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로는 이미 여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주중에는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며칠 이르게 골라놓는다. 읽을 책이 부지기수로 밀려 있는 상황에서 또 읽을 만한 책이라고 고르려니까 미리 더부룩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사실 머릿속을 비우는 의미도 있다. 무엇이 더 중한지는 골라놓고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에서는 삼인에서 새로 시작한 '시인선'의 시집 두 권을 먼저 고른다. 유진목의 <연애의 책>과 조인선의 <시>다. 이 시인선은 내막을 갖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시인 김혜순, 김정환은 몇 해 전 신춘문예나 잡지 등단 관행의 문제점을 '출판사 주도로 오래 준비해 출간하는 시집 출판'이라는 새 제도로 극복하고자 뜻을 모았다. 즉, 시집 출간으로 시인을 등단 내지 재등단시키는 제도를 마련한다는 것으로, 시집 한 권 분량을 채울 50∼60편의 시를 한꺼번에 받아 살펴본 뒤 역량이 확인된 시인들의 시집을 출간하여 시집선을 채운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즉 시 몇 편으로 등단하고 일정 기간 발표한 작품을 묶어서 시집을 펴내온 관행을 바꿔보겠다는 취지다. 새로운 과정을 거쳐서 펴내는 만큼 기대를 갖게 하는데, <연애의 책>을 두고 황현산 선생은 "한국 최고의 연애 시"라고 격찬했다. 안목에 기대서 일단 주문해놓았는데, 내일이나 받아서 읽게 되면 따로 얘깃거리가 생길지 모르겠다.
소설로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 데뷔작 <에이미와 이자벨>(문학동네, 2016), 제임스 설터의 데뷔작 <사냥꾼들>(마음산책, 2016), 그리고 정지돈의 첫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 2016)을 고른다. 미리부터 마음이 풋풋해진다.
예술 분야에서는 최근에 미셀 모건의 <오 마이 마돈나>(뮤진트리, 2016)가 출간된 김에 '뮤진트리 뮤지션 시리즈'에서 몇 권 골랐다. 현재 7권이 나온 상태인데, 모두 친숙한 이름들이다. <신디 로퍼>와 <마돈나>는 비교해서 읽어도 되겠다(내게 80년대를 되새겨주는 이름들이다).
2. 인문학
인문 분야에서는 '플라톤'의 책들을 골랐다. 일단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숲, 2016)이 번역돼 나왔다.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파르메니데스 등 5편의 후기 대화편이다. 특별히 파르메니데스의 번역이 반가운데, 이 번역의 의의는 나중에 따로 짚어보고 싶다. 그리고 리베카 골드스타인의 <플라톤, 구글에 가다>(민음사, 2016). 철학자이자 소설가라는 저자의 직함대로 철학적인 주제로 소설로 풀어내는 데 능한데(철학적 픽션), 이 책 역시 "오늘날 환생한 플라톤이 현대인과 만나는 대화편과 그에 대한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나로선 원서를 진작 구해놓은 책인데, 번역본을 손에 들기 전에 책장에서 빨리 찾아봐야겠다.
<플라톤, 구글에 가다> 정도는 고등학생도 읽었으면 싶지만 좀 부담스럽다면(700쪽이 넘는다) 최성민의 <나의 멘토 소크라테스>(시간여행, 2016)를 먼저 읽어도 좋겠다. 고등학생 저자가(지금은 대학생이 됐을까?) 쓴 것으로 "한 고등학생이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이 담긴 명저들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답하며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저명 학자들과의 인터뷰도 수록하고 있는데, 청년의 패기가 느껴진다. 장차 10년 후의 성과가 기대된다.
중국에 관한 무겁지 않은 책들도 몇 권 골랐다.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문학동네, 2016)과 쑨거의 <중국의 체온>(창비, 2016)은 중국의 저명 작가와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당대 중국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국의 '차이'와 '체온'을 느끼게 해줄 듯. 중국철학자 자오팅양이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와 나눈 서신선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메디치미디어, 2016)는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지닌 두 사람이 "근대적 혁명의 한계에서 시작한 이 서신 토론은 정치, 종교,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자본에 잠식당한 현실을 폭로한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에서 먼저 고른 책은 사스키아 사센의 <축출 자본주의>(글항아리, 2016)다. '복잡한 세계 경제가 낳은 잔혹한 현실'이 부제.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논리로 저자가 이끌어낸 결론이 '축출'이다. "사회적 계급과 물질적 조건, 지리적 위치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축출의 근원을 밝히고, 성장이라는 무자비한 신화의 가면을 벗긴다." 예감 혹은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실상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또 다른 사회적 진단은 조지프 피시킨의 <병목사회>(문예출판사, 2016)다. "기회균등 원칙이 갖는 여러 난점을 파헤치면서 이 원칙을 더욱 급진화, 구체화, 현실화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기회균등을 아무리 보장하더라도 기회구조 자체가 단일하고 협소하면 병목현상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허울뿐인 평등의 원칙과 무자비하게 불평등한 현실밖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제가 '기회의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다.
국내서로는 정현백 교수의 <주거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당대, 2016)을 고른다. 부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주거개혁 정치와 운동'이다. 당장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슷한 문제를 앞서 고민했던 국가들이 어떤 해법을 찾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4. 과학
학생들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지식' 시리즈가 있다. 이번에 <양자역학 지식 50>이 나왔는데, <뇌과학 지식 50>이나 <화학지식 50>과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역시나 학생들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결을 다룬 몇 권의 책도 얹어놓는다. 바둑의 기초만 알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5. 책읽기/글쓰기
장정일의 <이스트를 넣은 빵>(마티, 2016)은 새 서평집이 아니라 서평 선집이다(국내에서는 최초가 아닐까?). <장정일의 독서일기>(전7권) 가운데서 가려 뽑은 책. 그의 독자로서는 감회가 없지 않다.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의 <문장의 품격>(휴머니스트, 2016)은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라는 부제 그대로다. 이남희 작가의 <나의 첫번째 글쓰기 시간>(아시아, 2016)은 초보자를 위한 논픽션 글쓰기 안내서다. "저자가 전하는 논픽션은 자기 이야기(자서전), 리뷰(비평문), 인터뷰, 르포, 여행기." 시나 소설이 아니라도 뭔가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 독자라면 참고해볼 만하다.
16. 05. 29.
P.S. 그리고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전7권의 방대한 작품을 다 읽는 건 아니고, 맛보기로 1-권을 읽어보자는 것. 1권 '스완네 쪽으로'가 민음사판으로는 두권짜리, 펭귄클래식(<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란 제목) 양장본으로는 한권, 보급판으로는 두 권짜리가 나와 있다. 나로선 올여름을 프루스트와 함께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프루스트를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아니, 그게 어떤 의미의 사랑이냐에 달려 있기도 하고, 또 직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