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이재현의 '가상 인터뷰'에서 프리모 레비 편을 옮겨온다. 이 연재에서는 이전에 <모크샤>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 편을 옮겨온 기억이 난다. 국내에는 직접적으로 소개된 바 없지만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나 증언자로서 가장 저명한 지식인 작가이다. 나도 사실 그의 책을 실제로 처음 본 건 모스크바의 구내 헌책방에서였는데, 영어본 몇 개가 꽂혀있었던 것. 나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건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최근에 레바논 사태와 관련하여 한번쯤 귀담아볼 만한 '인터뷰'이다.

 

한국일보(06. 08. 08)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했던 유태계 이탈리아인. 자신이 태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투신 자살했다. 토리노에서 태어난 레비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가 최초의 인종차별법을 공포해서 유태인들은 공립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재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졸업증서에는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다. 졸업 후 제약 공장에 다니던 그는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독일의 패전 후 어렵게 복귀해서 도료 공장에 일자리를 구한 레비는 1946년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을 써서 이듬 해 출판한다. 1963년에도 수용소 체험 에세이집 ‘휴전’을 출판하고, 이어서 단편집 ‘자연스러운 이야기’(1967) ‘형식의 결함’(1971) ‘주기율표’(1975) ‘릴리트와 단편들’(1981), 시집 ‘브레마의 선술집’(1975) 및 노동자에 대한 민속지학적 이야기 책 ‘멍키 스패너’(1978), 에세이집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등의 작품을 출간해서 이탈리아 안팎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가 그에게 문신했던 수인 번호 174517는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레비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이에 ‘저항할 책임’을 주장했고, 또 디아스포라(이산)의 국제적 체험에 깃든 관용의 사상적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서경식 선생의 책들에서 프리모 레비는 자주 참조된다. 아우슈비츠의 또다른 생존 체험기로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책들이 있다. 물론 그 수용소장 <헤스의 고백록>도 참조가 되겠다).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이스라엘 국방장관 샤론이 다시 권력에 복귀했을 때에도 애써 낙관적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려고 했던 레비가 끝내 자살을 하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쇼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동으로 소위 ‘역사가 논쟁’이 독일에서 터진 탓이다. 1986년 독일의 우파 역사가들은 학문의 외피를 쓴 채 독일 파시즘의 불가피성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40년에 걸친 자신의 증언에 대해 절망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이러한 절망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함께 아직 현재진행이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남아서 글로 증언하고 했던 정신적 계기는 바로 ‘기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이며 ‘인간은 불행한 경험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무’와 ‘그 경험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 자신이 믿어 왔는데, 그렇게 ‘증인의 의무를 갖고 지옥에서 나왔지만’ 이제 우파 역사가들의 뻔뻔스러운 역사 왜곡 앞에서는 ‘증언자로서 자신의 자격에 대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자살은 당시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재현(이하 현) 레비 선생님, 이스라엘의 광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최근에는 민간인 마을을 폭격해서 수십 명을 학살했습니다. 여기에는 너덧 살 된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3주 넘게 계속된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레바논 측 민간인 사망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난 7월말 현재 난민 숫자는 레바논에서만 68만 명이고 시리아, 요르단, 사이프러스 및 걸프 지역에도 2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프리모 레비(이하 레비) 살해된 민간인 다수는 피난민들이고 사망자 절반 가까이는 아이들이야. 공습으로 죽은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측이 고의적으로 정밀 폭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는 시신을 포함하면 죽은 사람들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게야.

현: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거의 모든 곳을 아우슈비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홀로코스트(대학살) 범죄자라고 하면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 파시스트 도살자들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레바논 침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홀로코스트의 범죄자들로 전락해 버린 셈입니다. 전세계에서 지탄을 하고 고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민간인들을 대낮에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전쟁 범죄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레비: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말이야.

