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번역돼 나온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까치)를 재구입한 지 얼마되지 않는데(원서도 재구입했다), 또다른 대작이 번역돼 나왔다. 프랑스의 인지과학자 에마뉘엘 상데와 공저한 <사고의 본질>(아르테)이다. 번역본 분량이 768쪽이라 1128쪽에 이르는 <괴델, 에셔, 바흐>에 견주면 ‘가벼운‘ 책에 속하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과 난이도의 책이다. 주제는 유추. 두 저자는 유추가 사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유추’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두 학자의 지적 교류. <괴델, 에셔, 바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파리 제8대학 인지 및 발달 심리학 교수인 에마뉘엘 상데 교수가 만나, 7년여에 걸친 사고 교환 끝에 완성된 책이다. 

지성의 연료이자 불길, 즉 원천이자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유추‘는 유사성을 인식하는 일, 방금 경험한 것과 이전에 경험한 것의 연결 고리를 포착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유추 작용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범주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에 분명하든 모호하든 일련의 라벨을 붙이고 머릿속의 도서관을 정리한다.

두 학자가 사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유추 작용과 범주화는 거의 매 순간 일어나기에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사고의 본질> 전체에 걸쳐 벌어지는 유추 작용과 범주화를 따라가다 보면 두 경계가 허물어지는 동시에 이 두 작용이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도 어렵다. 핑커가 거든 추천사는 이렇다. ˝나는 유추가 인간의 지성을 설명하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인지과학자 중 한 명이다. 수십 년 동안 유추의 성격을 탐구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에마뉘엘 상데가 쓴 이 역작은 인간의 사고를 이해하기 위한 획기적인 작업으로서 통찰과 새로운 사고로 가득하다.˝

흠, 인간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 획기적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이 벽돌책들에 발부리가 걸리는 수밖에. 일단은 ‘이주의 과학서‘로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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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교보에 들렀다 구입한 책의 하나는 국사학자 도진순 교수의 <강철로 된 무지개>(창비)다. 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다시 읽는 이육사‘가 부제.

˝근래 이육사의 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글을 연달아 발표하며 국문학 및 역사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도진순(창원대 사학과 교수)의 이육사론이 드디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저자는 그동안 김구, 안중근 등 한국 근현대사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이번엔 저항시인 이육사에 도전했다. <강철로 된 무지개: 다시 읽는 이육사>는 육사의 대표작 ‘청포도‘ ‘절정‘ ‘나의 뮤-즈‘ ‘꽃‘ ‘광야‘ 등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기존에 잘못 이해되어온 육사 시 해석의 오류를 바로잡고 육사 시에 대한 감상의 지평을 넓혀준다.˝

육사는 많은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문학사에 남을 만한 몇편의 절창을 남겼다. 도진순 교수의 책은 단순한 시인론을 넘어서 새로운 시 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책을 구한 이유다. 한국현대시사에 대한 책들을 주섬주섬 다시 모으고 또 읽고 있는데 육사 시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가름할까 한다(평전과 전집도 체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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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에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강의 시즌1이 종료되었고 내주부터는 시즌2 강의가 진행된다(단편집 <녹턴>과 장편 <파묻힌 거인>,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이 다루게 될 작품들이다). 시즌1에서 마지막으로 다룬 작품이 <남아있는 나날>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나를 보내지 마>였는데,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원작이기도 하다.

강의준비차 영화도 보았는데 키라 나이틀리와 캐리 멀리건, 앤드류 가필드 등이 주연한 영화에서 멀리건은 화자인 캐시 역을 연기했다. 세 친구는 장기 기증을 위해 복제된 인간(클론)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이들의 삶과 사랑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게 원작이고 영화 또한 줄거리는 다르지 않다.

원작소설에 대해서는 따로 할 얘기가 많지만 페이퍼를 적는 것은 영화에서 캐시의 표정이 생각나서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의 절제된 슬픔을 멀리건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을 지칭하는 ‘가엾은 것들‘(poor creatures)을 필멸적 존재로서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도 이해한다면(나는 그게 이 작품의 문제성이라고 본다) 이 표정은 피조물 일반의 표정이기도 하다. 즉 우리 모두의 표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억해둘 만하다...

