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1919)을 강의에서 읽었다. 작품의 지명도 때문에 강의에서 가장 많이 다룬 헤세의 작품이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 강의에서 다룰 때마다 유감지수가 높아져서 이제는 심지어 ˝불쾌하고 어리석은 작품˝이라는 평까지 하게 된다(주로 전쟁에 대한 어리석은 의미부여가 불만의 원인이다).

<페터 카멘친트>(1904)에서 <유리알 유희>(1943)까지 그의 주요작 가운데 이제껏 일곱 편을 강의에서 다뤘다. 내게 미지의 헤세는 얼마남지 않은 셈인데 12권짜리 현대문학판 전집을 기준으로 하면, 에세이와 동화집을 제외한 세 편이 ‘내가 모르는 헤르만 헤세‘가 된다. 자전소설 <수레바퀴 아래서>(1906)와 <데미안> 사이에 놓인 작품들로 <게르트루트>(1910), <로스할데>(1914), <크눌프>(1915)가 그 세 편이다.

이 가운데 <게르트루트>는 중학생 때 <사랑의 삼중주>라는 제목의 번역판으로 읽은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어렴풋하게만 기억에 남아있다. <게르트루트>와 <로스할데>는 예술가소설로 분류되고(<유리알 유희> 계보다) <크눌프>는 이름을 붙이자면 방랑자소설에 든다. 그럼 또 대략 가늠은 되는군.

그렇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을 다시 읽는 것과 미지의 작품을 처음 읽는 건 기분이 다르다. 비록 <수레바퀴 아래서>를 처음 읽고서 받았던 감동이 다시 재연되기는 어려울 테지만(요즘 들어서 그의 작품세계가 새삼 너무 협소해 보인다) 그래도 ‘옛정‘이 있는 작가의 읽지 않은 작품이 남아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아직 펴보지 않은 카드가 세 장 남아 있는 것처럼.

번역본은 전집판 외에 몇 종이 더 나와있다. 전집판으로 읽으려고 하지만 다른 번역판들도 참조할 계획이다. 전집판은 서고에서 찾아와야 하지만 민음사판의 <크눌프>는 책장에 있다. 범우사판은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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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1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도 하나의 에피소드(전쟁이 프란츠 크로머와 동급)가 될만큼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나‘ 만 있는건지~
헤세에게 ‘나‘의 바깥은 없는건가요?

로쟈 2018-04-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야의 이리가 바깥의 최대치 같아요

로제트50 2018-04-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마지막을 지킨 니논 헤세의
글을 보면 헤세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 같아요~~

로쟈 2018-04-13 23:15   좋아요 0 | URL
인생은 자기에게로 가는 여정이라는 게 헤세의 인생관이니 그에 충실했던 것이기도.~
 

르 클레지오의 <사막>(문학동네)을 강의에서 읽었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로는 초기작 <조서>(1963)와 <홍수>(1966)를 강의에서 다뤘고 후기작에 속하는 <황금물고기>(1996)도 두 차례 읽은 적이 있다. 전환점을 표시하는 <사막>(1980)도 이번이 두번째였다.

연속적인 면도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간과할 수 없기에 초기와 후기로 나눈다면 나는 초기 소설들에 더 후한 편이다. 한데 초기작은 <사랑의 대지>(1967)까지 소개되고(하지만 절판된 상태) <사막> 이전에 발표된 네 편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다작의 작가이고 다수의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지만 나름 구멍이 있는 것. 차례대로 하면 <도피의 서>(1969), <전쟁>(1970), <거인들>(1973), <저편으로의 여행>(1975) 등이다. 이 가운데 <전쟁>과 <거인들>이 궁금하다. 아직 후기의 자전적 소설들을 읽지 않았지만 그 정도면 르 클레지오에 대해서는 가늠이 될 것 같다. 두번째 아내 제미아와 결혼하는 1975년에 발표한 <저편으로의 여행>은 <사막>의 예고편이 아닐까 싶다.

