두루 고찰해 소개하는 인문교양서."

 

 

<신학정치론>은 발췌본을 포함해 3종이 나와 있는데, 가이드북도 나온 김에 독서계획을 세워봐도 좋겠다.

 

 

그리고 국내 독자들에겐 2012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처음 알려진 러시아의 여성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단편모음집 <우리 짜르의 사람들>(을유문화사, 2014)도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출간됐다. 작품집 <소네치카>(비채, 2012)와 장편 <쿠코츠키의 경우>(들녘, 2012)에 이어서 세번째로 나온 책(개인적으로는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2006)이 더 기대하던 책이다).

울리츠카야는 사랑, 용서, 희생, 가족, 제도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등을 주제로 삶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이 작품에서도 '작은 인간과 역사 속의 그의 삶의 운명'이라는 그녀의 주제 의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히피와 떠돌이 개, 두 다리가 없는 술주정뱅이 상이군인, 결핵 환자, 장님 노인,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젊은 청년, 수학자, 간호사 자매 등 각 작품마다 마주치는 다양한 인물, 성격, 관계들은 하나의 전체적인 군상을 이루고, 그들이 모여 만드는 모자이크는 그 어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아래가 러시아어판의 표지 가운데 하나다.

 

 

14.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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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도 좀 밀렸다. 만회하기 위해서 주말 아침에 적자면, 19세기 고전 작가인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부터다. 졸라의 <나나>(문학동네, 2014)와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창비, 2014) 새 번역본이 나왔다(<두 도시 이야기>는 다음주에 입고되는 듯).

 

 

졸라의 대표작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목로주점>이지만 내겐 <나나>도 같이 꼽히는 책인데, 아마도 예전 삼중당문고의 기억 때문인 듯하다(<목로주점>과 함께 <나나>가 포함돼 있었다). 그간에 절판돼 아쉽던 차에 얼마전 예문판으로 다시 나왔고 이번에는 문학동네판으로도 출간됐다(원로 불문학자들의 번역이다). 덩달아 절판됐던 <작품>(일빛, 2014)도 이달에 다시 나왔다. 이전에 구해두지 못했던 책이라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나나>는 어떤 작품인가.

<목로주점>, <제르미날>, <인간 짐승>과 더불어 총서에서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둔 4대 역작 중 하나인 <나나>는 「르 볼테르」지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파리의 신인 여배우 '나나'가 타고난 육체적 매력으로 파리 상류사회 남자들을 유혹해 차례로 파멸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때 영화의 인기와 함께 꽤 많이 읽히던 <제르미날>도 절판된 지 오래 됐다. 출간본과 관련하여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나나>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졸라의 세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목로주점>과 <인간 짐승>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당 두 작품 이내'만 전집 목록에 포함시킨다는 게 문학동네의 원칙이었는데, 졸라는 예외적인 작가가 됐다(아니면 원칙이 완화됐을 수도 있겠다).

 

 

영문학의 간판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도 창비판이 추가됨으로써 '정본 경합'에 불이 붙었다. 나는 펭귄클래식판으로 읽고 더클래식판도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좀더 기대가 되는 건 창비판이다(더 일찍 나왔다면 강의에서도 사용했을지 모른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다. 

 

 

 

덧붙이자면, 디킨스의 대표작 <위대한 유산>도 올해 열린책들판이 추가돼 민음사판과 경합하고 있다. 수십 종의 중복 번역 사태만 아니라면, 이런 경합이야 독자인 나로선 언제든 환영이다... 