PS. 번역과 관련하여 클론들의 원본을 ‘근원자‘라고 옮긴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시구로는 ‘possible‘이나 ‘model‘이란 단어를 쓰고 영화 자막에는 ‘원본‘이라 옮긴 것 같다. ‘근원자‘는 너무 거창한 번역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원본에 대해 루스가 비하하며 얘기한 대목이 잘못 옮겨졌다. 루스가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거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에요.˝(232쪽)

이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We all know it. We‘re modelled from trash. Junkies, prostitutes, winos, tramps. Convicts, maybe, just so long as they aren‘t psychos. That‘s what we come from.˝(164쪽)

다시 옮기면, ˝우리 다 알고 있잖아. 우리 원본은 쓰레기들이라는 걸. 약쟁이, 창녀, 술주정뱅이, 부랑자들이지. 그리고 죄수들일 수도 있어. 정신병자가 아닌 경우에 말이야. 그게 우리의 원본이라구.˝

요컨대 정신병자는 클론의 모델이 아니다. 정신병자가 다른 ‘쓰레기‘들과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시구로의 원문은 분명 번역본과는 다르게 옮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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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에 들어갈 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번역의 탄생>의 저자 이희재의 신작 <번역전쟁>(궁리)이 나왔기에 지나는 길에 광화문 교보에 들렀지만 아직 입고되지 않아 헛걸음했다(헛걸음만 할 수는 없어서 다른 책을 몆권 구입했다).

‘첫단추 시리즈‘로 매슈 레이놀즈의 <번역>(교유서가)도 나왔기에 겸사겸사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이런 걸 묶어서 다루면 주제 서평이 될 텐데, 요즘 그런 글을 쓸 여력이 없다. 특별히 누가 대신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번역전쟁>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을 쓴 저자 이희재는 현재 런던대 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에서 영한 번역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에는 번역가로서 말이 제대로 옮겨지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차차 세상 자체가 제대로 옮겨지는지에 의문을 품으면서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번역·해석되고 가공되고 많은 경우 날조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개념도 넓은 뜻의 ‘번역’이라 이름지었다.

’다원주의, 포퓰리즘, 민영화, 인턴, 모병제, 핵우산, 독립국, 홀로코스트…‘ 등 저자가 <번역전쟁>에서 다룬 주제는, 바로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한국 사회 전체가 ‘오역’하기 쉬운 키워드들이다. 영국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저자는 ‘말과 언어’를 대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국내외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그동안 꽤 자주 목격했다. 

다원주의를 바라보는 각 국가의 시선들, 진보와 극우의 진정한 의미, 평생직장과 인턴의 이면, 민영화의 진짜 속내, 한국과 그 주변국가의 미묘한 입장들, 카다피와 만델라 등 정치인들의 빛과 그림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마약전쟁과 테러전쟁 등 이 책은 다양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그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연말의 독서목록 가운데 앞자리에 놓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2월의 인문특강 후보로도 다른 두어 권의 책과 함께 검토중이다. 혹은 서평강의에서 다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보에서 득템에 실패했으니 다시 알라딘에서나(에서나?)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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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제목이 그렇다. ‘<21세기 자본> 이후 3년‘을 부제로 한 <애프터 피케티>(율리시즈)와 앨런 라이언의 <정치사상사>(문학동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는 이유에 더해서 두 권을 묶어주는 건 분량과 책값이다. 아침에 책주문을 하면서 <애프터 피케티>을 포함할까 잠시 망설였는데 가뜩이나 읽을 책이 밀려 있어서 구입을 하더라도 언제 읽을까 싶은 생각이 발목을 잡은 것(그래야봐 며칠 정도의 말미일 테지만).

그런데 더한 강적이 나타났다. 앨런 라이언의 <정치사상사>. 번역본 분량이 무려 1400쪽이다. 펭귄에서 나온 원저도 1152쪽. 주요 원전 발췌를 포함한 형태가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는데 아직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뜨지 않았다. 사실 원저는 이전에 검색하다 알았지만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두께 때문에 구입을 포기하고 번역도 어렵겠다 생각했었다. 이번 번역서는 고 남경태 선생이 공역자로 들어가 있는데 아마도 유작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도 출간이 의미 깊다.

조만간 손에 들게 되겠지만 두 ‘강적‘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최종선택은 루이스 카우언과 오니 기니스의 <고전>(홍성사)으로 낙착. 688쪽이니까 상대적으로 얇은 책이다(책값은 결코 뒤지지 않지만). 서양 고전 해설서인데 작품사전으로 읽을 수 있겠기에 소장용으로 주문한 것.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를 포함해 구입목록에 올려놓은 대작들이 많은데 이젠 책들이 인생의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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