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성남운중도서관 인문학 특강의 일환으로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3회에 걸쳐서(저녁 7시 30분-9시 30분) '문학 속의 철학' 강의를 진행한다(http://uj.snlib.go.kr/open/notice_view.asp?board_seq=1421).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의 문학 속의 철학

 

 

1강 4월 26일_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2강 5월 03일_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3강 5월 10일_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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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의 대표작가들을 강의에서 두루 다루었지만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앙드레 말로다. 대표작들이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오지 않아서인데 몇년 전에 나온 <정복자들>(민음사)에 이어서 이번에 <희망>(문학동네)이 출간되어 얼마간 해갈이 되는 모양새다. <인간의 조건>과 <왕도>도 새 번역본이 나오면 비로소 3-4강 정도의 강의를 꾸릴 수 있겠다. 사실 학부시절에 읽은 작품이 <인간의 조건>과 <왕도>였고 <희망>은 범우사판 번역본이 있었음에도 특별히 끌리진 않았던 작품이다. 이제 보니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1937년작.

˝앙드레 말로가 반反프랑코 전선에서 국제비행대 ‘에스카드리유 에스파냐‘를 조직하고 지휘하며 전쟁의 참상과 살육의 현장, 그 속에서 폐허가 된 인간의 마음을 목격하고 이를 바탕으로 썼다. 내전의 순간순간을 포착해 전쟁의 참혹한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도 제목이 암시하듯 단순한 비관에 그치지 않고, 종교와 혁명이 결합된 암시 및 환기의 장치들을 통해 20세기 지구촌 문명 속에서 해체된 정신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와 종교의 정수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 작품이다.˝

자연스레 비교되는 건 오웰의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이다. 말로는 평전들도 소개돼 있는 만큼 <인간의 조건>만 더 출간된다면 내년쯤엔 강의에서 다루고 싶다. 그렇게 대기중인 또다른 작가들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인데, 사르트르의 <구토>(1938)와 보부아르의 <레망다랭>(1954) 등은 언제쯤 새로 번역본이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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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4-1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전 앙드레 말로 평전을 읽어봤습니다. 선생님 리뷰를 보니 그때 읽은 책이 생각나네요.ㅎㅎ

로쟈 2018-04-13 23:14   좋아요 2 | URL
네, 관련서가 많이 나와 있는 편이죠.~

오독 2018-04-14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 <인간의 조건>(지만지)과 <구토>(하서출판사)는 한국어판 저작권을 각각 이 두 출판사가 가지고 있어서, 이 두 출판사가 새롭게 번역하지 않으면 새 번역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공저작권이 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로쟈 2018-04-1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76년몰이니 거의 생전에 만나보기 어렵겠네요.^^; 구토의 저작권이 하서에 있다니. 그 무성의한 판본에.--;
 

릴케의 <말테의 수기>(1910)를 여름학기 강의에서 읽을 예정이다(강의에서 다루는 건 처음이다). 기억에는 두번쯤 읽은 책인데, 내가 읽은 번역본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독문학자 강두식, 전영애 교수의 번역본들이었다). 좋아하는 작품이라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새 번역본이 나올 때마다 구해놓기도 했다. 강의에서 막상 다루려니 어떤 번역본을 골라야 할지 고심이 된다. 선택지는 민음사판, 펭귄클래식판, 열린책들판이다(알라딘의 판매량순이다).

독일문학 강의를 지난해부터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이번 여름강의가 거의 마무리다. 토마스 만과 헤세를 반복해서 읽었고(카프카를 포함하여) 여름에는 브레히트와 하인리히 뵐, 권터 그라스, 그리고 제발트까지 (다시) 읽을 계획이다. 나대로는 10월중에(16-25일) 진행할 독일문학기행을 준비하는 의미도 있다. <말테의 수기>도 마찬가지인데(파리로 가야 했겠지만) 릴케의 자취를 일부 따라가보는 여정을 준비하면서 그의 시들과 함께 다시 읽어보려는 것이다. 일종의 기분 조율이랄까.

강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만 어제는 영어본도 주문하면서 준비 모드로 들어갔다. 책을 읽는 것과 강의에서 다루는 건 별개여서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맥락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작품의 구성과 주제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필요하다. 나의 ‘청춘의 책‘ 가운데 하나인 <말테의 수기>를 그런 필요에 따라 다시 읽으려니 묘한 흥분도 느끼게 된다. 언젠가 파리에 가는 일이 생긴다면 ‘릴케의 파리‘ 혹은 ‘말테 브릭게의 파리‘ 덕분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릴케가 단 한편의 시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이름이 <말테의 수기>와 함께 기억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대의 나‘가 내게 귀띔해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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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손의 소설(로맨스) <일곱박공의 집>(1851)을 읽고서 책장에서 빼낸 책은 멜빌의 <피에르 혹은 모호함>(1852)이다. <피에르>는 멜빌의 일곱번째 소설로 <모비딕>(1851)에 바로 이어지는 작품인데 이전작들과는 달리 해양소설이 아니라 가정소설이다. 일종의 업종변경을 시도한 작품인데 그 이행의 맥락을 <일곱박공의 집>을 읽고서야 그려볼 수 있었다. <일곱박공의 집>이 바로 호손의 가정소설이고 <모비딕>을 호손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멜빌이 그 영향하에 쓴 소설이 <피에르>였던 것. 그러니까 독자도 <모비딕>에서 <피에르>로 바로 건너갈 수 없고 <일곱박공의 집>을 경유해야 한다.