현: 이스라엘은 이번 침공의 발단이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병사 2명의 납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레비: 우선 ‘납치’란 말이 잘못 된 거야. ‘납치’란 말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의 표현인 거고.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1982년 창설된 이래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니까 이스라엘 병사들은 엄연히 전쟁 포로인 거지(*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침공 자체는 정당화되는 것인가? 민간인 학살만이 문제될 뿐?). 그리고 원래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PRC)의 지도자 아부 삼하다나 등 4명을 살해하고, 가자 지구 북부 해안을 폭격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7명이 사망하고 30명 넘게 부상하게 된 사건이 발단이라네. 그 사건 이후 하마스는 2005년 2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에 성립된 휴전의 무효를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전투를 하기 시작한 걸세. 헤즈볼라 측의 공세는 이 전투의 연장인 거야.

현: 헤즈볼라는 뭐고 하마스는 뭔가요?

레비: 헤즈볼라는 ‘신의 당’이란 뜻을 가진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창설되었고, 1992년에 처음 의회에 진출해서 현재 전체 128석의 의회에서 14석을 차지한 합법 정당을 갖고 있기도 해. 물론 산하에는 무장 조직도 있고, 평소에 의료와 교육 등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란 뜻의 팔레스타인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7년의 제 1차 인디파타(봉기) 때 ‘무슬림 형제당’의 가자 지구 조직으로 출발했어. 2004년 3월에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고, 올해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해서 팔레스타인 의회의 다수당이 되었지. 하마스가 집권하자마자 미국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어 버렸지.

현: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군요. ‘무슬림 형제당’은 1928년과 1929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최초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조직이고,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이란에서의 시아파 집권이지요. 그러니까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단지 이슬람 율법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창설을 통해서 이슬람화를 정치적으로 성취하려는 이념을 갖고 있는 거네요. 그들의 무장 투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침탈과 지배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인 거고요.

레비: 국민 국가마다 세부적인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그런 거지. 그런데 문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파 강경 집단이야. 1995년에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1993년에 팔레스타인 측과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의 극우파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지. 또 올 3월에는 이스라엘 총선에서 카디마 당이 승리를 했는데 이 카디마 당은 강경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 당수로서 총리가 된 샤론이 작년에 새롭게 출범시킨 정당이야.

현: 샤론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다음,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난민촌을 공격해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있지요?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도살자’라고 불리기도 했구요.

레비: 그런 샤론이 총리 취임 후에는 독자적인 제안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작년 9월에 38년 간 점령했던 가자 지구를 포기했다네. 그 제안이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점령지는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그 대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쪽에 돌려준다는 내용이지.

현: 그런데 헤즈볼라나 하마스는 이 제안을 인정하지 않는 거네요. 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1948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제안은 애당초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레비: 이러한 학살과 증오와 광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 잠정적인 정치 협상 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참다운 평화가 만들어질 수가 없어. 게다가 아랍 내 일부 친미 권위주의 국가들의 집권층은 팔레스타인에 자치와 연대에 기초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속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어.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현재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때문에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지.

현: 그럼 이번 레바논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또 어떻게 힘을 보태야 하나요?

레비: 나라고 해서 해답이 있는 건 아냐. 다만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26곡의 오딧세이 부분에서의 인용문을 들려주고 싶네. “너희들은 짐승 같은 야만적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도록 내게 힘을 주었던 구절이라네.



현: 어쨌든 일단 즉각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져서 레바논 사람들이 한숨을 돌렸으면 좋겠네요. 협상은 그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요.(문화비평가 이재현) *프리모 레비에 대한 서경식 선생의 책이 이후에 출간됐다.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가 그것이다.


 

 

 

 

06. 08. 08

P.S. 이어서 헤즈볼라측 의견을 들어본다. 한겨레의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씨가 헤즈볼라의 창설주역이자 레바논의 국회부의장 하스 하산을 만나서 들어본 이야기이다. 그는 "군인 둘 때문에 전쟁 일으키는 이스라엘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모든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한다.  

 

 

 

 

한겨레21(06. 08. 03) 조건 없는 휴전, 협상은 그 다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란 참 실없는 짓이구나. 늘 현실과 동떨어진 딴 세상에서 놀고 있다.” 뭐, 이런 비관적인 건데, 멋지게 꾸며놓은 레바논 의회- 사실은 세상 모든 의회- 앞마당에 설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7월25일, 504호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헤즈볼라당 의원이며 레바논 국회부의장인 하스 하산 후세인(Dr. Has Hassan Houssein). 그는 1982년 헤즈볼라를 창설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현재 14개 의석을 지닌 헤즈볼라당 출신으로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나스랄라를 정치적으로 보좌하는 인물이다.

