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책을 내가 사서 읽는 일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없지는 않다(지금은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지만 이 분야의 책도 30여권은 될 듯하다). 다만 최근 몇 년간 경제/경영 관련서를 구입한 기억이 없다(하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으니!). 물론 바타이유식의 '일반경제'라면 사정은 달라지고 나는 그쪽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관심이 제한되어 있는 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 곧 '제한경제'일 따름이다. 그걸 나는 다리 '속좁은 경제'라고 부르고도 싶다. 북리뷰들을 훑어보다가 '가장 쉬운 경제학 입문서'라 이름붙일 만한 책의 리뷰가 눈에 띄길래 옮겨온다. 얼마전 출간된 <일상의 경제학>(더난출판사, 2006)에 대한 리뷰인데 문화일보 김종락 기자의 것이다.

문화일보(06. 07. 07) 인생이 무엇이냐고? 경제학을 읽어라!

-일부다처제는 남성에게 천국인가, 지옥인가. 혼잡한 고속도로에서 잘 빠지는 옆 차선으로 옮길 때마다 왜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가.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인가, 그 반대인가. 스커트 길이와 경기의 상관관계야 경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회자되지만, 여타의 질문들은 경제학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특히 일부다처제 같은 주제는 효율을 제1원리로 하는 경제학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여겨질 만하다. 그럼에도 <일상의 경제학>은 경제학이야말로, 이런 문제에 가장 훌륭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거의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경제학적 상황에 놓여 있고, 경제학적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FAZ)’의 경제전문 에디터인 저자 하노 벡 박사는 경제학이 각종 도표와 수식으로 가득한 골치 아픈 학문이며,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책을 시작한다. 경제학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만 기계적으로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보다 근저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심리학이라는 것이다(*이건 경제학의 확장인가, 자포자기인가?). 현대인의 매 순간이 경제학적 활동의 연속으로, 남녀 간의 연애에서 밀고 당기기를 할 때조차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쯤에서 책에 기대 앞의 문제를 풀어보자. 일부 남성들이 꿈처럼 이야기하는 일부다처제.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대1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능력있고 잘 생긴 일부 남성들이 여러 여성들을 차지할 경우 나타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평범한 남성들은 일부 빼어난 남성들로 인해 확 줄어든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나마 차지하기 위해 쟁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예전에 일본인 저자가 쓴 <결혼경제학>이란 책도 출간됐었다. 그걸 읽었다고 해서 내가 도움을 받은 바는 하나도 없지만).

-여성을 두고 쟁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뼈 빠지게 돈은 벌어주되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가능하고, 설거지며 빨래, 청소, 육아를 도맡아 하겠다는 전략도 가능하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여성을 얻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 시장에 남성은 여전히 넘치기 때문이다. 여성의 요구가 보다 다양해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예상과는 다른 남성의 지옥이다.

-혼잡한 도로나 할인마트의 줄에서 머피의 작용이 작용하는 것도, 경제학에서 다루는 인간의 욕구와 관련돼 있다. 도로에서 한쪽 차선이 잘 빠지면, 필연적으로 차선을 옮겨 타는 차량이 생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는 것이다. 우르르 차선을 바꾸다 보니 잘 빠지던 차선이 정체되는 반면, 좀 전의 차선은 멀쩡하게 빠진다.

-그래서 옮겨 타면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도로의 차선이나 할인마트의 줄 같은 것이야 조정이 빨리 이뤄지지만, 조정 사이클이 긴 농산물이나 직업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고추 파동이며 돼지 파동이 일어나고, 한때 대접깨나 받던 직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은 미니스커트의 길이와 경제의 상관관계도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여성들이 짧은 스커트를 입을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뭔가를 감행하고 싶을 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바로 경기가 호황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같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여성들의 패션이 화려하고 실험적이라면 경제상황 또한 낙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이 경제학으로 설명하는 일상은 이뿐 아니다. 왜 청바지는 직장의 유니폼이 될 수 없는가, 영화에서 여자 친구를 인질로 잡은 갱의 위협에 굴복해 총을 내려놓는 것은 왜 현실적이지 못한가, 농업보조금이 반경제적인 이유는, 내기는 도박인가 게임인가….

