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갑오년이고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뭔가 기념할 만한 책, 혹은 묵직한 과제를 던져주는 책이 출간될 걸로 기대했지만 한 해를 두 달 남겨놓은 시점에서도 별로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정도가 성과라고 해야 할까. 아쉬운 대로 이이화 선생의 평전 <전봉준, 혁명의 기록>(생각정원, 2012)이 출간된 김에 전봉준 읽기 리스트라도 만들어놓는다. '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가 부제인 책으로 <녹두장군 전봉준>(중심, 2006)의 개정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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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혁명의 기록- 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이이화 지음 / 생각정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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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전봉준 평전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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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이, 온다- 전봉준 평전
이광재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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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평전
신복룡 지음 / 지식산업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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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7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이화 선생의 <허균의 생각>(교유서가, 2014)을 읽고 적었다. 허균의 '호민론'에 대해서는 정길수 편역의 허균 선집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돌베개, 2012)를 참조했다. <홍길동전>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픈 생각이 든다. 허경진 교수의 <허균 평전>(돌베개, 2002)도 어디에 두었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

 

 

시사IN(14. 11. 01) 조선을 용인할 수 없었던 한 남자

 

1000만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광해>에서 도승지 역으로 나왔던 허균(류승룡 분)은 가짜 왕 광해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정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드리리다.” 영화를 흥행으로 이끈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에 대한 관객의 판타지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허균이란 문제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상기되어 이이화의 <허균의 생각>(교유서가)을 손에 들었다. 1569년에서 1618년까지 살다 간 그의 생애는 명문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고 글 잘 하는 문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반란죄로 처형되어 효시되는 걸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양천 허씨 문중은 쑥대밭이 된다.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한 ‘역적의 괴수’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냉담했다. “행실이 가볍고 망령되이 물의를 일으켜 버림을 받은 지 오래였다”고 기록한 <광해군일기>가 대표적이다. 조선사회가 수용할 수 없었던 ‘이단아’였지만, 그것은 거꾸로 허균이 조선사회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허균은 어떤 시대를 살았던가. 1592년의 조일전쟁(임진왜란)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일찍이 유례가 없는 외침을 당한 상황에서 조선 민중은 바깥의 적이 아닌 안의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었다. 난리 중에 반란과 도적이 끊이질 않았다는 사실은 조선 내부의 사회적 혼란과 갈등의 골이 이미 깊었다는 걸 방증한다. 당시 영의정이던 유성룡은 온 나라의 힘을 다 모으기 위해서는 서얼과 천민까지도 차별없이 고루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교적 교조주의와 당쟁, 그리고 민생고와 함께 조선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바로 서얼의 관직 등용을 막은 서얼금고와 천민에 대한 압제였다. 조선사회의 개혁을 꿈꾼 개혁가라면 정면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허균의 시대 진단을 알게 해주는 글 가운데 하나가 ‘소인론’, 곧 ‘못난 사람을 따진다’이다. 그는 그 글에서 조선에는 소인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자만 있다는 말인가? 정반대다. 소인과 군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범주여서, 군자가 없기 때문에 소인도 없다는 것이 허균의 일갈이다. 군자와 소인은 어떻게 다른가. 군자는 바르고 소인은 사특하며 군자는 옳고 소인은 그르며 군자는 공평하고 소인은 사사롭다. 한데 조선에서는 같은 패거리나 모두 군자라 하고 다른 패거리면 모두 소인이라며 배척한다. 그런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는 가운데 벼슬자리만 탐하는 자들만 조정에 가득하다는 것이 허균의 한탄이었다.

 


흔히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으로 알려져 있고, 저자도 그런 전제하에 <홍길동전>에 나타난 사회개혁사상을 허균의 사상과 동일시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 회의적인 견해가 더 우세한 편이지만, 서얼차별과 부패한 관권에 대한 비판이라는 핵심 주제는 허균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직접 쓰지는 않았더라도 썼을 법한 소설이란 말이다. 유명한 ‘호민론’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렇다(저자는 ‘호민론’을 ‘몽둥이와 쇠스랑을 들고 일어서는 백성들’이라고 옮긴다).


