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 책-지성 섹션의 '한국의 글쟁이들' 코너에서는 '동양철학 저술가 도올 김용옥씨'를 다루고 있다. 돌이켜보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민음사, 1985/ 통나무, 1987)와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989)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지 어즈버 20년이 넘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고려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온 이후로 언제나 화제와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 지식인-저술가, 혹은 한 저작의 표현을 빌면 '우리시대의 문화무당'도 어느덧 세는 나이로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

 

 

 

 

그간에 출간한 저작목록을 일별하는 일이 곧 내가 살아온 지난 20년을 회고하는 것과 겹친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가져다준다(이미 '살아버린 세월'을 마주할 때의 느낌 말이다). 그의 파격의 지지자였으면서 한편으론 과장된/낭비된 언어들을 유감스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비록 최근 몇 년간의 저작들을 나는 읽어보지 않았지만(하지만 그가 문화일보 기자시절 쓴 칼럼들을 나는 대부분 읽었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책들을 얼른 떠오르는 대로 나열하자면, 앞에서 꼽은 데뷔작들 외에 <절차탁마 대기만성>,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화두, 혜능과 셰익스피어>, 그리고 화이트헤드 번역서인 <이성의 기능> 등을 더 얹어볼 수 있겠다. 그런 밑그림을 갖고서 한겨레의 기사를 부분적으로 다시 읽어본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저술가로서 도올이 거둔 대중적 성과는 일반인들의 예상 이상이다. 지금까지 모두 41종 52권을 펴냈고, 총 판매부수는 250만부를 넘겼다. 80년대 그의 이름을 알린 <여자란 무엇인가>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각각 40만부와 20만부, 방송강의로 화제가 된 <노자와 21세기>(전 3권)가 50만부 넘게 팔렸다. 이 밖에도 10만부를 넘긴 책이 여럿이다. 인문학자의 인문학책으로는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저술가로서 그가 대단한 점은 판매부수보다도 20년 동안 활동을 계속해 온 생명력, 그리고 꾸준히 변화해온 데에 있다. <여자란…> <동양학…> 등 도올의 초기 책들은 인기는 높았지만 일반 교양서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도올의 책은 점점 그만의 사유를 담으며 일관성을 갖고 진화해갔다. 그의 관심은 동양철학에서 시작해 조선사상사를 훑은 뒤 동학과 개화기 독립운동사를 거쳐 최근에는 현대사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런 과정속에서 민족주의를 매개로 한반도와 민족문제를 다루며 고유의 목소리로 비전을 찾아가고 있다.

-그의 강점으로는 독자들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는 ‘강력한 문체’가 꼽힌다. 단번에 써내려가는 집필 스타일이 더해져 흡인력이 더욱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 도올의 글쓰기 스타일은 전형적인 ‘몰아쓰기’에 ‘일필휘지’형. 스스로 “나는 항상 글이 잘 써진다”며 “문장을 시작하면 글로 써달라고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을 쳐서 귀찮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체상의 강점은 바로 대중성이다. 도올의 글은 어려운 용어를 쓰지만 소화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이처럼 자기 사유를 알기 쉬운 대중적인 언어로 펼쳐보이는 학자는 무척 드물다(*도올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이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덕목이다). “저술의 기본 대상을 항상 25~35살로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 어떻게 하면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느냐는 것이 내 삶에서 끊임없이 벌여야만 하는 사투라고 할 수 있지요.”

-저술가로서 도올의 최대 승부처는 바로 ‘시간과의 싸움’. 자신이 정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자리가 아니면 참석 요청에 응하지 않는다. “저술세계가 신이 되는 것, 원고를 쓰는 게 신에 대한 경배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권력이나 명예도 저술을 위해서는 뭉개버릴 수 있다는 프라이드가 없으면 저술가가 못돼.” 이는 동시에 학자로서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학자는 곧 저술가에요. 궁극적으로 학자의 사명은 책을 쓰는 데 있지 강의하는 게 아니야. 그 시대에 결국 남는 것은 강의가 아니라 책이에요. 강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남겠지만, 그건 듣는 이들이에게 밑거름을 주는 것이지 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도올은 그러나 “프로 지식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해본 사람은 상상 못한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겹쳐 더욱 상황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립대 교수 연봉이 한 7000만원쯤 될거에요. 내가 그 정도 벌려면 1만원짜리 책을 7만권을 팔아야 해요. 요새는 책이 안나가서 일반 교수들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뭔가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인거지. 그나마 나는 방송하고 연계하는 등 새로운 방식을 개척해왔는데도 요즘에는 불가항력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저술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방송은 안해도 되는 거에요.”