북아프리카 소녀의 여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사막>과 <황금물고기>는 마치 연속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황금물고기>의 주인공 라일라는 <사막>의 주인공 랄라와 포개놓을 때 그 의미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강의에서 지적하다 보니 생각이 미친 게 <빛나>(서울셀렉션)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한국인 소녀 빛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르 클레지오 소설의 ‘외도‘라기보다는 핵심의 반복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랄라, 라일라, 빛나, 주인공 이름도 운을 맞추고 있는 만큼 나는 심지어 삼부작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가방에 넣고 온 <빛나>를 조금 읽어보니 전라도 작은 어촌마을 출신의 빛나가 대학에 진학하여 홍대입구역 근처 고모네 아파트에 얹혀 지내게 된 이야기가 시작이다. 버릇없는 사촌여동생과 고모의 구박을 못 견디고 거리로 나와 도시를 배회하는 빛나의 모습은 북아프리카의 고향마을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와서 이주자로 도시를 배회하는 랄라나 라일라의 판박이다. 르 클레지오 소설의 공식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다르게 얘기하면 <빛나>를 통해서 그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자전적인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전혀 다르다는 전제하에 <빛나>를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르 클레지오 소설의 입문서로 읽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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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충분히 쉬지 못한 탓인지 월요일부터 피곤 모드다. 빼곡한 강의 일정으로 주중에 휴식을 갖기도 어렵다. 5월이나 되어야 사정이 좀 나아질까. 오늘 오전에는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이번주에 포와 호손, 멜빌, 세 작가에 대한 강의를 모두 진행한다), 주로 다룬 건 유일한 장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1838)이지만 그의 단편소설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언급했다.

포의 단편에 대해서는 주로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민음사)을 교재로 썼는데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나 ‘황금벌레‘ 같은 작품을 제외한 주요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건 ‘검은 고양이‘나 ‘배반의 심장‘과 같이 묶을 수 있는 단편으로 ‘변덕이라는 심술쟁이‘가 빠진 것인데, 이건 쏜살문고판의 <검은 고양이>에 들어 있다(코너스톤의 전집판에는 ‘심술요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변덕이라는 심술쟁이‘는 ‘The imp of the perverse‘(1845)를 옮긴 것으로 ‘perverse‘는 ‘검은 고양이‘에서는 ‘도착적이라고 옮겨지기도 했다. 좀더 쉬운 말로 옮기면 ‘비뚤어진 심리‘ 정도다.

강의 때 이 작품을 언급하는 건 포 문학세계의 특징과 기여를 잘 짚어주기 때문이다. 그 기여라는 건 포가 ‘비뚤어진 마음‘을 발견한 데 있다. 이 비뚤어진 마음은 어깃장을 놓는 마음이고 자기파괴적인 충동이다. ‘변덕이라는 심술쟁이‘의 화자는 절벽 끝에 서 있는 장면을 예로 드는데,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충동은 물론 안전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된다. 추락하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강렬한 유혹에 붙들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추락, 이 순간의 파괴가 우리가 이제껏 상상해본 적 있는 최고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죽음과 고통의 이미지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것이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충동적으로 그것을 갈망한다.˝

그러니까 변덕이라는 건 이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충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충동을 기본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덕이라는 심술쟁이‘는 발표상으로는 그보다 앞서는 ‘검은 고양이‘, ‘배반의 심장‘과 같이 묶인다. 이 변덕 혹은 비뚤어짐의 형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로부터 먼 거리에 있지 않다. 다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변덕에 좀더 강력한 실감을 부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물론 더 발전시켰을 따름이다. 40세에 세상을 떠난 포가 너무 이른 죽음으로 성취하지 못한 변덕의 해부를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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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휴일을 보내면서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더 미루다가는 포기하겠다). 이달에는 세계 책의 날과 도서관 주간이 들어 있어서 다양한 독서문화 행사도 개최되는 걸로 안다. 독서 여건이 좋은 듯도 싶지만 한편으로는 꽃구경 가기 좋은 계절이기도 해서 역시나 만만치는 않다('꽃보다 책'이라고 선뜻 말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 사정을 감안하여 '살살' 고르도록 한다.  

 

 

 

1. 문학예술

 

먼저 문학 분야에서는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작품이 두 권 더 나왔기에 골라놓는다. <나의 칼이 되어줘>와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웅진지식하우스, 2018). <시간 밖으로>(책세상, 2016)가 나왔을 때에야 처음 주목한 작가이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평하긴 어렵다. 다만 (아마도 아모스 오즈와 함께) 현대 이스라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고, 지난해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특히 <나의 칼이 되어줘>는 카프카의 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해서 더 관심이 간다.