-경제학자인 저자가 이런 문제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학이 인간의 욕망해소, 선택과 집중, 계산과 저울질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책이 주제별로 배치해 솜씨좋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가격의 탄력성,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등 경제학의 주요 개념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난해한 개념이나 복잡한 수식을 늘어놓는 경제학 전문 서적이나, 전체 경제에 대한 조망없이 말초적으로 돈버는 기술만 전수하는 재테크서와 구별된다. 더불어 일상에 녹아든 경제학의 논리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전한다.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글만 읽어도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책, 편집자들은 여기에 그림과 만화까지 덧붙여 더러 미소까지 머금으며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언젠가 전공서로서 가령 <맨큐의 경제학> 같은 책을 그 '명성' 때문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984쪽짜리 경제학서를 읽는 게 과연 내게 '경제적인' 일인지 끝내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남들 경제학개론 들을 때 나는 문학개론이나 듣지 않았던가?). 259쪽짜리 <일상의 경제학>이라면 사정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괴짜경제학>이나 <경제학 콘서트> 같은 책들도 취지는 유사하다). 하지만, 가장 '경제적인' 일은 이런 잡스러운 관심들을 잡아매고 팔릴 만한(?) 책을 한권 쓰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06.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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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7-12 23:18   좋아요 0 | URL
경제학원론정도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의 경제학>이라던가 <쾌도난마 한국경제>등과 같은 책을 읽는다는건 영문법을 공부하지 않고 영문독해를 하려는 시도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맨큐의 경제학>이나 <경제학원론>같은 책을 한번 통독해보는 것은 그다지 품을 많이 팔지 않는 일입니다. 제가보기에는 그런 초급 경제학전공서을 읽는 것이 본격적인 철학책 한권 읽는 것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로쟈 2006-07-13 00:11   좋아요 0 | URL
일반경제 얘기도 꺼냈지만, 제가 '공학적' 경제학(센이 그렇게 부르더군요)에 대해 갖는 불만은 경제에 작용하는 경제 '외적' 변수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이진경식 표현을 쓰자면, '경제학의 외부'를 경제학은 다룰 수 있느냐는 것. 더불어, 그것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게 왜 '외부'냐는 것). 넓게 보아 '계량적/계산적 합리성'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건지(경제학 개론을 듣던 친구는 시험공부한다고 얼심히 계산문제 풀더군요). 더불어, 기본은 고등학교때 다 배웠다는 '자만'도 있는 거죠(부동산과 주식 투자만 빼고)...

yoonta 2006-07-13 00:39   좋아요 0 | URL
님이 말씀하시는 "일반경제" 혹은 이진경의 "경제학의 외부"와 <경제학원론>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르죠. 원론에서는 그런 경제 외적 변수는 고려치 않고 즉 다른 변수들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죠. 그건 어떻게 보면 다른 여타 과학과목과 비슷한 연구방식이죠. 그런 극히 제한되고 공학적이고 조작적인 논리전개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수도 있고 (특히 물리학이나 화학같은 순수과학분야에서는) 경제학과 같은 "일반경제" 혹은 "경제학의 외부"와 같은 외생적 변수들이 내생적 변수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 분야에서는 그러한 인위적 제한은 그 경제학이라고 하는 학문자체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회의로서 제기될만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똑같은 경제학이라고하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양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맑스주의 경제학과 주류경제학의 모습이 그런 문제점들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죠. 어쨋든 맑스의 자본론과 같은 "(주류)경제학의 외부 "와 경제학의 내부를 구분하려면 적어도 그 내부가 무엇인지 정도는 대충 알아볼 필요는 있단 거죠..^^ 공무원시험이나 고시공부할것 아니면 한 두번정도 읽고 이해하는 수준정도만 봐주면 일반경제와 주류경제학전반을 어느정도 조망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겁니다..^^

로쟈 2006-07-13 00:42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의 주제이기도 한데, 경제면의 기사를 읽는 데 장애가 없다면 그럴 만한 '투자'의 필요성을 제가 갖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얘기지요.^^

yoonta 2006-07-13 00:45   좋아요 0 | URL
근데 경제면의 기사를 읽는데 장애가 옵니다..솔직히..경제학원론을 잘 모르면..-_-
가령 왜 최근들어 GNP를 사용하지 않고 GDP를 사용하느냐하는 것등의 이유는 원론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죠..

로쟈 2006-07-13 00:52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컴퓨터에 대해서도, 자동차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오히려 실생활에서는 그런 '무지' 때문에 불편하거나 타박을 받곤 합니다. 혹은 부동산 시세에 대한 무지. 요컨대, 모든 공부는 유용하지만 인생은 짧고 벌이는 항상 모자라는지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瑚璉 2006-07-13 11:54   좋아요 0 | URL
경제 원론을 읽는 것은 1) 이른바 '경제학적 마인드'를 접할 수 있고, 2) 경제학의 큰 틀을 조감할 수 있다라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경제쪽이 전공은 아니지만 '맨큐의 경제학'은 한 번 읽어보았는데 확실히 그 정도 노력을 할만한 가치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6-07-14 14:45   좋아요 0 | URL
'원론'적인 문제로 되돌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