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각으로 밤 9시를 조금 넘겼으니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호텔 주변 주택가는 깊은 어둠에 싸여 있다. 드레스덴에서 출발한 지 두시간 반만에 베를린에 안착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도중에 베테랑 가이드로부터 독일의 교육제도와 생활여건,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프라하는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듯한 느낌.

하긴 베를린에 남아 있는 카프카의 흔적은 단출하다. 펠리체 바우어와 약혼/파혼을 한 호텔은 건물도 주소도 바뀐 상태라 말 그대로 흔적만을 찾아볼 예정이고 주된 목적지는 1923년 가을에 마지막 연인 도라 디아만트와 살았던 동네다. 카프카가 살았던 집에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내일 찾아가서 단체사진을 찍으면 카프카 투어는 일단락된다. 나머지는 베를린의 몇몇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케테 콜비츠 미술관을 방문하는 정도의 일정. 내일 저녁에 마지막 만찬이 있고 모레 귀국길에 오른다.

오늘 오전과 오후는 드레스덴 관광으로 채워졌는데 시간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라파엘로의 명화 ‘시스틴의 성모‘가 걸려 있는 미술관도 둘러보았다. 드레스덴은 작센주의 수도로 츠빙거(츠빙어)를 비롯한 궁전급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과거의 부유하고 화려했던 시절을 증언했다. 함정은 이 건물들 대다수가 2차세계대전 말의 참혹한 폭격으로 파괴되어 다시 지어진 건물들이라는 점.

드레스덴 폭격과 관련해서는 커트 보니것의 <제 5도살장>을 참고할 수 있다. 나로선 독문학 강의 때 읽은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도 떠올렸는데 주인공이 작센주의 말 상인이어서다. 영주의 횡포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킨 주인공이 바로 미하엘 콜하스다. 마르틴 루터도 직접 등장하기에 흥미로운 소설. 대표적인 루터파 교회라는 성모교회 광장에는 루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이 동상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가름했다.

다시 베를린.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도 수없이 많겠지만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언젠가 유럽 모더니즘 소설들을 모아서 강의하고픈 소망이 있는데 그 목록에 포함되는 작품이다. 내일은 오다가다 알렉산더 광장과도 재회하게 될지 모른다. ‘예술의 도시‘(가 캐치프레이즈라 한다) 베를린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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