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은 뒤 관이라는 보호막도 없이 곧장 흙에 묻히는 것이 연매장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이 과거를 단호하게 끊어내고, 이를 봉인하거나 내버린 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을 거부하는 것도 시간에 연매장되는 것이다. 일단 연매장되면 영원히, 대대손손 누구도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내가 아는 것과 느낀 것, 내 의혹과 고통을 성실하게 적어냈다.˝
작가의 말에서

아직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첫번째 수를 놓기 시작했다. 정말로 깔창이 필요했던 것처럼, 무료함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려는 것처럼 손을 놀렸다. 며칠 만에 금붕어 두 마리를 수놓은 깔창 한 켤레를 완성했다. 수를 놓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이 마음을 채웠다. 하늘에서 행복이 뚝 떨어진 듯 마음이 편안해지자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 P38
딩쯔타오는 술잔을 코밑으로 가져갔다. 그 때 갑자기 강렬하면서 익숙한 냄새가 콧구멍에서 가슴까지 전해졌다. 불씨가 그녀 가슴속 건초에 화르르 불을 당기는 것 같았다. 매서운 음성이 들려왔다. "마셔! 마시거라. 세 잔을 마시거라. 마셔야 힘이 생기고 담력도 생긴다." 목소리 뒤로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 P59
순간 머릿속에서 ‘끝없이 새하얀 대지가 정말로 깨끗하구나!‘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홍루몽]에 나오는 ‘끝없이 새하얀‘이란 표현은 이런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이상 몸부림치지 않고 어디까지 가는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느낌만 남았다. 그녀는 눈부신 구름 위에서 하염없이 떨어졌다. 눈앞의 새하얀색이 회색으로 변하고 계속 진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새까매졌다. 그 어둠은 밑도 끝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그녀는 이게 어둠의 심연이며 자신이 이미 그 속에 떨어졌음을 알았다. - P63
그날 아침 산책을 마치고 공원을 나왔을 때 류진위안은 갑자기 다오사오몐이 먹고 싶어졌다. 이미 고향을 떠난지 오래라 남쪽 요리에 진작부터 익숙해졌고, 담백하든 맵든 전부 맛있게 먹었다. 거기에 대해 아들 류샤오촨은 아버지 위는 동서든 남북이든 모두 아우르는 아주 개방적인 위라면서 개혁의 방향에 상당히 잘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고향의 다오샤오몐이 갈고리처럼 그의 마음을 잡아 끌었다. - P70
아내가 그리웠다. 류진위안은 천천히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게는 할 일이 없었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시간과 잘 지내는 것만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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