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리려다가 만 페이퍼다. 인류세와 자본세를 화두로 한 책들이 나와서 같이 묶으려 한다. 먼저, 사이먼 루이스와 마크 매슬린 공저의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세종서적). 원제는 '휴먼 플래닛'(2018)이다. '인류세가 빚어낸 인간의 역사 그리고 남은 선택'이 부제.
















"21세기에 대두한 중요한 과학 논쟁 중 하나인 ‘인류세Anthropocene’ 즉 ‘인간의 시대Age of Man’에 관한 세밀한 탐구서. 문명의 붕괴와 멸종 시나리오로 보는 세계사를 통해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기본 규칙을 밝혀주는 새로운 증거들을 총망라했다. 인간, 즉 사피엔스가 어떻게 ‘자연의 폭력’이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인류세라는 불안정한 지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극심한 환경파괴를 극복할 방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과 재야생화를 강조하고, 미래에 대한 아직은 실현 가능한 희망을 제시한다."
















지질학계에서는 검토중인 사안으로 알지만, 출판쪽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을 적극 수용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류세인문학단이 발족하여 책을 펴내고 있는 상황. 그것이 사피엔스의 성취인지, 재앙의 시작인지는 두고봐야겠으나 조짐이 좋지는 않다(기후변화와 함께 코로나 사태가 대표적 징후다). 인류세를 다르게 '자본세'로 부를 수 있다면(실제로 인류세의 기점은 산업혁명으로 보는 시각과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는 시각이 있다. 어느 쪽이든 자본주의 문명이 인류세의 핵심 조건이다). 














이번주에 나온 라즈 파텔 등의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북돋음)가 이 문제를 숙고하게 해준다. 라즈 파텔은 앞서 <경제학의 배신><식량전쟁> 등의 책으로 소개된 저자. 이번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이다.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인류니, 아니 지구는 자본세로 진입했다는 얘기?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는 저자들의 메시지는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의 해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재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때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연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성찰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도, 인류세 혹은 자본세의 특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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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서프라이즈'의 하나는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러시아사 전공이다) 올랜도 파이지스의 <유러피언>(커넥팅)이다. 지난해 가을 영국문학기행 때 런던의 해처드 서점에서 갓 나온 신간으로 구입한 책인데, 이렇듯 빨리 소개될 줄은 몰랐다. 파이지스 교수의 전작들이 그렇게 많이 팔려나간 것 같지 않은데, 그럼에도 이런 중후한 책이 발빠르게 번역돼 반갑다.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 책 <유럽인>을 통해 유럽 연합이란 하나 된 국가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었던 '유럽 문화'와 '국제주의적 문화'의 형성 과정을 이반 투르게네프, 폴린 비아르도와 루이 비아르도 부부의 생애와 국제사 관점에서 바라본 유럽사로 살펴본다."


번역본의 부제는 '세 사람의 생애로 보는 유럽 문화의 탄생'인데, 원저의 부제를 반영하면 그 '유럽문화'는 '코즈모폴리턴 문화'다. 러사아 작가 투르게네프와 프랑스의 오페라 여가수 비아르도의 관계는 투르게네프의 전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비아르도 평전도 영어로는 나와 있지만 너무 방대해 구입을 보류했다). 그들의 관계를 유럽 문화사라는 학장된 시야에서 보고자 하는 게 저자의 착안점. 그리하여 표지 이미지처럼 상당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문화사 한권이 추가되었다. 
















파이지스의 책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러시아 근대문화사 전체를 다룬 <나타샤 댄스>였다. 이후에 각론에 해당하는 책들로 러시아혁명사나 소비에트 사회사 책들이 더 나왔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는 러시아혁명을 전체적으로 다룬 <인민의 비극>과 <크림 전쟁> 등이 있다(희소한 주제에서 <크림 전쟁>도 번역되면 좋겠다). 아무려나 신뢰할 만한 저자의 책이 신뢰할 수 있는 역자의 번역본으로 나와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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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엔 반 룬의 <생각하는 여자>(창비)를 손에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포함해 여성작가와 문학에 대한 강의가 많아서 자연스레 생각해볼 주제들이 있어서다. ‘반 룬‘이란 성 때문에 기시감이 들긴 했지만 저자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호주 작가다. <로드 스토리> 외 두어 권의 소설을 펴냈다. 철학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대학에서는 창작을 강의한다.

