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읽기에 관한 한국일보의 좌담회를 작업실에 스크랩해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마침 오늘부터 '과학을 읽다'가 연재된다고 하니까 이에 맞춰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한국일보(06. 08. 08) "수학·과학 알면 교양에 날개단 격이죠"

'엔트로피'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자연과학 용어가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철학적 용어로 차용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정작 그 뜻을 이해하는 이들은 드물다. 과학책이라면 손대지 않은 풍토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과학책을 통해 교양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리즈 '과학을 읽다' 연재(8월15일자부터 과학면 게재)를 앞두고 좌담회를 열었다. 우수과학도서를 선정하고 저술을 지원하는 과학문화재단의 나도선 이사장, 인기 과학책 저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과학도서 전문 출판사인 승산의 황승기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과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과학책을 많이 안 읽는 이유가 뭘까요?

나도선 과학문화재단 이사장=과학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을 잘 안 읽는 게 문제입니다.

황승기 승산출판 대표=요즘은 그래도 웬만큼은 팔립니다. '파인만의 QED(양자전기역학) 강의'를 출판할 때 이렇게 어려운 걸 교양서로 냈다니까 언론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는데 1만7,000권이나 나갔죠. 이공계 출신 중 양자전기역학을 어려워했던 이들이 읽는 것 같아요(*의외로 많이 나갔군! 교양물리학 전도사로서 파인만은 가히 '천재적'인데, 그의 책들이 원래부터 많이 나간 건 아니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사이언스북스, 2000) 같은 경우 나는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솔, 1989)로 읽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던 책이었다. 책은 내용으로만 승부하는 게 전혀 아닌 것.)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이공계 출신과 수험생 덕분에 과학책들이 팔리죠. 문제는 번역서에 비해 국내 저술서가 너무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책들이 정작 과학내용이 없고 거의 만화 수준입니다. 쉽게 쓴다고 알맹이는 빼놓고 냄새만 풍긴다면 과학책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저술할 수 있는 분들이 적죠.

나 이사장= 과학에서 성공한 과학자가 대중 과학서를 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해요. 과학자들이 그 쪽으로는 인식을 못하고, 능력을 개발하지 않기도 했죠. 사실 연구자로 성공하려면 다른 데 눈을 못 돌리는데, 원로들이 책 쓰는데 좀더 참여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문화재단은 과학문화총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대중활동을 많이 하는 저는 막말로 '골 빈 과학자'로 꼽힙니다. 연구나 하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물론 연구에 분ㆍ초를 다투는 분야에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분야는 아주 길게 연구하는 분야이니 대중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과학문화 특임교수제를 만들어 대중활동을 업적으로 평가하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또 과학자뿐 아니라 전문 과학 저술가층을 두텁게 해야 합니다. <붉은 여왕>을 쓴 매트 리들리는 기자였지요. 역시 기자인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은 과학자가 쓴 책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학회에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습니다(*나는 두 사람의 책을 모두 갖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과학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황 대표=정말 똑똑하고 경영도 잘 하는 경영자 중에서 가끔 너무 뻔한 것에 속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 보니 수학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 그런 것 같아요. 과학책은 이공계 출신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과학적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과학을 알면 날개를 단 것입니다.

나 이사장=저는 '여성의 과학하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학생들이 과학을 잘 할 수 없다는 선입견 많은데 현대과학은 육체적 노동도 아니고 치밀함과 집념을 갖고 하는 것이기에 여성들 하기에 적합한 분야입니다. 이러한 꿈을 키우기 위해선 과학책을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최 교수=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왜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하느냐"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모리스 윌킨스, 제임스 왓슨, 프란시스 크릭이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화학실력이 달렸던 왓슨은 처음에 좀 웃음거리였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미국 의회에서 휴먼게놈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손을 들어 밀어붙인 것은 왓슨이었습니다. 그가 '이중나선'을 써서 그렇다는 거죠. 이 책은 일반인은 물론 동료 과학자에게도 DNA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책이나, 추천할만한 과학책을 꼽는다면.



 

 

 


나 이사장=특히 학생들은 과학자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가슴에 와 닿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 과학을 만나다>(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편저)는 우리나라 곳곳에 여성 과학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도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최 교수=미국에 '동물의 왕국'을 공부하러 갔는데 밤새 읽고 난 뒤 세상이 다르게 보인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입니다(*최교수의 해제는 언젠가 옮겨놓은 듯하다). <이중나선>은 과학자 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이죠. 특히 내가 정말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회의하는 사람들에게요. 과학이 인문학과 만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데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가 그런 책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여전히 10위 안에 듭니다. 저자의 근저인 <문명의 붕괴>도 꼭 읽어보십시오.

