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을 떠나서 학문의 도시 코임브라는 가는 길에 가톨릭 성지 파티마에 들렀다. 소위 가톨릭 공식 3대 성모 발현지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성지 순례지이기도 하다. 최초의 성모 발현은 1917년의 일로 세 아이(포르투갈어 이름으로는 루시아, 프란시스쿠, 자신타)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데 연장자 루시아가 10살, 프란시스쿠와 자신타는 각각 9살, 7살이었다(루시아가 유일하게 성모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쿠와 자신타는 1920년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고 루시아만이 성장하여 수녀가 돼 오랜기간 성모발현 목격자이자 증언자로 활동했다. 2005년에 선종. 프란시스쿠와 자신타는 발현 100주년인 2017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마침 주일이자 만성절이어서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찾았을 법한데 성당(파티마성당과 삼위일체성당)과 광장의 규모가 너무 커서(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다) 붐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촛불 봉헌을 위한 줄만 길게 늘어서 있는 정도. 기념품가게와 서점에 잠시 들렀는데 당연하게도 모두 가톨릭과 관련된 물건과 책 들이었다. 파티마 관련서만 얼추 수백 종은 되어 보였다.

파티마에서 곧 점심식사를 하고 코임브라로 이동할 예정이다. 포르투갈 문학사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70년대 세대(1870년대를 가리킨다. 일명 ‘코임브라 세대‘)의 본산이기도 하다. 대표적 인물이 안테루 드 켄탈과 에사 드 케이로스. 안테루는 시인이자 70년대 세대의 리더었고 에사는 포르투갈 사실주의 소설을 확립한 작가다. 앞세대 문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포르투갈 문학을 변혁하고자 했던 이들이다. 안테루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에사는 소설 한편만 번역된 터라 거리가미 있지만 페소아와 사라마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기에 문학강의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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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마지막 밤이다. 문학기행도 어느새 반고비를 지나고 있다. 여행자의 주관적 느낌이지만 공통적인 감각인기도 한데, 오랜 비행 비행 끝에 첫날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이튿날부터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도보로 리스본 도심을 둘러본 게 첫날 핵심 일정이었고 엊저녁 식사를 하며 파두 공연을 감상한 게 리스본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 사이 그제는 근교도시 오비두스, 그리고 어제는 신트라를 다녀왔다. 모두 리스본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곳들로 포르투갈의 관광 명소다.

기행의 기록은 그제 사라마구 재단을 방문한 대목까지 적었는데, 이어서 찾은 곳이 마프라 궁전이다. 수도원과 성당까지 포함된 복합 왕궁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대표적 건축. 거대한 복합건축물 축조에 든 비용과 인력을 고려하면 바로 가능한 판단이다. 사라마구는 대규모 공사의 동원된 민중적 시각에서 역사를 재서술한다. <수도원의 비망록>(1982)과 함께 사라마구문학이 새롭게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포르투갈 왕조사에 대한 설며을 들으며 궁전을 둘러보고(3만권이 넘는 장소를 소장한 왕실도서관이 인상적이었다) 일행은 점심식사를 위해 에리세이라로 향한다. 세계적인 서핑 명소라는 리스본 근교도시로 점심메뉴는 생선구이(도미/농어)였다. 대서양 바다라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안면을 튼 사이이지만 포르투갈에서 만나는 대서양은 또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대항해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두고 있어서인지 풍경(프랑스에서 바다는 모네의 에트르타 같은 풍경이었다)이 아닌 실감으로 다가온다고 할까. 파도의 힘도 더 강하게 느껴졌다.

