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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평점 :
최근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부제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인데, 그 부제를 보는 순간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고 안 쓰고 넘어간 수백 권의 주옥 같은 책 중에 한 권이 번쩍 떠올랐다.
바로 이 책,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알라딘에서 다시 검색해보니 판매지수가 무려 410.ㅠㅠ
귀차니즘의 신봉자이자 실천가인 내가 발끈, 리뷰 쓰기 버튼을 누를 정도로 심각한 수치다.(이대로 놔두면 얼마 안 가 곧 절판될지도 모른다... 물론 리뷰 몇 개 더 올라온다고 판매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책 만드는 일이 직업이기도 하고, 또 원래 책에 대해서 수다 떠는 걸 환장할 만큼 좋아해서,책에 관한 책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또 그런 책들은 대부분 재미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서재 결혼 시키기>, <채링크로스 84번지>, <(제임스 미치너의)소설>,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와 더불어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소설>은 책보다 하위범주인 소설에 관한 책이니 빼도 된다면 그 자리에 <소년의 눈물>을 넣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들이 줄줄이 소개되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식하던 시절, 나는 이 책을 선물받았다. 그러고는 몇 년을 묵혀두었다가 우연히 작년 가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마치 시집을 읽듯이, 밤마다 잠자리에서 아껴가며 읽었다.(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나는 책 뒤에 책을 읽은 날짜를 적기 시작했는데, 이 책 뒤에는 "2007년 9월 11일~9월 16일 틈틈이, 천천히, 완독"이라고 씌어 있다.)
책 내용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은 스포일러를 남발하는 일이 될 테니, 핵심만 적겠다.
저자(야마무라 오사무)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책읽기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다독파들의 주장이 의아할 뿐이다. 도대체 책을 왜 그렇게 많이 빨리 읽어 치워버려야 하지? 다치바나 다카시는 '정보의 홍수'를 이야기하지만, 왜 직업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는 서평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그런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하지? 이건 정말, 전 국민이 '오렌지'를 '어륀쥐'로 발음해야 한다는 식의 개념 없고 몰상식한 강박관념이 아닌가?
야마무라 선생에 따르면, 책을 읽을 때에는 그 문장의 리듬에 몸을 맞춰 읽는 것이 좋다. 생활 활 자체가, 삶 전체가 적절한 리듬으로 흘러간다면 가장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시의 리듬, 업무의 리듬, 생계의 리듬은 너무 벅차고 빠르다. 날이 갈수록 세계의 리듬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런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까지 헉헉거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책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바이올린 사는 장면 등 주옥 같은 장면들이 인용되어 있어 읽는 맛을 더하는데, 특히 저자가 책 읽는 리듬을 되찾기 위해 준비운동으로 제안하는 다음 시구(?)는 너무너무 재미나다.
어찌 이런 시련을 당한단 말이냐
우리 고향에 일곱 동이, 세 동이 담가놓은 술항아리에 띄워놓은 호리병박 국자,
남풍 불면 북쪽으로 너울거리고
북풍 불면 남쪽으로 너울거리고
서풍 불면 동쪽으로 너울거리고
동풍 불면 서쪽으로 너울거리는데 보지도 못하고
여기 이렇게 있을 줄이야
시골의 어느 남자가 도읍으로 끌려가 궁중 경비 초소에서 일하게 되자, 경비를 서면서 읊은 말이란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란히 선 술독 위에서 호리병박 국자가 줄을 맞춰서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북쪽으로 또 남쪽으로 덩실덩실 하는 모습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덩실덩실 하는 리듬을 좇다 보면 풍요로운 시간의 리듬이 느껴지고 동시에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서 군역을 치르는 화자의 처량맞은 신세가 마치 내 신세인 양 느껴진다.
"여러 개나 되는 국자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서 느긋하고 평온한 인상이 빚어지는데 단 하나의 국자밖에 떠올리지 못했다먼 '기준'을 넘어 너무 빨리 읽은 것이다. 눈이 글자를 좇아가다 보면 그에 따라 정경이 나타난다. 눈의 활동이나 이해력의 활동이 다 갖추어진다. 그때는 아마 호흡도 심장 박동도 아주 좋을 것이다. 그것이 읽는다는 것이다. 기분 좋게 읽는 리듬을 타고 있을 때, 그 읽기는 사람 읽는 사람 심신의 리듬이나 행복감과 호응한다. 독서란 책과 심신의 조화이다."
이 부분을 읽은 뒤부터 나 역시, 뭔가 책을 앞에 두고도 마음이 산란해서 집중이 안 되고 리듬을 못 찾겠을 때마다 이 구절을 중얼거린다. "우리 고향에 일곱 동이, 세 동이 담가놓은 술항아리에 띄워놓은 호리병박 국자, 남풍 불면 북쪽으로 너울거리고, 북풍 면 남쪽으로 너울거리고..."
물론 저자가 이렇게 도 닦는 듯한 책읽기만 역설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맨날 이렇게 건강하고 느긋하게만 살란 말이야? 그렇게 팔자가 좋아? 너무 늙은이 같은 말 아냐?' 라는 삐딱한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올 찰라, 절묘한 타이밍에, '과식의 즐거움, 허풍의 재미'를 통해 '탐독'의 기쁨까지도 이야기한다. 가끔은 과식도 하고 사는 거지......
* 송태욱 선생님이 정말 번역을 잘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 책은 삼인에서 나오는 책이 들 그렇듯 아주 소박하고 깔끔하다. 서점에서 눈에 확 띌 리는 절대 없지만, 두고두고 볼수록 책 내용과 어울린다 감탄하게 된다.
*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느린 시간'에 대한 편견도 깨뜨릴 수 있었다. 낯설고 다르고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는데(그렇다, 나는 일본 문화에 대한 엄청난 편견과 반감을 갖고 있다. 반일감정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다. 가령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들, 하이쿠가 포착하는 그 정지된 순간들, 이건 곧 생활에 대한 그들의 감각이구나... 난해할 것 하나 없는 구체적인 생명의 활동에 대한......
* 이 책을 읽고 생활의 리듬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전속력으로 달릴 때 꽤 잔혹하게 명확하게 느껴지는 시간의 리듬, 잠들락 말락 하면서 꼬리를 파닥 파닥, 눈을 가물가물 거리는 우리 고양이를 관찰할 때 느껴지는 시간의 리듬......
* 사실 책읽기에 대한 태도는 나로서는 딱히 바뀔 것 없이 이미 확고하게 정리되어 있다. 빨리 읽든 늦게 읽는 속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집중해서 읽으면 된다는 것.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는 독서는 결국 온전히 내 것이 안 된다는 것. 즐겁기 위해 읽는 책과 공부하기 위해 읽는 책은 다르다는 것. 그 두 가지 행위는 밥을 먹는 것과 술 마시러 가는 것만큼이나 다르다는 것. 또 하나, 책에 집중하는 것과 책에서 자극받아 내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은 둘 다 중요하지만 상보적이지는 않다는 것,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