그는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눈다. 먼저 눈앞의 이익에만 얽매여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부림을 받는 자가 항민(恒民)이다. ‘늘 그대로인 백성’이니 별로 두려울 게 없다. 다음으로 자기 것을 빼앗기면서 윗사람을 원망하는 원민(怨民)이 있다. ‘원망을 품은 백성’이지만 이 또한 반드시 두려운 존재는 아니다. 반면에 세상이 돌아가는 틈새를 엿보고 있다가 팔을 흔들며 들판에 올라서서 소리를 한번 크게 지르는 백성이 있다. 바로 ‘호걸스러운 백성’으로서 호민(豪民)이다. 허균에 따르면 당대 백성의 근심과 원망이 고려 말기보다 더 심한데도 불구하고 조선의 지배층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호민이 없는 탓이다. 허균은 바로 그 호민이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씁쓸하게도 허균의 생각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도 와 닿는다.

 

1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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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동녘, 2013)을 교재로 강의를 하게 돼 그밖에 참고할 자료도 더 찾아봤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건 프레데릭 보름스의 <현대 프랑스철학>(길, 2014)이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이 사르트르부터 시작하는 데 반해서 <현대 프랑스철학>은 역시나 베르그손부터(개인적으로는 '베르그송'이란 표기를 더 선호하는데, 이젠 그렇게 표기하는 전공자들이 거의 없어졌다. 고유명사 표기에서 원음주의는 한 가지 기준일 뿐이고, 일관성이라는 면도 고려해야 한다).

 

 

베르그손에 관해서라면 최근에 나온 황수영의 <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갈무리, 2014)도 참고할 수 있는데,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은 아니고 '깡길렘, 시몽동, 들뢰즈와의 대화'라는 부제대로 '심화' 단계에 해당한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는, 이게 관행인가 약간 의문이 드는 '철학자'들도 포함돼 있는데, 통상 문학비평가로 분류되는 모리스 블랑쇼, 롤랑 바르트와 정신분석가로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그들이다. '철학'의 의미를 '사상'에 가까울 정도로 폭넓게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작 폴 리쾨르 같은 경우가 빠진 게 특이사항. 교양강좌를 옮긴 것인 만큼 그래도 난이도가 얼마간 조정되어 있다는 게 장점이다(그렇더라도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어나가는 건 역시나 무리해보인다).

 

 

사실은 프랑스 현대철학에 대한 참고자료로 벵쌍 데꽁브(벵상 데콩브)의 <동일자와 타자>(인간사랑, 1990)를 먼저 떠올렸지만,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절판되긴 했지만 영어판과 러시아어판까지 나와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책. 1930년대부터 1970년말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영어본 제목은 <현대 프랑스철학>이다.

 

 

이와 함께 프랑스 구조주의 관련으로 읽어볼 만한 건 뤽 페리와 알랭 르노가 공저한 <68사상과 현대 프랑스철학>(인간사랑, 1995). 이 또한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지만 다시 찾아보니 영어판이 나와 있다. <60년대 프랑스 철학>이라는 제목이다. 구조주의와 그 이후를 다룬 책으로 보면 되겠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책으론 크리스티앙 데캉의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책세상, 1991)도 번역됐었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재미를 못 본 책이다. 절판되지 않은 책으로 에릭 매슈스의 <20세기 프랑스 철학>(동문선, 1999) 정도가 유익했다.

 

 

찾아보니 영어본으로는 개리 거팅이나 앨런 슈리프트 같은 전공자들의 20세기 프랑스철학 가이드북이 나와 있다. 좀 부담스런 가격대여서 구입은 보류하지만 일단은 보관함에.

