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 다보스를 떠나 몬타뇰라로 향하고 있다. 3시간 소요되는 거리. 헤세박물관으로 직행할 예정인데, 가이드 예약시간이 10시반으로 당겨져 출발도 당겼지만 아무래도 늦어질 모양이다. 스위스에서는 버스의 제한속도가 80킬로여서(산길이 많아서 그런 듯싶다)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면도 있다.

오늘의 일정은 몬타놀라를 찾아 헤세박물관과 무덤을 둘러보고 점식식사 후에 근교의 관광도시 루가노 도심산책을 하는 것이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취리히에서 마무리하게 이번 여행의 동선은 대략 스위스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것이다. 어제 찾은 실스마리아가 3시 방향이라면 오늘 가볼 몬타뇰라는 5시나 6시 방향이다.

이동중에는 가이드의 스위스 이야기와 함께 문학강의를 곁들이게 되는데 어제부터 계속 토마스 만과 헤세를 비교하는 강의, 그리고 헤세문학 전반에 대한 소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헤세의 몬타뇰라 시기는 1919년부터 1962년 사망할 때까지이므로 42년간이고 생의 절반이다. 작품으로는 <데미안> 이후 <유리알 유희>(1942)에 이르는 모든 작품이 몬타뇰라의 소산이다. 헤세의 생애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018년 독일문학기행 때 찾은 헤세의 고향 칼프에 이어서 그가 생을 마친 몬타뇰라 방문을 앞두게 되니 감회를 품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중학생 시절 최애작가였던 <수레바퀴 아래서>의 작가 헤세. 곧 그의 공간으로 들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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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무덤을 보고나서 향한 곳은 생모리츠다. 스위스 동남부 그라우뷘덴(불어로는 그리종)주의 도시. 사실 목적지는 실스마리아의 니체하우스이지만 실스마리아에는 단체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식당이 없다고 하여 경유지로 택한 곳이다. 취리히에서 생모리츠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킬로미터이고 차량으로 2시간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언덕길이고 우리 대관령처럼 구불구불한 곳이 많아서 3시간거리로 잡아야 좋겠다.

생모리츠도 인구는 5천밖에 되지 않지만 고급호텔과 부자들의 별장이 있다는 도시다. 그에 비하면 실스마리아는 작은 마을.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덕분에 이름이 좀 알려지긴 했으나 누군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온다면 니체의 독자일 확률이 높다. 니체하우스의 오픈시간이 3시-6시여서 여유가 있었으나 점심식사가 다소 늦어지면서 식사 후에 우리는 곧바로 실스마리아로 향했다. 영화에서 보던 풍광이 그림 같이 펼쳐지는 마을로.

사진에서 본 인상으론 마을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으나 니체하우스는 마을의 여느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면으로 공간이 트여 있어서 따로 독립돼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 니체가 1881년부터 88년까지 여름마다 찾았던 집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한 후기의 대표작들이 생산된 곳이다.

니체하우스 앞에서 먼저 단체사진을 찍은 뒤 일행은 니체하우스의 관람객이 되었다. 흔히 고흐의 방과 비교되는 니체의 작은 방을 포함해서. 니체 전집 관란 자료와 편집자들의 업적이 소개된 게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자료와 소개글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파스테르나크가 니체에 관해 쓴 1959년의 편지도 독어로 쓰여 있어서 해독할 수 없었다(바로 전 해인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파문을 겪었다. 수상의 계기가 된 <닥터 지바고>를 펴내기 전까지 그는 주로 괴테와 셰익스피어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었다. 니체 번역도 포햄됐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니체하우스를 둘러본 뒤 관리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니체의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실바플라나 호수까지 다녀오는 산책길의 풍광은 니체가 왜 이 마을과 지역(엥가딘)에 매료됐던가를 충분히 납득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면 니체처럼 한계절(니체는 주로 여름을 이곳에서 보냈다)을 머물러보아도 좋겠다.

