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자 노엘 버치의 <영화의 실천>(아카넷, 2013)이 번역돼 나왔다. '학술명저번역'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으니 영화학 분야의 '학술명저'다. 원서의 초판이 1969년, 재판이 1986년에 나왔고, 영어판은 1973년에 나왔으니까 나름 '올드'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전에(아마도 90년대 후반?) 원서를 구한 적이 있어서 이름이 익숙한데, 그때 같이 구한 책이 스티븐 히스의 <영화에 관한 질문들>(울력, 2003) 원서였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학과의 대학원 교재로 쓰이던 책들이다. 

 

 

영화기호학의 원조 크리스티앙 메츠의 <영화의 언어>나 <상상적 기표> 같은 책들과 같이 손에 넣었던 듯싶다. 책 정리를 해야 한데 분류해놓을 수 있을 터인데, 여하튼 버치의 책이 나오는 바람에 지나간 시간을 잠시 떠올렸다. 노엘 버치는 어떤 인물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고 1951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이덱(IDHEC)을 졸업했다.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위원(1968∼72)을 거치며 활발한 이론 및 비평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프랑스 영화학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첫 저서 <영화의 실천>(1969/1986)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위원을 거쳤다고 하니까 얼마 전에 나온 에밀리 비커턴의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비평의 길을 열다>(이앤비플러스, 2013)도 생각난다. 원제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사>다. 정확하게는 소사(小史) 혹은 약사(略史). 이 대표적 영화잡지의 대표 편집장으로 세르주 다네의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이모셔북스, 2013)도 올초에 번역돼 나왔었다(지난 1월에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영화이론과 비평에 관한 책들을 사모으고 읽고 했던 시절의 사후효과로 책은 다 구입해놓았다. 다시 손에 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래도 내년엔 시간을 좀 내볼 참이다...

 

13.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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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활>(창간호) 필진들과 함께하는 공개토론회가 8월 26일부터 9월 16일까지 네 차례 개최된다(일정과 신청은 http://cafe.daum.net/bords/SB9m/5 참조). 나도 9월 2일에 '이현우의 지젝 읽기'를 진행한다. 물론 창간호에 실린 지젝의 '오늘 왜 공산주의인가'를 번역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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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이 오랜만에 출간됐다. <작가의 얼굴>(문학동네, 2013)이란 평범한 제목이다.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가 부제인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사랑한 작가들의 초상 이야기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초상'.

 

1967년에 저자는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로부터 집필 의뢰와 함께 그림 한 점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이후 (주로 독일) 작가들의 초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받은 그림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구스타프 자이츠가 그린 브레히트의 초상화였다. 이 책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이런 작가들의 초상화를 한 점 한 점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하긴 작가들의 초상화가 빌미가 된 작가의 초상이라고 해도 말이 되겠다. 책을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저자의 다른 책이 생각나 찾으니 예전에 나온 건 '라이히-라니츠키'로 검색된다. <내가 읽은 책과 그림>(씨앗을뿌리는사람, 2004)와 <사로잡힌 영혼>(빗살무늬, 2002), 두 권인데,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그래서 이 페이퍼는 '사라진 책들'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사라진 영혼>은 저자의 자서전인데, 책을 구하려고 한 기억이 있지만 실제로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구하려던 시점에 이미 절판됐던 것 같기도 하다). 영어판은 이렇게 나온 책이다.

 

 

라이히라니츠키는 어떤 인물인가. <사로잡힌 영혼>이 나왔을 때 저자 소개는 이렇게 돼 있었다.  

'문학 사중주'란 독일 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본격 문학을 소개해 온 문학 저널리스트의 자서전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 프랑스의 베르나르 피보에 비유되곤 하는 파워풀한 서평자. 이 책에는 그의 삶과 사랑, 문학이야기가 실려있다. 방송 4주전에 공개된 책이 방영되기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그가 어떻게 독일 서적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를 관찰할 수 있다. 열정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꾼의 모습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풍부한 일화를 곁들여 소개했다. 막스 프리쉬, 볼프강 쾨펜, 귄터 그라스 등 독일 현대 작가들에 대한 소견과 독일 문학계에 대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권말에는 인물사전을 수록해 현대 작가들의 이력 및 작품목록을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출판기획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인상에는 라이히라니츠키는 오프라 윈프리와 베르나르 피보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비평가였다(그래서 논쟁도 자주 불러일으킨 걸로 안다). 거기에 대중적 영향력까지 갖췄으니 비평가로서는 더 바랄 게 없었겠다(우리에겐 그에 견줄 만한 비평가가 있는 것일까? '문학 저널리스트'나 '서평자'라도? 하긴 그런 책 프로그램 자체가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여하튼 <작가의 얼굴>이 나온 차에 <사로잡힌 영혼>이 떠올랐고, 대개 이런 경우 두 권 다 구입하는 게 보통이지만 절판된 책이기에 유감스럽다는 얘기를 적는다. 굳이 독문학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현대사회에서 작가와 비평가의 위상과 역할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유익한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라이히라니츠키만큼의 대중적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작가들에게는 그에 견줄 만한 비평가로 김윤식 선생이 떠오른다. 지지난주에 최근에 나온 월평집 <내가 읽을 우리소설>(강, 2013)을 구입한 때문인데,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강, 2011), <우리시대의 소설가들>(강, 2010), <현장에서 읽은 우리소설>(강, 2007)이 모두 같은 성격의 책이다.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모두 읽고 '월평'을 다는 저자의 혼신의 읽기와 쓰기 결과물이라고 할까.

