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로 잘 알려진 미국의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워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그 지방의 관습>(아카넷, 2014)이 번역되어 나왔다. 처음 번역된 작품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디스 워턴은 <연락(宴樂)의 집>(1905), <이썬 프롬>(1911), <순수의 시대>(1920)와 같은 소설로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는 <그 지방의 관습>은 결혼제도에 관한 워턴의 날카롭고 풍자적인 비평의식이 돋보이는 소설로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소설은 워턴의 여타 소설들과 같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가부장적 물질만능 사회가 남녀관계, 더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를 타락시키는 양상을 담아낸다. <그 지방의 관습>에서 워턴은 여주인공 언딘 스프라그를 통해서 결혼이 여성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욕망을 달성하는 유일한 창구로 여겨지던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겸사겸사 워튼의 주요 작품을 리스트로 같이 묶어놓는다. 대부분 복수의 번역본들이 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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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방의 관습
이디스 워튼 지음, 정혜옥.손영희 옮김 / 아카넷 / 2014년 10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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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1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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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2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8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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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의 집 1
이디스 워턴 지음, 유건형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5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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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책&(432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종이의 역사'로 잡았다. 종이의 역사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 몇 권이 출간되었기에 고른 주제다.

 

 

 

책&(14년 10월호) 종이의 역사와 함께한 인류의 문명사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물과 공기처럼 필수적이지만 간과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종이다. 책장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이 사실은 모두 ‘종이책’이건만 그냥 책이라고 말할 때처럼 종이는 생략되고 숨겨진다. 그러는 사이에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도 횡행한다. 개인적으로는 종이책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남을 것이라고 믿지만, 혹 전자책의 역사가 전면화된다면 그것은 종이의 역사와 책의 역사가 결별하는 시대사적 의미도 갖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때 비로소 종이의 존재감이 확연해질 수 있을까. 이달에는 종이의 역사를 다룬 책을 몇 권 읽음으로써 너무 흔하기에 그 소중함이 잊혀온 종이에 대한 합당한 존중을 표하고자 한다.

 

이언 샌섬의 <페이퍼 엘레지>가 ‘인트로’가 될 만하다.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가 부제인데, ‘엘레지’나‘ 애도’란 말에는 종이의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저자는 종이의 죽음이라는 말이 과장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가 주안점으로 삼은 부분은 애도가 아니라 감탄이다. 그는 심지어 종이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 존재 자체가 종이와 같다고까지 말한다. 비단 책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종이와 밀착돼 있다.


예컨대 “태어나면 출생증명서가 나온다. 학교에서 이런 증명서를 더 모으고, 결혼할 때 한 장 더 생기고, 이혼할 때 또 생기고, 집을 사거나 죽을 때도 생긴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끝없이 종이가 되고, 종이가 우리가 되고, 우리의 인공피부가 된다. 우리의 존재가 곧 종이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종이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무엇을 잃게 될까? 저자는 ‘모든 것’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종이에 대한 애도는 아직 이른 것이라고 해야 할까.

 

종이의 문화사’이자 ‘종이 박물관’을 자임하는 이 책에서 흥미를 끄는 한 가지 주제는 ‘종이와 정치’다. 종이는 선전 전단으로도 활용되지만 무엇보다도 신분증명서에 이용된다. 종이(신분증)는 우리를 읽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면서 동시에 지울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로 외교부에서 발행하는 형태의 여권은 19세기에 등장했는데, 해외여행자라면 이 여권을 단순한 종이쪼가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여권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증서이자 국적을 입증하는 문서다. 국적과 관련하여 때로는 여권이 폭력과 배척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여권이라는 종이가 없다면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


한편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 한 장은 ‘1938년 9월 30일’이란 날짜와 함께 두 개의 서명이 적힌 종이였다. 네일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당시 독일 총통 히틀러와 만나서 받아온 이 문서에는 “우리는 어젯밤에 서명한 협정과 영독 해군 협정을 우리 양국 국민이 다시는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과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히틀러의 서명을 받은 종이를 들고서 체임벌린은 의기양양하게 귀국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히틀러에게 그 종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평화의 담보물이었던 체임벌린의 문서는 ‘처량한 종이쪽’으로 전락했다. 종이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에피소드이다.

