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고른다. 오랜만에 한국소설들로만 다섯 권을 채운다. 타이틀북은 올초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경욱의 장편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16)이다. 구효서, 이순원, 정찬주 같은 중견작가들의 신작 장편들도 나왔지만 젊은 세대 작가들의 작품들로 나머지 네 권을 골랐다. 노희준의 <깊은 바다 속 파랑>(자음과모음, 2016), 김이설의 <오늘처럼 고요히>(문학동네, 2016), 윤성희의 <베개를 베다>(문학동네, 2016), 박정윤의 <나혜석, 운명의 캉캉>(푸른역사, 2016) 등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23일에 저장

깊은 바다 속 파랑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6년 04월 23일에 저장
품절

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23일에 저장

베개를 베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23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소개되는 저자들의 책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마리야 김부타스의 <여신의 언어>(한겨레출판, 2016)와 사이먼 메이의 <사랑의 탄생>(문학동네, 2016)이다.

 

 

좀 특이한 이름의(구소련의 리투아니아 태생이란다) 마리야 김부타스(1921-1994)는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선사학자다. <여신의 언어> 외에도 <여신의 문명>, <올드 유럽의 여신과 남신> 등의 저서를 펴냈다. '올드 유럽'이란 게 6500-3500 BC를 가리키니 말 그대로 선사시대이고 감을 잡기 어렵다(아, 단군조선보다도 훨씬 이전이다!). 이 시기가 여신들의 시대였던가? 찾아보니 '고대 유럽(Old Europe)'이란 개념 자체를 만들어낸 이가 김부타스다.

"주로 기원전 7000년경부터 기원전 3500년경까지의 유물을 통해 ‘올드 유럽’의 여신 전통 문명을 보여주는 한편, 그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여러 여신 전통의 흔적들을 설명하고 있다. 1000여 컷의 이미지 자료와 그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발굴 자료의 사진이나 그것을 그림으로 복원한 것들이다. 의미에 따라 상징군으로 나누어 독자들이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소개한다."

 

우리에겐 좀더 친숙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제임스 조이스가 ‘악몽’이라 진단했던 지난 5000년의 짧은 인류 역사 이전에, 지금과 전혀 다른 4000년의 역사가 실존했다는 점이다. 이 기간은 자연의 창조적 에너지와 부합하는 조화와 평화의 시기였다. 이제, 전 지구가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4000년의 역사'를 다룬다고 하니까 좀 흥미가 생긴다. 판형이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어려운 책이긴 한데, 도서관에서라도 일독해봄직하다.

 

 

반면 <사랑의 탄생>의 저자 사이먼 메이는 니체가 주전공 분야인 철학자다. <사랑의 탄생>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제를 그대로 옮기면 <사랑: 하나의 역사>다. "서구 철학의 기나긴 역사를 가로지르며 시대에 따라 변모해온 ‘사랑’의 개념에 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하는" 책. 이런 류의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저자가 진중한 철학자라서 신뢰감을 준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몽테뉴, 근대의 니체와 프로이트까지 모두 사랑에 관해 깊이 있게 통찰했다. 메이는 이들이 말하고 있는 사랑이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의 차이를 성실하게 탐색하여, 때로는 기발하고 모험적으로 사고의 지도를 그려낸다."

중년의 독자들도 읽어볼 만하겠지만, 곧 중간시험 기간일 대학생들이 여유가 생기는 대로 읽어보면 좋겠다 싶다. 사랑의 역사를 알고 사랑하는 것과 모르고 사랑하는 것 사이에 혹 차이가 있을지 모르므로. 차이가 없다면 그걸 아는 것도 중요한 배움이다...

 

16. 04.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차하면 강의차 시외버스를 탈 뻔했지만 다행히 일정이 사라져 적어도 몸은 분주하지 않은 '세계 책의 날' 아침이다. 서재 일도 여느 주말처럼 밀려 있지만, '책의 날, 10개의 질문'에 답하는 것도 오늘의 의례인 듯싶어서 간단히 답변을 적는다. 엊그제 세상을 떠난 프린스의 'When Doves Cry'(1984)를 들으며(30년여 전에 듣던 노래지만, '퍼플레인'과 함께 여전히 그의 대표곡이로군).

