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이 오랜만에 출간됐다. <작가의 얼굴>(문학동네, 2013)이란 평범한 제목이다.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가 부제인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사랑한 작가들의 초상 이야기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초상'.

 

1967년에 저자는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로부터 집필 의뢰와 함께 그림 한 점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이후 (주로 독일) 작가들의 초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받은 그림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구스타프 자이츠가 그린 브레히트의 초상화였다. 이 책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이런 작가들의 초상화를 한 점 한 점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하긴 작가들의 초상화가 빌미가 된 작가의 초상이라고 해도 말이 되겠다. 책을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저자의 다른 책이 생각나 찾으니 예전에 나온 건 '라이히-라니츠키'로 검색된다. <내가 읽은 책과 그림>(씨앗을뿌리는사람, 2004)와 <사로잡힌 영혼>(빗살무늬, 2002), 두 권인데,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그래서 이 페이퍼는 '사라진 책들'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사라진 영혼>은 저자의 자서전인데, 책을 구하려고 한 기억이 있지만 실제로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구하려던 시점에 이미 절판됐던 것 같기도 하다). 영어판은 이렇게 나온 책이다.

 

 

라이히라니츠키는 어떤 인물인가. <사로잡힌 영혼>이 나왔을 때 저자 소개는 이렇게 돼 있었다.  

'문학 사중주'란 독일 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본격 문학을 소개해 온 문학 저널리스트의 자서전이다. 지은이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 프랑스의 베르나르 피보에 비유되곤 하는 파워풀한 서평자. 이 책에는 그의 삶과 사랑, 문학이야기가 실려있다. 방송 4주전에 공개된 책이 방영되기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그가 어떻게 독일 서적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가를 관찰할 수 있다. 열정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꾼의 모습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풍부한 일화를 곁들여 소개했다. 막스 프리쉬, 볼프강 쾨펜, 귄터 그라스 등 독일 현대 작가들에 대한 소견과 독일 문학계에 대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권말에는 인물사전을 수록해 현대 작가들의 이력 및 작품목록을 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 출판기획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인상에는 라이히라니츠키는 오프라 윈프리와 베르나르 피보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권위 있는 비평가였다(그래서 논쟁도 자주 불러일으킨 걸로 안다). 거기에 대중적 영향력까지 갖췄으니 비평가로서는 더 바랄 게 없었겠다(우리에겐 그에 견줄 만한 비평가가 있는 것일까? '문학 저널리스트'나 '서평자'라도? 하긴 그런 책 프로그램 자체가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여하튼 <작가의 얼굴>이 나온 차에 <사로잡힌 영혼>이 떠올랐고, 대개 이런 경우 두 권 다 구입하는 게 보통이지만 절판된 책이기에 유감스럽다는 얘기를 적는다. 굳이 독문학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현대사회에서 작가와 비평가의 위상과 역할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유익한 읽을 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라이히라니츠키만큼의 대중적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작가들에게는 그에 견줄 만한 비평가로 김윤식 선생이 떠오른다. 지지난주에 최근에 나온 월평집 <내가 읽을 우리소설>(강, 2013)을 구입한 때문인데,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강, 2011), <우리시대의 소설가들>(강, 2010), <현장에서 읽은 우리소설>(강, 2007)이 모두 같은 성격의 책이다.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모두 읽고 '월평'을 다는 저자의 혼신의 읽기와 쓰기 결과물이라고 할까.

 

 

 

사실 이 정도면 김윤식 선생의 자서전 제목도 '사로잡힌 영혼'이라고 이름붙여질 만하다(실제 제목은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이지만)...

 

13.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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