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문학기행 3일차였던 어제 아침은 부둣가에 위치한 코메르시우광장(상업광장이라는 뜻)에서 시작했다. ‘바다를 향한 수도의 현관‘이란 소개가 딱 어울리는 장소. 중앙에는 리스본 대지진(1755년) 시의 국왕 주제 1세(재위 1750-1777)의 기마상이 서 있다(1775년). 연도를 보니 재위시에 세워진 동상이다.
대지진은 리스본의 역사에서 레콩키스타 시기 포위전(1147년. 사라마구 소설 <리스본 쟁탈전>의 소재로 상조르즈 성과 연관된 사건이었다)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18세기 중반 가장 충격적인 자연재해로 이후에 리스본의 외관을 완전히 바꾸어놓게 된다. 도시 재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폼발 후작으로 19세기 후반 파리의 외관을 바꿔놓은 오스만 남작의 원조쯤 된다(도시 개조사업에서 리스본은 파리의 한 세기 앞선 모델이었다).
하지만 문학사를 비교하면 리스본의 발자크(에사 드 케이로스)는 프랑스의 발자크보다 한세대 이상 늦게 등장한다. ‘프랑스의 에사‘는 대체역사에서나 가능한 것. 원인은 포르투갈의 사회사적 지체인데 16세기 초반까지 대항해시대 선두에 섰었지만, 포르투갈의 주도권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핵심 원인이 인구에 있었던 것 같은데(물론 상대적 인구이다)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인구는 100만명 정도로(최대 140만을 넘지 않는다) 경쟁국들에 비해서 상당히 적다(스페인 인구가 포르투갈의 다섯배 정도였다). 문학시장 크기도 당연히 차이가 나기에 에사만 하더라도 외교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부업으로 소설을 썼던 작가다. 발자크와 졸라와 같은 전업작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상업광장‘이니 상업적 계산을!).
사정은 페소아도 마찬가지였고 <불안의 책>의 베르나르두 소아르스 역시 회계사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그의 도라도레스 거리는 어제 거닐었다). 코메르시우 광장 앞에는 리스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는데 페소아가 단골이었다는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가 있다. 광장으로 가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인데, 기념삼아 페소아 메뉴(에스프레소와 에그타르트)를 디저트로 즐기고 폐소아 지정석에도 앉아보았다(카프카의 프라하에서는 이런 장소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오전 일정의 목적지 사라마구 재단은 코메르시우광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알파마지구 초입에 위치한 ‘카사 두스 비쿠스‘(다이아몬드형 파사드로 유명한 건물)에 재단이 들어서 있고 2층과 3층이 주제 사라마구 문학관에 해당한다. 2층이 작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노벨문학상 수상자료들로 꾸며져 있고 3층은 그의 서재를 재연해놓았다. 사라마구가 출간한 책들에 더해 세계 각국어로 출간된 그의 책, 그리고 그가 소장했던 책들까지 서가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한국어판은 <눈먼 자들의도시>와 <카인>만 확인할 수 있었다. 찬찬히 둘러본 건 아니어서 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재단 건물 앞 광장에는 이미 사진에서 본 대로 사라마구가 묻혀 있는 올리브나무가 있었다(그의 고향 아지냐가에서 옮겨온 나무다). 대표작 <수도원의 비망록>에 가져온 그의 묘비명.
˝Mas não subiu para as estrelas, se à terra pertencia.˝(˝그러나 그는 별들로 올라가지 않았다, 땅에 속한 자였기에.˝)
<수도원의 비망록>의 소재가 된 마프라 궁전과 ‘왕비의 도시‘ 오비두스를 찾은 오후 일정은 따로 적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