 

니콜라스 바스베인스의 <종이의 역사>는 좀더 묵직한 분량으로 ‘2000년 종이의 역사에 관한 모든 것’을 개관한다. 일찍이 프랜시스 베이컨은 화약과 인쇄술, 그리고 나침반을 일컬어 중국문명의 3대 발명품으로 꼽기도 했지만 종이가 없었다면 인쇄술도 가능하지 않았다. 비록 종이 이전에 보존 처리한 동물 가죽이나 직물, 나무껍질, 말린 동물의 뼈, 도자기조각 등 다양한 재료가 필기판으로 쓰였지만 종이의 발명이 문명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다.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국의 최초의 종이는 나무껍질 안쪽에서 파낸 부드러운 섬유질과 인피와 낡은 어망, 넝마와 밧줄에서 모은 삼을 합쳐서 만들었다. 이 혼합재료를 세척하여 물에 불렸다가 나무망치로 두드려서 미세한 펄프로 만든 다음에 다시 깨끗한 물이 든 통에 넣고 저어서 걸쭉한 상태가 되게 한다. 이어서 헝겊으로 짠 스크린을 대나무틀 위에 펼쳐놓고 걸쭉한 혼합문을 걸러내면 그물망에 남겨진 섬유질이 한 장의 종이로 변화한다. 이 방법은 오랜 세월을 걸치면서 개량되지만 깨끗한 물과 섬유질, 스크린 몰드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종이가 처음 만들어진 계기가 신중한 실험에 의한 것인지 우연한 행운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이의 발명 이후 인류 문명사는 종이와 함께 한 역사이고 종이에 의존하게 된 역사다.


중국의 제지술은 전쟁의 전리품으로 다른 문화권에 전파된다. 가장 유력한 설은 751년 아랍의 아바스 왕조와 중국 당나라 군대가 벌인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중국인의 장인들에 의해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종이는 십자군 전쟁 시기에 유럽으로 흘러들어왔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스페인과 시칠리아의 이슬람 정착지였다. 이어서 종이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페이퍼 로드’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는데, 유럽의 경우1056년에 스페인에서 시작돼 1235년에는 이탈리아를 거치며, 1348년 프랑스, 1356년 오스트리아, 그리고 1391년에 독일을 지난다. 러시아에는 1576년에 전파되며, 1586년 네덜란드, 1591년 스코틀랜드를 거쳐, 1690년 노르웨이와 북아메리카를 지나고 1818년에는 호주로 이어진다. 일종의 ‘도미노 효과’처럼 번져간 셈이다.


종이는 이슬람 세계를 거쳐서 유럽에 전파되었지만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개량은 지식의 보급을 가속화함으로써 유럽을 문명사의 전면에 나서게 한다. 반면에 이슬람의 권력자들은 오랫동안 인쇄술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코란 때문이었다.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을 직접 쓰는 행위를 숭배했고, 그것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써야 했다. 하지만 인쇄술은 글쓰기라는 축복받은 행위를 기계로 침범했기에 용납될 수 없었다.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아랍어와 투르크어 인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그 금지령은 무려 300년 동안 유효했다고 한다. 인쇄술의 확산과 함께 종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광란의 종이 쟁탈전까지 벌어진 서유럽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종이의 역사를 관통하는 저자의 여정은 2001년 9.11 테러 현장에서 마무리된다. 테러리스트들에 납치된 여객기들이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충돌하면서 두 빌딩은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는데, 거대한 잿빛 연기구름을 만든 것은 사무용지들이었고 맨해튼에는 ‘종이비’가 내렸다. 이 종이들 가운데는 ‘84층 서쪽 사무실에 12명이 갇혀 있다’고 다급하게 적힌 쪽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주운 한 여성이 안전요원에게 건넸지만 이미 두 빌딩에서 84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럼에도 이 종이는 절박했던 한 순간을 증언하며 지금은 9.11 추모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종이의 역사’는 다른 한편으로 ‘종이가 만든 길’의 여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석학 에릭 오르세나의 <종이가 만든 길>은 바로 그 여정의 기록이다. 중국의 우름키에서 시작된 저자의 여정은 투르판과 둔황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로 이어지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거쳐 다시 일본과 인도로 넘어가면서 ‘과거의 종이’와 ‘현재의 종이’에 대한 사색과 성찰이 보태진다. 종이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도, 가능하지도 않았을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다시 <페이퍼 엘레지>의 ‘인트로’다. “무엇보다도, 종이를 존중하시오!”