<생각하는 여자>는(원저를 검색했더니 지난해에 나온 책이고 보급판은 올 가을에나 나온다) 호주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삶을 위한 생각: 생각하는 여자를 위한 대중철학‘ 프로젝트의 결과다. 여성 사상가들의 생각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로 주제별로 저자가 만난 사상가들을 같이 만나보게 된다(독자로서는 같이 읽어보게 된다). 가령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선 로라 키프니스를 만나보는 식. 다행히 <사랑은 없다>가 번역돼 있는(품절상태지만) 미국 비평가다.

목차를 보니 생소한 사상가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국내에 소개돼 있어서 겸사겸사 그들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원래 프로젝트 취지가 그런 것처럼.

한편 여성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로 ‘사상가들‘의 첫권도 최근에 나왔다. 샹탈 무페의 <경합들>(난장). 무페의 책은 앞서 여러 권 나왔고 나도 대부분 읽어본 터라 친숙하다(<경합들>의 원서도 진작 구입했었다). 이어지는 리스트의 사상가들이 무탈하게 계속 소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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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개의 책이지만 의미심장하게 연결되기도 하는 책 두 권이다. 한나 크리츨로우의 <운명의 과학>(브론스테인)과 우치다 타츠루의 <망설임의 윤리학>(서커스). 나란히 출간되었기에 어제 주문해서 받은 책들이기도 하다. 

















한나 크리츨로우는 영국의 떠오르는 스타 과학자라고 하는데,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 대중화에 앞장서는 이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로서 전공은 신경과학이다. 책의 부제도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한 뇌과학'. 최신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무한한 주체성과 역량' 같은 비전이 과연 얼마나 유효한지 검토한다. 신경 가소성 개념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보는 저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부분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참고한 책들 가운데 로버트 새폴스키의 <처신 Behave>가 있어서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지가 번역되지 않은 저자의 신간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신간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아닐 정도로 자주 나오고 있는데(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공저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100권 이상을 써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미 있는 저작이 <망설임의 윤리학>(2001)이다. 저자의 첫 단독 저서로 곧 데뷔작에 해당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와는 별개로 나는 '망설임'이란 주제를 '주체'나 '판단'의 문제와 관련해서 요즘 숙고하고 있어서 주저없이 주문했다. 우치다의 견해와는 별개로.


인과적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우리가 처하게 되는 상황이 바로 '망설임' 아닌가(절대적 자유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것이 선택가능할 경우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전능하다는 말의 역설이다. 모든 선택이 취소가능하다면 그 선택은 무의미하다). 운명의 과학과 망설임의 윤리학이 짝지어질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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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오해할 수가 있다. 모치 도시유키의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사람과나무사이). ‘37가지 물고기‘가 나오는 게 아니라 ‘37가지 이야기‘란 뜻이다(37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물고기는 청어와 대구, 두 종. 대구는 앞서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가 소개되었던 터라 흥미를 끄는 건 청어다.

˝몸길이 30센티미터 정도의 흔하디흔한 생선 청어의 산란 장소와 회유 경로 변화가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유럽의 세력 판도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이는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 중 하나다.˝

어찌되었건 인류가 이 두 종의 물고기(생선) 덕을 많이 보았다는 것. 흥미로운 건 저자가 셰익스피어 전공의 영문학자라는 사실이다. 풍부한 문학작품의 인용이 부수적인 읽을 거리이자 또다른 즐거움이다.

책을 검색하다 보니 권오길 교수의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도 있는데, 각각 대구와 청어가 많이 나는 철을 일러주는 우리 속담이다. 바야흐로 대구 철에서 청어 철로 옮겨가는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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