 

그밖에 구조주의 관련으르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1-4>(동문선, 1998-2004)나 만프레드 프랭크의 <신구조주의란 무엇인가1,2>(인간사랑, 1998-1999) 등이 더 있지만 일반 독자의 독서 범위는 넘어서는 것 같아서 생략한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현대 프랑스철학> 정도를 독파한 연휴에 생각해볼 문제이지 싶다...

 

14.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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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중앙일보에 실은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댈러웨이 부인>을 강의할 기회가 있어서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았다. 시 '목마와 숙녀' 때문에 박인환 시인이 피쳐링.

 

 

 

중앙일보(14. 10. 28)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한국인 애송시 가운데 하나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서두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읽다가 자연스레 떠올린 구절인데, 대개 한국인의 독서 경험에서 울프의 생애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보다 먼저 접하는 시가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관계인지 알기 어렵지만 뭔가 그럴듯한 인상을 남긴다. 한 잔의 술을 걸치고 읊조린다면 더 그럴듯할 것이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박인환은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떠올리며 등대의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노래한다. 페시미즘, 곧 염세주의에도 ‘미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반어법으로 읽으면 억지는 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버지니아의 생애와 더 관련되는 것은 페시미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다. 비록 울프가 정신병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워 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흔히 ‘여성주의’라고 번역되는 페미니즘에 대해 울프는 매우 자각적이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민감한 인식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자기만의 방』(1929)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당초 케임브리지대에서 ‘여성과 소설’이란 주제로 강연을 제안받았던 울프는 이 문제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대체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여성과 소설’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그 전제조건을 먼저 문제 삼은 것이다. 울프는 간명한 답변을 제시한다. 여성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중상류층에 속하는 작가였지만 울프도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건 숙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이로써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이 그녀의 창작을 지탱해준 재정적 바탕이 된다. 자신의 사례를 견본으로 삼아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거장들의 목록에서 여성의 이름이 그토록 드문 것은, 여성의 열등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울프의 생각이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기만의 방도 안정된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쓴 희귀한 사례였다.

 



울프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문호 셰익스피어에게 똑같이 뛰어난 재능을 갖춘 누이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주디스로 하고. 오빠 셰익스피어가 학교에 다니면서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호라티우스를 읽을 때 주디스는 비록 오빠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연히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수도 없었고, 집에서 오빠의 책이라도 집어 들라치면 책을 읽는 대신에 스타킹을 꿰매거나 스튜가 끓는 거나 잘 보라는 야단을 들었다. 부모가 정해준 혼처를 마다하고 주디스는 연극에 대한 열망으로 집을 나간다. 하지만 극장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훈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감독의 아이까지 갖게 된 주디스는 한겨울밤에 목숨을 끊고 길가에 묻히게 된다. 울프가 보기에는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와 동등한 재능을 갖고 있던 여성이 겪었을 법한 생애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성의 가난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창작은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만 지적 자유는 다시 물질적인 것에 의존한다고 울프는 단언한다. 하지만 여성은 항상 가난했고 시를 쓸 기회가 없었다.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이것은 '목마와 숙녀'에서 노래하듯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이 아직도 울프가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한다면, 거저 간직한 ‘페미니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처량한 목마 소리’ 대신에 기억해두어야 할 역설이다.

 

14. 10. 28.

 

 

P.S. <자기만의 방>에 대한 독후감은 최근에 나온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민음사, 2014)과 이화경의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해설하고 있는 조선정의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민음사, 2012)에서도 여성 작가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요지를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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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아침습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통상 포털에서 밤사이 뉴스를 훑어보고 간혹 스포츠경기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본 다음에 다시 새로 나온 책들을 검색한다. 한 주간의 주문이나 포스팅에서 빠진 책들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새로 주문을 넣거나 이렇게 포스팅 서플먼트성 페이퍼를 적는다. 최근에 두 중국인 저자의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1941년생 류짜이푸와 1947년생 이중톈. 개인적으로 두 사람을 묶을 수 있다면, 내가 '전작'을 갖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류짜이푸의 절판된 책 <고별혁명>을 소장하고 있는지 긴가민가해서 아침에 중고본을 다시 주문했다. 구입한 기억은 있는데 알라딘의 구매리스트에는 없다. 다른 서점에서 구입한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각각 마이리스트도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 저자라는 점.

