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 1일에 "시편 1편에 대한 읽기"라고 운을 떼고서 한참 늑장을 부린 글을 대충 정리하도록 한다. 어느덧 1월의 중순이다.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같이 안 가면 혼자만 지옥에 간다고 아이가 엄포를 놓는다) 얼떨결에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또 놀면 뭐하겠느냐고 가서 하는 짓이 영한 성경을 펼쳐놓고 '고전'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건 코란이건 불경이건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신앙심을 갖고 있지 않은 탓에(참고로 나는 '신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나는 그냥 '신이 있으나 없으나'를 믿는다. 더불어 내가 존중하는 팩트는 신이 존재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점이다. 모든 팩트는 존중되어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인류의 한 '고전'으로서만큼 언제든지 읽어볼 용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성서 이야기>를 읽은 지도 오래된 만큼 이 참에 '시편' 정도는 읽어두는 게 도리일 것 같기도 하고.

 

 

 

 

겸사겸사 구한 책은 지난 여름에 출간된 이원우의 <성서>(살림, 2005). "서양문화의 뿌리이자 원류인 고전, <성서>"라고 규정해놓은 것이 일단 마음에 든다(한데, 책은 그다지 많이 팔린 것 같지 않다). 400쪽 정도의 분량이므로 '부피'에 대한 나의 요구도 얼마간 충족시키고 있다. 다만, '관련서'라고 참고문헌을 나열해 놓은 대목에서 '허걱'했는데, 모두가 영문으로 된 신학 원서였던 것. 한국어 참고문헌이 왜 하나도 없는 것일까, 의아했는데, 저자가 미국의 한 대학 종교학과 교수였다. 그러니 한국어 책을 읽어볼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 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참고문헌에 대한 실제적인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건 유감이다. 이전에 사놓고 읽다 만 <인간을 옷을 입은 성서>(책세상, 2001)을 다시 들춰봐야겠다.

참고로, 내가 갖고 있는 관련서는 디스커버리 총서의 <성경>(시공사, 2001)이 거의 유일하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성서의 기호학적,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대한 책들도 갖고 있고, <예수는 신화다>(동아일보사, 2002)나 오강남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 등도 소장도서이다. 지젝 덕분에 바울에 관한 책들도 몇 권 되고. 하니 엄살을 부릴 일은 아니고 게으름이나 탓해야 할 일이겠다.

 

 

 

 

하지만 욕심은 또 욕심 나름이니, 더 여유가 된다면 클라시커 시리즈의 <성서>(해냄, 2002)와 <아시모프의 바이들>(들녘, 2002) 정도를 서가에 꽂아두고 싶다. 2권짜리 <기독교 죄악사>(평단문화사, 2001)도 읽어두고 싶은 책이고. 비록 종교학 강의들은 몇 과목 들은 바 있으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문외한' 수준이니만큼(보다 정확하게는 '무관심'이었지만) 나머지 책들은 대개 리뷰 등을 참조해야 하는 형편이다. 내가 '관련서'나 '참고문헌'에 민감한 이유이다. 

  

 

 

 

낮에 아서 단토의 책을 구하기 위해 구내서점에 들렀었는데, 아가페출판사에서 나온 <쉬운성경>(2004/2005)이 눈에 띄었다. 실상은 공동번역 성경의 고답적인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경 읽기를 미루어두기도 했는지라(비슷한 이유에서 나는 우리 법전들을 읽지 않으며 의학서적들을 읽지 않는다. 모두가 어휘나 통사 모든 면에서 아직 일본어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경우, 아버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고시 공부를 하지 않은 이유는 6법전서의 '문장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이다. 최근에 나오고 있는 '순한글' 법전들의 경우 얼마만큼 개선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쯤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읽고자 했던 시편 1편은 이렇게 번역돼 있었다.    

A

1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꼐 서지 않으며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2 그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니다.
3 그들은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될 것입니다.
4 나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겨와 같습니다.
5 그러므로 나쁜 사람들은 하나님꼐서 내리시는 벌을 
   견뎌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착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6 착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여호와께서 보살펴 주시지만
   악한 사람들이 가는 길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볼 것은 기존의 성경 번역이다.  

 

 

 

 

B

1.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걸 우리말답게 약간 푼 번역도 있었다.

C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 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6.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그리고 영역본(그밖에 러시아어본도 참조했지만, 여기에 옮겨놓지는 않겠다). 물론 영역본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아래에 옮겨온 것은 그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시편 1-2편에는 따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으며 영역에 붙은 제목은 주석상의 필요 때문에 달려 있는 것이다. 1편의 내용인즉슨, '의인의 길과 악인의 종말'이라는 것.

PSALM 1: The Way of the Righteous and the End of the Ungodly

1. Blessed is the man
   Who walks not in the counsel of the ungodly.
   Nor stands in the path of sinners,
   Nor sits in the seat of the scornful;

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i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That brings forth its fruit in its season,
   Whose leaf also shall not wither;
   And whatever he does shall prosper.

4. The ungodly are not so,
   But are like the chaff which the wind drives away.

5. Therefore the ungodly sha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congregation of the righteous.

6. For the LORD knows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ungodly shall perish.

 

 

여기까지 옮겨놓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애초에 가졌던 글에 대한 '열정'도 식어버렸다(아무래도 나는 '쭉정이'인 모양이다). 그간에 시편 1-2편에 대한 제법 많은 분량의 (영어)주석을 읽어본 것이 그냥 나대로의 수확이다. 하고픈 이야기의 '알곡'은 제시한 번역들을 세심하게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태신자'의 성경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진행하기로 한다.

06. 01. 01 -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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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1-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성경까지..-_- 다음편은 코란인가여? ^^

지난 한해동안 좋은글 많이 읽을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로쟈 2006-01-0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억지로(?) 교회에 잡혀갔다가 들은 설교 말씀이 시편 1편이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제 딴에는 성에 차지 않아서 제 식으로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주제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덕담을 건넬 때 그 '복'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생각해보려는 것뿐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몇 안되는) 관련서들이 흩어져 있어서 짤막한 글 한편 쓰는 것도 불편하네요...

Viator 2006-01-2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글번역 중에서는 200주년 기념성서가 가장 희랍텍스트에 충실한 것 같더군요. 개신교쪽에서는 표준새번역 개정판이 괜찮은 것 같고요. 비교해서 읽으실때 참고하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로쟈 2006-01-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변처녀 2006-04-1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성경을 오랫동안 접해와서인지 쉬운성경은 매우 낯설군요.
우선 "복"이라는 의미가 매우 다르게 다가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무슨일이든 다 잘 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복이라고 말하고, 때로는 고난이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죠... 개역개정판 3판을 읽고있는데, 그 편이 낫게 여겨지네요^^(시편 1편에 한해서~^^다른 부분은 못 읽어봐서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완전히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수 있겠어요!
믿는 사람들도 어려운 단어가 많이 쓰인 보편적으로 쓰이는 개정판 또는 개역개정판과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것 같아요. 한번 사서 보아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