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에서 올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을 다룬 리뷰 기사를 옮겨온다. 필자는 경향신문의 김중식 기자이며 타이틀은 "박주영, 책세상에 칩거하는 ‘프리터族’ 그려"이다. 너무 기사틱한 제목이어서 '자발적 백수의 윤리학'이라고 고쳐단다. 보아하니, 백수는 2000년대 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인물군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책을 소유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그것을 쓰는 것이라고 발터 벤야민은 썼다. 나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소설에는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것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었다. 쓰면서도 읽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읽는 것보다 쓰는 것에는 더 많은 자유가 있었고, 나는 그 자유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경향신문(06. 06. 29) 올해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탄 박주영씨(35)는 취미·놀이가 자연스럽게 직업·일로 연결된 행복한 사람이다. 수상작인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민음사) 역시 “가장 겸손한 독자를 치밀한 소설가로 탈바꿈시킨다”(심사위원 김화영)는 말마따나 오직 책을 읽는 것만이 삶의 이유이자 목표인 ‘나’(서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일종의 프리터족(자유롭게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만큼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인데 때때로 일 하러 나가는 유일한 이유는 책값을 벌기 위해서다.

 

 

 

 

-박씨는 “독서 자체가 정체성인 주인공의 삶과 나의 실제 생활은 70~80%쯤 비슷하다”면서 “올들어 60권쯤 읽었고 대학원(정치외교학) 졸업 직후인 1997~99년에는 연평균 300권쯤 읽었다”고 말했다(*백수는 백수가 안다). 작품의 구조는 노래가사와 드라마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그것과 비슷하다. 서사와 국내외 현대소설의 인용문이 돌쩌귀의 암짝·수짝처럼 문설주와 문짝을 사이좋게 열고 닫는 것 같은 모양새다. 작가는 “딱 맞는 인용문이 떠오르지 않을 땐 일단 공란으로 비워두고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나중에 인용문을 찾아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나’는 책을 읽거나, 읽을 책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 절판된 책을 갖고 싶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그 책을 팔겠다는 한 남자와 ‘오프라인’에서 접선한다. 실연한 남자는 옛사랑이 남긴 책을 팔아치움으로써 연인을 잊어버리겠다는 복수극에 ‘나’를 끌어들인다(*왠지 장정일의 <아담의 눈뜰 때>를 떠올리게 한다. 21세기 버전?).

-이 작품이 문제적인 이유는 두 가지 대목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밀폐적·자족적·자발적 백수들의 존재론을 묘사했다는 것과 경제적 어려움을 모른 채 자란 젊은이가 커서도 캥거루족처럼 부모에게 의지해 살면서도 ‘스스로 컸다’고 뻗대는 새로운 윤리학이 그것이다.

-식당 주인인 아버지는 돈을 잘 버는데도 돈 쓸 시간이 없을 만큼 일만 한다. 반면 “책을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싫다”는 ‘나’는 아버지가 저당잡힌 ‘시간’마저 책읽기에 쓴다. 사글세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아버지에게 얹혀사는 형국이다.

-작가는 “두 세대간에는 노동에 대한 개념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면서 “프리터족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삶의 방식 또한 자신만의 유토피아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나’의 친구 유희와 채린 역시 사회적 관계와 의무를 팽개치고 소설쓰기와 로맨스(불륜)에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것이다.

06. 06. 29.

P.S.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미현 교수는 이렇게 평한다: "그 자체로 불후의 도서관인 소설, 그 옆에 영화관이 있는 소설, 그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있기에 이 소설은 21세기적 유토피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의 나비가 책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 가능한 일상으로 느끼게 할 정도로 이 소설은 환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반성하고 자학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고 만족하는 주인공을 이제 우리 한국 소설에서도 갖게 되었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마지막 문장의 멘트는 '추상적'이다. '스스로 컸다'고 생각하는 백수들의 윤리학을 이 소설이 건드리고 있다면 말이다...

P.S.2. 자료를 옮겨오는 김에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의 소개기사도 옮겨오도록 한다.

문화일보(06. 06. 29) 책읽는 여자, ‘백수 유토피아’를 꿈꾸다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는 걸 공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책 읽기는 공부라는 성실하고 고리타분한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내 책 읽기는 처음부터 놀이였을 뿐이다. 내가 설사 아주 어려운 학술 책을 읽고 있다고 해도 그것 역시 놀이일 뿐이다.놀이가 꼭 쉬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아주 지능적이어야 하고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 바둑이나 장기, 체스를 놀이로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백수생활백서>의 주인공 서연의 독백.


-현존하는 한국 최고 독서가는 누구일까.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서 감옥생활이 괜찮았다고 회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일까, 수만권의 장서를 갖고 무불통지(無不通知)의 혜안을 과시하는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일까, 아니면 중학 중퇴 학력으로 오로지 책 읽기와 글 쓰기를 통해 대학교수로 입신한 소설가 장정일씨일까.

-여기 이들 못지 않게 책 읽기를 즐기는 28세의 여성이 있다. 이 미혼 여성은 1년에 최소 300권에서 700권 정도의 책을 읽어야 살맛이 난다. 지난 10년간 대략 5000권 정도의 책을 비타민처럼 씹어재꼈다. 사람들이 책을 하도 읽지 않아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단체까지 생긴 인터넷 시대에 책 읽기를 통해 자족의 삶을 추구하는 희귀종인 이 여성은, 그러나 실존인물은 아니다.