 

 

류짜이푸의 신간은 <인간농장>(글항아리, 2014)이다. 원제는 '인성제상(人性諸相)'. '인간성의 갖가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번역본은 공식적인 부제는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인간성을 논하다'는 설명을 붙여놓았다. 바로 떠올린 책이 <류짜이푸의 얼굴 찌푸리게 하는 25가지 인간유형>(예문서원, 2004)인데, 알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농장>은 새로 쓴 단행본이 아니라 류짜이푸의 잡문 선집으로 1부의 '인간의 모습'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인간론 25종>(<류짜이푸의 얼굴 찌푸리게 하는 25가지 인간유형>의 원저)에서 실렸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인간성을 묘사하는 글들을 꽤 발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술적인 저작도 펴내면서 잡문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제가 이런 산문을 쓰는 것은 실험적 작업일 뿐입니다. 혹 어느 비평가가 이것을 산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이 글은 인간성과 인간의 생존 상황을 직접 보고 증명한 것이고, 문학이 해낼 수 있는 일도 바로 '직접 보고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류짜이푸가 '학술 연구'라고 분류한 책에는 <고별혁명>(북로드, 2003)과 <쌍전>(글항아리, 2012) 같은 책이 있는데, 거기에 <전통과 중국인>(플래닛, 2007)도 포함할 수 있겠다(<죄와 문학>, <리쩌허우 미학 개론> 등도 흥미를 끄는 타이틀이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저자는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을 떠나 홍콩과 미국을 오가며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지식인. 인간성에 대한 신랄하고 익살맞은 풍자를 읽다보면 루쉰의 잡문 정신이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프로필을 읽다 보니 류짜이푸와 이중톈은 학연도 갖고 있다. 류짜이푸가 중국의 샤먼대 중문과를 졸업했는데, 이중톈이 샤먼대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를 '학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넓디넓은 중국 대륙을 생각하면 퍽 '가까운' 인연처럼도 여겨진다. 류짜이푸와 함께 이중톈을 호명한 것은 <이중톈의 품인록>(역사의아침, 2014)이 최근에 다시 나왔기 때문. 전에 <품인록>(에버리치홀딩스, 2007)이라고 나왔다가 절판된 책이다. '5천 년 중국사를 뒤흔든 5인의 흥망성패'가 부제로 이중톈식의 '인물평설'이다.

저자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을 만큼 인물 품평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항우.조조.무측천.해서.옹정제 등 뛰어난 능력과 개성으로 세상과 대결한 논쟁적 인물들을 품평하고 있다.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개인의 성품이나 인격과 무관하지 않았다. 단순히 승리나 패배라는 결과로, 또는 집단문화와 도덕의 잣대로 쉽게 단죄할 수 없는 인물들의 면면을 저자의 문학적 감성, 깊이 있는 안목, 남다른 통찰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어느 해 겨울인가 이중텐의 책을 연이어 몇 권 읽을 때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인간농장>이나 <품인록>이나 갖가지 인간에 대한 품평이란 점에서는 마찬가지로군. 다만 류짜이푸가 익명의 다수를 다룬다면, 이중톈은 소수의 역사적 인물을 도마에 올려놓았다.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알다시피 이중톈의 신작이자 역작은 한창 출간되고 있는 <이중톈 중국사>다. 번역본은 현재 3권까지 나와 있는데, 아직 장구한 여정을 남겨놓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모아서 읽어보고 싶다(그러러면 4권 이후도 제 페이스로 무탈하게 출간되어야 할 텐데, 그러길 기대한다). 그래, 겨울엔 또 겨울에 읽을 책들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말이야... 

 

14.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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