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에서의 둘째날이자 마지막날 일정은 호텔에서 출발하여 트리니티 칼리지 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 호텔 바로 맞은편 건물이 오스카 와일드가 성장기를 보낸 집이었고 대각선 방향의 메리언 스퀘어의 그의 유명한 동상이 있었다(바위에 누워 있는 오스카 와일드). 비가 흩뿌린 아침나절 메리언 스퀘어를 거쳐서 국립도서관과 국립박물관을 차례로 찾았다(국립도서관과 박물관은 비슷한 형태의 건물로 이웃하고 있다).

국립도서관에는 예이츠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비교적 많은 자료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시관에서의 짧은 강의는 주로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할애되었는데, 작품으 9장에서 스티븐 디덜러스가 국립도서관에서 햄릿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고 그 주제에 대해서 다른 인물들과 논쟁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더블린 방문의 핵심 목적은 더블린 3부작의 배경과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기도 하다.

국립박물관에서는 아일랜드의 선사와 역사시대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고 점심식사를 하기 직전에는 가난한 생선장수 몰리 말론의 동상과 만났다. 평범한 여성의 동상이 더블린의 명소라는 데에 아일랜드다운 특징이 잘 집약돼 있는 듯했다. 점심식사를 한 오닐의 펍은 <율리시스>에도 등장하는 식당으로 유명한 맛집이라 한다.

식사 후에는 듀크라는 저명한 카페로 이동하여(문인들의 마실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아이리시 커피를 마셨다.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추위를 잊기 위해 커피에 위스키를 넣어서 마신 것이 아이리시 커피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듀크의 아이리시 커피는 더블린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오후에 찾은 트리니티대학은 아일랜드의 명문으로 오스카 와일드와 사뮈엘 베케트 등의 모교이기도 하다. 트리니티 방문목적은 유명한 도서관 ‘롱룸‘을 둘러보기 위한 곳이었고 이곳에 책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켈스의 책‘이 보관되어 있기에 그에 관한 설명도 자세히 들었다. 롱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의 하나로 꼽힌다고 하는데 재작년에 찾은 멜크수도원의 장서관과도 흡사해 보였다.

목표했던 일정을 마무리한 게 오후 4시경이고 이때부터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율리시스>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서점 호지스피기스를 둘러보았는데 4층짜리 대형서점이었다(이 정도면 아일랜드 최대서점 자리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주로 영어책이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여행 때와는 다르게 비교적 오랫동안 책구경을 할 수 있었다. 책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나온 <율리시스> 컴패니언을 구입하는 것으로 방문을 기념했다.

내일은 아침 비행기로 더블린을 떠나 영국 리버풀로 향하기에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각 일정마다 이야깃거리들이 있지만 당장은 이 정도로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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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9-10-01 21:39   좋아요 0 | URL
네 아일랜드 생각이 나시겠어요.~
 

어제 들른 아일랜드 작가박물관에서 특이하게 생각한 것은 몇 명의 작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눈에 띄지 않는 작가들이 눈에 띄었다). 동시대 작가로 아일랜드 문학의 거장으로 소개된 윌리엄 트레버와 존 밴빌이 그렇고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세이머스 히니도 전시 목록에는 빠졌다(설마 못본 것일까). 생존 작가여서일까?

이 가운데 히니는 예이츠 이후 가장 위대한 아일랜드 시인으로 평가받는 거장으로 1995년 네번째로 아일랜드에 노벨문학상을 안겼다. 그보다 앞서, 예이츠(1923), 버나드 쇼(1925), 그리고 사뮈엘 베케트(1969)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는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변방의 시인이어서 히니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는데(히니의 직전 수상자들이 토니 모리슨과 오에 겐자부로였다) 그럼에도 한국어 번역은 전집을 포함하여 잘 돼 있는 편이다. 이번에 챙겨오지는 않았지만 짧은 방문을 기념하여 돌아가면 히니의 시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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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7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9-10-01 22:25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의미가 있지요.~
 

더블린에서의 긴 하루가 저물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더블린행 비행기로 환승하여 더블린 공항에 도착한것이 이곳 시간으로 아침 8시 25분쯤. 7시 5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너무 일찍 도착한 거 아닌가 싶지만 암스테르담과 더블린은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실제적으로는 1시간 30-4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한국과의 시차는 8시간. 더블린은 현재 저녁 8시 40분쯤이지만 한국은 새벽 4시 40분인 식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라면 밤을 새운 셈이기에 꽤나 길게 느껴진 하루였다.

