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연휴를 보내기 위해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서두러 골라놓는다. 지난 독서의 달 실적이 부족한 분들은 이번 연휴가 만회할 좋은 기회라 여겨진다. 연말이 오기 전에 바짝 분투해보기로 하자. 



1. 문학예술


문학 쪽으로 이달에는 세 권의 시집을 고른다. 세사르 바예호의 <오늘처럼 인생이 싫어던 날은>(다산책방, 2017)은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는데,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다"는 구절을 내내 중얼거리며 다니게끔 하는 마력이 있다. 이병률 시인의 신작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도 나왔다. 지난 여름바다의 안부가 궁금한 분들은 필독해볼 만하다. 그리고 신예 시인 신철규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 2017). 대놓고 신파적이라고 거꾸로 기대가 된다. 요즘 드물었기에. 



예술 쪽으로는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한 단편모음집 <빛 혹은 그림자>(문학동네, 2017)를 우선 고른다. 그림과 이야기의 콜라보? 그리고 문학이론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아모르문디, 2017)는 우리에게는 지난 2월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유작이 됐다. 프랑스 혁명기의 화가 고야의 미술세계를 재조명한다. "나폴레옹 침략과 스페인 독립전쟁 시기 계몽주의 사상의 빛과 그늘을 수많은 데생을 통해 고발한 증언자이자 철학자로서의 고야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아방가르드 프런티어>(그린비, 2017)는 러시아혁명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을 역시나 재음미하게끔 한다. 



2. 인문학


올해는 1972년 10월 유신, 혹은 유신 쿠데타 45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중석 교수의 현대사 이야기 가운데, 9-11권이 바로 이 유신 쿠테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유신의 망령이 아직도 떠도는 즈음이라 필독의 의이가 있다.


 

더불어, 피터 버크의 <지식의 사회사>(민음사, 2017) 시리즈도 <지식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는가>(생각의날개, 2017)와 같이 일독해봄직하다. 이런 책은 연휴가 아니면 또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하고. 



3. 사회과학


일단 적폐 청산이란 직면 과제 처리부터(생각해보니 한국현대사의 적폐 키워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이다). 안원구 전 대구국세청장의 <국세청은 정의로운가>(이상, 2017)와 잊혀진 책 <잃어버린 퍼즐>(초이스북, 2012), 그리고 <주진우의 이병박 추격기>(푸른숲, 2017)까지가 '이명박 패키지'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도 나는 스웨덴 적폐 추격기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4권은 따로 더 이어지기에 라르손이 쓴 3권까지만으로 끊었다). 국부를 빼돌리는 이명박의 수법은 밀레니엄 시리즈에서도 읽을 수 있다(이게 '선진' 자본주의의 수법인 것).해서 <이명박 추격기>와 <밀레니엄> 시리즈를 같이 읽는 것도 추천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남성론,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책담, 2017)과 함께 남성 저자들의 페미니즘론으로 서민의 <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다시봄, 2017)와 박가분의 <포비아 페미니즘>(인간사랑, 2017)도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박가분의 책은 메갈리아 신드롬을 다룬 <혐오의 미러링>(바다출판사, 2016) 후속작이다. 



4. 과학


과학 쪽으로는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흐름출판, 2017)를 먼저 꼽는다. 제목만으로는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가 부제. "하버드 출신의 수학자이자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퀀트, 실리콘밸리의 데이터과학자였던 캐시 오닐은 수학과 빅데이터의 결합으로 탄생한 ‘대량살상수학무기’가 어떻게 교육, 노동, 광고, 보험,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과학책 전문번역가이자 칼럼니스트 김동광의 <생명의 사회사>(궁리, 2017)는 "생명의 분자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패러다임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책"이다. 부제대로 '분자적 생명관의 수립에서 생명의 정치경제학까지'의 전개과정을 넓은 시야로 조망하게끔 해준다.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까치, 2017)는 베스트셀러 <E = mc2>의 저자인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신작이다. "전작에서 아인슈타인의 최대 성과인 E = mc2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저자는 이번에는 아인슈타인의 실수로 눈을 돌려서 그의 잘못된 결정과 오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5. 책읽기/글쓰기


