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을 다룬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묶어서 주제서평으로 다뤄도 좋겠다). 존 크라카우어의 <미줄라>(원더박스, 2017)와 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의 <용서의 나라>(책세상, 2017)다.

 

 

 

먼저 <미줄라>의 저자 존 크라카우어는 에베레스트 산 등반사고를 재구성한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 2007)가 대표작인 논픽션 작가다. 제목의 미줄라는 미국 북서부의 평범한 대학도시로, 몬태나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일련한 강간 사건 때문에 '강간 수도'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나는 처음 들어본다). 책의 부제가 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다.

 

"미국 북서부의 평범한 대학도시 미줄라. 2010~2012년 몬태나 대학교를 중심으로 일련의 강간 사건들이 부각되고, 미줄라는 ‘강간 수도’라는 오명을 얻는다. 작가는 그 중심에 있던 세 사건의 처리 과정(대학법원 청문회, 경찰과 검찰 조사, 법원의 배심원 재판 등)을 소개하며, 피해자들이 강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미줄라>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존 크라카우어의 2015년 작품으로, 미국에서 출간 즉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크라카우어는 답답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힘들겠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강간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독려한다."

 

 

미국사회는 올해 성폭행 경험 여성들의 미투(#MeToo) 캠페인이 사회적 운동으로까지 번졌는데(이에 참여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다), <미줄라>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는데도 도움이 되겠다. '씨네21' 이다혜 기자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두려움을 안고 읽었다. 많은 강간 사건이 전적으로 신뢰하던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인 환경에서 일어난다. 존 크라카우어는 강간 피해자 관점에서 실제 사건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조치가 무엇인지를,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이 더 많은 강간 생존자들의 용기를 북돋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미줄라>가 성폭행 사건을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다루는지, 곧 강간이 어떻게 합리화되는지를 폭로한다면, <용서의 나라>는 주제면에서 대척점에 놓인 책이다.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의 초점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응징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다.

 

 

"연인이었지만 성폭력의 생존자이자 가해자였던 십 대의 남녀가 16년 후 이국의 땅에서 재회하여 ‘강간의 진실’을 밝힌 실화 에세이. 폭력과 증오의 기억을 화해와 치유의 시간으로 바꿔가는 이 기적의 여정은 2016년 테드 토크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아이슬란드의 인기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에서 청소년지도사로 살아가는 톰 스트레인저가 아이슬란드와 호주의 중간 지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간 만나 과거의 시간을 돌아본 이 책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전례 없는 책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구적인 폭력으로서 강간이 일상화된 오늘의 현실을 아프게 일깨우면서, 남녀 모두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이 문제에 동참할 것을 뜨거운 체험의 언어로 설득한다."

 

소개에도 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쓴 전례없는 책이자 사례이기에, '강간은 어떻게 용서되는가'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미줄라>와 함께 읽는다면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갖게 될 듯하다...

 

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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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적을 만한 책이 너무 많군) 애덤 호크실드의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갈라파고스)를 고른다. 저자의 책으론 아프리카에 잔혹한 식민지를 건설한 벨기에 국왕 이야기, <레오폴드왕의 유령>이 있다(절판된 상태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앤터니 비버의 걸출한 <스페인 내전>(교양인)이 소개돼 있는데(말하자면 확실한 주전선수가 있는 포지션) 호크실드의 책까지 더해져서 빈틈이 없어졌다. 비버의 책의 전쟁의 전체적인 윤곽과 진행과정을 설명해준다면 호크실드의 책은 이 전재에 참전한 면면들에 초점을 맞춘다

˝무정부주의 민병대로서 전투에 참가한 조지 오웰, 게릴라에 참여하면서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빈 헤밍웨이,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바르셀로나의 사회혁명에 환호한 열아홉 살의 열정적인 켄터키 여성, 프랑코와 공화파 양쪽에서 불꽃 튀는 취재 경쟁을 벌인 ‘뉴욕 타임스‘의 두 기자, 히틀러 애호가이자 프랑코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석유를 공급해준 텍사스의 오일맨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자, 전선에서 폭넓게 존경받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남긴 메리먼 부부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던 시민들의 시각으로 스페인 내전을 바라볼 수 있다.˝

요컨대 좀더 근거리에서 스페인 내전의 실상과 접하도록 해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버의 책과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 오웰과 헤밍웨이의 책도 그 옆에 가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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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이 책 팔 의향이 있으신가요? 제가 꼭 사고 싶어서요😭
 

오랜만에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1년 넘게(확인해봐야 하지만 기분으론 그렇다) 말썽이던 PC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그리고 바뀐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면서(이건 이삿집에 적응하는 것 비슷하다) 서재일의 여건이 좋아진 덕분이다. 조만간 '이주의 책'도 다시 고르고, 새로운 기획도 시도해보려 한다. 일단은 '이주의 저자'부터.

 

 

연말에 책을 낸 국내 저자들 가운데 3인을 골랐다. 먼저 부산대 한문학과의 강명관 교수. 느낌으론 오랜만에 새 책을 펴냈다.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휴머니스트, 2017)이다. 제목대로 연암의 <허생>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가난한 선비 허생이 과일과 말총을 사재기하여 큰돈을 버는 이야기. 연암 박지원의 <허생>은 누구나 줄거리를 알 정도로 유명한 소설로, 당시 조선의 취약한 경제를 폭로하고 실학적 관점에서 북학과 상업주의를 지지한 작품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허생>의 의미를 산산이 깨뜨리는 파격적인 해석을 담았다. 저자 강명관 교수는 <허생>이 실린 <옥갑야화>의 모든 작품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읽는 동시에 연암의 방대한 사유와 <열하일기>의 전체 맥락 속에서 <허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석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허생>을 만나게 된다."

