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의 무덤을 보고나서 향한 곳은 생모리츠다. 스위스 동남부 그라우뷘덴(불어로는 그리종)주의 도시. 사실 목적지는 실스마리아의 니체하우스이지만 실스마리아에는 단체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식당이 없다고 하여 경유지로 택한 곳이다. 취리히에서 생모리츠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킬로미터이고 차량으로 2시간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언덕길이고 우리 대관령처럼 구불구불한 곳이 많아서 3시간거리로 잡아야 좋겠다.

생모리츠도 인구는 5천밖에 되지 않지만 고급호텔과 부자들의 별장이 있다는 도시다. 그에 비하면 실스마리아는 작은 마을.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덕분에 이름이 좀 알려지긴 했으나 누군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온다면 니체의 독자일 확률이 높다. 니체하우스의 오픈시간이 3시-6시여서 여유가 있었으나 점심식사가 다소 늦어지면서 식사 후에 우리는 곧바로 실스마리아로 향했다. 영화에서 보던 풍광이 그림 같이 펼쳐지는 마을로.

사진에서 본 인상으론 마을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으나 니체하우스는 마을의 여느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면으로 공간이 트여 있어서 따로 독립돼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 니체가 1881년부터 88년까지 여름마다 찾았던 집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한 후기의 대표작들이 생산된 곳이다.

니체하우스 앞에서 먼저 단체사진을 찍은 뒤 일행은 니체하우스의 관람객이 되었다. 흔히 고흐의 방과 비교되는 니체의 작은 방을 포함해서. 니체 전집 관란 자료와 편집자들의 업적이 소개된 게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자료와 소개글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파스테르나크가 니체에 관해 쓴 1959년의 편지도 독어로 쓰여 있어서 해독할 수 없었다(바로 전 해인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파문을 겪었다. 수상의 계기가 된 <닥터 지바고>를 펴내기 전까지 그는 주로 괴테와 셰익스피어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었다. 니체 번역도 포햄됐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니체하우스를 둘러본 뒤 관리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니체의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실바플라나 호수까지 다녀오는 산책길의 풍광은 니체가 왜 이 마을과 지역(엥가딘)에 매료됐던가를 충분히 납득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면 니체처럼 한계절(니체는 주로 여름을 이곳에서 보냈다)을 머물러보아도 좋겠다.

이 페이퍼를 적고 있는 곳은 다보스의 숙소다. 어제의 마지막 일정은 <마의 산>의 배경이 된 요양원-호텔 외관을 보는 것이었는데 실스마리아에서의 돌발 산책으로 인하여 시간이 늦어져 진행하기 어려웠다. <마의 산>의 모델이 된 요양원은 아내 카챠가 실제로 입원했던 발트 요양원과 소설에서 실명이 나오는 샤츠알프 요양원 등인데 그 샤츠알프 요양원(현재의 호텔)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마의 산>과의 인연은 아마도 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마의 산>의 장소라는 의미가 다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보스 일정은 주변의 키르히너 미술관 관람까지 포함하여 더 비중있게 꾸려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보스를 둘러보기도 전에 우리는 오늘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야 한다. 몬타놀라의 헤세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곧 스위스문학기행의 3일차 헤세의 날이 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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