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GP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하다. 브라질전에서 패배한 청소년 축구팀의 패인 분석도 잠시, 언론마다 우리 군복무 여건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한 특집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들뜬 여론은 곧 가라앉겠지만, 쏟아지는 대책들은 그래도 좀 오래 떠있기를 바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건 작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본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2003)이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졌던 총기난사 사건(13명 사망)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이 '엘리펀트'인 건 이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지만 버젓이 일어난 사건이 이해되지 않는, 이해가능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바둑에서의 복기처럼 두 고등학생이 인터넷을 통해 구매한 자동소총을 들고서 D-데이에 학교를 활보하면서 친구들을 '사냥'하는, 자신들의 '게임'에 빠져드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따라간다. 반복적으로, 다중시점으로 리와인드하면서까지. 하지만 결과는 불가해한 죽음들이며, 비디오로 이걸 반복해서 보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손으로 꼽을 만한 원인들이야 차고 넘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진단이고 어느 것도 결정적이지는 않다. 아마도 그들은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고, 그게 재미있을 거라고 상상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불모성/불완전성이 거기에 핑계로서 들러리를 서고 있는 것인지도. 영화는 끝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자살 이후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들을 잡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유구무언, 혹은 노 코멘트. 그리고 더이상 아무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의 총기난사사건도 그러한 우리의 무능력과 대면하게 하는 듯하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언어폭력으로 인한 인격모독 때문에? '정신이상' 때문에?(김일병은 우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며, 모욕받은/분노한 자기 자신의 대행자로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어떤 경우이건 대개의 군사고는 특정인에 대한 보복이나 자살로 귀결되는데, 이번 사건의 충격은 그것이 동료 소대원 전체에 대한 보복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에 있다. 김일병은 사건 이전에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은 우리도 수시로/가끔은 한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 '말'은 행위에 대한 차폐막 역할을 한다. 즉, 말이 행위를 대신함으로써 말로 그치게 되는 것. 그래서 그러한 행위는 가능한 일의 목록에는 들어가지만  실행가능한 일의 목록에는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현실(reality)이 아닌, 현실을 넘어선 실재(the real)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의 상식적인 관념속에는 기입되지 않는 것이다.

해서 이번 사건에서 당사자인 김일병과 함께 우리가 조우하게 되는 것은 '실재의 사막'이고, '엘리펀트'이다. 현실이라는 환상이 제거된 상황에서, 그리하여 가능한 일이 언제라도 실행가능한 일로(마치 소총의 잠금장치가 언제라도 발사에 놓여질 수 있는 것처럼) 전화되는 것,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건 김일병 자신이 경험적으로 깨달은 바이겠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마치 게임에 로그인하는 것처럼. 하지만, 적어도 삶이 헛것이 아닌 한도 만큼 죽음은 헛것이 아니다. 그리고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리와인드할 수 없고, 다시 로그인할 수도 없다. 그가 게임과 현실을 혼동했을까?

문제는 우리 병영의 '현실'도 '게임중독'도 아니다. 물론 그것들은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즉 두 문제의 '개선'이 이번 사건의 재발을 필연적으로 방비해줄 수는 없다. 나는 그 사이에, (고참들에게 갈굼당하는) 현실과 (람보처럼 '적들'을 싸그리 제거하는) 게임 사이에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결여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상식 혹은 공통감각(common sense)이다. 자신의 부모와 가족들, 고참병들의 부모와 가족들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당사자에게는 결락되어 있었던 것. 그런 것들로 구성된 '현실'은 허상이고 판타지일 수 있다. 실재의 적대성을 가로막는. 하지만, 그러한 허상을 놓치게 될 때(그것은 맘먹기에 따라서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허상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현실을 상징화할 수 있는 능력,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는 엘리펀트와 만나게 된다.

"고참은 신이고 병역은 신성하다"는 말에 우리는 더이상 속지 않는다.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국적포기자들의 당당한 탈국가적, 국제적 이성(판단)이 그 반증이다(저들의 앞날에 오로지 행운만을!). 하지만, 고참이라는 괴물, 국민이라는 괴물로부터의 해방은 엘리펀트에 대한 충성을 이면으로 갖는다("어디 두고보자, 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마"). 해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자기안의 괴물을 인지하고 그와 친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병영이라는 우리 안에 갇힌, 젊은 '국민들'이 자신의 괴물성을 자각하면서도 "고참은 신이고 병역은 신성하다"고 복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러는 사이에 공통감각을 늘리고(물론 가장 좋은 건 문학을 읽는 일이다, 게임할 시간의 절반만이라도 할애해서) 사이공간으로서의 교통공간을 항구적으로 늘려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국가고 고참이고 나발이고 좆도 아닌) 세상은 배틀필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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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2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방부의 개혁이 왜 이리 먼 길 인지요....

로쟈 2005-06-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많은 부분이 더 개선되고 개혁되어야 하겠지만, 제 생각엔 많은 '대책들'이 이 사건의 '대책없음'이란 충격/외상과 대면하지 않기 위한 방책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건이 터진 자리와 사건을 봉합하는 자리가 왠지 따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단 보다 정확한 사고 (재)조사 결과가 나와야 할 거 같습니다만(아직은 의문점들이 많으므로)...

돌바람 2005-06-2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변의 현실을 상징화할 수 있는 능력,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는 엘리펀트와 만나게 된다'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매번 추천만 해놓고 도망가는 것 같아, 다시 와서 도장도 찍습니다.

로쟈 2005-06-2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과 다르게(?) 여자분이시군요. 너무 묵직하게 찍지 않으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