 

 

예술 분야에서는 영화책으로 두 명의 감독책, <왕가위>(씨네21북스, 2018)와 <존 포드>(이모션북스, 2018)와 함께 (프랑스나 영어권이 아닌) 독일의 이론서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현대 영화이론의 모든 것>(앨피, 2018)을 고른다.

 

 

더불어, 사진책으로 새로 나오기 시작한 '매그넘 컬렉션'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서해문집, 2018) 두 권이 나왔는데, 카파의 책은 이전에 나온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2. 인문학

 

무거운 책과 가벼운 책을 고른다. 무거운 책으로는 먼저 결정판 번역이라는 이순신의 <난중일기>(글항아리, 2018)다. 아무리 중요한 저작이라고 해도 1200쪽이 넘는다면(게다가 가격은 6만원대에 이른다) 무모한 독서거리다. 여하튼 무거운 책임에는 틀림없다. 또 한권은 현대사 책으로 지난 정권이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법한 <민청학련>(메디치미디어, 2018)이다.

 

"민청학련은 유신정권을 타도하기 위하 대대적인 반독재 학생봉기를 계획하고 주동했던 일군의 대학생과 민주인사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1974년 4월 반유신 항쟁을 준비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강력한 민주화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민청학련은 이를 줄여 부른 말이다. 이 책은 민청학련의 존재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그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이다." 

 

최초의 시도임에도 오래 별러온 탓인지 700쪽이 넘는다. 역시나 무거원 책이다. 그리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서승의 <옥중 19년>(진실의힘, 2018). 초판은 지난 1999년에 나왔으니까 거의 20년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아주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어찌 가벼운 책이라고 하겠는가.

 

 

 

가벼운 책으론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신간들을 골랐다. 지난 연말에 나온 <번역>과 최근에 나온 <유토피아니즘>, <제2차세계대전>이다.

 

 

특히 제러드 와인버그의 <제2차세계대전>은 앞서 3권짜리로 나온 <2차 세계대전사>(길찾기)의 압축판으로 읽을 수가 있어서 꽤 요긴하다 싶다(이 세권은 나도 구입을 보류한 상태다. '첫단추'로 대신할 수 있다면 좋겠다).

 

 

 3. 사회과학

 

일단 페미니즘 관련서부터 고른다. 퍼트리샤 에반스의 <언어폭력>(북바이북, 2018), 그리고 앤디 자이슬러의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 2018), 니나 파워의 <도둑 맞은 페미니즘>(에디투스, 2018) 등이다. 나대로는 꽤 부지런히 관련서들을 구한다고 하는데,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기 때문에 저지선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이달에는 이 세권을 일차 저지선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회과학 쪽에서도 무거운 책을 고르자면 역시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지식노마드, 2018). 원서까지 구입해놓았기 때문에 나로선 읽은 준비가 완료된 상태다(시간벼락만 떨어지길 기다리면 된다). 에드먼드 버크가 보수의 원조라면 진보 혹은 급진주의의 원조격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도 필독서다. 이번에 '정치+철학 총서'의 첫 권으로 <사회계약론>(후마니타스, 2018)이 다시 나왔는데, 기존의 번역본(가량 전집판)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4. 과학

 

탐나는 과학책이 많은데, 그 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 위주로 골랐다.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크리에이티브>(추수밭, 2018)는 '증보판 진화론'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독자에게 최적의 책. 그리고 로버트 란자 등의 <바이오센트리즘>(예문아카이브, 2018). "란자 박사는 양자 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우주가 의식적인 관찰자에 의해 탄생했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실재)은 의식을 수반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생물중심주의 7가지 원칙을 설명한다." 비교적 얇은 분량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지난달에 타계한 스티븐 호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동아시아, 2018)도 덧붙인다. 이종필 교수의 해설이 추가되어 있다. 

 

 

 

5. 책읽기/글쓰기

 

먼저 열명의 과학자가 지난 한해 가장 인상 깊었던 과학책과 비과학 분야의 책을 한권씩 골라서 서평을 쓴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바틀비, 2018). 과학자들의 독서 성향도 살짝 엿보게 해준다. 정민영의 <미술책을 읽다>(아트북스, 2018)은 미술 애호가가 읽어주는 미술책이로, 미술 대중서 56권의 서평을 모았다. 그리고 아무때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우치다 타츠루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원더박스, 2018)로 글쓰기 책은 가름한다.