황 대표=책을 출판하느라 어떤 책은 30번 이상 읽는데 그냥 지나쳤던 내용이 새삼 다가옵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를 읽고 발견한 것이, 뉴턴이 자연법칙에 접근하는 방식과 아인슈타인의 방식이 다르고, 위튼(초끈이론의 대가)의 접근 방식이 또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대에 뉴턴 식으로 해선 과학자로서 성공할 수 없어요.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는 고등학생들이 서너번은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제가 학원 수학 강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1명이 읽고 "서울대 논술 준비는 이제 끝났다"고 했답니다.(진행·정리=김희원기자)

06. 08. 08./08. 15.

P.S. 오늘자 한국일보에 처음 연재된 '과학을 읽다'는 역시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김희원 과학전문기자이다.

한국일보(06. 08. 15 )'유전자의 꼭두각시' 인간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진화생물학의 새 지평을 연 이 책의 제목은 사람의 이기적 특성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유전자 자체가 이기적이라는 뜻이다. 이기적인 것은 유전자이고, 인간 개개인은 유전자의 목적을 수행하는 '생존기계'일 뿐이다. 인간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저런 유전자를 진화시키고 이어받은 것뿐만 아니라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를 대대로 유지하기 위해 개체를 이러저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이 말에 당혹감을 느낄 이들도 적지 않을 터이다. "특별한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인류에 봉사하는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조차 모두 '유전자의 명령'이란 말인가?" 또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을 꼭 빼 닮게 행동하는 아이를 보며 이 메시지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때로 복잡한 생물학 연구결과가 등장하지만 핵심적인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렬하다. 생물은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함께 보이지만 모두 유전자의 자기복제라는 목적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기성과 이타성의 단위부터 시작한다. 흔히 하나의 생물 개체가 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자명하다.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침입자에게 침을 쏘는 벌의 행동은 이타적이다. 하지만 벌 집단을 단위로 본다면 벌의 희생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다. 결국 이기적으로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의 단위는 '유전자'이다.  

-벌과 개미의 예를 들어보자. 일벌은 알을 낳지 않고 번식을 여왕에게 맡긴다.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지도 못하면서 일벌은 왜 평생 여왕을 돌보며 일만 하는 것일까? 개개의 일벌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일 같지만 유전자 입장에선 성공 전략이다. 아이 낳기와 키우기를 분업해 효율적으로 번식할 뿐 아니라 일벌들끼리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왕은 결혼비행에서 얻은 정자를 몸 속에 품고, 암컷 즉 일벌을 낳기 위해선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다. 수벌을 원한다면 미수정란을 낳는다. 때문에 암컷 자매 벌들끼리는 유전적 근친도(같은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가 75%로 통상적인 유성생식의 근친도 50%보다 높다. 암수 벌끼리의 근친도는 25%이다. 일벌의 유전자 입장에서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암컷을 여왕벌이 더 많이 낳는 게 유리하다. 실제 생물학자들은 여왕벌이 암수를 낳는 성비가 3대1에 가깝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도킨스는 인류가 형성한 문화적 관습조차 유전적 근거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친가보다 외가의 식구들 즉 큰아버지 보다는 이모, 친할아버지 보다는 외할아버지에게 친밀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자기 핏줄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 계통이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의도와 사고가 있는 주체라고 믿지만 않는다면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은 무수히 많다.  

-도킨스는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도발적인 글쓰기로 1970년대 유전자의 시각에서 본 진화생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홍영남 이화여대 교수가 번역했고 지금까지 5만부가 나간 스테디 셀러다. 을유문화사.(*책은 1976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최근에 출간 3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리처드 도킨스: 한 과학자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와 함께.)


댓글(3) 먼댓글(1)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확장된 도킨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6-21 21:23 
    한국일보(07. 07. 10) [과학을 읽다]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우리 몸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자 학계는 이러한 유전자 중심적 시각에 대해 꽤 비판적이었다.   유전자 결정론, 환원론 등과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도킨스가 1982년 <
 
 
마립간 2006-08-16 14:51   좋아요 0 | URL
글을 퍼갑니다.

gasyyeon 2007-03-19 00:22   좋아요 0 | URL
저도 퍼갑니다.

허리우스 2007-07-11 11: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비평고원에서도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퍼가는데 양해라도 구해야 할 것같아서요. 로쟈님의 글을 애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