 

14.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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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지난달에 이사하고 이번 주부터야 인터넷이 개통되는 바람에 지난 몇주간 나온 책들에 대한 기억이 두서 없다(여전히 뒤죽박죽인 책장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주 건너뛰기도 했었기에 '이주의 책'이라곤 하지만 지난 몇 주간 나온 책들 가운데서 다섯 권을 고르기로 한다(아마도 다음주까지는 그렇게 될 듯하다). 타이틀북은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이도스, 2014)다. "2013년 미국 국립학술원 선정 최고의 책,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작."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숲 관찰기다. "지은이는 한 뙈기 조각 숲을 관찰하면서 지의류와 이끼, 균류 등 미미한 생물에서부터 꽃과 식물, 나무 그리고 코요테나 사슴과 같은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세계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삶과 진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 뛰어난 생물학자답게 자연세계의 비밀과 생물진화에 대한 과학적 사유를 펼쳐내면서도, 선승처럼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시인의 언어로 그려낸다." 1년간의 관찰기록이지만, 아무래도 계절로는 여름에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두번째 책은 과학다큐 제작자이기도 한 칩 월터의 <사람의 아버지>(어마마마, 2014). '21세기 인간의 진화론'이 부제다. 인간 진화사에 대한 최신의 소개를 담고 있다.

 

 

세번째 책은 아프리카 현대사를 다룬 마틴 메러디스의 <아프리카의 운명>(휴머니스트, 2014). "노련한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이며 역사가인 마틴 메러디스는 1964년부터 15년간 격동기의 아프리카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이후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책을 썼다. 특히 그는 독립의 시대에 등장했던 주요 인물과 사건,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를 괴롭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탐구하고 해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작년말에 나온 책으로 리처드 리드의 <현대 아프리카의 역사>(삼천리, 2014)와 좋은 짝이 될 듯싶다.

 

 

네번째 책은 빌 브라이슨의 <여름, 1927, 미국>(까치, 2014)다. 제목 그대로 1927년의 여름을 다룬 책(정확하게는 5월부터 9월까지다). "빌 브라이슨은 1927년 미국의 특별한 여름을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해 여름은 베이브 루스라는 매력적인 야구 선수가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운 해이자, 경제 공황을 일으킨 잘못된 결정이 내려진 해이며, 대통령은 하루에 최대 4시간을 집무하며 국무를 돌보던 해이기도 하다." 재담꾼 저자와 함께하는 흥미로운 역사 여행이 되겠다.

 

다섯번째 책은 <경성기담>의 저자 전봉관의 <경성 고민삼당소>(민음사, 2014). 1930년대 신문 독자상담 코너에 주목하여 이 시대 생활사를 재조명한다. "근대와 전근대가 착종하던 1930년대는 ‘성 윤리의 아노미 시대’라 할 만큼 혼란했고, 마마보이, 폭력 남편, 바람둥이 등이 그 틈을 비집고 기승을 부렸다. 이 책은 뜨거웠던 청춘의 고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당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분석하고, 근대인들의 일그러진 일상을 추적한다." 역시나 흥미로운 역사로의 초대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6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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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버지- 21세기 인간의 진화론
칩 월터 지음, 이시은 옮김 / 어마마마 / 2014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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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프리카의 운명- 인류의 요람에 새겨진 상처와 오욕의 아프리카 현대사
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 김광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4년 7월
54,000원 → 48,600원(10%할인) / 마일리지 2,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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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름, 1927, 미국- 꿈과 황금시대
빌 브라이슨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14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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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뉴스레터 '독서인'의 '독서카페'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 2014)를 거리로 삼아 쓴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에 겨우 써보낸 원고다.

 

 

 

독서인(14년 7월) 지그문트 바우만에게서 배우는 희망

 

현재 영국 리즈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리즈의 현인’이다. 결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만도 20여 권에 이르고 주요 저작은 대부분 망라돼 있다. 독서 여건으로 보아도 우리시대 대표적 사회학자로 꼽을 만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한 사정이 인디고연구소에서 기획한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과의 인터뷰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 뒤이어 나온 ‘공동선 총서’의 둘째 권이다.


