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판계와 문학계의 가장 큰 화제는 물론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이었다. 돌이켜보면 결선 후보(숏리스트)에 올라갔을 때 이미 수상이 유력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분위기상). 오르한 파묵과 옌렌커 같은 쟁쟁한 작가들이 경합을 벌였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문학의 존재감을 세계문학시장에 부각시킨다는 면도 있고, 또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이 워낙에 뛰어나다는 입소문도 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의 경우 작가와 번역자가 상금을 절반씩 나눠갖는다고 하는데, 번역작품을 대상으로 한 심사인 걸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다. 예외일는지모르겠지만 1968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작가는 번역자인 사이덴스티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사이덴스티커의 회고에 따르면 가와바타는 번역인세의 절반을 역자의 몫으로 했다고 한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아니 그보다 앞서 영역본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나는 영역본을 바로 주문했는데(<소년이 온다>는 미뤄둔 상태), 그 즈음부터 머릿속에서는 이번 봄에 펭귄클래식판으로 나온 <홍길동전>과 나란히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홍길동전>은 미국 미주리주립대 역사학과의 강민수 교수가 새로 옮겼는데, 펭귄클래식에 포함된 최초의 한국 작품이다. 2016년이 한국문학 세계화의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될수 있는 근거가 <홍길동전>과 <채식주의자> 바로 이 두 사례다.

 

 

국내에서 나오는 펭귄클래식코리아에는 <홍길동전>(2009)이 들어 있지만, 영어판과는 무관하다. 펭귄클래식에 포함된 작품이어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펭귄클래식코리아 측에서 추가한 작품. 두 가지 점에서 영어판과 다르다. 국내판에서는 대부분의 <홍길동전>이 저자가 '허균'이라고 되어 있다. 아직까지 국문학계 쪽에서는 저자가 허균이라는 허균설을 채택하고 있는데, 연세대 이윤석 교수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대로 근거가 박약하다. 영역판을 옮긴 강민수 교수도 이윤석 교수의 주장을 좇아 저자 표시 없이(해설에서 허균이 지었다는 설은 소개한다) <홍길동전>이라고만 표지에 명기했다.

 

그리고 다수의 <홍길동전>이 많은 이본 가운데 방각본인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싣고 있는데 반해서, 강민수 교수는 필사 89장본을 택했다. 펭귄판으로 <홍길동전>을 접하게 될 외국 독자들이 읽게 될, 혹은 알게 될 <홍길동전>이 우리가 평균적으로 알고 있는 <홍길동전>과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내 생각으론 그들이 우리보다 <홍길동전>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될 듯싶다. 해설과 번역이 모두 훌륭하기 때문에. 게다가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홍길동전>이잖은가.  

 

최근 펭귄의 편집자 새뮤얼 레임이 펭귄클래식에 더 소개할 만한 한국 고전작품을 찾아서 방한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홍길동전> 이전에는 펭귄클래식에 포함된 한국 작품이 없어서 놀랐다는 그는(우리도 놀란다!)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모처럼 한국문학이 고전문학이건, 현대문학이건 영어권에 널리 소개될 기회는 얻었는데, 계속 후속타가 이어질지 궁금하다.

 

 

맨부커상 수상의 여파로 아마 상반기 최고 문학 베스트셀러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떼놓은 당상일 듯하다. 지난주에 한 강의에서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를 세 가지로 간추려보았는데,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문학을 바라볼 수 있는, 재볼 수 있는 눈금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 만한 작품을 쓰면 어느 정도 평가를 받는구나, 라는 게 처음 제시된 것.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으로만 가늠해보던 한국문학의 수준과 위상에 대해서 좀더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역시나 번역의 중요성. 세계문학은 번역문학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데버러 스미스가 원작을 어떻게 소화하여 '창조적인' 번역을 했는지에 대해서 짚어주는 기사도 있으므로 참고하시길. 요는 다른 번역자의 번역이었더라도 수상이 가능했을까인데, 높게 쳐서 반반일 것이다.

 

끝으로 맨부커상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얘기가 떠들썩하게 나왔는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은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에 맨부커상 본상과는 다르다. 가령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더라도 한국문학 작품이 세계무대에서 이 정도 지명도의 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기에 충분히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좀더 대범한 태도로 표정 관리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강이 유일한 한국 작가이고, <채식주의자>가 유일한 한국작품인 마냥 반응하는 것은 문학 선진국의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선진국이었냐고?..

 

16.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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