날 계속 서있게 내버려 둘거니 (How can you just leave me standing)
혼자라는 건 너무 매정해 (Alone in the world that’s so cold)
우리는 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까? (Why do we scream at each other)
그 소리는 마치 (This is what it sounds like)
비둘기들이 우는 소리처럼 들려 (when doves cry)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언제, 어디서건,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지 않을 때를 제외하곤. 아니 읽을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곤. 주로 카페에서, 버스에서, 기차에서. 그리고 집에서는 서재와 식탁에서. 때와 장소를 특별히 가려본 기억은 없는데, 책을 좋아한다면 때와 장소는 부차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 종종 걸어다니면서도 읽습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모니터로 파일류를 읽을 때를 제외하곤 종이책입니다(종이책 포에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는 않지만 형광펜으로 줄은 긋습니다. 강의를 하거나 원고를 쓸 때 필요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적화한 방식입니다. 두 가지 브랜드의 연두색 형광펜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문구점에 들를 때마다 통으로 구입해둡니다(가장 저렴한 브랜드인데 모든 문구점에 비치돼 있지는 않아서요. 주로 녹색이 많은데, 제가 쓰는 건 연두색입니다). 그리고, 네, 책을 접습니다. 그래야 강의할 때나 서평을 쓸 때 인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한 권을 읽거나 강의하게 되면, 그 흔적이 남습니다. 나중에 기억을 상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지금 침대 맡에는 책이 한권도 없습니다.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좀 널브러져 있는 걸 지난주에 치웠기 때문에. 침대에서 책을 읽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더는 일을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없을 때 침대로 갑니다) 불편한 건 없어요. 그냥 아무 책이나 빼들고 자기 전에 10-20분 읽는 경우는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그렇게 읽은 책은 염상섭의 소설들입니다. 강의를 하고 있어서.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고 싶지만, 현실은 무작위에 가깝습니다. 90퍼센트의 책이 무작위로 꽂혀 있고, 그걸 재배열하기보다는 눈에 익혀서 적응하려고 합니다. 필요할 때 찾긴 찾아야 하니까. 책을 구입하는 대로 다 갖고 있느냐는 질문 같은데, 몇 차례 갖다 판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간 문제로 여러 곳에 분산돼 있어서 실제적으로는 '다 갖고 있다'는 게 무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또 사거나 대출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요. 책의 관리는 5000권 이하에서 가능한 것 같습니다. 1만권 이상 넘어가면 통제가 어려운 듯. 지금은 2만권도 넘어간 상태이고(정확히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제 서재는 공화국이 아니라 무정부에 가깝습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은 왜 하시나요? 그게 궁금하신가요? 저는 한번도 그런 게 궁금해본 적이 없는데. '네 어린시절을 말해주면 지금의 너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식의 프로이트주의자가 아니라면 이런 질문은 '인생의 책'을 묻는 질문만큼 식상합니다. 참신한 질문을 궁리해보세요. 어릴 때도 책을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책' 같은 건 없습니다(다른 책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는 편애하지 않는 편입니다.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저도 놀라는 책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도 기준이 다를 테니까 '당신들'이 보고 놀랄 책을 고르라면, (이건 안 갖고 있을 만한 책을 대보라는 거지요?) 내심 무리해서 구입했던 3권짜리 케임브리지대출판부판 <D. H. 로렌스 평전>이 있습니다. 각 시기별로 세 명의 저자가 쓴 건데, 분량만 2500쪽이 넘습니다. 로렌스의 전기를 몇 종 더 갖고 있는데, 사실 이 압도적인 분량에 혹해서 구입한 책이긴 합니다.

 

 

제 '로렌스 컬렉션'의 일부입니다. 제가 로렌스보다 좋아하는 작가는 많습니다. 러시아 작가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당연히 이 이상의 컬렉션을 갖고 있습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긴 한데, 당장은 프란츠 카프카와 만나서 그의 작품에 대한 제 해석을 들려주고 그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카프카에 대한 책을 쓰고 있기도 해서. 근년에 나온 라이너 슈타흐의 결정판 평전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이 이렇게 집요할 정도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구요(유고를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배신한 절친 막스 브로트를 한번 더 흘겨볼까?).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박경리의 <토지>입니다. 결정본이라는 마로니에북스판이 전20권인데(인물사전까지 포함하면 21권) 이게 2012년에 나왔으니까 많이 늦은 건 아닙니다. 그 이전 판본으로 읽은 독자도 물론 있겠지만요. 어지간하면 대출하지 않고 구입해서 읽기 때문에, 이런 규모의 대하소설은 전셋집에 살면서 구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입과 독서가 가능해진 건 2년도 되지 않고 몇달 전에야 제1부를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맛보기로 좀 읽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역시나 강의도 하고 싶습니다. 러시아나 유럽의 대하소설과 비교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이건 부지기수입니다. 일주일에도 수십 권의 책을 '면접'하기 때문에. 그래서 '끝내지 못한 책'이라면 다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내려놓은 책을 지목해야 할 거 같은데, 그 정도로 형편없는 책이라면 아예 손에 들지도 않았을 테니, 이 또한 답하기 어렵네요. 그리고 원론적으로 책을 '끝내다''끝내지 못하다'가 무슨 의미인지 묻는다면, 사정은 더 꼬이겠습니다. 아, 프로이트의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도서출판b, 2004)도 끝내지 못한 책이었네요. 어디에 있는지...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드디어 끝나는 질문인가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식상한 질문이긴 한데, 짐짓 진지하게 답하자면 두꺼워서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권수 초과인가요?). 슬라보예 지젝의 <레스 댄 낫씽>도 유력하구요(번역본이 두 권이어서 문제라면 영어본을 들고 가야겠구요). <로빈슨 크루소>도 한권 들고가는 건 무인도에 대한 에티켓이라고 생각합니다...