-그토록 ‘튀던’ 그도 이제 환갑을 앞두면서 바뀌는 듯하다. 요즘에는 특유의 ‘잘난척’과 ‘오버’, 그리고 ‘공격성’이 많이 덜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내가 지금 내 책을 봐도 과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걸 수용해준 사회에 감사해요. 사실 내가 그렇게 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를 까대고 뭉개려는 인간들에 대해 ‘너희들이 그래도 도올은 사라질 수 없다’는 생명력을 보여주려는 과시이자 생명력의 표출이었어요. 이젠 정갈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그가 진화할 방향은 어느쪽일까? 분야로는 ‘현대사’, 구체적 주제로는 ‘재즈’와 ‘동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요즘 현대사를 다루는 것은 현대사에서 모든 학문이 출발해야겠다는 자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고 이념을 만들어내야 되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우리가 관찰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특히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동학이란 주제도 급해요. 동학의 마지막 세대들과의 작업이 필요한데 이젠 워낙 나이 드신 분들이어서…, 시간이 부족해요.”(구본준 기자)

06. 09. 22.

P.S.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며칠 전에도 옮겨다놓은 바 있지만, 사실 그런 위기는 도올과 무관해 보인다. 적어도 그는 대학이나 국가에 자신의 학문을 의탁하거나 의존하지 않았기에. '프로 지식인' 혹은 '프로 저술가'의 곤난에 대해서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가 엄살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쨌거나 우리 현실의 삶과 학문을 '통섭'시키고자 부단히 애쓴, 드문 사례로 기억되어 마땅하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의 자기과시와 튀는 언변이 튀어보이지 않을 만큼 다양한 분야, 다양한 목소리의 '도올들', (그가 애용하는 표현을 가져오자면) '돌대가리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도들이여, 무소의 뿔처럼, 돌대가리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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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9-2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은 창대해도 끝이 미약한 쪽 아닌가요? 1권만 내고 다음권은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하고서는 절대로 다음권이 안나옵니다. 여자, 동양학 등등 대부분에서 그런 실망을 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책을 보다보니 베트남 간 이야기 등은 자기 사적인 잡담도 버젓이 책으로 내더군요. 지나친 종이낭비가 아닐까요?
정치적 참여를 여러차례 시도했는데 노태우에 편지, 노무현 탄핵 반대 최근 새만금 하면서 노무현 욕하기... 아직 입장의 정돈이 덜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시대의 인기작가이지만 해외에 번역될만큼의 한국적인 응축이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로쟈 2006-09-2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에 대한 호오가 분명하게 갈린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좌충우돌형이지요. 하지만 제가 인정하는 건 대중과의 소통/교감 능력입니다. 가령, 동학과 동학사상에 대해서 과연 그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그 의의와 요체를 광고하고 전달한/전달할 수 있는 '학자'가 우리에게 또 있는지 의문입니다. 대신에 우리 주변에 넘치는 건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다가 작전권환수반대에는 또 우국지정으로 서명하는 고고한 학자-교수들이지요...

사마천 2006-09-2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사상은 사회적 결과가 있었냐 그렇지 못했냐로 평가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동학도 실패한 혁명이고 실학도 실패한 개혁시도 정도로만 보고 있습니다. 의욕은 가상했지만 거기서 얻어질 수 있는 결과물은 의외로 작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는 교수가 상아탑에 너무 많다고 하셨는데 그건 백프로 공감합니다. 지식이 자기 현학에 빠질 때 대학 경계 그 안에서만 머물죠.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작전권환수에 찬성했다고 해서 꼭 무조건 훌륭해보이지는 않더군요. 선과 악을 분명히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미 세상은 그렇게 간단히 나누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6-09-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전권환수 문제에 대한 찬반 자체에 대해 제가 문제삼은 건 아니구요(사마천님의 입장은 확실한 '프래그머티즘' 같습니다), 사회적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신 분들이(연구서의 출간도 극도로 자제하는 경우가 많지요) 갑자기 '집단'으로 애국심을 발휘하는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것이지요. 덧붙여서, 모든 혁명은 실패한 혁명을 밑거름으로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했지만 그 흔적은 남으니까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철학이 새로운 사유의 물꼬를 틀듯이...

biosculp 2006-09-2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란 무엇인가 이책은 일본어로 번역되었고요. 일본어 읽지를 못해서 사놓기만 했습니다. 해외활동은 유엔등에 우리 문화사절단이 갈때 설명문을 쓰거나 취화선같은 영화 자막을 맡는 등의 활동은 하나의 한국적인 응축을 담은 문화활동을 봐야하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6-11-0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은 스스로 서양철학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별 볼일 없는 것, 하찮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걸로 봐서 그의 사상을 형성함에 있어 서양철학이 일종의 안티테제의 역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거기까진 좋은데;) 왜 하필 그에 대한 신테제가 김용옥만에 어떤 것이 아니라 다만 동양철학으로서의 '회귀'인지,참 난감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물론 님이 쓰신 것처럼 편협한 전문가주의를 벗고 대중과 호흡하려는 그의 자세는 맘에들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