-어제 헤즈볼라 쪽에서 휴전을 제의했는데.

=야만적인 이스라엘의 공격을 보라. 수많은 시민을 살해하고, 레바논 사회를 파괴시키고…. 이스라엘이 공습한 베이루트 남부 지역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민간인 거주지일 뿐이다.

-그런 거 말고, 휴전 이야기부터 좀 해보자.

=그래서 휴전하자는 거다. 조건 없는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왜 지금 와서 휴전하자는 건가? 처음부터 개전을 말았어야지.

=이건 우리(레바논) 전쟁이 아니다. 그이들(이스라엘)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무조건 휴전’을 내걸었는데, 그 다음은?

=휴전부터 하고 협상해나가면 된다. 포로 교환을 포함해서 모든 사안을 하나씩.

-이상적이긴 한데, 이스라엘이 들어줄 것 같은가? 휴전협상도 흥정인데.

=그러니 조건 없이 휴전부터 하자는 거다. 서로 조건 내걸면 휴전하기 어려우니.

-무조건이란 것도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거리’를 주는 거 아니겠나? 예컨대, 헤즈볼라가 납치한 군인 두 명의 석방을 넌지시 보장한다든가.

=그건 무조건이 아니지. 우린 완벽하게 조건 없는 휴전을 제의한 상태다. 그런 건 휴전 뒤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먼저 휴전해서 시민 희생부터 줄이자는 게 우리 뜻이다.

-형식상 이스라엘은 납치당한 군인 둘을 빌미로 공격을 시작했는데, 명분 없이 휴전을 하겠나?

= (말 자르고 흥분하며) 군인 둘 납치와 전쟁은 다른 사안이다. 전쟁을 그렇게 쉽게 벌이나?

-그럼, 헤즈볼라는 군인 둘을 납치할 때 이스라엘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 못했다는 건가?

=세상이 모두 이스라엘을 예상할 수 있다. 레바논을 파괴시키겠다는 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이걸 ‘새로운 중동’의 시작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럼, 예상했으면서 왜 이스라엘에 말려들었는가.

=(얼굴을 돌려버리며) 이런 유의 대화라면 그만두자.

-내 뜻은 헤즈볼라가 영리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스라엘에 전쟁의 빌미를 줬잖은가.

=군인 둘을 납치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이스라엘에 아무 상관이 없다. 군인 둘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시민을 마구 죽일 수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나?

=(좀 누그러지면서 겸연쩍은 듯 크게 웃고) 내가 당신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그렇다는 거다.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니 국제사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둘을 납치할 땐 전쟁을 예상했겠지? 나스랄라가 올해 두 번씩이나 이스라엘에 감금된 헤즈볼라 석방을 공언했고, 이번 작전명도 ‘진실한 약속’이 아니던가.

=그게 어떻게 전쟁이 되어야 하나? 그러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일 권리가 있다는 건가? 이렇게 시민을 살해할 권리가 있다는 건가? 힘 있는 자는 아무나 죽여도 된다는 건가?

-그러면 계획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으니 이번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에 놀랐겠네?

=왜 놀라나? 이스라엘은 늘 그런 식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이스라엘의 공격이 아니라 그런 이스라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다.

-이번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나?

= 이스라엘이고 미국이겠지. 잃는 쪽은 레바논과 아랍 전체고(*이건 사실과 다르다. 8월 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4주째 이스라엘의 공세에 맞서고 있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46)가 ‘아랍세계의 새로운 상징’,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아랍인들은 나스랄라를 ‘약속을 지키는 인물’ ‘정치·군사적 능력을 겸비한 아랍지도자’로 평가한다. 60년 베이루트 동부 빈민가에서 야채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나스랄라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92년 전임자가 이스라엘 로켓에 암살되자 사무총장에 선출돼 헤즈볼라를 레바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으로 키워냈다." 그러니까 이번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축에는 헤즈볼라도 포함되는 것.) 

-그럼, 헤즈볼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건가? 뭐 때문에 싸우나?