 

<허생> 혹은 <허생전>은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는(있었던)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읽은 지는 오래 됐군). 이 참에 작품도 다시 읽고, 새로운 해석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열하일기>도 소장본으로 마련하고.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의 서영채 교수도 새책을 펴냈다. <죄의식과 부끄러움>(나무,나무. 2017). '현대소설 백년, 한국인의 마음을 본다'가 부제. 부제에서 알 수 있지만, 한국현대소설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다.

 

"근 10여 년 동안 저자 서영채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인'이라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였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와 이광수의 소설들이다. 식민지 모국(비록 일본도 근대화가 이식된 나라이지만)의 작가 소세키와 식민지의 작가 이광수가 인물을 형상화해낸 방식이 왜 그렇게 서로 다른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식민지)근대성'과 '주체 형성'이라는 짝을 도출하게 된다. 이 주제를 가지고 2011년 이후 발표한 글들을 저본으로 하여, 이론적.학문적인 곳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풀어 쓴 것이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다."

 

식민지 근대성과 주체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갖는 주제여서 곧바로 손에 들었다. 이광수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비교 등은 내달 일본문학기행 전까지는 읽어볼 참이다. 강의에서 종종 다루는 <광장>과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해설도 유익한 참고가 될 듯싶다.  

 

 

 

서양사학자로 특히 19세기 영국의 사회사, 노동사 등에 관한 독보적인 성과들을 내놓고 있는 광주대 이영석 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삶으로서의 역사>(아카넷, 2017). '나의 서양사 편력기'란 부제가 알려주듯, 역사가로서의 삶과 연구의 궤적을 회고한 책이다(저자가 정년을 1년 앞두고 있다고). 작년 겨울에 나왔던 임지현 교수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소나무, 2016)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 이해된다.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 어느 서양사학자의 생애사이자 역사가로서의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 지성사다.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 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대상과 자신의 탐구의 열망을 젊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진솔하고 촘촘하게 배어 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이 어떻게 연구 대상의 선택과 집중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 치밀하다.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메타-역사서술이라 부른다."

 

일단 역사학도나 역사학 전공 지망 학생들이 귀감으로 읽어볼 만하고, 일반 독자도 '한 서양학사학자의 생애사'를 흥미롭게 따라가봄 직하다. 저자의 몇몇 주저들이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역사서 독자들의 공부가 되겠다...

 

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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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책을 비롯해 오늘 배송예정인 책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진행상황을 보니 여차하면 내주 화요일에나 받을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책 목록에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을 책이 없는 건 아니므로 대소롭진 않지만 다음주 강의차 재주문한 하루키 책들은 오늘 받지 못하면 내일 도서관에 가든지 해야 한다(안 그래도 대출할 책들이 좀 있기에).

예정대로라면 다음주에, 더 거창하게는 내년에 첫 타자로 배송될 책은 ‘염상섭 문학전집‘으로 새로 나온 세 권이다. <화관><젊은 세대><대를 물려서>. 주요작은 아니어서 세 권 모두 생소한데 염상섭 전집은 ‘묻지마 주문‘에 해당하기에 클릭해서 살펴보지도 않았다. 책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어떤 작품이고 언제쯤 읽을 것인지 가늠해보려 한다.

글누림에서 나오고 있는 염상섭 문학전집은 지난 2015년에 세 권이 나오고 소식이 없다가 올봄에 한권 나온 데 이어서 이번에 세권이 추가되었고 내년에도 연속적으로 나올 모양이다. 분량이 방대하기에 그런 속도로 나와도 몇년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무탈하게 마무리 되기만을 바란다(끝내 완간되지 못한 민음사판 전집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과 <삼대>는 강의에서 종종 다루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포함해서 염상섭 문학의 성취를 세계문학적 관점에서 자리매김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포부다. 20세기 후반의 작가로는 박완서 문학이 그런 포부를 갖게 한다(박완서 전집은 이미 완간되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작에 대한 강의를 내년, 늦어도 후년까지는 책으로 낼 예정인데, 그와 더불어 ‘한국문학 다시 읽기‘의 결과물도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주로 해온 일이 근현대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였기에 그런 시야와 안목으로 한국 근현대문학도 재평가하려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아마도 앞으로 5년 가량은 이런 계획에 붙들려 지낼 듯싶다. 물론 전집들이 제때 차질없이 나와준다는 조건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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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으로 문보영의 <책기둥>(민음사)이 출간되었다. 소개된 이력은 간략하다.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부터 김수영문학상 수상까지 최단 기간이라 한다. 나이로도 25세에 수상이면 거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1962년생 장정일 시인도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25세였다. 내 가늠으로는 이 두 사람이 최연소일 것 같다. 정확히 30년 차이이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갔군.

 

 

 

올해의 마지막 주문 목록을 갱신할까 하다가, 시 몇 편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흠 전문이 소개된 게 눈에 뜨지 않는다. 찾아보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막판이 된다는 것'.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고 했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한 시이고, 나로선 여전히 '햄버거에 대한 명상' 쪽이 더 신선하고 싱싱해 보인다. 30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문보영의 시는 전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이야기 형식으로 써내려 간 매력적이고 독자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동시에 우리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시로 옮기는 시선에서는 진솔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낯섦과 새로움,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 바로 문보영의 시가 있다."

 

과감하고 매력적이고 독자적이고 진솔하고 다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정말 그러한지는 내년에 만나보기로 한다. '막판이 된다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시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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