점심식사후 오후일정은 ‘왕비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오비두스 방문. 성곽으로 둘러싸인(그래서 도시라고 불리겠다) 작은 마을인데 13세기부터 포르투갈 왕이 왕비에게 결혼선물로 주어왔다고 한다. 해마다 국제문학축제가 열리는 문학의 마을이기도 하다. 성곽 둘레를 걸어보고 마을 골목의 이색상점들을 구경하는 일정으로 하루를 아무리하고 리스본으로 귀환했다. 귀환길에는 포르투갈문학의 주변성(에사 드 케이로스)과 특수성(페소아, 사라마구)에 대한 막간 문학강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어제. 포르투갈 최대 관광지라는 신트라를 다녀왔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페나 궁전과 그 다음으로 찾는다는 헤갈레이라 별장 방문이 주요 일정. 명성대로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페나 궁전은 동화속의 성처럼 노랑, 빨강으로 칠해진 성벽과 파란 가을하늘이 원색의 대조를 이루었다.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유럽의 서쪽 끝이라는 호카곶(여기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카몽이스의 시구가 유명하다)에서 해무에 싸인 바다를 구경한 다음에 일행은 다시 신트라로 돌아와서 단테의 <신곡>을 형상화했다는 헤갈레이라 별장으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우물을 직접 보고 걸어내려가본 것이 기억에 남을 만했다.

해가 진 뒤에야 리스본에 도착한 일행은 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파두 공연을 감상하며 저녁식사를 했다. 두 명의 기타 반주에 맞춰 세 명의 여가수가 차례로, 혹은 같이, 때론 경쾌한 느낌도 주는, 주로 애조 띤 절절한 목소리로 파두를 들려주었다. 3박4일 리스본 체험의 피날레엤다. 이제 날이 새면 가톨릭 성지 파티마를 거쳐서 포르투갈 지성의 산실 코임브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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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문학기행 3일차였던 어제 아침은 부둣가에 위치한 코메르시우광장(상업광장이라는 뜻)에서 시작했다. ‘바다를 향한 수도의 현관‘이란 소개가 딱 어울리는 장소. 중앙에는 리스본 대지진(1755년) 시의 국왕 주제 1세(재위 1750-1777)의 기마상이 서 있다(1775년). 연도를 보니 재위시에 세워진 동상이다.

대지진은 리스본의 역사에서 레콩키스타 시기 포위전(1147년. 사라마구 소설 <리스본 쟁탈전>의 소재로 상조르즈 성과 연관된 사건이었다)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18세기 중반 가장 충격적인 자연재해로 이후에 리스본의 외관을 완전히 바꾸어놓게 된다. 도시 재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폼발 후작으로 19세기 후반 파리의 외관을 바꿔놓은 오스만 남작의 원조쯤 된다(도시 개조사업에서 리스본은 파리의 한 세기 앞선 모델이었다).

하지만 문학사를 비교하면 리스본의 발자크(에사 드 케이로스)는 프랑스의 발자크보다 한세대 이상 늦게 등장한다. ‘프랑스의 에사‘는 대체역사에서나 가능한 것. 원인은 포르투갈의 사회사적 지체인데 16세기 초반까지 대항해시대 선두에 섰었지만, 포르투갈의 주도권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핵심 원인이 인구에 있었던 것 같은데(물론 상대적 인구이다)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인구는 100만명 정도로(최대 140만을 넘지 않는다) 경쟁국들에 비해서 상당히 적다(스페인 인구가 포르투갈의 다섯배 정도였다). 문학시장 크기도 당연히 차이가 나기에 에사만 하더라도 외교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부업으로 소설을 썼던 작가다. 발자크와 졸라와 같은 전업작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상업광장‘이니 상업적 계산을!).