그런데 <주홍글자>(1850)에 뒤이어 발표된 작품으로 <주홍글자>의 음울한 결말과는 다르게 의도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곱박공의 집>과는 달리(이러한 결말을 통해서 작중인물들뿐 아니라 작가 호손 자신도 청교도 조상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피에르>는 호손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모호함‘을 견지한다(더 철저하게 호손을 계승한다?!).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고딕 소설과 로맨스의 관습에 대한 재해석 위에 프로이트를 앞서 간 개인의 심리 분석이 더해진 <피에르, 혹은 모호함>은 당시 독자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머니, 배다른 누이, 이상적인 여인, 연적과의 전통적인 관계 설정을 모두 흐트러트리고, 이들 관계에 비이상적인 친밀감과 성적 긴장감을 부여하여 모든 것을 소용돌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피에르’의 광풍은 그의 운명이 그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었다.˝

모호한 가정소설이란 점에서 떠올리게 되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성년>(1875)이다. <피에르>를 언제 강의에서 다룰지 모르겠지만(그 사이에 멜빌의 장편이 두어 편 더 나오길 기대한다) 두 작품에 대한 비교도 흥미로운 과제다. 서로를 읽었을 가능성은 희박한 두 작가이지만(희소하긴 하지만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연구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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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77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후카미 기쿠에의 <폴리아모리>(해피북미디어)를 읽고 적었다. 폴리아모리에 대해서는 앞서 국내서로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알렙, 2017)가 나온 적이 있는데, 좀 뜬금없다고 느껴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주제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폴리아모리>를 먼저 읽고 <우리는 폴리아무리 한다>로 넘어가면 될 것 같다(순서상 그렇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폴리아모리의 '본산'인 미국에서 나온 매뉴얼북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 일본이나 국내에서도 일부 폴리아모리 모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미국문화로 보여서다. 현재까지는 백인, 계급, 고학력이 폴리아모리스트의 3대 특징이다...   



주간경향(18. 04. 17) 새로운 사랑,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


다자간 사랑을 뜻하는 말로 막연하게 알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대해 좀더 이해해보려고 손에 든 책이다.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이라는 부제가 타당한지도 궁금했다. 저자는 일본의 젊은 인류학자로 미국의 폴리아모리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썼고 말미에 일본의 폴리아모리스트와의 인터뷰를 보탰다. 곧 제3자적 시각에서 폴리아모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폴리아모리는 199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일단 모노가미(일부일처제)에 반대하는 논-모노가미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1995년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길게 보면 전통적인 성도덕에 반대하는 성해방운동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19세기에는 자유연애주의자들이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할 권리"를 선구적으로 주장했고 성의 공산주의를 목표로 한 공동체 실험도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성 규범을 위협한다고 하여 탄압을 받았다.


성해방의 주장이 새로운 목소리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1960년대다. 학생운동과 시민권운동,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반전운동 등을 배경으로 다양한 성애관계가 실험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보수주의의 대두와 함께 이러한 흐름은 쇠퇴했다. 1980년대 초에 발견된 에이즈도 성해방 풍조에 결정타가 되었다. 1990년대 새로운 사랑의 방식으로 폴리아모리가 등장하기까지의 짧은 역사다.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 "자신의 교제를 공개하고 합의한 후에 만들어가는 복수의 사랑"이다. 요점은 공개와 합의다. 모노가미에서라면 "당신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라는 고백은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지만 폴리아모리에서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된다. 폴리아모리는 단지 섹스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 유대를 강조하기에 스와핑과 구별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특정 사람들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폴리패밀리가 형성된다. 일례로 토마스(남성, 40대), 릴리(여성, 30대), 댄(남성, 20대)은 4년차 폴리패밀리인데, 토마스와 릴리가 결혼하고 2년 뒤에 댄을 새가족으로 맞았다. 토마스와 댄은 양성애자이고 릴은 이성애자이며 셋은 트라이어드다. 이혼 경력자인 토마스는 전처와의 사이에 두 아이가 있고 한 주의 절반은 토마스의 집에서 지내는데, 토마스가 생계를 맡고 육아는 릴리가, 가사는 릴리와 댄이 협력해서 역할을 분담한다. 


폴리아모리가 과연 새로운 사랑의 방식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소수의 성애와 가족구성 방식으로 남게 될까. 몇가지 조사통계를 참고해볼 만한데 미국에서 폴리아모리스트는 90% 이상이 백인이고 75% 이상이 중산계급 이상이라고 답했다. 대학 이상의 학력자가 62%였다. 폴리아모리 그룹 참여자의 연령은 5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새로운 사랑,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도 보편적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18.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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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1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자마자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가 떠올랐어요.
점점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을듯.

로쟈 2018-04-1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선구적‘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