 

 

 

사실 이 정도면 김윤식 선생의 자서전 제목도 '사로잡힌 영혼'이라고 이름붙여질 만하다(실제 제목은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이지만)...

 

13.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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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문학의 거장 미하일 불가코프의 대표 중편 <개의 심장>이 연이어 번역돼 나왔다. 불가코프 읽기 리스트는 두번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데, 희곡에 이어서 중단편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찾아보니 다섯 권이다(일부 작품은 중복번역돼 있다). 게다가 놀랍게도 <개의 심장>은 DVD도 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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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이병훈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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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3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라타니 고진이 신작 <자연과 인간>(도서출판b, 2013)을 읽고 적었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사의 구조>, <세계공화국>으로 나란히 읽을 만하다. <세계사의 구조>에 대한 프롤로그로, 또 에필로그로 말이다.

 

 

 

주간경향(13. 08. 13) 인간과 자연의 교환관계에 대한 고찰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신간이 출간됐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11번째 책으로 나온 <자연과 인간>(도서출판b)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모든 책’을 읽을 의사를 갖고 있고, 또 그렇게 해왔기에 <자연과 인간> 또한 기꺼이 손에 들었다. 부제는 ‘<세계사의 구조> 보유’. 고진이 대표작 <세계사의 구조>를 보충한다는 의미인데, 역자는 <세계사의 구조>를 읽기 위한 최적의 입문서로도 추천하고 있다. <세계사의 구조>와 씨름했거나 씨름해 볼 독자에겐 더 없이 유용한 길잡이이자 격려라고 할까. 여러 논문 가운데 표제가 된 ‘자연과 인간’을 통해서 어째서 그러한지 짚어본다.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교양양식으로 바라본 세계사의 전개과정을 해명한 문제작이었다.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전개를 설명한 마르크스의 시도를 보완하면서 동시에 교환양식론이라는 독보적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사상가’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준 책이다. 다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환관계에 초점을 맞춘 탓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보충하면서 고진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교환관계의 근저에 인간과 자연의 교환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야를 확대해 보자면, 지구는 엔트로피를 열로 우주에 방출함으로써 정상성을 유지하는 개방계이다. 태양광에서 고온열을 받아들여 저온열을 우주에 방출하는데, 이때 대기의 순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구라는 시스템 아래에 생명계가 있다. 이 역시 열엔트로피를 대기에 방출함으로써 유지되는 정상개방계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 인간사회가 존재한다. 고진은 이러한 계층구조에서 인간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지구온난화설을 의심하는 이유인데, 역사적으로 지구 대기의 온도 변화는 주로 태양활동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인간이 과다 배출해낸 이산화탄소에 의해서 지구 전체의 환경 변화가 초래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인간이 갖고 있는 거라면 원자폭탄이든 원전사고이든 원자력에 의해서 지구를 황폐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 정도다.

 

 

 

고진은 지구온난화설의 대두가 환경론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것은 자본주의의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함으로써 자본-국가는 석유나 천연가스를 직접 소유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용권을 국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여파로 1980년대에 고조되었던 반전운동이 시들해졌다는 점이다. 고진이 보기에 그것은 ‘자본-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의 총체적인 패배’의 결과이다.

 

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왜 일어났던가. 세계자본주의는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에 따라 주기적으로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1870년대에는 제국주의로 나아감으로써, 그리고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자본주의의 ‘외부’를 자본주의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제국주의와 닮은꼴이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까지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돼 경제성장을 달성한 시점에서는 더 이상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종언이 불가피한 이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자동적으로 끝나진 않는다. 자본-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제국주의 전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고진의 전망이다. “사람들이 주권자인 사회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라 데모에 의해 가능합니다”라는 고진의 메시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13.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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