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중앙일보에 실은 '삶의 향기' 칼럼을 옮겨놓는다. 최근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댈러웨이 부인>을 강의할 기회가 있어서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았다. 시 '목마와 숙녀' 때문에 박인환 시인이 피쳐링.

 

 

 

중앙일보(14. 10. 28)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한국인 애송시 가운데 하나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서두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읽다가 자연스레 떠올린 구절인데, 대개 한국인의 독서 경험에서 울프의 생애보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보다 먼저 접하는 시가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관계인지 알기 어렵지만 뭔가 그럴듯한 인상을 남긴다. 한 잔의 술을 걸치고 읊조린다면 더 그럴듯할 것이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박인환은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떠올리며 등대의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고 노래한다. 페시미즘, 곧 염세주의에도 ‘미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반어법으로 읽으면 억지는 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날 버지니아의 생애와 더 관련되는 것은 페시미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다. 비록 울프가 정신병 발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워 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흔히 ‘여성주의’라고 번역되는 페미니즘에 대해 울프는 매우 자각적이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민감한 인식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자기만의 방』(1929)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당초 케임브리지대에서 ‘여성과 소설’이란 주제로 강연을 제안받았던 울프는 이 문제를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도대체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여성과 소설’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그 전제조건을 먼저 문제 삼은 것이다. 울프는 간명한 답변을 제시한다. 여성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중상류층에 속하는 작가였지만 울프도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 건 숙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이로써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이 그녀의 창작을 지탱해준 재정적 바탕이 된다. 자신의 사례를 견본으로 삼아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거장들의 목록에서 여성의 이름이 그토록 드문 것은, 여성의 열등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울프의 생각이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기만의 방도 안정된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쓴 희귀한 사례였다.

 



울프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문호 셰익스피어에게 똑같이 뛰어난 재능을 갖춘 누이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주디스로 하고. 오빠 셰익스피어가 학교에 다니면서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호라티우스를 읽을 때 주디스는 비록 오빠만큼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했지만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연히 문법과 논리학을 배울 수도 없었고, 집에서 오빠의 책이라도 집어 들라치면 책을 읽는 대신에 스타킹을 꿰매거나 스튜가 끓는 거나 잘 보라는 야단을 들었다. 부모가 정해준 혼처를 마다하고 주디스는 연극에 대한 열망으로 집을 나간다. 하지만 극장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훈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감독의 아이까지 갖게 된 주디스는 한겨울밤에 목숨을 끊고 길가에 묻히게 된다. 울프가 보기에는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셰익스피어와 동등한 재능을 갖고 있던 여성이 겪었을 법한 생애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성의 가난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다. 창작은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만 지적 자유는 다시 물질적인 것에 의존한다고 울프는 단언한다. 하지만 여성은 항상 가난했고 시를 쓸 기회가 없었다.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이것은 '목마와 숙녀'에서 노래하듯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매우 도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한국 사회 여성의 현실이 아직도 울프가 기대했던 바에 미치지 못한다면, 거저 간직한 ‘페미니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처량한 목마 소리’ 대신에 기억해두어야 할 역설이다.

 

14. 10. 28.

 

 

P.S. <자기만의 방>에 대한 독후감은 최근에 나온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민음사, 2014)과 이화경의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해설하고 있는 조선정의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민음사, 2012)에서도 여성 작가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요지를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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