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브리핑'은 즐찾 300이 넘어선 걸 기념하여 엊그제 만든 나 대로의 '이벤트'이다. 나는 무슨 답례성 선심을 쓰는 대신에(나누어드릴 선심도 없지만), 새로 한 꼭지를 만듦으로써 나의 서재를 찾아주시는 분들에 대한 내 '책임'의 분량을 늘리기로 했다. 브리핑(briefing)이란 말은 '요약보고', 그러니까 "짦게 줄인 보고"를 뜻한다. 나는 그 말을 에누리없이 접수한다. 즉, 이 꼭지는 내가 읽은 온갖 종류의 글들을 요약해서 보고하는 내용들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런 작업이 때로 긴요하다. 읽은 글들을 갖다버릴 때이다. 읽어놓았지만 막상 미처 정리를 하지 못해서 무겁게 껴안고 다녀야 하는 글(프린트)들이 내겐 적지 않다.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다니자니 부담스럽다. 평소에 브리핑해두는 습관을 길러두지 않은 탓이다. 해서 겸사겸사 '로쟈의 브리핑'은 시작된다. 이게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몇몇 분들에게도 '브리핑 효과' 를 낳을 수 있다면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 될 것이다. 그 이상은 나의 몫이 아니다.  

브리핑 거리들은 정말로 널려 있지만, 책상에서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건, 혹은 가장 만만하게 눈에 띈 건 김항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세계의문학>, 여름호)이다(사실은 데리다의 "이론을 좇아서"란 글을 염두에 두었지만 아직 다 읽지 않았다). 필자는 동경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는데,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민음사)를 우리말로 옮긴바 있고, 나는 <세계의 문학>지에서 그의 글을 두번째로 읽게 되었다. 국가와 폭력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글은 생각보다 견적이 많이 나온다.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 참조해야 할 저자들이 여럿 되기 때문이다. 글의 결미를 따르더라도, "아렌트의 분할과 푸코의 역사, 슈미트의 법-국가론과 결정, 벤야민의 언어-문학론 및 역사-신학,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드-노모스론 드이 성좌를 이루는 하나의 배치를 확인하는 일"의 견적이 어찌 만만하겠는가?(나로선 이 주제에 관하여 최소한 벤야민과 슈미트, 들뢰즈와 아감벤 정도를 참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거기에 지젝과 데리다를 베이스로 깔아야 한다고 본다. 이건 나대로의 프로젝트이다.)

 

여기서 다룰 수 있는 건 그냥 글의 서두뿐이다. 이 서두는 <안티-오이디푸스>의 서두이기도 하다: "그것(Ça)은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흐르며, 때로는 멈추면서, 도처에서 그것은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호흡을 하고, 그것은 열을 내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싸고, 그것은 섹스를 한다. 그럼에도 '한데 싸잡아 그것(le ça)'이라 불렀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도처에서 이것은 여러 기계들이다. 게다가 결코 은유가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하고, 접속하여 기계의 기계가 되는 것이다."

 

