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차 아침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늦은 저녁에야 귀가했다. 한주간의 일정이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바쁘게 지나갔지만 꽤 길게 느껴진 한 주였다. 그렇게 또 한 고비는 넘겼다 싶지만 이월된 숙제들이 계속 쌓이고 있다. 강의와 관련해서도 보충할 대목이 많다. 마치 어부가 귀항해서는 어망과 어구를 손질해야 하는 것처럼 끝은 끝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진이 빠진 상태라 어제오늘 배송받은 수십 권의 책에 대한 면접을 미뤄둔 채 자리에 누웠다. 페이퍼 거리도 많이 밀려 있지만 간단한 것만 하나 적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작 <명암>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것. 전집판을 포함해 세 종의 번역본을 갖게 된 셈인데,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바로 주문을 넣었다.
재작년에 소세키 전집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당연히 마지막 시간에 <명암>을 읽었는데 기회가 닿으면 이 미완성작을 다시금 음미해보고 싶었다. 내가 꼽기에 <명암>은 <그후>와 함께 소세키 문학의 최대치다. 강의에서는 주로 <산시로>나 <마음>을 다루는데 <산시로>를 건너뛰면 그 다음 작품인 <그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마음>은 정확하게 소세키 문학의 의의와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명암>은 마지막 작품이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세계를 종결짓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독서의 흔적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를 갖게 된다(‘일본문학에서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일본문학기행을 이제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데 주로 <산시로>와 <마음>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다시 읽고 싶다. 강의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작품도 서너 편 되기에 아직 읽을 거리는 많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렇지만 소세키의 경우에도 강의에서 다루지 않은(그래서 자세하게 읽지 않은) 작품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마치 맛있는 딸기타르트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오늘은 비록 기진하여 누워있지만 내일 읽을 책과 내주에 받아볼 책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것도 불치라고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