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기획한 '트랜스내셔널인문학총서' 가운데 <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책과함께, 2016)을 훑어보다가 정준영 교수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식민지 의학 교육과 헤게모니 경쟁'이란 논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관심을 상기하게 되었다.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관심이다. 1926년에 설립된, 식민지 조선의 이 대표적 고등교육 기관이 어떤 의미를 지녔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식민지 조선시대애 관심을 갖는다면 말이다.

 

 

게다가, 아직 구하진 못했지만 기본 자료 구실을 해줄 만한 책으로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서울대출판문화원, 2011)가 나와 있다. 내가 몇년 전에 우연히 백화점 중고매장에서 <다시 보는 경성제국대학>(푸른사상, 2013)을 구한 것도 <식민권력과 근대지식>에 촉발된 관심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공저자로 참여한 정준영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이 <경성제국대학과 식민지 헤게모니>(서울대, 2009)다. 단행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싶다.

 

 

경성제국대학 관련서는 많지 않다. 정선이의 <경성제국대학 연구>(문음사, 2002)는 학위논문에 바탕한 걸로 보이는데, 일종의 개관이고, 경성제국대학 위생조사부에서 펴낸 <토막민의 생활과 위생>(민속원, 2010)이나 법문학부의 조선어조선문학전공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동국대출판부, 2010) 등이 자료적 의미를 갖는 책들이다.

 

경성제국대학이란 무엇이었던가. 정준영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근대적 지식 체계의 생산(연구)과 배분(교육)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학보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인들 사이에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납득시키고자 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경성제대를 식민 당국의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일종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 296쪽)

 

물론 '있지 않을까?' 정도로는 부족하고, 좀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와 역할이 규명되어야 한다. 아직은 초입 단계로 보이지만 경성제국대학과 식민지 지식장에 대한 연구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면 좋겠다. 언제든 읽을 준비가 돼 있다...

 

16.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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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기후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나 혼자 뜻밖인가?) 감수성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프랑스 역사가 알랭 코르뱅 등이 쓴 <날씨의 맛>(책세상, 2016).  

 

"감각과 감수성을 연구해온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을 필두로 지리학.기상학.사회학.문학 등의 전문가 열 명이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발자취를 뒤따랐다.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 현상으로, 우울함, 충만함, 기쁨, 공포, 불안 등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날씨와 관련된 감각과 감정의 변천사라 할 만하다."

특히 어제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더욱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더불어 알랭 코르뱅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겨서 영어로 번역된 그의 책들에 욕심도 부려보았다(장바구니에 꽤 여러 권 넣어두었지만 좀 비싸서 지르진 못하고 있다). 코르뱅은 "특히 19, 20세기 프랑스 사회문화사에 정통한 그는 몸, 냄새, 소리, 시간과 공간 인식, 매매춘을 다룬 저작들로 이름을 널리 날렸다"고 소개되는 학자다.

 

 

영어로는 <고용된 여자>나 <바다의 유혹>, <남성다움의 역사> 등이 번역돼 있는데, 몇몇은 우리말로도 번역되면 좋겠다. 일단은 나와 있는 번역본 가운데 <시간 욕망 그리고 공포>(동문선, 2002)를 구입했다(구입한 듯도 싶은데 구매 목록에 없어서 놀랐다). 요즘 19세기 프랑스문학을 강의하고 있어서 맞춤한 읽을거리다. 흐린 날에는 이런 책들과 함께...

 

16.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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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러시아문학 관련서가 출간되었다(작품을 제외한). 한국러시아문학회에서 펴낸 <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써네스트, 2016). '러시아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가 부제로 붙었다.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이 각자가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을 부분 번역하고 이에 대한 소회를 덧붙인 형식이다.

 

"천재 시인 푸시킨, 거장 중의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 작가들을 비롯하여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씩을 뽑아 번역 해설하였으며 각 장면을 '사랑합니다', '고뇌와 갈망', '이상과 현실',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 '진정한 삶을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다'의 여섯 테마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고, 러시아문학을 애호하는 일반 독자들도 무엇이 러시아문학의 매력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학생들이라면 미르스키의 <러시아문학사>(써네스트, 2008), 그리고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와 같이 구비해놓아도 좋겠다(<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 편은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번역된 러시아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레르몬토프의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작가와비평, 2016)이 새로 번역돼 나왔는데, 이미 여러 차례 번역된 작품이지만 (번역본마다 다 다른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반갑다. 레르몬토프와 이 작품에 대해서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참고하시길.   

 

 

톨스토이의 후기 대표작인 중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뿌쉬낀하우스, 2016)도 '똘스또이 클래식'의 한 권으로 다시 나왔다. 보통 <크로이체르 소나타>라고 번역된 작품. 이번 번역본은 부록이 강점인데, "똘스또이가 소설의 주제에 대해 직접 쓴 '크로이처 소나타 에필로그'와 러시아 시인이자 극작가인 옐레나 이사예바가 베토벤과 똘스또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비교한 연구 논문 '똘스또이가 들은 베토벤의 음악, 왜 '크로이처 소나타'인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간간이 출간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러시아문학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전쟁과 평화>가 다시 번역돼 나온다는 5월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길 기대한다...

 

16. 04. 17.

