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지만 '월요일'이란 이유로 학교에 나왔다(대신에 점심 먹을 때쯤 나왔다). 오는 길에 이번주 <필름2.0>을 사서 대략 점심먹을 때까지 들춰보았다. 그리고는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2005)와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을 보아야 하는 영화로 일단 꼽아두었다. 전자는 나이 어린 부모(=아이)에게 생긴 한 '아이'에 관한 영화이며, 후자는 두 남자간의 (우정이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게이 영화'이다. 

내 분류대로 하자면, 전자는 '로망스'이고 후자는 '포르노'이다. 아마도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두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마디 코멘트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아마도 내가 접할 수 있는 '2005년의 영화' 두 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설특집이라고 실린 '문화계 32인의 강추, 나만의 컬처블로그'를 훑어보는데, 가장 눈길이 간 '블로그'는 역시나 마광수 교수의 '이런 게 예술이지'. 아침 나절에도 요즘 읽고 있는 <예술의 종말 이후>를 들춰본 탓인지 '예술'이란 단어에 내 시지각이 민활하게 반응했다. 커피 한잔 마시는 김에 아르바이트로 '예술' 좀 따라가본다. 

 

 

 

 

마광수 교수는 작년 한 해 동안 대략 8-9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 앤드류 블레이크에 대해서도 아마 그의 책들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상찬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로선 그의 책들을 초기의 문학이론서나 윤동주 론을 제외하면 별반 읽은 게 없다(한두 권 읽어보면 나머지는 지루하다는 게 그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런 게 예술이지'를 읽으며 그에게 더 맞는 건 '야설'이 아닌 '야동'의 세계가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변명과 일기, 잡담들만 잔뜩 늘어놓는 그의 '권태'는 동적인 영상들로부터의 소외가 낳은 결과는 아닐는지(그런 의미에서, '국민감독' 임권택만 도와주지 말고, '국민권태' 마광수도 좀 도와주자! 진짜 '예술' 좀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또 먹고 살 만하면, 볼 게 포르노밖에 더 있는가?)  

마광수 교수(1951- )가 소개하고/자랑하고 있는 예술은 앤드류 블레이크(Andrew Blake, 1947- )의 세계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지 모르겠지만(나는 처음 들어봤다), '앤드류 블레이크의 세계'의 보다 정확한 이름은 '앤드류 블레이크의 에로틱 세계'이다. 관련사이트에서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포르노 관련으로는 작가, 편집, 촬영, 감독, 제작 안 하는 게 없고, 직접 찍은 것만도 거의 60편에 이른다. 마교수는 앤드류 블레이크의 베스트 타이틀 5편을 거명하면서 이렇게 소개한다.

"요즘 학생들한테 물어보니 예쁘기만 하고 재미없다고 하지만 무슨 말씀, 탐미주의자인 내가 보기엔 이거야말로 유미주의의 결정판이지.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이다. 미장센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불쾌하기는커녕 굉장히 아름답고 내가 좋아하는 페티시즘도 상당히 다양하게 반영돼 있다. 환상적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어떤 작품을 봐도 앤드류 블레이크의 예술적인 포르노만한 걸 못봤다. 그의 작품을 10년전에 비디오로 봤지만 최근 이 다섯 편을 구해 보면서 다시금 즐거웠다. 예술이란 이런 거다."  

마광수 교수의 57편에 이르는 블레이크의 영화들을 다 구해서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베스트 5'로 꼽은 영화들의 목록은 'Body Language'(2005), 'Hard Edge'(2003), 'Girlfriends'(2002), 'Paris Chic'(1997), 'Captured Beauty'(1995) 등이다.

'요즘 학생들'은 재미없어 한다지만, 블레이크는 (예술의 종말과 무관하게)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이다. 그리고 그 현역 예술가의 세계는 "불쾌하기는커녕 굉장히 아름답고 내가 좋아하는 페티시즘도 상당히 다양하게 반영돼 있다. 환상적이라고나 할까." 앙드레 김 어법으로 '판타스틱'한 장면들을 나로선 그저 '상상해' 보는 정도이지만, 이런 '패티시'에 걸맞는 '예술작품'을 예술가 마광수도 충분한 영감을 받고 써주었으면 좋겠다('사라'만 즐거운 작품 말고). 마광수-예술론에서 지루하다는 건 죄악이니까(그에게 불충분한 건 도덕이 아니라 예술이다).

06.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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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광수 대단합니다. 이제 저런 그림들도 5분이상 들여다 보면 지루해 지는데 말이죠-.-+...어쨌거나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볼만합니다. 이제는 좀 새로운 길을 가야 하지않나 하면서도 그 호흡에 한 번 빨려들면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저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고요.

파란여우 2006-01-23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먹고 살만하면 볼게 포르노 밖에 없다면....
앞으로 기를 쓰고 먹고 살만한 수준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쳐야 하는건가,
아니면, 먹고 살만한 수준이 안되기 위하여 안빈낙도해야 하는건가.
갸우뚱... (아, 나두 몰러...)
여하튼, 마광수가 소외감에 찌든 사람으로는 보입디다.

로쟈 2006-01-2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과 살 만한 수준'이 대개 10-20억 정도의 재산은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만만한 수준은 아니겠지요. 기를 써서는 안되고 로또를 쓰셔야 합니다.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포르노는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동물행동학자의 일리있는 주장도 있습니다. 에덴동산이 사실 포르노적 세상이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