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으로 문보영의 <책기둥>(민음사)이 출간되었다. 소개된 이력은 간략하다.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부터 김수영문학상 수상까지 최단 기간이라 한다. 나이로도 25세에 수상이면 거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1962년생 장정일 시인도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25세였다. 내 가늠으로는 이 두 사람이 최연소일 것 같다. 정확히 30년 차이이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갔군.

 

 

 

올해의 마지막 주문 목록을 갱신할까 하다가, 시 몇 편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흠 전문이 소개된 게 눈에 뜨지 않는다. 찾아보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막판이 된다는 것'.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고 했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한 시이고, 나로선 여전히 '햄버거에 대한 명상' 쪽이 더 신선하고 싱싱해 보인다. 30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문보영의 시는 전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이야기 형식으로 써내려 간 매력적이고 독자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동시에 우리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시로 옮기는 시선에서는 진솔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낯섦과 새로움,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 바로 문보영의 시가 있다."

 

과감하고 매력적이고 독자적이고 진솔하고 다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정말 그러한지는 내년에 만나보기로 한다. '막판이 된다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시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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