그렇게 시작한 더블린의 첫 일정은 세인트 패트릭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었고(<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무덤이 있기도 한데 스위프트는 이 성당의 주교였다) 이어서 예정에는 없었지만 가이드의 제안에 따라 도심에 있는 피닉스공원을 둘러보았다. 도심 공원으로는 세계최대 공원으로 더블린의 자랑거리인데 피닉스란 말은 성수(성스러운 물)를 뜻한다고. 점심은 현지식으로 감자구이와 돼지갈비(립)를 먹었는데 예상 밖으로 맛이 좋았다(비슷한 메뉴를 독일에서 먹은 것과 비교해서도 훨씬 나은 맛이었다. 물론 독일만큼은 아니어도 양이 좀 많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오후 일정은 본격적인 문학기행으로 더블린 작가 박물관을 둘러보고 이어서 조이스 기념센터를 방문했다. 작가박물관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관련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예상보다는 작은 규모였다. 조이스 센터는(입장료가 성인 기준 5유로) 뤼벡의 토마스 만 하우스(정확히는 토마스 만과 하인리히 만 형제의 기념관)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래도 이름값은 하는 기념관이었다. 공이 더 들인다면 한정이 없을 테지만.

조이스 기념센터에서 조이스 문학의 의의에 관해 짧게 설명하는 것으로 나는 소임을 마쳤고 이후엔 아일랜드 독립 추모공원을 들과 거리의 조이스 동상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이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 체크인한 시각이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내일은 더블린의 구석구석을 워킹투어를 통해서 살펴볼 예정이다.

이제 9시가 넘었다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한국과의 시차를 고려하면 잠자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그에 맞추려고 급하게 적었다. 다른 얘깃거리는 내일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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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심사대를 통과해서 대기중이다. 탑승까지는 한시간 남겨놓고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여 더블린으로 입성하게 될 텐데, 탑승할 비행기가 네덜란드 항공이라는 사실은 한 시간 전에 알았다(일정표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환승 대기시간이 세 시간쯤이라고 하니까 예정에는 없었지만 네덜란드도 들르는 걸로 쳐야겠다(오래전에 암스테르담에 대한 시도 쓴 게 있었군).

뻔질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새 공항이 친숙한 처지가 되었는데, 그래도 공항에서 자정을 맞는 건 처음이다. 공항에서 1박2일? 낮에 여행에 가져갈 책들을 챙기다가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청미래)을 잠시 펼쳐보았는데(가방에 넣지는 않았다), 부제가 ‘히드로 일기‘였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 기식한 경험을 쓴 책인 모양. 소위 공항용 책이다. 이런 대기시간에 읽어보기 좋은.

다른 책으로는 크리스토퍼 샤버그의 <인문학, 공항을 읽다>(책읽는귀족)도 있는데, 기억에는 정색하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공항이라는 공간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 도구는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 친숙한 문학이라는 통로이다. 저자는 현대문학 비평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여 여러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공항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우리에게 공항이란 공간의 새로운 모습과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안내해준다. 또한 공항의 의미를 알랭 드 보통 같은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관통하여 자크 데리다와 프로이트, 미셸 푸코, 니체 등을 연결 지어 인문학적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 있는 여흥을 제공한다.˝

소개를 다시 보니, 원서를 구입해서 읽어보려던 책이다(구매내역이 없는 걸로 보아 흐지부지된 모양이다. 비싸서였을까?). 공항에서 이런 책을 읽으려면 한나절은 죽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데리다와 푸코까지 끼고 읽어야 한다니.

여하튼 다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문학기행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곧바로 영국문학기행을 떠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언젠가는 공항에서 태어난 것처럼 여겨질 날도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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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피츠제럴드 편이 출간되었다. 최민석 작가가 쓴 <피츠제럴드>(아르테). 오늘밤 영국문학기행을 떠나지만 내년에는 스위스(3월)에 이어서 프랑스(10월)에 갈 예정이고, 피츠제럴드는 미국 작가이지만 헤밍웨이와 함께 프랑스에도 행적을 남기고 있다. 리비에라 해안까지는 가보지 못하더라도(<밤은 부드러워라>) 파리에서는 그들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앞서 나온 백민석의 <헤밍웨이>(아르테)는 이미 통독했는데, 세계 각지를 누빈 헤밍웨이의 흔적을 뒤쫓는 일은 견적이 많이 나온다. 미국문학기행은 나중에 별도로 기획해봐야겠지만 프랑스문학기행 때 미국작가들의 파리 경험에 대해서 한 꼭지 다뤄볼 생각이다(대표작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되려나. 스페인으로의 투우 여행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피츠제럴드와 관련해서 아내 젤다의 책이 얼마 전에 나왔다. 그녀의 소설과 산문을 묶은 <젤다>(에이치비프레스). 1920년대 가장 떠들썩한 작가 커플의 뒷이야기와 함께 일부에서는 스콧에게 부당하게 가려졌다고 평가하는 젤다의 문학적 재능을 엿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건 내년의 일이고 지금은 당장 영국행(이자 아일랜드행) 가방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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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 2019-09-2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로쟈 2019-09-25 19:39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