이 문단에 대한 필자의 해설: "여기서 '그것(Ça)'은 입이다. 호흡하고, 열을 내뿜고, 먹는 입. 항문과 연관되고 성기를 빠는 입. 이렇게 다른 기계와 연결된 기계인 입을 '그것(le ça=Es)'이라 부른 일, 즉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해당하는 '그것'이라 싸잡아 부른 것은 잘못이었다. 입을 대표하는 입 일반은 없기 때문이며, 입은 항상 무언가에 열결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만이 입을 그것(Es)이라 부르며 안심한다."(강조는 나의 것)이 대목을 읽고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몇 년 전의 '논쟁(?)'이다. <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에 이종영의 "파시스트 들뢰즈와 가타리가 반(反)파시즘을 말하다"란 글이 실렸고(이 글의 풀-버전은 <내면성의 형식들>(2002)에 '들뢰즈와 가타리의 파시즘과 반(反)파시즘'이란 보론으로 들어가 있다), 이어서 이를 반박하는 김재인의 글 "파시즘과 비인간주의 사이에서 외면당하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가을호에 게재됐다. 이 논쟁의 핵심(즉, 들뢰즈/가타리가 파시스트냐 아니냐)은 여기서의 관심사가 아닌데, 다만 흥미로웠던 건 인용한 대목에서 '르 싸'의 해석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자신이 엉터리 번역본인 국역본 <앙띠 오이디푸스>를 참조하고 있다고(그러니까 <안티 오이디푸스>를 제대로 읽지 않았으며 당연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김재인에 대해서 이종영은 독자들/친구들에게 이렇게 호소했었다: "김재인 씨는 <앙띠 오이디푸스> 한글판의 번역이 엉망이고 ‘위서’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김재인 씨가 사례로 제시한 내용은 저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김재인 씨는 <앙띠 오이디푸스> 한글판에서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 사례로 <앙띠 오이디푸스>의 첫 문단을 듭니다. 즉 한글판에서 ‘이드’(Id, das Es)로 옮겨놓은 첫 문단의 ‘싸’(ça)가 ‘이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앙띠 오이디푸스> 첫 문단의 ‘싸’(ça)는 명백히 ‘이드’입니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가타리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숨쉬고 뜨거워지고... 똥누고 성교를 하는’ ‘그것’에 대해 말한 후, ‘그것’을 정관사를 붙여 ‘르 싸’(le ça)라고 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들은 정관사 ‘르’를 강조합니다... 김재인 씨는 이 첫 문단의 ‘그것’이 ‘입’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똥누는 것은 토악질을 하는 것이고 성교는 하는 것은 키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이러한 자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이 과연 <앙띠 오이디푸스>를 최명관 씨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이에 대해서 김재인은 이렇게 반박한바 있다: "내 주장을 반복하면 이렇다. 들뢰즈-가타리가 ‘르’를 떼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는 ‘의도적인 혼동’을 염두에 두고서 그렇게 한 것이다. 즉 프로이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프로이트를 혼동시키기 위해.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프로이트는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수 정관사를 쓴 것은 더더욱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수 부정관사를 써서 ‘des ça’라고 했어야 옳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양체요 리좀이다. 그래서 첫 문단의 그것이 ‘입’을 가리킨다는 점은 명백하다. 나는 모든 ‘그것’이, ‘그것’ 일반이 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은 그것의 한 사례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첫 문단의 서술을 잘 읽어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절대로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이런 해석을 제시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강조는 나의 것) 

 

그리고 이제 김항이 두번째인 듯하다(하지만, 이 '독특한 해석'의 반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나로선 이 서두에서의 '그것(Ça)'이 어떻게 '입'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고 신기하지만 두 사람이나 이런 '독특한' 해석(처음 김재인이 그러한 견해를 제시했을 때, 그것은 그 자신의 말대로 '유일무이한' 해석이었다. 전세계를 통틀어서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항만 빼놓고)을 제안/지지할 때는 정색하게 된다. 정말로 '입'이 열을 내면서, 먹으면서, 똥을 싸고 섹스를 하는가? 아마도 김재인/김항은 토악질=똥으로 오랄섹스=섹스라는 비유적 등식화를 여기서 추가적으로 요구하게 될 듯하다(정신분석학이 모든 게 '그것=입'의 문제라고 주장하며 오랄섹스에 대해 근심하는 학문인가? 정신분석가만이 입을 그것(Es)으로 부르며 안심한다? 나는 어떤 정신분석가들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은유/비유를 혐오한다(이것들은 은유가 아니다!). 고로 똥은 똥이고 섹스는 섹스다.

 

김항의 인용/번역문에서 바로 제시돼 있듯이, "도처에서 이것(Ça)은 여러 기계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유방이나 입은 이 기계들 가운데 하나이다. 상식적으로 읽을 때, 들뢰즈/가타리는 이 (욕망하는)기계들을 통칭해서 그것(독어로 Es/ 불어로 le Ça/ 영어로 Id)이라고 정신분석학이 명명한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계들의 복수성을 일반화하고 단수화하는 것이기 때문에(반복하지만, '기계들'은 결코 은유가 아니다. 더불어 그것은 '입'이라는 단일한 기계가 아니라, '기계들'이다). 물론 이어지는 대목에서 보듯이, 식욕상실자의 입은 '먹는 기계', '항문기계' '말하는 기계' '숨쉬는 기계' 어느 것(=기능)이 될지 불확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이 '기계들'의 대용어나 통칭어가 될 수는 없다.

 

김재인은 "나는 모든 ‘그것’이, ‘그것’ 일반이 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은 그것의 한 사례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맨처음 '그것'은 입이 아니다. 김항은 "정신분석학에서 무의식에 해당하는 '그것'이라 싸잡아 부른 것은 잘못이었다"라고 말했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신분석학에서 입을 무의식(=그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두 유능한 연구자의 입에서 왜 이런 '독특한' 주장이 반복되는 것인지 다시금 궁금하고 신기하다. 그런데, 이런 것도 브리핑인가?..

 

05.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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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05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

로쟈 2005-07-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실 텐데, '출근'하셨군요.^^

마냐 2005-07-0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0 축하합니다. 이벤트의 새로운 세상을 또 여셨네요....다만, 전 다음 브리핑을 기대하렴다. 요번건 제게 어려버서..^^;

로쟈 2005-07-05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다음엔 좀 쉬운 걸로 챙겨오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어이, 미스 김!..

