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의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세계문학사에서의 비중상 아무래도 셰익스피어가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는 <맥베스>와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바이런과 함께 젊은 푸슈킨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가 셰익스피어였다. 참고로, <보리스 고두노프>는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중앙선데이(14. 06. 01) “권력을 쟁취했지만 내 마음엔 행복이 없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가장 짧으면서도 강렬한 작품 『맥베스』는 무엇에 관한 비극일까? 무모한 권력 찬탈자의 비극? 글래미스의 영주였던 맥베스가 마녀들의 예언에 이끌려 덩컨 왕을 시해하고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오른다. 순탄치는 않았다. 맥베스 부인에 따르면 그는 “위대해지고 싶고 야심도 없지는 않지만 그에 따른 사악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명에 따라 왕이 될 거라면 그렇게 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게 맥베스의 태도였다. 하지만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맥베스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부인의 매서운 독려가 없었다면 그는 자신의 권력욕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작 본격적인 비극은 맥베스가 왕이 된 이후에 시작된다. 애초에 마녀들은 맥베스가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하면서 그와 동행했던 뱅코에게는 아들이 왕이 될 거라고 말했다. 새로운 왕가를 여는 인물은 맥베스가 아니라 뱅코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권력을 자신의 후대에게 물려줄 수 없다면, 그 권력은 허망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고작 뱅코의 후손들을 위해 덩컨 왕을 죽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은 안전하지 못하다면 헛것”이라는 맥베스의 대사는 그런 고민을 압축한다.

맥베스는 자객을 보내 뱅코와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지만 뱅코만 살해하는 데 성공하고 그 아들은 놓친다. 맥베스의 불안은 극대화되어 연회장에서 뱅코의 유령이 등장하는 환영을 본다.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맥베스는 급기야 자신의 존재감마저 상실하고 만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를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맥베스의 독백은 인간의 보편적 숙명을 뜻하기에 앞서 권력의 의미를 상실한 권력자의 토로로 읽힌다. 그럼에도 작품에서 맥베스의 아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좀 특이한 설정이다.

 



반면에 푸시킨이 셰익스피어의 사극과 비극을 탐독하고 쓴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권력 승계라는 주제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고두노프는 표도르 1세 치세 때 누이동생인 황후를 등에 업고 권력의 실세로 행세하다가 표도르가 죽자 귀족들의 추대로 황위에 오른다. 자객을 보내 어린 황태자 디미트리를 미리 제거한 뒤였기에 그의 즉위는 찬탈의 의미도 갖는다.

 

 

황제가 된다면 권력에 대한 욕망은 모두 충족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최고 권력을 쟁취하여 태평세월을 통치한 지 이미 여섯 해째. 그러나 내 마음엔 행복이 없구나. 이건 마치 어린 시절부터 사랑에 빠져 사랑의 즐거움을 그렇게도 열망해 오다가, 순간의 소유로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면 차가워져 지루해하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겠지?” 고두노프의 경우에도 아들 페오도르가 황위를 안전하게 물려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러시아제국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대견해하면서 “언젠가, 혹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 네가 지금 이 종이 위에 훌륭하게 그려 놓은 모든 땅들이 모두 너의 손 아래 들어오리라”라고 말하는 모습은 아버지이자 권력자인 고두노프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고두노프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의 재위 기간에 연이은 기근으로 농민들의 반란이 잦아지고 급기야는 죽은 황태자 디미트리를 참칭하는 가짜 디미트리가 나타나 폴란드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해 온다. 불리한 전세 속에서 고두노프는 건강이 악화돼 쓰러지지만, 힘을 다해 어린 아들에게 상세한 유언을 남긴다. “내 아들, 너는 내게 영혼의 구원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도다!”라는 생각에서다. “오, 사랑하는 아들아, 거짓 아첨에 속지 말며 스스로 눈멀지 마라. 혼란한 시기에 네가 제국을 물려받을 것이니.”

귀족과 장군들에게 아들 페오도르에 대한 충성을 맹세 받고 고두노프는 숨을 거두지만, 그 맹세는 거짓이 되고 만다. 참칭자의 군대가 모스크바에 들이닥치자 귀족들은 반란에 가세해 고두노프의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공식적으로는 그들이 자살했다고 공표한다. 현장을 지켜보던 백성들이 경악 속에 침묵하자 “황제 디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세!”를 독려하는 걸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권력 찬탈자의 비극이라는 점에서는 『맥베스』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권력자의 비극은 동시에 백성의 비극이기도 하다. 1825년에 완성한 희곡은 백성들이 “황제 디미트리 이바노비치 만세!”를 따라 하는 걸로 끝나는 ‘희극’이었지만, 1831년 출간본은 “백성들, 침묵을 지키고 있다”라는 지문으로 끝나는 ‘비극’으로 바뀐다. 어느 판본에서든 보리스 고두노프의 비극은 변함이 없기에, 『보리스 고두노프』의 장르는 백성들의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권력 승계의 실패가 권력자의 비극이라면, 백성의 비극은 권력의 기만적인 교체 과정을 침묵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데 있다. 셰익스피어는 귀족들의 권력 암투만을 다룬 데 반해, 푸시킨은 권력투쟁을 바라보는 민중의 시각을 중요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14.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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