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분야에서 ‘이주의 발견‘은 데버러 러츠의 <브론테 자매 평전>(뮤진트리)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영문학사에서 제인 오스틴의 바톤을 이어받는 여성작가가 브론테 자매이고 이들어 대표작 <제인 에어>과 <폭풍의 언덕>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영소설 군에 속한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친숙하지만 소위 본격적인 평전은 그간에 소개된 적이 없었다(연구서야 좀 있지만).

˝빅토리아 시대 문학 연구가인 데버러 러츠가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브론테 가 관련 자료와 유품 들을 연구하여 쓴 이 책은 자매들과 일상을 함께한 아홉 개의 사물을 통해 그들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분석한 흔치 않은 평전이다.˝

몇년전 19세기 영소설을 강의할 때 참조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재번역돼 나온다면 다시 진행해보려 한다) 아무튼 나 같은 문학 가이드뿐 아니라 브론테 자매의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셀프 선물이다...

아래 사진은 1979년작 영화 <브론테 자매>에서의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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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강의를 다시 진행하게 되면서 지출이 늘었다. 작품도 많이, 너무 많이 번역돼 있는데다가(가장 많이 쓰는 작가군에 속하면서 동시에 가장 많이 팔리는 작가인 탓이다) 관련서도 적지 않아서다(게다가 두세 번씩 구입한 책들도 있어서다). 당장 이번주에도 장석주의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달)가 출간되었다. 강의하는 처지에서는 바로 읽어보는 수밖에.

관련서도 적잖게 읽다 보니 나로서도 감이 생겼다. 어지간한 책에 대해서는 재볼 수 있게 된 것. 국내서로는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마음산책)도 이번에 구했고(초판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뜨인돌, 2007)를 읽었지만 재작년에 개정판도 나왔다), 스즈무라 가즈나리의 <하루키, 고양이는 운명이다>까지도 닥치고 구입.

읽은 것만 하면 나대로도 책을 쓸 수 있겠다 싶지만 아직 대표작 세 편을 강의하지 않아서 보류중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태엽감는 새>, 그리고 <1Q84>가 그것이다. 거기에 <해변의 카프카>와 <기사단장 죽이기>를 더하면 ‘하루키 월드‘가 된다. 이 다섯 권이 하루키적인 작품들이고(초기작들은 이러한 하루키 월드의 탄생사로 읽힌다), 역설적이지만 하루키 스스로도 당혹스러워한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이 가장 비하루키적인 작품에 해당한다(이 작품에 대해서 하루키는 ‘100퍼센트 리얼리즘 소설‘이란 홍보문구를 붙이려고 했었다. 리얼리즘이야말로 하루키문학의 대척점이다).

나의 관심사는 하루키의 작품들이 구성하는 패턴과 플롯이다. 개별 작품에도 플롯이 있지만 한 작가의 작품군에도 플롯이 존재한다(물론 그런 게 부재하는 작가들도 많다). 하루키의 작품들에 그런 게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려볼 수 있는지가 관심사인 것인데, 대표작들까지 포함한 강의를 진행한다면(8강 규모는 되어야 한다) 나도 결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키식 어법으로 하자면 현재 하루키에 대한 나의 이해 는 6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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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세계적 화제작 ‘나폴리 4부작‘이 완간되었다. <나의 눈부신 친구>부터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까지다. 두 여자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얕은 정보. 그런 소재로 <전쟁과 평화>와 맞먹을 만한 분량의 장편 4부작을 써내는 게 가능할까라는 호기심이 일단 흥미를 갖게 한다. 정작 나로선 <전쟁과 평화> 강의에 집중해야 하기에 이 ‘눈부신 친구들‘을 만날 여력이 없긴 하지만.

또 하나의 포인트는 이탈리아의 동시대문학이라는 점. 에코와 칼비노 등 명망가들의 전집이 나와 있지만, 이탈리아 본색을 보여주는 작가들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이탈리아의 일상을 다루는 작가들이 아니므로. 엘레나 페란테 자신은 얼굴이,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작가라고는 하지만, 나폴리 4부작은 이탈리아 현대사의 맨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그게 이 작품에 거는 기대다. 당장은 1권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놓기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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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책을 비롯해 오늘 배송예정인 책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진행상황을 보니 여차하면 내주 화요일에나 받을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책 목록에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을 책이 없는 건 아니므로 대소롭진 않지만 다음주 강의차 재주문한 하루키 책들은 오늘 받지 못하면 내일 도서관에 가든지 해야 한다(안 그래도 대출할 책들이 좀 있기에).

예정대로라면 다음주에, 더 거창하게는 내년에 첫 타자로 배송될 책은 ‘염상섭 문학전집‘으로 새로 나온 세 권이다. <화관><젊은 세대><대를 물려서>. 주요작은 아니어서 세 권 모두 생소한데 염상섭 전집은 ‘묻지마 주문‘에 해당하기에 클릭해서 살펴보지도 않았다. 책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어떤 작품이고 언제쯤 읽을 것인지 가늠해보려 한다.

글누림에서 나오고 있는 염상섭 문학전집은 지난 2015년에 세 권이 나오고 소식이 없다가 올봄에 한권 나온 데 이어서 이번에 세권이 추가되었고 내년에도 연속적으로 나올 모양이다. 분량이 방대하기에 그런 속도로 나와도 몇년 걸리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무탈하게 마무리 되기만을 바란다(끝내 완간되지 못한 민음사판 전집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과 <삼대>는 강의에서 종종 다루었지만 다른 작품도 몇권 포함해서 염상섭 문학의 성취를 세계문학적 관점에서 자리매김하고 싶은 게 개인적인 포부다. 20세기 후반의 작가로는 박완서 문학이 그런 포부를 갖게 한다(박완서 전집은 이미 완간되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작에 대한 강의를 내년, 늦어도 후년까지는 책으로 낼 예정인데, 그와 더불어 ‘한국문학 다시 읽기‘의 결과물도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주로 해온 일이 근현대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였기에 그런 시야와 안목으로 한국 근현대문학도 재평가하려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아마도 앞으로 5년 가량은 이런 계획에 붙들려 지낼 듯싶다. 물론 전집들이 제때 차질없이 나와준다는 조건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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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으로 문보영의 <책기둥>(민음사)이 출간되었다. 소개된 이력은 간략하다. "1992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책기둥>으로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부터 김수영문학상 수상까지 최단 기간이라 한다. 나이로도 25세에 수상이면 거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1962년생 장정일 시인도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25세였다. 내 가늠으로는 이 두 사람이 최연소일 것 같다. 정확히 30년 차이이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갔군.

 

 

 

올해의 마지막 주문 목록을 갱신할까 하다가, 시 몇 편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흠 전문이 소개된 게 눈에 뜨지 않는다. 찾아보건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인 '막판이 된다는 것'.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고 했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한 시이고, 나로선 여전히 '햄버거에 대한 명상' 쪽이 더 신선하고 싱싱해 보인다. 30년이나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인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문보영의 시는 전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과 이야기 형식으로 써내려 간 매력적이고 독자적인 언어로 가득하다. 동시에 우리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시로 옮기는 시선에서는 진솔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낯섦과 새로움,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에 바로 문보영의 시가 있다."

 

과감하고 매력적이고 독자적이고 진솔하고 다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정말 그러한지는 내년에 만나보기로 한다. '막판이 된다는 것'이 올해의 마지막 시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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