 

1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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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 2014)와 마찬가지로 고전 작가의 빠진 작품 가운데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D. H.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유문화사, 2014). <무지개>(민음사, 2006)에 이어지는 속편 격 작품으로 <아들과 연인>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이어지는 로렌스의 문학 여정 가운데 허리에 해당하는 대표작이다.

 

 

통상 연구자들이 <사랑하는 여인들>, <연애하는 여인들>이라고 부르던 작품인데, 이제 번역본이 나왔으니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라고 통일해서 부르면 되겠다. 소개는 이렇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가 보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자에 대한 불신과 결혼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보인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한번쯤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경험일지도 모르고, 그나마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이들 자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오스틴의 작품들과는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 있는데, 역시나 여성 주인공들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이성과 감성>에서 <에마>까지...

 

 

개인적으론 지난달에 <아들과 연인>을 강의하면서 <사랑에 빠진 여인들>도 빨리 번역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번역본이 출간돼 반갑다. 기회가 닿으면 <무지개>와 같이 묶어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1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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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월요강좌의 11-12월 커리는 밀란 쿤데라로 정했다(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202). 그래서 강의제목도 '로쟈와 함께 읽는 밀란 쿤데라'다. 국내에 15권짜리 전집에다 최신작까지 소개돼 있는 터라 8주간 강의로도 다 다루진 못한다. 주요 작품과 소설론을 포함하여 일정을 짜보았다.

 

 

강의는 11월 3일부터 12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에 진행되며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농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불멸> 등은 전집본의 이미지를 넣었지만 세계문학전집 판본으로도 읽으실 수 있다.

 

1. 11월 03일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2. 11월 10일 쿤데라, <농담>

 

 

3. 11월 17일 쿤데라, <삶은 다른 곳에>

 

 

4. 11월 24일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5. 12월 01일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6. 12월 08일 쿤데라, <불멸>

 

 

7. 12월 15일 쿤데라, <향수>

 

 

8. 12월 22일 쿤데라의 소설론: <커튼> 

 

 

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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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 칼럼을 옮겨놓는다.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 2014)를 골라서 읽고 적은 독후감이다.

 

 

 

