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통상적인 일과의 하나로 새로 나온 책들의 면접을 보다가 다시금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는다(페이퍼를 몇개 쓰려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하여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내킬 때 하는 수밖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그리고 지젝과 하루키. 피츠제럴드와 헤세에 대해서도 보충할 게 있지만 필요한 책이 바로 눈에 띄지 않아서 일단 보류.

하루키에 관한 책 가운데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마음산책)을 읽다가 재즈카페 주인장으로서 하루키가 했다는 말을 옮긴다. 아마도 에세이 어디에선가 읽은 듯한 말이기도 하다. 가게 단골손님들이 생길라치면 그는 이런 말을 던지고 싶어 했다. ˝이거, 어쩌죠? 정말 죄송하게 되었네요. 실은 저희 곧 이사간답니다.˝

보란듯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만 말로라도 한방 먹여보는 것이겠다. 하루키는 그런 말이 주는 쾌감을 좋아했다고. 이 또한 ‘하루키적인 것‘의 목록에 포함시킬 만한데, 하루키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감정이나 태도에 공감하고 맞장구치는 것이겠다. 그렇게 이사한 가게에까지 여차저차하여 손님이 쫓아온다면? 하루키식 대처법은 이렇다. ˝저도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테니까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문득 떠올린 건 이 서재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가란 의문이다. 30대에 시작한 일을 50대에 이르도록 못 끊어도 되는 일인가 싶어서다. 독서야 평생의 일이라지만 ‘블로거‘ 노릇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마땅한 선례가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다. 내년이면 아마 알라딘 창업 20주년이 되는 성싶은데 그것도 하나의 매듭이다.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책들이 잔뜩 펼쳐져 있는 식탁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라는 에바 블로다레크의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문학동네)도 놓여 있다. 독일에서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원제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하고 다정하게 내 안의 고독과 만나는 법‘이 부제다.

잠시 책을 펼치니 ‘부모 자아‘ ‘어른 자아‘ ‘어린아이 자아‘란 개념이 나온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의 개념으로(교류분석 모델의 창시자라 한다), 우리 각자의 자아는 이 세 가지 자아 상태로 구조화돼 있다고. 부모 자아는 다시 비판적 부모 자아와 양육적 부모 자아로 나뉘고, 어른 자아는 객관적, 어린아이 자아는 순응적이다. 오랜 습성을 바꾸려고 할 경우에는 양육적 부모 자아나 객관적 어른 자아의 태도를 가지고 순응적 어린아이 자아를 잘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이사 문제도 그러하다. 자립과 분리의 문제도 그렇고. 익숙한 것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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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판계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가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었다. 예측가능한 베스트셀러가 있고 가능하지 않은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라틴어 수업>은 단연 후자였다. 나도 사정이 궁금해서 저자에 대해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의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평범한(?) 이력이 전부였는데(베스트셀러와는 무관하지 않나?) 중세 교회법에 정통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이와 관련해서는 <유럽법의 기원>(문예림)이 나온 게 있어서 구입했었다.

이번주에 <법으로 읽는 유럽사>(글항아리)가 출간되었기에 주저가 나온 것인가 궁금했는데 책장을 열어보니 <유럽법의 기원>의 개정증보판이다. 그리고 <라틴어 수업>보다 먼저 준비하던 책이라 한다. <라틴어 수업>에 대한 들뜬 반응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좀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고를 조정해달라는 출판사의 부탁˝도 있었다지만 저자는 여의치가 않았다고 고백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라틴어 수업>만큼 ‘읽기 쉬운 대중서‘는 아니다.