사정은 페소아도 마찬가지였고 <불안의 책>의 베르나르두 소아르스 역시 회계사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그의 도라도레스 거리는 어제 거닐었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에는 리스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는데 페소아가 단골이었다는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가 있다. 광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인데, 기념삼아 페소아 메뉴(에스프레소와 에그타르트)를 디저트로 즐기고 폐소아 지정석에도 앉아보았다(카프카의 프라하에서는 이런 장소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오전 일정의 목적지 사라마구 재단은 코메르시우광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알파마지구 초입에 위치한 ‘카사 두스 비쿠스‘(다이아몬드형 파사드로 유명한 건물)에 재단이 들어서 있고 2층과 3층이 주제 사라마구 문학관에 해당한다. 2층이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노벨문학상 수상자료들로 꾸며져 있고 3층은 그의 서재를 재연해놓았다. 사라마구가 출간한 책들에 더해 세계 각국어로 출간된 그의 책, 그리고 그가 소장했던 책들까지 서가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한국어판은 <눈먼 자들의도시>와 <카인>만 확인할 수 있었다. 찬찬히 둘러본 건 아니어서 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재단 건물 앞 광장에는 이미 사진에서 본 대로 사라마구가 묻혀 있는 올리브나무가 있었다(그의 고향 아지냐가에서 옮겨온 나무다). 대표작 <수도원의 비망록>에 가져온 그의 묘비명.

​˝Mas não subiu para as estrelas, se à terra pertencia.˝(˝그러나 그는 별들로 올라가지 않았다, 땅에 속한 자였기에.˝)

<수도원의 비망록>의 소재가 된 마프라 궁전과 ‘왕비의 도시‘ 오비두스를 찾은 오후 일정은 따로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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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서머타임이 해제돼 포르투갈과 한국의 시차는 한시간이 더 벌어져 9시간이다(바로 이웃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독일과 같은 시간대에 맞춰 포르투갈보다 한 시간 빠르다. 친나치였던 프랑코정권 때 그렇게 맞추었다고 들었다). 유럽의 서쪽 끝으로 포르투갈은 영국과 같은 시간대를 쓴다. 낮밤이 정반대까지는 아니어도 시차적응이 쉽지는 않다. 한국의 새벽시간인 저녁에 잠이 쏟아지고 한국의 낮시간인 한밤중에는 정신이 또렷해진다.

또렷해진 김에 문학기행 2일차이자 실질적으로는 첫날이었던 어제의 일정을 복기한다. 당초 빡빡할 걸로 예상했지만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만족스러웠다. 현지 생활 10년차라는 베테랑 가이드의 진행이 큰몫을 했고 화창한 날씨도 도움을 주었다. 일교차가 있기는 하지만 리스본의 낮기온은 26도까지 올라가서 우리 9월 느낌을 갖게 했다. 한낮에는 반팔차림이 자연스러워보일 정도.

대략적인 동선. 전용차량을 타고 시아두 지역 카몽이스 광장까지 가서 도보로 바이샤 지구까지 둘러보았다. 다시 차량을 페소아문학관(페소아의 집)으로 가서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1-3층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예약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첫번째 현지식). 이어서 벨렝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가서 산타마리아성당과 회랑을 구경했다. 성당에는 포르투갈의 국가적 인물인 바스코 다 가마와 국민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석관묘가 자리하고 있고 회랑 한쪽에는 1985년 사후 50주년때 이장된 페소아의 묘가 조형물 형태로 위치해 있다. 시아두 지구에 있는 페소아 생가와 카페 브라질레이라의 동상, 그리고 페소아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고 현재는 문학관이 된 집과 무덤까지 둘러보았으니 ‘페소아의 날‘에 어울리는 풀세트였다.

수도원 방문 이후에는 상조르즈 성을 찾아 성곽을 구경하고 리스본의 일몰을 지켜보았다(요즘 표현으로 일몰 맛집). 리스본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알파마 지구의 전망대 두곳(포르타스 두 솔과 산타루지아)을 연이어 찾아 저녁-야경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찍는 장소이면서 사진에 담기는 장소들이었다.

상조르즈 성이 포르투갈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연결돼 있다면(사라마구의 소설 <리스본 쟁탈전>의 소재가 된 1147년 리스본 공성전의 배경이 상조르즈 성이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제국의 역사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대항해시대를 살았던 카몽이스의 대표 서사시가 나오는 건 1572년.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젊은 왕 세바스티앙 1세에게 헌정하지만 이 비운의 왕은 1578년 모로코 친정에 나섰다가 전사하면서 포르투갈에 재앙을 가져온다(포르투갈은 1580년부터 60년간 스페인에 병합된다). 시신도 수습됐는지 미심쩍은 왕(1582년 펠리페 2세가 세바스티앙의 유해라며 리스본으로 옮겨 제로니무스에 안치했지만 진위는 의심받는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 제국의 화려했던 시절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의 구심점이 된다(세바스티아니즘). 카몽이스와 페소아가 연결되는 주제다.