 

16. 04. 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달 '출판문화'(604호)에 실린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을 옮겨놓는다. 시의성을 고려하여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번역 현황을 짚어보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언급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란 제목으로 쓴 페이퍼의 확장판이다. 이번주에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 2016)가 출간됐다는 소식은 전했는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새 번역본으로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펭귄클래식, 2016)도 나왔다. 원제를 제목으로 다 살렸는데, 후발 번역서로서 주목을 좀 해달라는 주문으로 봐야겠다. <햄릿>(문학동네, 2016) 새번역까지가 '400주기'의 수확이다.

 

 

출판문화(16년 4월호)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

 

발렌타인데이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다. 독서와 출판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에 지정한 기념일이고 공식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이제 갓 스무 해를 넘긴 세계 책의 날의 역사에서 올해는 특별히 더 기념할 만하다.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을 기념하여 4월 23일로 정해졌다는데, 올해가 바로 두 사람이 사망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슨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모셔두기만 했던 두 문호의 걸작들을 한번 일독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충분한 기념이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들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관한 강의를 연중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주 강의해온 작품도 있고 처음 강의하게 된 작품도 있다. 딱히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강의를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은 종의 번역본과 참고자료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만 하더라도 축약된 어린이용 도서만 잔뜩 나와 있고 완역본이 희귀했었지만(김현창 교수의 번역본과 1부만 옮긴 박철 교수의 번역본이 거의 전부였다) 2005년에 민용태 교수의 완역본(창비)이 나온 걸 필두로 하여(2012년에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2014년에는 안영옥 교수의 완역본(열린책들), 그리고 지난해에는 2부까지 마저 옮긴 박철 교수의 완역본(시공사)가 출간돼 완역본끼리의 경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돈키호테>의 1, 2부가 각각 1605년과 1615년에 나온 걸 고려하면, 무려 400년 만에 한국에서도 <돈키호테>에 대한 독서 내지 ‘독서 붐’이 가능해진 셈이다. 


셰익스피어도 비슷한 추세다. 김재남 교수의 최초의 한국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은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었으나 절판된 지 오래인 상태에서 신정옥 교수의 문고본 판형의 전집(전예원)이 유일했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를 전담해서 번역해온 최종철 교수도 2014년부터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을 출간중이다. 개인 번역 전집의 상황이 그렇고,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번역판으로 작품총서(동인)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제 수년 안으로 네댓 종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전집판의 경우가 그렇다는 얘기이고, 4대 비극 같은 주요 작품들에 한정하면 독자의 선택지는 훨씬 더 넓어진다.  

 


셰익스피어 강의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한 차례의 강의라면 단연 <햄릿>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4주짜리 강의로 그의 4대 비극을 읽게 된다. 조금 애매한 경우가 5주 강의를 맡았을 때인데, 나의 선택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4대 비극만큼 유명해서다(<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하여 ‘5대 비극’으로 묶은 작품집도 있다). 그 <로미오와 줄리엣> 번역본에 대한 얘기를 잠깐 적는다. 몇 차례 강의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특이하게도 작품의 명성에 비해 생각만큼 번역본이 많지는 않다. 어린이용이나 청소년판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최종철판(민음사)이고, 김정환판(아침이슬)과 김재남판(해누리) 등을 곁들인다.


민음사판을 강의에서 자주 이용하는 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가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으면서 손에 들 만한 번역본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구심이 든다. 역자가 운문 번역을 표방하면서 시 형식을 맞추는 데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까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많아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한정하면, 편집상의 실수도 없지 않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4장의 첫 대사는 로미오의 대사임에도 민음사판에서는 벤볼리오의 대사로 처리되어 있다. 그렇게 밀리다 보니, 벤볼리오의 대사인 두 번째 대사는 머큐쇼의 대사가 되었다. 이건 판본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착오다. 같은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전집판(2014)에는 바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붙은 하인들끼리의 시비는 캐풀렛의 조카 벤볼리오의 등장에..."라고 되어 있는 것도 좀 무심한 착오다. 로미오의 친구이기도 한 벤볼리오는 몬터규의 조카이기 때문이다. 두 집안이 원수 사이인 걸 생각하면 좀 짓궂은 오류인데,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런 오류는 교정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번역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보통은 정답이 없는 해석상의 문제나 뉘앙스상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객들을 설레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 장면을 보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둘의 첫 키스 장면은 1막 5장에 나온다. 로미오가 짝사랑하는 여인 로잘린을 보기 위해 캐풀렛 가의 파티에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가 줄리엣에게 한눈에 반해서 수작을 거는 장면이기도 하다. 최종철판의 번역은 이렇다.