다시 확인해보니 지난달에는 '책읽기/글쓰기'를 건너뛰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은유가 된 독자>(행성비, 2017)는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책. <초역 니체의 말>의 편자인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지성만이 무기다>(비즈니스북스, 2017)은 자기계발서 범주에도 속할 만한 책이지만,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이란 부제대로 책읽기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보니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 2017)도 이 범주에 들어 있다. 자기 책을 추천하는 건 멋쩍은 일이지만, '니체의 작가들'을 읽는 가이드북으로는 유용하다. 강의에서 다시 읽다 보니 미진한 부분들도 눈에 띄지만, 나로선 다음에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은 마련한 것이라 의의가 있다. 이달에는 몇 곳에서 강의도 예정되어 있으니 내게는 '이달의 책'이기도 하다...


17. 10.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고른다. 이미 읽은 독자가 많고 나도 강의에서 몇 차례 다룬 작품이지만, 연암서가에서 나온 새 번역본으로 다시 읽으려고 한다. 장석주 시인의 독서록 <조르바의 인생수업>(한빛비즈, 2017)도 찾아서 읽을 예정이다(며칠째 못 찾고 있다). 카찬차키스의 작품을 일부러 다시 읽는 건 혹 그의 여정을 좇아 크레타섬에라도 가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다. '카잔차키스 문학기행'도 염두에 두면서 <영혼의 자서전>도 시간을 내서 다시 읽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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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4차산업혁명‘를 검색하면 현재 207권이 뜬다. 일부 중복을 감안해도 놀라운 숫자인데, 더 놀라운 것은 2015년 7월부터 불과 2년 남짓의 기간 동안 출간된 책 종수라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171종이 올해 나왔다. 지난 9개월간 월평균 19권 꼴이다. 거의 매주 다섯 권씩, 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한권씩 나온 셈이다.

아마도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영향이 큰 듯싶은데 그렇더라도 이런 ‘열풍‘이 과연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인공‘적인 것인지 의문도 갖게 된다. 바로 그런 의구심을 갖고서 이 ‘과도한 열풍‘을 짚어본 책이 출간되었다. 국내 여러 전문가가 공저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북바이북). 4차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함께 문제의 포인트를 간취할 수 있다. 게다가 분량이 얇다.

전체 종수에 비하면 결코 많은 수는 아니지만 4차혁명 관련서도 쌓이고 있던 차에 ‘솔루션‘ 같은 책이 나와서 의의를 적었는데 과연 4차산업혁명의 실체는 무엇인지 가늠해보려면 몇 권 더 참고해봐야겠다(이럴 때는 날 잡아서 도서관에 가는 게 가장 좋다. 젊은 독자라면 시험공부하듯이).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의 <4차산업혁명은 없다>(살림)는 과학칼럼집으로 4차산업혁명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양상과 흐름을 안내해주는 책이다. ‘두려워 할 게 없다‘는 게 의도.