이 페이퍼를 적고 있는 곳은 다보스의 숙소다. 어제의 마지막 일정은 <마의 산>의 배경이 된 요양원-호텔 외관을 보는 것이었는데 실스마리아에서의 돌발 산책으로 인하여 시간이 늦어져 진행하기 어려웠다. <마의 산>의 모델이 된 요양원은 아내 카챠가 실제로 입원했던 발트 요양원과 소설에서 실명이 나오는 샤츠알프 요양원 등인데 그 샤츠알프 요양원(현재의 호텔)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마의 산>과의 인연은 아마도 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마의 산>의 장소라는 의미가 다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보스 일정은 주변의 키르히너 미술관 관람까지 포함하여 더 비중있게 꾸려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보스를 둘러보기도 전에 우리는 오늘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야 한다. 몬타놀라의 헤세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곧 스위스문학기행의 3일차 헤세의 날이 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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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일정은 예정대로 토마스 만의 무덤을 찾는 것이었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공원묘지의 가족무덤이라는 게 사전정보였는데(그리고 사진상으로는 외진 곳 같은 인상이었다), 막상 가보니 작은 규모의 교회묘지였고 어렵지않게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1955년 사망하자 묻힌 자리에 아내와 자녀들도 같이 묻혔다(망명지 미국에 남았던 장남 클라우스 만은 따로 묻혔겠다).

흐린 날씨였지만(오후가 되면서 개었다) 묘지 주변의 경관이 아담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작가의 안식처로 좋아보였다. 묘비도 크지 않고 조촐했다. 토마스 만의 장소로는 뮌헨과 뤼벡, 그리고 베네치아에 이어서 네번째로 찾은 곳. 오후에 찾을 다보스가 다섯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 장소일 것 같다. 토마스 만의 무덤 앞에서 독일소설사와 세계소설사에서 토마스 만이 갖는 위치와 의의에 대해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생모리츠로 향하고 있는데 스위스의 산과 호수,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막 단풍의 계절로 진입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보지 못한 올해의 단풍을 스위스에서 먼저 즐기고 있다. ‘지루한‘ 나라 스위스의 자연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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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출발을 위해 버스에 탑승한 상태다. 취리히의 흐린 아침. 밝은 아침은 일주일 뒤로 주문해놓는다. 스위스를 떠나게 될 날의 아침이 취리히의 아침이다. 호텔 정면으로 철길이 있어서 간간이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 ‘간간이‘라고 적는 순간 또 지나가는 걸로 보아 ‘자주‘ 지나간다.

오늘의 일정은 토마스 만과 니체, 그리고 내일은 헤세다. 니체를 꼭지점으로 해서 모아도 되는 세 작가다. 만과 헤세는 각별한 교분을 나눈 것으로도 유명한데(실제로 1946년 헤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 1929년 수상자 만이다. 적어도 만에 따르면 그렇다), 둘의 서신교환선만 책한권이다(나는 영어판을 갖고 있다). 번역되면 좋겠다.

2018년 가을 독일문학기행 때 헤세의 고향 칼프와 만의 고향 뤼벡을 찾았었다. 6년만에 두 사람의 무덤을 찾게 되니 감회가 없지 않다. 두 작가의 장소들이 이들 도시에 한정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생애의 ‘시작과 끝‘을 따라가본다는 의미가 있다.

취리히는 잔뜩 흐린 날씨다. 비가 한바탕 쏟아진 듯 아스팔트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지만 지금은 오지 않는 상황. 토마스 만의 무덤을 먼저 찾은 뒤 우리는 생모리츠로 이동하게 된다.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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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시간으로 자정을 넘겼다. 한국은 아침 7시. 어제 낮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오르며 시작된 스위스문학기행의 첫날 일정은 하나밖에 없었다. 취리히에 도착하기. 프랑크푸르트까지 13시간 비행, 이어서 환승하고 취리히 공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거의 17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취리히 일정은 문학기행의 마지막 이틀로 잡혀 있고 오늘은 단지 일박이 목적이다. 취리히에 도착했으나 아직 아는 척하지 않기.

문학기행은 늘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하지만, 장거리 비행마저 달가운 것은 아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은 누구라도 진이 빠지게 만들 것이기에. 그렇지만 무탈하게 도착해 숙소에서 일박을 맞이하게 되면 하루의 고생도 금세 과거지사가 된다. 본격 일정이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실제로 시차 때문에 우리는 7시간 과거에 와 있다).

아래 사진은 호텔방. 스위스에 와 있다는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는 사진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커튼도 같은 색감의 그린이다. 대개의 스위스 호텔처럼 냉장고나 커피포트가 구비돼 있지 않아 불편한 면이 있지만 스위스 산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는 것으로 모두 용서가 된다. 여기는 스위스, 취리히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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