-올해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박주영(35)씨의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민음사 발행)에 나오는 주인공 서연의 이야기다. 서연은 21세기에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일하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으며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서연은 책 읽을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 직업을 얻지 않은 자발적 ‘백수’입니다. 오로지 책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유소나 친구 비디오가게에서 잠깐씩만 아르바이트를 하지요.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캐릭터에 작가인 제 모습이 골고루 투영돼 있습니다.”

-27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에서 만난 작가 박씨는 책 읽기와 글 쓰기에만 능한 듯 어눌하기 짝이 없었다. 2005년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작가 생활을 해 왔으나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 너무 떨린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경쾌하게 읽히는 그의 소설과는 달리 대화는 띄엄띄엄 느리게 진행됐다.

-부산에서 대학·대학원을 나온 그는 사회과학 전공 논문을 준비하며 책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졌고, 이후 소설 쓰기에도 눈을 떴다고 했다. 그는 보통 신인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오늘의 작가상에 투고하며 수상의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제 소설이 빠르게 잘 읽힌다는 반응은 예상 밖이에요. 수많은 책들을 인용했는데…. ”

-그의 소설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파트리크 모디아노, 폴 오스터, 레몽 장, 구효서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췌한 구절들이 구석구석에 배치돼 있다. 철학, 사회과학 저서들도 꽤 인용돼 있다. 이것들이 현학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주인공 서연이 책 읽기를 지식을 확장하기 위한 학습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몰입에의 놀이로 즐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을 뿐이다. 막연하긴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은 적어도 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로써 주인공 서연이 책 속에서 발견한 빛나는 구절은 독자들에게도 삶의 이면을 알아가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책 읽기의 체험에만 의지했으면 이 소설이 수많은 ‘독서일기’와 비슷해졌을 것이다. 아내와 사별한 후 식당업으로 홀로 딸을 키우는,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아버지, 서연의 고교동창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는 ‘유희’,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사랑에 빠진 친구 ‘채린’ 등이 주인공과 엮어내는 희로애락은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특히 서연이 절판된 책들을 구하기 위해 만나게 된 ‘남자’의 실연 복수극에 동참하는 이야기는 주말 드라마의 한 대목처럼 박진감이 있다.서연과 남자가 책을 주제로 한 대화 틈틈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는 것은 이 시대의 문화코드가 영상 쪽으로 기운 것을 어쩔 수 없이 반영하고 있다. “저는 영화의 대본과 같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소설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재미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이미 장편소설 하나를 써서 퇴고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서른 살이 되어가는 여자들의 성장이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는 이후엔 탐정소설류를 쓰고 싶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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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6-29 09:12   좋아요 0 | URL
제가 옛날 사람이 되어 버렸나봐요.글을 읽다보니 순간 그런 생각도 듭니다.돈벌이 만이 최고의 가치로 규정되어 버린 개발독재 세대의 가치가 진저리처집니다.그러나 또한 노동을 통한 가치의 실현을 도외시하고 노동의 의미를 극도로 개인화,파편화 시켜 버린 프리터나 일명 백수족들의 윤리가 과연 옳바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물론 백수가 늘어나는 것이 그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만.....책을 위해 백수가 된다는 것은 무언가 가치 전도라는 생각이 듭니다.아무래도 저도 이제 늙나보네요.켕

로쟈 2006-06-29 09:38   좋아요 0 | URL
백수족들의 '윤리'에 대해서 이견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한 가지 '가능한' 선택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비노동만큼 반국가적, 반자본적인 것도 없을 테니까요. 자멸적인 것이긴 하나...

기인 2006-06-29 09:57   좋아요 0 | URL
박주영, 책세상에 칩거하는 ‘프리터族’ 그려" 는 '그녀'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음. 저는 노동을 통한 가치의 실현이, 그 '가치'가 교환가치나 사용가치가 아닌 자아실현 같은 '가치'가 존재한다는 데에는 부정적입니다. 적어도 상당수의 노동현실에 있어서는요.
그렇다고 부모를 착취(?)하는 삶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지만.
인문학 대학원생은 뭐랄까.. 이 또한 일종의 프리터 족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 로쟈님 인터뷰 중에 인문학의 기생성은 이렇게 인문학 대학원생의 존재 방식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 공대 대학원생들은 투덜되기는 해도 먹고는 살던데요;;) 그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주로 '과외'라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종의 계급 재생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맘에 안 들어서 요즘은 과외를 안 하고 서서히 굶어죽어가고 있습니다 ^^;

로쟈 2006-06-29 10:02   좋아요 0 | URL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굶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 안 사기...

드팀전 2006-06-30 09:19   좋아요 0 | URL
출구가 막힌 사회가 주는 반강요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물론 글을 쓴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을 목표로 자발적 백수를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그 역시 항구적 백수의 윤리를 쫓는 다기 보다는 단계상 거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프리터나 백수모델에 대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문학 대학원생들은 지금은 그렇지만 다들 교수나 평론가나 뭐 이런 목표를 지향하고 가는 도정이지 자발적 백수나 프리터를 상정해 두고 공부하진 않을테니까요.
노동현장에서 노동이 자아실현 가치로 각성되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대게는 밥벌이를 위해서 마지 못해 일한다고 하지요.-좀 멋있게 이야기하면 교환가치나 사용가치라고 하겠지만-전 밥벌이란 말이 더 좋아요.직업 선택의 첫 관문에서 자신의 가치를 고려치 않고 밥벌이만을 위해 일하게 된 사람들의 경우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의 가치를 찾기 어려운 경우를 많이 봅니다.하지만 프리터나 백수처럼 취미의 일상화를 통한 자아실현 만큼이나 자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현장에서 자아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 어렵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지향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부정적인 견해는 잠시 거두어 두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