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문학기행의 일정이 일단락되었다. 내일 오전에 베를린 최대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마우어 공원을 방문하고서 우리는 베를린 테겔공항으로 향할 예정이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장시간 비행을 한번 더 버텨내면 (한국시간으로) 월요일 오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베를린 중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파리광장, 훔볼트대학, 연방의회의사당 등을 둘러본 것이 오늘의 오전 일정이었다. 오후에는 케테 콜비츠 박물관을 먼저 찾은 다음에 바로 옆 레스토랑 겸 카페인 ‘문학의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어서 카프카가 도라 디아만트와 함께 베를린에서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 그루네발트가 13번지를 찾았다.

3년 전에는 사람이 사는 집이었는데 오늘은 빈집처럼 보였다. 카프카의 마지막 인생을 잠시 복기하고 막스 브로트에게 남긴 그의 유언과 부모님께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일부 낭독했다. 기념 단체사진을 찍고 카프카가 걸었던 산책로를 따라 베를린 식물원까지 걸어가보는 게 카프카 투어의 대미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들른 곳이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나는 3년전에 지하의 기념관까지 둘러보았던 터라 새로울 건 없었다. 다만 메모리얼에서 가까운 아케이드건물 유료화장실 요금이 다른 곳보다 2배 이상 비싼 1유로여서 놀랐다. 1300원이라니!

그만큼 놀란 건 한나 아렌트 거리, 곧 한나 아렌트가를 발견한 것. 히틀러가 정부인 에바와 동반자살했다는 벙커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눈에 띈 도로 표지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사진을 확대해야 보인다). 생각해보니 3년 전에도 발견하고 흥미로워 했던 듯싶다. 새삼스럽게 바라본 건 아렌트의 주저 <인간의 조건>을 지난봄에 강의하고 또다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을 이번 가을에 강의할 계획이기 때문. 한나 아렌트가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울리는 조합으로 여겨진다.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책 가운데 하나가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니까.

그리하여 오늘의 여정은 케테 콜비츠에서 카프카를 거쳐 아렌트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그의 사후의 일이지만 카프카의 세 여동생이 모두 나치의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카프카 역시도 홀로코스트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카프카의 문학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법과 권력의 부조리한 횡포? 생각나는 건 조르조 아감벤의 카프카론인데 또다시 카프카 투어를 떠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업그레이드 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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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제목을 적으며 떠올린 건 두 가지다. ‘독일의 가을‘인지 ‘가을의 독일‘인지,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와 장정일의 시. 클루게의 영화는 모스크바에서 힘들게 본 기억이 있다. 역시 독일영화의 거장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도 출연한 다큐식 영화. 1970년대 중반 적군파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 <바더 마인호프>도 생각나는군. 격렬했던 1960년대와 달리 순응주의가 대세였던 1970년대의 한 증상으로 보인다. 극단적 테러리즘은 대중적 정치운동의 실패나 포기를 뜻하므로.

여하튼 ‘독일의 가을‘이란 제목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걸 본 기억을 호텔 앞 풍경을 보면서, 이 또한 독일의 가을 풍경이기에, 떠올렸다. 또 한장의 사진은 어제 점심을 먹은 드레스덴의 식당 주변 거리다. 분수의 물줄기가 마음을 끌어서 한 컷. 이제 곧 베를린 시내 투어에 들어가는데, 연방의사당도 방문할 예정이다. 지금은 2017년 독일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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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각으로 밤 9시를 조금 넘겼으니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호텔 주변 주택가는 깊은 어둠에 싸여 있다. 드레스덴에서 출발한 지 두시간 반만에 베를린에 안착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도중에 베테랑 가이드로부터 독일의 교육제도와 생활여건,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프라하는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듯한 느낌.

하긴 베를린에 남아 있는 카프카의 흔적은 단출하다. 펠리체 바우어와 약혼/파혼을 한 호텔은 건물도 주소도 바뀐 상태라 말 그대로 흔적만을 찾아볼 예정이고 주된 목적지는 1923년 가을에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와 살았던 동네다. 카프카가 살았던 집에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내일 찾아가서 단체사진을 찍으면 카프카 투어는 일단락된다. 나머지는 베를린의 몇몇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케테 콜비츠 미술관을 방문하는 정도의 일정. 내일 저녁에 마지막 만찬이 있고 모레 귀국길에 오른다.

오늘 오전과 오후는 드레스덴 관광으로 채워졌는데 시간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라파엘로의 명화 ‘시스틴의 성모‘가 걸려 있는 미술관도 둘러보았다. 드레스덴은 작센주의 수도로 츠빙거(츠빙어)를 비롯한 궁전급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과거의 부유하고 화려했던 시절을 증언했다. 함정은 이 건물들 대다수가 2차세계대전 말의 참혹한 폭격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어진 건물들이라는 점.

드레스덴 폭격과 관련해서는 커트 보니것의 <제 5도살장>을 참고할 수 있다. 나로선 독문학 강의 때 읽은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도 떠올렸는데 주인공이 작센주의 말 상인이어서다. 영주의 횡포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미하엘 콜하스다. 마르틴 루터도 직접 등장하기에 흥미로운 소설. 대표적인 루터파 교회라는 성모교회 광장에는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이 동상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가름했다.

다시 베를린.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도 수없이 많겠지만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언젠가 유럽 모더니즘 소설들을 모아서 강의하고픈 소망이 있는데 그 목록에 포함되는 작품이다. 내일은 오다가다 알렉산더 광장과도 재회하게 될지 모른다. ‘예술의 도시‘(가 캐치프레이즈라 한다) 베를린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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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드레스덴으로 이동중이다. 2시간 남짓 소요될 예정인데 와이파이가 잘 되기에 막간 페이퍼를 적는다. 전혀 쓸데없는 페이퍼다. 어제 오후에 둘러본 프라하의 한 서점에서 필립 로스의 책을 할인판매하더라는 얘기. 알아두어도 쓸데없는 지식이 유행하기에 쓸데없는 정보도 적어본다.

일단 놀란 건, 필립 로스의 책이 상당히 많이 번역돼 있다는 것. 체코어를 몰라서 제목을 추측해볼 뿐이지만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포함한 주커만 시리즈와 마지막 소설 <네메시스> 등이 눈에 띄었다. 양장본이 할인가로 1000-2000원 가량이면 그냥 가져가라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 아닌가. 잠시 망설이긴 했는데 체코 화폐 코로나가 없었기에 사실 오래 고민할 건 없었다(환전해서 구매하는 번거로운 방법을 동원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는 얘기다. 읽은 작가도 아는 사람 만나듯이 말이다. 그것도 객지에서...

(드레스덴을 목전에 두고 휴게소에 정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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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블타바강 크루즈를 경험했다. 몇 장 찍은 사진을 아침을 먹기 전에 올려놓으려 했는데 용량 때문인지 무산되었다. 프라하를 떠나면서 한장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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