 

줄리엣: 성자상은 기도는 허락하나 움직이진 못해요.
로미오: 그렇다면 기도하는 동안에 움직이지 말아요.(그녀에게 키스한다) 이렇게 내 죄는 그대의 입술로 씻겼소.
줄리엣: 그렇다면 내 입술로 죄가 옮겨 왔군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요? 오, 이 달콤한 범법 재촉! 내 죄를 돌려줘요. (그녀에게 다시 키스한다)
줄리엣: 키스를 배웠군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은 줄리엣의 마지막 대사이다. "키스를 배웠군요."란 번역은 일단 주어가 모호하기에 불친절한 번역이다. 로미오가 연거푸 두 번 키스를 했기에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키스를 배웠다는 말인지, 키스를 능숙하게 하는 걸로 보아 로미오가 어디선가 키스를 배운 것 같다는 말인지 번역만으로는 알 수 없다. 원문은 'You kiss by the book'이다. 그러니 후자 쪽이고 사실 시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여야 맞다. 그런데 뜻은? 일단 별도의 전집판(민음사)에서 역자는 "책에 적힌 키스네요."라고 수정해서 옮겼다. 말하자면 키스를 책에서 배운 대로 한다는 것이다. 줄리엣이 본 책은 어떤 책들일까? 키스 교본? 혹은 소설?


한데 'by the book'이란 표현은 옥스포드판의 주석에 따를 때 'according to the rules'란 뜻이다. 그리고 그게 좀더 말이 된다. 줄리엣에게 키스하면서 로미오는 두 번 다 어떤 이유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속죄의 키스. 다른 한번은 그 죄를 다시 돌려받는 키스. 즉 키스하고 싶어서 키스한 게 아니고 특별한 이유에 따라 키스한 것처럼 둘러댄 것이다(이게 노련함인가?). 이것을 김정환판에서는 "입맞춤마다 이유가 있으시군요."라고 옮겼고, 김재남판은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라고 옮겼다. 둘다 대동소이한데, 최종철판과는 다른 해석이다. 김재남판은 이렇게 옮겼다.

줄리엣: 성자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비록 기도를 들어주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로미오: 그렇다면 내가 기도의 효험을 받는 동안 움직이지 마세요. 이렇게 당신의 입술로 내 입술에서 죄는 씻어지거든요.(키스한다.)
줄리엣: 그러면 나의 입술이 그 죄를 짊어지게 되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 죄를 넘겨받는다? 오, 달콤한 질책이여! 나의 죄를 되돌려주세요.(키스한다.)
줄리엣: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

훨씬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다. 대화도 더 자연스럽다(아무리 운율을 맞춘다지만 최종철판의 '범법 재촉!'은 부자연스럽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한 키스는 책에서 배운 키스가 아니라 이유를 둘러댄 키스다. 두 주인공의 로맨틱한 키스를 기억하는 독자/관객이라면 최소한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사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국민적 화제가 됐었다.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에게 힘겹게 1승을 거두긴 했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1:4로 패했다. 돌이켜보면 그 1승도 또 다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알파고는 막강했다. 바둑의 최고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알사범(알파고)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창조성의 영역으로 성큼 진입해온 셈인데, 그와 맞물려 앞으로 상당수의 직업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뒤집어서 말하면, 창조적인 일일수록 로봇이나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비교우위를 유지할 거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 좀더 '수학적인' 작곡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문학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쓴 시와 소설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몇 만권의 시집과 소설을 읽어치운 인공지능을 상상해보라!). 인공지능 대문호의 탄생? 인공지능 셰익스피어? 언젠가는 인공지능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주인공 로미오는 어떤 이유를 대며 줄리엣에게 키스할지 궁금하다.

 

16. 04.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16)이 출간됐는데, 이에 발맞추듯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작가 5인 열전'이란 포스트가 떴다(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memberNo=6495282&volumeNo=4053027&navigationType=push). 김금희, 김성중, 오한기, 정세랑, 김엄지가 그 명단이다. 과문한 탓에 처음 들어본 작가도 있다(김금희가 그렇다). 새로운 기대주들이라고 하니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다섯 작가의 대표작을 한데 묶어놓는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19일에 저장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6년 04월 19일에 저장
구판절판
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19일에 저장

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6년 04월 19일에 저장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