지젝의 인터뷰도 그렇지만 바우만의 인터뷰도 인디고연구소의 청년 일꾼들이 직접 질문지를 만들고 현지에 찾아가서 얻어낸 대답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 바우만의 핵심 사상과 현재적 고민을 생생한 육성을 통해 접하도록 해준다. 적절한 눈높이의 질문과 깊이 있는 답변이 어우러져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에 가장 유력한 가이드 역할도 겸하고 있다.


사실 바우만에게로 가는 길이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길이기도 하다. 바우만의 사색과 성찰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시대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과 해명 말이다. 그 자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듯이 무려 65년 동안 현역 사회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바우만은 사회학자의 소명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또 사회는 그 배후의 메커니즘과 어떤 연결 속에서 형성되었고 또 순환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는 일인데, 이것은 일상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바쁜 보통 사람들로선 인식하거나 간파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체적인 조망을 갖기에는 다들 너무나 제한적인 시야와 사고 범위 안에 갇혀 있고 일상에 매몰돼 있는 게 현실이다. 학자로서의 특권은 그러한 일상에서 한 발작 물러나 생각하고, 읽고, 관찰하고, 추론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점이다. ‘더 넓은 지평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바우만의 미덕은 그러한 여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 여유는 학자의 소명을 위한 여유이다.


사회학자의 소명이 제공해주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어떤 쓸모가 있는가. 바우만은 “아마도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적 인식 자체에서 쓸모를 찾지 않고,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점에서 바우만을 실천적 사회학자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실천은 ‘아마도’라는 단서와 함께한다. “최종적으로 이러한 실천의 문제는 각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각자’란 우리들 각자를 말하는 것이니 바우만을 경유해서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 셈이다.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있는가.


바우만은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대로 ‘좋은 삶이란 좋은 사회에서 사는 삶’이라고 여기는 태도다. 이에 따르면 좋은 삶은 나쁜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공자의 생각이기도 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나라’를 ‘사회’로 바꿔놓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은 취지를 갖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삶은 좋은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자가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복과 공동선을 도모해야 한다. 곧 나라에 도가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럼 또 다른 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의 행복이나 공동선이 나의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다. 즉 “내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사회는 제쳐두고, 절대적인 개인의 영역만 더 좋게 만들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회를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만 편하고 안락한 삶이 가능하도록 애쓰는 게 전부라고 믿는다. 더 극단적으로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처럼 “사회 같은 건 없다”고 선언할 수도 있겠다. 개인들의 총합이 있을 뿐 사회라는 별개의 실체는 없다는 주장이니, 그 경우에는 따로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물론 사회학자로서 바우만은 동의하지 않지만, 사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학이나 사회학자도 존재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혹은 형이상학의 일종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의 존재 유무에 관해 대처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사회라는 게 존재하며 각자의 좋은 삶은 좋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라고 말해보자. 그런 좋은 사회를 상상하는 건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바우만은 그런 상상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은 누가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다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 때문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에 따르면,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이고,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흔히 이 둘은 결합돼 있었지만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따로 분리되었다. 권력은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에 정치는 지역적 경계 안에 머물게 되면서부터다.

 


이것은 국민국가에 한정된 정치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국민이 ‘주권자’이고 국민국가의 기관들이 그 대행자이긴 하지만, 시장 자본주의의 힘은 이미 주권적 역량과 범위 너머에 군림하고 있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러한 힘에 맞서야 하지만 현재로선 미약하다. 굳이 바우만의 진단이 아니더라도,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고통은 문제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견딜 만한 것으로 간주된다. 도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해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삶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을 희망이라고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 희망이 바우만의 비유대로 병속에 넣어 ‘바다에 띄운 편지’라 하더라도 우리가 수신한 그의 메시지를 다시 더 많은 병속에 넣어 띄워보낸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가 어느 순간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바우만을 읽으며 다시 정비하게 된 희망이다.

 

14. 07. 10.

 

 

P.S. 참고로 인터뷰의 이탈리아어본이 작년에 먼저 나왔다. 영어본도 근간인 걸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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