주니다 2005-07-0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핑 좀 자주 해주세요....

로쟈 2005-07-0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고는 싶습니다.^^

yoonta 2005-07-0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뢰즈가 첫문단에서 <그것>은..이라고 하지않고 <그것들>은 이라고 했으면 혼돈이 덜했을 텐데-_-...
뒤에서도 <그것들은 기계들이다>..라고 말하듯이 말이죠..
그랬다면 <그것은 입니다>혹은 <그것은 이드다>라는 식의 혼동은 하지 않았을 듯..
그리고 최명관씨의 번역책의 첫 문단의 본문은 이상없죠....
그놈의 각주가 말썽이지..-_-

로쟈 2005-07-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주의 첫번째 문장까지도 저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역본의 경우, Everywhere 'it' is machines... 그러니까 <그것은 기계들이다>입니다. 불어본은 다른가요?..

yoonta 2005-07-0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어본은 저도 본적이 없네요-_-;;
불어본도 그것(it)이라고..단수의<싸>로 했을 듯하네요..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러니깐..Everywhere it is machines보다는
Everywhere they are machines라고 들뢰즈가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였고요..머 사실 단수로해도..그것은 입이다.그것은 이드다라는식의 오역만 하지않는다면 무방하긴 합니다만..
물론 들뢰즈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해독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친절하게 쓸 필요는 없겠죠....
어쨋든 김재인씬 가끔 좀 억지스러운 때가 있는듯..

yoonta 2005-07-0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들뢰즈는 <싸>와 <르 싸>를 구분해서 사용했죠..프로이트의 이드는 <르 싸>에는 해당될지 모르지만 첫 문장의<싸>는...즉 <그것=그것들>은 <르 싸>는..아니다라는 의미로 말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기계들이다 >라고 정리했죠...

로쟈 2005-07-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고 계신 듯하지만, 영역본은 What a mistake to have ever said 'the' id. Everywhere 'it' is machines...로 나갑니다(''표시는 이탤릭체입니다). 저는 여기에 아무런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 불어로는 '싸'로만 표기되는 것이 영어로는 it와 id,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어서(그래서 영역본이 더 이해하기가 쉬운데) 혼란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yoonta님의 정리를 반복하자면, It(싸)는 id(르 싸)가 아니라 machines(기계들)이라는 게 들뢰즈의 주장입니다...

yoonta 2005-07-0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It과 Id가 번갈아 나와서 최명관님은 it을 id로 본것이죠..이정도는 이해해줄만 합니다..그런데 it을 입으로 독해하는 센스는 정말..-_-;;;

yoonta 2005-07-0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개의 고원이란 제목도 사실 수많은 고원정도되는 의미라고 한다면 오히려 천의 고원이라고 번역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꼼꼼함이 지나쳐서 오히려 부작용이 나는 케이스가 김재인씨인 듯..

로쟈 2005-07-0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의견이 다른데, '천의 고원'이란 건 일본식 조어입니다('백의 고원'이나 '만의 고원'이 얼마나 어색한 표현인지 생각해보시길). 우리말로는 '천개의 고원'이 더 타당하며, 굳이 '뜻'을 옮기자면 '만 개의 고원'쯤 되겠죠(우리말 '만'은 '셀수없이 많은'이란 뜻을 '천'보다는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yoonta 2005-07-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재인님도 그런 점에서 천개의 고원이라고 한 것같기는 하더라고요..그런데 사실 따지고 모면 일본식조어..한국식조어를 구분하는게 모호할 때가 많아서리..
아예 수많은 고원으로 하는게 좋지 않나요?
영어에서도 millions of,thousands of 하면 그냥 수많은,무수한등으로 번역하듯이 말이죠..

로쟈 2005-07-1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본도 그냥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 아닌가요? 일어식 조어라는 건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같은 역어에서 잘 드러납니다. 영어로는 Magic mountain일 텐데, '마의 산'이란 건 일역본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죠. '천의 고원'도 일역본의 제목일 겁니다...

yoonta 2005-07-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찾아보니 일본어본은 천의 어쩌구..(천자만 읽을수 있기때문에-_-) 독어본은 Tausend...등으로 되어있네요..마의 산도 그런경우군요..그럼 마법의 산이라고 하는게 더 좋을까요? ^^

biosculp 2005-07-1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나서 몇자 씁니다. 김재인식으로 애기하자면 입이 아니라 똥꼬가 더 낳지 않을 까 하는 생각네요. 똥눟고 성교하고 이런게 입보다는 똥꼬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