=물리적으로야 헤즈볼라도 타격을 입겠지만, 우린 정신적인 것들로 계산한다. 우린 잃을수록 더 강해진다. 헤즈볼라는 이 전쟁으로 더 강해질 거고, 이스라엘은 결국 패하게 된다.

-헤즈볼라가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텐데, 장기전에 돌입한다면 버텨낼 수 있겠나?

=어리석은 질문이다. 헤즈볼라의 역사를 봐라. 아랍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친 유일한 조직이다.

-레바논이 다시 내전에 빠질 가능성은 없겠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 총리를 포함해 의회까지 모두 하나다. 내전은 없다. 적은 하나다. 이스라엘뿐이다.

-동료 의원이 그의 방으로 찾아와서 자리를 털었다. “빨리 휴전하고 복구해야 할 텐데….” 인사랍시고 던졌지만, 공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정치는 현실과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그이 말이 모두 옳을지언정, 이 시간에도 수많은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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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08 18:38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가 계단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서경식의 책에선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묘사)
그의 책엔 펠릭스 누스바움과 프리모 레비가 단골로 출연하지요.
지금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를 읽고 있는데
재일조선인과 팔레스타인, 아우슈비츠 모두 공통점이 있음에 씁쓸하군요.
날이 겁나게 더워서 컴 켜고 당최 뭘 끄적거리는 일이 끔찍하군요.
읽는 즐거움만 배가시키고 있답니다. 퍼갑니다.

로쟈 2006-08-08 18:53   좋아요 0 | URL
조르지오 아감벤이란 이탈리아 철학자의 아우슈비츠 3부작이 있는데, 이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입니다. <호모 사케르> 같은 건 근간으로 돼 있는데도 빨리 안 나오네요. <난민과 국민 사이>는 저도 벼르고 있는 책인데, (맨날 하는 소리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군요(--;)...

오드라데끄 2006-12-02 20:31   좋아요 0 | URL
이재현 씨 저 가상 인터뷰 보고 불쾌했어요. 레비 책을 하나도 안 읽고 그냥 레비가 레바논 침공과 독일의 역사가 논쟁에 영향을 받아 자살했다는 서경식 이야기 한 마디만 듣고 썼더군요.(서경식은 아주 조심스럽게 내리는 추론인데 그걸 거칠게 가져다 써놓고 마치 자기 이야기인 척하는 것도 불쾌하고요) 레비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피상적인 대사들을 그것도 그의 글쓰기의 핵심인 세밀한 묘사, 위트, 겸손한 어조, 고도의 상징 등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무슨 고리타분한 랍비처럼 보이게 만들다니...... 레비의 팬으로서 너무나 너무나 불쾌합니다. 아니 신문 한면 통째로 글 쓰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게다가 레비는 자신은 목격자, 증언자로서의 역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아주 치밀하게 말하고 싶다고 했지요. 아 예전에 신문에서 보고도 분개했었는데, 다시 한번 분그 불쾌감이 고스란히 떠오르는군요. 아뭏튼 정말 정말 맘에 안 들어요. 이 사람. 왜 우리 신문에는 이렇게 자기가 모르는 걸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아는 척하는 글들이 많은 걸까요. 아우 승질나.

로쟈 2006-12-03 01:14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프리모 레비의 책들이 한권도 소개되지 않은 터라 '소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옮겨왔는데, 오해의 소지도 있다면 참조하겠습니다. 제대로 소개된다면 '아는 척하는 글들'이 알아서 꼬리를 내리겠지요...

오드라데끄 2006-12-16 17:37   좋아요 0 | URL
헉, 제가 너무 흥분해서 글을 옮기신 로쟈님이 불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이런 자료들을 링크 걸어주시는 건 너무너무 도움이 됩니다. 위의 책 모음도 그렇고요. 그리고 제 마지막 문장에 방점은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였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저도 로쟈 님 리뷰나 페이퍼들을 아주 유용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랍니다. 님 말씀대로 제대로 소개가 되면 오해의 여지도 줄어들겠지요... 제대로 소개다 되어야 할 텐데... ㅠㅠ (관련자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로쟈 2006-12-17 01:2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관련자'분들의 의견들이 더 많이 나와야지요.^^ 듣기에 내년엔 레비의 책들이 두어 권 나올 거 같더군요. 얼마간 해갈이 될 걸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