 

18. 04. 09.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1929)을 고른다. <게공선>이라는 제목으로도 나와 있는 작품이다. "난바다를 떠돌며 게잡이를 하는 대형 어선을 배경으로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극악한 노동 착취를 고발한 문제작이다. 청년실업,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 등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어지는 오늘날 다시 한번 열렬한 공감을 일으키며, 하나의 상징적 현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에 수십만 부가 판매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고바야시 다키지에 대해서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일본문학 교수인 노마 필드가 쓴 평전 <고바야시 다키지>(실천문학사, 2018)가 번역돼 나와 있다. 이즈 도시히코의 <전쟁과 문학>(제인앤씨, 2007)도 '지금 고바야시 다키지를 읽는다'가 부제인 책으로, 제목과 부제가 바뀌었으면 식별이 더 쉬웠겠다(원제는 '전쟁과 문학'이지만). 아울러 국내 전공자의 연구서로는 <고바야시 다키지 문학의 서지적 연구>(어문학사, 2011)가 나와 있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고바야시 다키지 선집>(이론과실천, 2015)도 세 권짜리로 나와 있다. 이 정도면 다키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읽을 거리가 아닌가 싶은데(그래서 다행스럽다), 나로선 이 달에 이 책들을 구입하고 얼마간 읽는 게 목표다. 그런 관심에서도 고른 '이달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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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가까이 손에 잡히는 시집을 아무 곳이나 펴서 읽었다. <이연주 시전집>(최측의농간). 1953년생으로 1992년에 타계했다.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1)이 데뷔시집이고 <속죄양, 유다>(1993)이 두번째 시집이자 유고시집이다. <시전집>에는 이 두권의 시집 수록작에다가 동인지 발표작들을 더 보탰다. 그래도 250쪽 가량이다. 한 시인의 생애.

너무 오래전 기억이어서 요절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다. 다만 두 시집을 손에 들었던 것 같다. 1990년대 초는 ‘세계사 시인선‘을 문지나 창비 시인선만큼 자주 구입했던 시절이다. 학부 3학년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시절. 진이정과 김신용의 시집이 기억난다. 이연주의 시집도 제목은 또렷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들은 아니었다. 지금 다시 보니, 90년대풍이라는 느낌도 든다.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이미지들이 곧바로 시인의 세계관으로 읽힌다.

잡히는 대로 읽다가 와 닿는다고 고른 건 ‘좌판에 누워‘다.

나, 간 절은 자반 고등어다
홍제동 시장터에서 도매값 팔백원이다
비늘은 죄다 떨어져 나갔다
살은 질기다

칠백원, 어때요?
아줌마 너무하시네, 칠백오십원!

창시 빠져나간 뱃가죽 좌판에 늘어붙어
식탁으로 가는
길, 기다리는

해가 또 진다

이 시를 살린 건 2행 같다. ˝홍제동 시장터에서 도매값 팔백원이다˝. 반면에 비슷한 발상법으로 쓰인 ‘매음녀3‘은 실패한 시로 여겨진다.

소금에 절었고 간장에 절었다
숏타임 오천원,
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 번 벌렸다
입에 발린 ××, ×××
죽어 널브러진 영자년 푸르딩딩한 옆구리에도 발길질이다
그렇다, 구제불능이다
죽여도 목숨값 없는 화냥년이다
멀쩡 몸뚱어리로 뭐 할 게 없어서
그짓이냐고?
어이쿠, 이 아저씨 정말 죽여주시네

실패한 건 상투적인 장면 묘사라서다. 그래서 ‘좌판에 누워‘ 1연만큼의 힘이 시에 실리지 않는다. 시집의 시들은 대부분 ‘좌판에 누워‘와 ‘매음녀3‘ 사이의 스펙트럼에 놓이는 듯싶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과 이미지를 그려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엘리엇의 용어를 쓰자면 좀더 예리한 ‘객관적 상관물‘이 필요하다).

다시 강의준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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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way 2018-04-13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실에 누워 - 하루하루(삼성병원 20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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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때 성매매 의혹받던 대한민국 최고 식물인간이다.

매년 받는 배당금만 팔백억이다

수족은 죄다 아들에게 갔다.

삶은 질기다.




살아는 있나요. 어때요?

한국 아훼들 너무한다. 걔 이미 갔어!




혼이 빠져나간 육체만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증여만 남은

길, 기다리는




올도 누워 욕만 쳐먹는다.




사랑해요 쌈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