내가 생각하는 포르투갈 근대문학의 해명은 (1)대항해시대 역사와 그 문학적 상관물로서 카몽이스의 <루지아다스> 읽기, (2)포르투갈 제국의 신화가 페소아의 시집 <메시지>(<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에 일부 번역되었고 아직 완역되지 않았다)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해체되는지 따져보기를 실마리로 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자리한 두 국가적 시인의 무덤은 둘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 문학사적 해명 이상의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해준다. 포르투갈 근대사의 해명이기도 하니까.

카몽이스에서 페소아로의 이행 구도에서 빠진건 19세기 작가들이다. 낭만주의 최대작가 알메이드 가헤트와 사실주의 최대작가 에사 드 케이로스가 대표적인데, 특히 발자크와 졸라의 소설을 포르투갈 버전으로 바꿔놓은 에사가 중요하다. 20세기 전반기와 후반기 포르투갈 문학을 대표하는 페소아와 사라마구가 에사의 문학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음미해볼 만한데, 나는 세 사람을 잇는 삼각형이 포르투갈 현대문학을 이해하는 간명한 도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페소아에 이어서 오늘 3일차에 사라마구, 그리고 아베이루에 들르는 6일차에 에사 드 케이로스 문학에 대한 짧은 강의를 통해서 나는 이 삼각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풀어보려 한다(이번 문학기행 해설로서의 역할이다). 포르투갈 근현대문학에 대한 도식적 해명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은 이베리아문학의 해명이 과제가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근대문학은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가. 포르투갈어로는 왜 ‘돈키호테‘가 쓰이지 않았던가, 등등. 거기에 브라질문학과의 비교도 포르투갈문학에 대한 이해에 매우 요긴한 도움이 될 것이다. 브라질이라,.. 브라질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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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지금 시각으로는 어제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고 만 하루가 지났다. 환승(프랑크푸르트)까지 더해서 비행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예상과 다른 건 아니었고 리스본 도착까지의 일정은 순조로웠다.

저녁이나 밤늦게 도착하다보니 도시의 야경부터 보는 일이 많은데, 비행기가 리스본공항으로 서서히 하강하면서 창밖으로 내려다본 리스본항의 야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수년 전 해질녘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테네 (피레아스)항구와 함께 내겐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2일차인 내일부터가 본격적인 문학기행의 시작이다. 일정상으로는 페소아의 날이다(그렇게 치면 3일차는 사라마구의 날이다). 리스본 도심투어도 겸할 예정이어서 아무래도 가장 빡빡한 하루가 될 듯싶다. 김한민의 페소아 기행 책을 참고하건대 페소아의 리스본만 챙겨보려해도 최소 일주일은 필요해보이지만(리스본은 한달 살기도 선호되던 도시였다) 언제나 그렇듯 배당되는 시간은 충분치 않다. 일단 많이 걸으면서 보고듣고 한 것들을 나중에 책을 읽으며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여행한다는 것! 이 나라 저 나라 버리고 다니는 것!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영혼에 뿌리가 없기에
오로지 보기 위해 사는 것!
-페소아, ˝여행한다는 것˝

페소아의 도시에 온 이상, 내일 하루는 오로지 보기 위해 다니면서 ‘일일 페소아 체험‘을 해보려고 한다. 한데 페소아-되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페소아 자신이 이명들을 만들어내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기에. 필명들이 아닌 이명들의 시인이라는 점에서 페소아는 세계문학사에서 ‘유니크‘하다. 그 유니크함에 더해 리스본의 유니크함도 내일 확인해보려 한다.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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