 

 

P.S. 내게도 '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을 골라달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에서 골라야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 그리고 <지하생활자의 수기>(요즘엔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번역된다)를 대상으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기억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나타난 시선과 권력의 문제'가 제목이었다. 유실한 지 오래됐지만 그땐 나도 이십대 중반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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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의 산수 민음의 시 222
강정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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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속에는 광부가 산다

죽음 속에 삶이 살고

증오 속에 사랑이 살듯

오래전 무너져 내려 석탄도 금도 없는 폐광 속에는

검은 공기만 마시며 더 깊은 어둠이 되어 가는 광부가 산다

광부니까,

빛도 어둠도 분간 못하는 장님이 되었으니까,

무엇 하나 캐낼 것도 살아남을 것도 없는 어둠과 함께

오로지 자신의 몸만 스스로 썩히며 폐광 속에는 산다

(...)

캐낼 아무런 보석이 없어도 폐광 속에서만 산다

폐광에서 혼자 죽으려는 게  아니라,

이미 스스로 폐광이 되어

마음 안의 모든 보석들을 지상으로 퍼 올리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삶이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여전히 용을 쓰며 견디고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러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광부니까 폐광 속에 산다

무너졌든 번창하든 광부는 광 속에 살아야 한다는 몽매의 신념 따위 없다

쥐와 두더지 들을 다스려 지하의 왕이 되겠다는 야망도 없다

광부는 광부니까

폐광 속에서 산다

삶이 결국 죽음을 부르고

사랑이 마침내 증오의 싹으로 자라

한순간의 빛을 어둠의 칼날로 바꾸듯

광부는 광부니까

모든 게 없어지고 무너져 내린 폐광에 산다

(...)

 

-'광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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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오랜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저 논픽션 작가 리처드 로즈. 폭탄보다는 벽돌을 연상하게 하는 두툼한 책 <수소폭탄 만들기>(사이언스북스, 2016)가 이번주에 나왔다. 전작 <원자폭탄 만들기>(민음사, 1995/2003)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경력의 거물 저술가다. 책소개는 이렇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두 발의 원자 폭탄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독일, 일본, 이탈리아에 함께 맞선 동맹국이었지만, 미국이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두 나라의 긴장과 갈등은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 과학자, 군인, 정치가 들은 전쟁과 동맹이 뒤엉킨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게 된다. 수소 폭탄은 미국과 소련을 둘러싼 20세기 후반의 정치, 과학, 군사적 사안들이 충돌과 분열, 그리고 융합의 산물이었다. 강경파, 매파 정치가와 군인들은 적대국이 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전쟁 계획을 짰고,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 원리를 발견하겠다는 바람에,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그리고 애국심과 공포에 추동되어 수소 폭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상 쓰지 못한, 그리고 쓰지 못할 무기를 만들다가 냉전의 종말을 맞이했다. 무한 군비 경쟁을 통해 미국은 4억 달러의 비용을 날렸고, 소련은 경제 위기에 몰려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곧 '수소폭탄 만들기'의 과정이 전후 현대사이자 냉전의 역사였다. 흥미로운(하지만 뒷맛은 쓰다) 현대사 책으로도 일독할 만하다. 원제는 '암흑의 태양(Dark Sun)'인데, '20세기를 지배한 암흑의 태양'이란 부제에 반영돼 있다. 리처드 로즈의 다른 저작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한다.

 

 

 

<생각의 역사>와 <저먼 지니어스> 등의 저자 피터 왓슨이 또 한권의 대작을 펴냈다. <거대한 단절>(글항아리, 2016). 이번에는 지성사가 아니라 문명사다. "저자 피터 왓슨은 구세계와 신세계, 그리고 기원전 1만5000년과 기원후 1500년을 나눈 '거대한 단절'을 탐구한다. 여러 사례와 근거를 바탕으로 두 세계의 역사.종교.정치.기후.문화.사회.언어를 비롯한 인류사 전반을 비교하는 놀라운 작업을 한 권에 담았다. 처음에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던 인류가, 신/구세계로 나뉘어 각각 엘니뇨와 몬순 기후에 영향을 받아 '수렵-채집'과 '유목-농경'으로 발전하게 된 여정을 관찰한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서 일단 판단을 유보하게 되는데, 영국의 '가디언'지에서는 이 책을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비교하면서 '매우 흥미진진한 여정'이라고 평했다. 시간 스케일로 보자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와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사이를 다룬 책. 그렇게 연속선상에 놓고 읽어도 좋겠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인공지능을 다룬 <인간 vs 기계>(동아시아, 2016). 지난번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대결로 인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상황이라 때맞춰 나온 책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명쾌한 강의로서 "인간의 지능과 기계의 지능은 어떻게 다른가? 빅데이터, 딥러닝 등이 발전시킨 현재의 인공지능이 어떤 혁신을 가지고 올 수 있을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망,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향한 엄중한 경고를 전한다." 어린 학생들이 많이 읽어보면 좋겠다.

 

 

김대식 교수의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문학동네, 2015)도 입문서 성격의 책이지만,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나온 책도 몇 권 언급한다. 모헤브 코스탄디의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뇌과학지식 50>(반니, 2016)과 이케가야 유지의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은행나무, 2015) 등이 제목이 암시하듯 뇌과학 입문서이고, 뇌과학자와 심리학자가 공저한 <감정본색>(플루토, 2015)은 감정을 주제로 다룬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어떤 책이든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면 역할로서는 충분하리라...

 

16.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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