롤랜드버거의 <4차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다산북스)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4차산업혁명 전도사의 책이다. 순서상 국내서들을 통해서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다음에 호랑이굴로 들어가보는 게 효율적일 듯싶다. 나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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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대이동에서 열외인지라 연휴 첫날은 말 그대로 휴일로 보내고 있다. 오후 두 시간 동안 강의자료를 수합한 것 말고는 쉬고 자고 북플. 오랜만에 ‘슬라비카 총서‘의 목록이 추가되었기에 ‘이주의 발견‘으로 적어둔다(북플로는 태그를 달지 못하기에 이런 분류가 의미 없지만). <아방가르드 프런티어>(그린비).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모험을 재조명한 책으로 부제는 ‘러시아와 서구의 만남, 1910-1930‘이다. 아방가르드란 말 자체의 원산지는 프랑스이지만 가장 강력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본산지는 러시아다. 그건 물론 러시아혁명의 사전, 사후 효과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다룬 모든 책이 러시아의 이 전위적 예술운동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다룬 책은 몇종 되는데 절판된 책을 제외하고 <아방가르드 프런티어>와 비슷한 편제의 책으로는 <러시아어 문화와 아방가르드>(예림기획)를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말에 <러시아 모더니즘>(열린책들)이라고 나왔던 책으로 원제도 ‘러시아 모더니즘‘이다. 슬라비카 총서의 <러시아 문화사 강의>에도 분야별로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운동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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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페미니스트 이론가이자 문화비평가 벨 훅스의 남성론이 번역돼 나왔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책담). 원제는 ‘변화의 의지(The will to change)‘. 번역본 목차에 기대면 ‘사랑할 줄 아는 남성 구함‘으로 시작해서 ‘남자들을 사랑하기‘로 마무리된다. 원저는 2004년작. 원저 기준으로 벨 훅스의 번역서 가운데 최신간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이다.

벨 훅스의 책은 따져보니 대부분 갖고 있는데 진득하게 읽은 건 없다. 조금씩 훑어보기만 했던 듯. 이런 경우에는 저자든, 주제든 저지선이 필요한데 마침 눈에 띈 김에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을 저지대로 삼아도 좋겠다. 한 대목.

˝남자아이들의 감정적 삶을 진정으로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 우리는 가부장 문화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문화가 변할 때까지 우리는 하위문화, 그러니까 남자아이들이 가부장적 남성성의 모습을 따라야 할 필요 없이 유일한 존재인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보호구역을 만들어야 한다. 남자아이들을 올바로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 내면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그들의 권리가 지속적인 존중과 지지를 받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려는 그들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사적 공적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남자아이로 산다는 것‘)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라면 새로울 게 없겠지만 베테랑 페미니스트의 통찰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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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피로를 푼답시고 오랜만에 늦잠을 잔 이후라 피로감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가뿐한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점심을 먹고난 다음에야 활동을 시작할 거 같다. 독서활동?

어제 연휴에 읽을 책을 잔뜩 쌓아두었다고 적었는데 정확한 진술은 아니다. 책은 거실을 포함해서 어느 방에서건 잔뜩 쌓여 있고 순서를 정해둔 것도 아니기에 내키는 대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강의차 필독해야 하는 책이 10권 남짓. 그리고 연휴전에 마지막 배송되는 책도 대여섯 권 되는데 페기 오렌스타인의 <아무도 답해주지 않은 질문들>(문학동네)도 포함된다.

대충 페미니즘 관련서로 알고 주문했는데 알고보니 정확하게는 성교육 관련서다.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이 부제. 페미니즘 관련서는 매주 나오고 있는 터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성교육을 주제로 한 책은 드물지 않았나 싶다(이런 쪽도 누군가 정리를 해주었으면 싶다. ‘성교육‘을 검색하니 ‘인성교육‘ 책만 잔뜩 뜬다).

희소성이란 면에서는 홍승희의 <븕은 선>(글항아리)이 한술 더 뜰 거 같은데 부제가 ‘나의 섹슈얼리티의 기록‘이다. 이런 종류의 국내서가 더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카트린 밀레의 <카트린 M의 성생활> 정도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과 같이 오고 있는 책은 한민주의 <불량소녀들>(휴머니스트)이다. 1930년대 경성의 모던걸을 다룬 책이므로 문화사 범주에 들어가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한국사회 여성혐오의 기원을 찾고자 한다.

세 권을 모아서 읽으면(읽다보면 더 추가되겠지만) 뭔가 집히는 게 생길 터이다. 문학속의 사랑과 결혼 등을 주제로 한 책을 교정보려니 필요하기도 해서 자청한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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