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강의 시즌1이 종료되었고 내주부터는 시즌2 강의가 진행된다(단편집 <녹턴>과 장편 <파묻힌 거인>,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이 다루게 될 작품들이다). 시즌1에서 마지막으로 다룬 작품이 <남아있는 나날>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나를 보내지 마>였는데, 영화 <네버 렛 미 고>의 원작이기도 하다.

강의준비차 영화도 보았는데 키라 나이틀리와 캐리 멀리건, 앤드류 가필드 등이 주연한 영화에서 멀리건은 화자인 캐시 역을 연기했다. 세 친구는 장기 기증을 위해 복제된 인간(클론)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이들의 삶과 사랑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게 원작이고 영화 또한 줄거리는 다르지 않다.

원작소설에 대해서는 따로 할 얘기가 많지만 페이퍼를 적는 것은 영화에서 캐시의 표정이 생각나서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의 절제된 슬픔을 멀리건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을 지칭하는 ‘가엾은 것들‘(poor creatures)을 필멸적 존재로서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도 이해한다면(나는 그게 이 작품의 문제성이라고 본다) 이 표정은 피조물 일반의 표정이기도 하다. 즉 우리 모두의 표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억해둘 만하다...

PS. 번역과 관련하여 클론들의 원본을 ‘근원자‘라고 옮긴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시구로는 ‘possible‘이나 ‘model‘이란 단어를 쓰고 영화 자막에는 ‘원본‘이라 옮긴 것 같다. ‘근원자‘는 너무 거창한 번역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원본에 대해 루스가 비하하며 얘기한 대목이 잘못 옮겨졌다. 루스가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우리는 부랑자나 인간쓰레기, 창녀,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정신병자나 죄수들로부터 복제된 거예요. 그게 우리 근원이에요.˝(232쪽)

이 대목의 원문은 이렇다.

˝We all know it. We‘re modelled from trash. Junkies, prostitutes, winos, tramps. Convicts, maybe, just so long as they aren‘t psychos. That‘s what we come from.˝(164쪽)

다시 옮기면, ˝우리 다 알고 있잖아. 우리 원본은 쓰레기들이라는 걸. 약쟁이, 창녀, 술주정뱅이, 부랑자들이지. 그리고 죄수들일 수도 있어. 정신병자가 아닌 경우에 말이야. 그게 우리의 원본이라구.˝

요컨대 정신병자는 클론의 모델이 아니다. 정신병자가 다른 ‘쓰레기‘들과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시구로의 원문은 분명 번역본과는 다르게 옮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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