<라틴어 수업>은 구입만 하고 읽지 않았다(만져보기는 했다). 설사 읽을 짬이 생겼다 하더라도 <유럽법의 기원>에 먼저 손이 갔을 터이다. 하지만 개정증보판이 나왔으니 나로선 <법으로 읽는 유럽사>가 저자의 첫 책이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덕분에 중세 교회법(근대 유럽법의 기원이 로마법과 교회법이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비로소 제 규모의 책과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런 종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날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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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차 아침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늦은 저녁에야 귀가했다. 한주간의 일정이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바쁘게 지나갔지만 꽤 길게 느껴진 한 주였다. 그렇게 또 한 고비는 넘겼다 싶지만 이월된 숙제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 강의와 관련해서도 보충할 대목이 많다. 마치 어부가 귀항해서는 어망과 어구를 손질해야 하는 것처럼 끝은 끝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진이 빠진 상태라 어제오늘 배송받은 수십 권의 책에 대한 면접을 미뤄둔 채 자리에 누웠다. 페이퍼 거리도 많이 밀려 있지만 간단한 것만 하나 적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작 <명암>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 전집판을 포함해 세 종의 번역본을 갖게 된 셈인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바로 주문을 넣었다.

재작년에 소세키 전집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당연히 마지막 시간에 <명암>을 읽었는데 기회가 닿으면 이 미완성작을 다시금 음미해보고 싶었다. 내가 꼽기에 <명암>은 <그후>와 함께 소세키 문학의 최대치다. 강의에서는 주로 <산시로>나 <마음>을 다루는데 <산시로>를 건너뛰면 그 다음 작품인 <그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마음>은 정확하게 소세키 문학의 의의와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명암>은 마지막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세계를 종결짓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독서의 흔적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를 갖게 된다(‘일본문학에서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일본문학기행을 이제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데 주로 <산시로>와 <마음>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다시 읽고 싶다. 강의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작품도 서너 편 되기에 아직 읽을 거리는 많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렇지만 소세키의 경우에도 강의에서 다루지 않은(그래서 자세하게 읽지 않은) 작품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마치 맛있는 딸기타르트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오늘은 비록 기진하여 누워있지만 내일 읽을 책과 내주에 받아볼 책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것도 불치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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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여러 무대에 오르고 있다. 뮤지컬로도, 발레로도.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는 지난해 11월초에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되었는데 뒤늦게 안데다가 일정이 맞지 않아서 관람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회를 다 놓친 건 아니어서 다음달 2일 저녁 대전예술의전당 공연은 보게 될 것 같다. 당일 오후 원작을 소개하는 강의를 요청받아서다.

발레 버전의 <안나 카레니나>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공연으로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찾아보니 2009년이었다. 이번 국립발레단 공연은 강수진 예술감독의 지휘하에 크리스티안 슈푹이 안무를 맡았다. 발레 애호가들뿐 아니라 <안나 카레니나>의 독자들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원작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대다수?) 미리 읽어두는 것도 공연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강의는 그 대용이다.

한편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10일 막이 올라 2월 25일까지 공연된다. 전세계 라이선스 초연이라는데 어떻게 무대화되었는지 궁금하다. 2월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가봐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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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고엽‘의 작사가로 유명한 시인 자크 프레베르(1900-1977)의 시집이 리뉴얼판으로 다시 나왔다.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민음사). 민음사판 세계시인선으로 읽었건, 청하판으로 읽었건 기억엔 30년 전에 읽은 시인이다(요즘 들어 30년 전에 읽은 책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작사가로도 알려져 있듯이 프레베르의 시들은 평이하면서 뭔가 읊조리는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은 시들을 다시 읽으려니 마친 오래 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기분이다. 기억나는 시의 하나는 ‘꽃집에서‘.

(...)
꽃집 아가씨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쓰러지는 순간
돈이 바닥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꽃들이 떨어진다
돈은 굴러가는데
꽃들은 부서지는데
남자는 죽어 가는데
(...)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아가씨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를
―「꽃집에서」에서

그리고 ‘알리칸테‘도 한번 읽으면 따뜻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시다.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내 침대 속에 너
지금의 감미로운 선물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뜻함.
―「알리칸테」

이 시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비록 절망이 벤치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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