독서인(14년 10월) 선택의 독재와 진정한 선택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도서출판b)이란 책으로 처음 소개된 레나타 살레츨은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동시에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엮은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의 공저자로서 히치콕 영화에 대한 빼어난 독해를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지적 동료로서 지젝과 같이 편집한 책이 몇 권 더 소개되었지만 단행본으로 치자면 최근에 번역돼 나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가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간단한 이력을 이렇게 나열한 것은 살레츨의 책을 흥미롭게 읽어온 터라 더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젝이 독보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지만 통칭 ‘슬로베니아 라캉학파’로 불리는 그의 동료들, 곧 살레츨을 비롯하여 믈라덴 돌라르, 알렌카 주판치치, 미란 보조비치 등은 모두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새로운 철학적 통찰과 이론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원제가 <선택의 독재>인 이번 책의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다. 무엇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인가? 살레츨에 따르면 선택은 후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란 말의 원래적 의미를 따르면, 이데올로기란 우리의 삶이 구성되는 방식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다. 선택, 곧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관념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음으로써 자본주의의 지배를 영속화한다. 그렇다면 선택의 이데올로기성을 폭로하는 것은 자연스레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반론이 가능하다. 선택이란 행위는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자유는 다른 무엇보다 긍정적인 가치인데, 무슨 문제인가라는 반론이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보다 무엇이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훨씬 더 나은 사회가 아니냐는 반문도 뒤따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듯 자연스러우면서 자명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효과이고 기능이다. 가령 “사회 같은 것은 없다”고 한 마거릿 대처의 유명한 선언을 예로 들어 보자. 대처는 사회는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남녀, 그리고 가족”뿐이라고 말했다. 사회라는 게 허울이고 허상이라면, ‘사회적 문제’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사회적 고통’도 부정확한 표현이 된다. 대신에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효과다. 이렇게 되면 “사회의 부정의에 대한 투쟁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가난에 대한 수치와 경제적 성공의 사다리에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자리잡는다.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사회의 계급적 차이와 인종적·성적 불평등은 은폐된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모두가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서 평등하지 못한 사회적 조건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또 다른 관념으로서 ‘합리적 선택’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실제 사람들의 선택은 합리성과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는 라캉주의 정신분석가로서 저자가 장기를 발휘하는데, 그가 보기에 어떤 선택은 합리적 숙고보다는 그 사람의 더 깊은 심리적 구조를 반영한다. 무슨 말인가. 예컨대 히스테리증자나 강박증자, 그리고 정신병 환자는 그 심리적 구조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히스테리 여성은 으레 자신의 선택 결과에 실망한다. 항상 ‘이게 아니야!’라고 느끼며 또 다른 물건을 고르지만 불만족은 해소되지 않는다. 선택한 물건의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다. 히스테리의 전형적 증상일 따름이다. 남성 강박증자라면 어떨까. 그는 어떤 선택에든 주저하며 꾸물거릴 것이다. 그는 자기가 욕망하는 대상이 자신을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대상에 대한 접근을 가급적 회피한다. 항상 누군가에게 억압당하고 조종 받는다고 생각하는 정신병 환자에게는 선택의 상황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는 항상 누군가의 선택을 대리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예시들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생각만큼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시적 소비만 하더라도 그렇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비합리적 선택의 전형적인 사례다. 


선택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선택이 찬양된다면 그것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단 자본주의 사회만이 그런 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와 계급 없는 사회라는 이상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찬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한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과거 동유럽에서 인민이 공산주의 정권에 맞서 투쟁할 때 당 기관원들은 권력이 이미 인민에게 있기 때문에 정권과 싸워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인민주권이라는 허울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직시와 투쟁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살레츨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택이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선택은 주로 소비와 관련한 선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더 중요한 선택의 가능성을 은폐한다. 하지만 우리가 시야를 더 확장하자면, 더 근본적인 선택은 사회구조에 대한 선택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그 권리는 자본주의를 거부할 권리도 포함하는 게 온당하다. 과연 그러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는가. 선택의 독재를 수용할지, 아니면 거부할지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저자 살레츨이 우리에게 묻는다.


철학자 지젝은 유사 선택의 사례로 설탕봉지를 예로 든 적이 있다. 커피에 프림과 함께 넣는 설탕이 같은 종류임에도 흰 봉지와 노란 봉지에 따로 담겨져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다고 해보자. 흰 설탕이냐, 노란 선택이냐는 선택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질적인 차이가 없는 선택이기에 그것은 진정한 선택에 값할 수 없다. 유사 선택이다. 간판은 다르게 달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과 정책 면에서 별로 차이가 없는 정당들 사이에서 유권자가 선택해야 한다면 그 또한 유사 선택을 면하기 어렵다. 진정한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경계를 다시 긋는 행위다. 가능한 것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라고 치부되는 것을 가능한 것으로 끌어안는 행위다. 주어진 것 안에서만 고르라는 선택의 독재를 넘어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진정한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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