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을 틈타 몇 자 적는다. 몇 권에 대하여. 흔히 전체주의 사회라고 지칭되는, 그래서 모든 인민이 철저한 감시하에 놓여 있었다고 간주되는 스탈린 시대 소련사회에서도 '인민들'은 (직접적/공식적인 방식은 아니었더라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다 표현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령, <1984년>(문예출판사/민음사)이나 <멋진 신세계>(문예출판사)에서와 같은 '거의 완벽한' 통제사회는 아마도 '이론'이나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이들 반유토피아 소설의 원조가 되는 자먀찐의 <우리들>(열린책들)이 절판된 것은 유감스럽다). 갑자기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긴급한 프로젝트에 발목이 잡혀서 학교에 나와 있으면서도 손가락은 이런 식으로 '탈주'하며 자신의 '향락'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변호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엔 우리가 말릴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지난주에는 고맙게도 나에게 부담을 주는 책들이 한권도 나오지 않았다. 부담을 주는 책들이란 (1)급하게 읽어야 하는 책, (2)그런데, 읽기가 버거운 책(영어식 표현이 'great books'라고), (3)게다가 값비싼 책이다. 부담감의 난이도는 그런식으로 증가하는바,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에는 고난도의 책이 없었다는 것(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너무 없다 싶어서 네댓 종의 북리뷰들을 읽고 나서도 이래저래 검색을 하다가 찾은 것이  엘스베트 볼프하임의 가벼운 평전 <마야코프스키와 에이젠슈테인>(아카넷)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저자는 독일 사람이고 슬라브문학을 전공한 문학애호가이다(약력에는 강단에 몸담았다는 기록이 없다). 20세기 러시아문학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다고 소개돼 있는데, 약간의 뒷조사를 해보니까, <안톤 체홉>(1996), <불가코프>(1996) 등의 저서를 갖고 있고 이번에 번역돼 나온 건 2000년 신작이다. 203쪽 분량이니까 원서로는 150-160쪽 정도의 분량일 것이고 나로선 특별히 기대할 만한 내용이 없어 보인다. 이미 마야코프스키의 전기와 관련해서는 <마야코프스키>(까치글방, 2001재판)이 나와 있고, 절판됐지만 후고 후퍼트의 <나의 혁명, 나의 혁명>(역사비평사, 1993)도 207쪽 분량이었다. 볼프하임의 책은 그 절반 정도에도 못 미친다. 대신에 에이젠슈테인과 같이 묶었다는 게 특장이다. 에이젠슈테인이 영화론 번역서들이 이전에 많이 출간됐었지만(1990년 전후였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해져 가는데, 신간은 그에 관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줄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도 몇 년 전부터 에이젠슈테인 전집이 다시 편집돼 나오는바, 작년에 나는 두툼한 책 네 권을 구입했었다. 그의 회고록 2권은 별권이고. 영화사나 혁명영화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필독서가 되겠지만, 그들을 위한 책이 과연 쉽게 (번역돼)나올 수 있을는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회고록은 889쪽 짜리로 영역돼 있다. 영화론은 저명한 소련영화사가 제이 레이다가 엮은 책 2권이 있고, 최근엔 리처드 테일러가 엮은 선집도 나왔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의 연구서 <에이젠슈테인의 영화>(하버드대출판부, 1994)가 영어권의 가장 유용한, 에이젠슈테인 가이드북이다(그만한 연구서는 러시아에서도 나온바 없지 않을까 싶다. 모스크바의 대형서점들에 처음 갔을 때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영화학' 책들이 없을까, 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화박물관'에서 에이젠테인 영화의 카메라나 소품 등을 구경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러시아쪽 책부터 소개하는 건 나로선 불가피하다. 두번째 책은 그걸 중탕시키기 위한 꼽은바 로알드 달의 소설집 <맛>(강). 동아일보 리뷰에 굉장히 크게 소개가 되었길래 내겐 생소한 이름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까 <마틸다>(시공사)의 저자였다. <마틸다>는 내가 드물게 읽어본 어린이 책('주니어부'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인데, "천재이지만 어리석은 부모와 학교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마틸다의 학교생활과 어리석은 어른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유쾌하게" 그린 작품. 이 요약에 빠져 있는 건 마틸다가 '천재적인 독서광'이라는 사실. 당연히 내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인데, 사실 그런 이유만으로 그 책을 읽은 건 아니고 생업을 위해서 학원강사로 뛸 때 초등학생들에게 읽힐 만한 책을 찾다가 고른 게 <마틸다>였다. 내가 두어 개의 에피소드들을 복사해서 나누어주고 줄거리를 말해봐라, 느낀 점을 써라 등등의 주문을 학생들에게 했다. 비록 기대와는 다르게 '나도 마틸다처럼 독서광이 되고 싶어요'란 반응은 얻어내지 못했지만, 나는 어쨌든 (어른을 괴롭히는 일에 있어서) 마틸다 못지 않을 아이들과의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저자의 이름도 잊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로알드 달이었던 것.

<마틸다>를 떠올려보니까 입심 하나로 유명 여배우와 결혼했다는 작가의 '영웅담'도 허황돼 보이진 않는다. 그가 "현대 동화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만든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구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힌다."는 것도 믿어줄 만하다(국내에도 이미 '로알드 달 베스트'가 3권 짜리로 나와 있다). 물론 이번에 나온 '선집'은 어른용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역자인 정영목씨 왈 "재미없다는 쪽에 당신이 내기를 걸면 아마 남아날 손가락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소설가 성석제가 거들기를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의 서열을 매기라 한다면 나는 로알드 달의 소설을 다섯 손가락 안에 놓겠다." 이 정도면 거의 칼만 안든 수준 아닌가?


 

 

 

사실 달(Dahl)이란 이름에서 내가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로알드가 아니라 로버트이며, 로버트 달은 저명한 정치학자이다. 출간순서를 역순으로 꼽으면 <미국헌법과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4),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문학과지성사, 1999), <민주주의>(동명사, 1999) 등이 그의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민주주의'론의 권위자란 게 팍팍 드러난다. 한때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란 테마로 책을 좀 읽어보려고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로버트 달 정도 읽어주면 절반은 카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그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지만(요즘은 다시 전체주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어쨌든 같은 성씨를 쓰는 걸로 봐서 로알드와 로버트가 인척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그것까지 뒷조사할 여력은 없지만(알라딘에는 세계 미스테리 어쩌구 하는 책들도 로버트 달의 책으로 뜨는데, 로알드와 로버트를 혼동한 착오이다).

 

 

 

 

<정치인을 위한 변명>(개마고원)은 지나가는 김에 꼽아본 책이다. 아직 정치의 계절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런 제목의 책이 나오는 게 좀 이상하지만, 현대의 '상시적인' 정치체제라는 걸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강준만과 떼놓을 수 없는 출판사에서 나왔으므로 '중도 좌파'(?) 정도의 입지점을 갖는지 모르겠고.  저자인 헤르만 셰어의 말을 다시 옮겨둔다. "민주주의는 선택하는 것이고, 선택을 위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 '정치계층', '정치계급'에 대한 일반화된 폄하와 개별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더욱 정열적이고 능력 있는 정치인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참여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 민주주의 공부를 위해서도 나중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세번째 책은 <맛>의 역자인 정영목씨와 공역서 <세계를 뒤흔든 반항아 말론 브란도>(푸른숲, 2003)까지 낸바 있는 한겨레의 문화부 고명섭 기자의 <지식의 발견>(그린비)이다. 소개에 따르면, "출판 담당 기자를 지냈던 저자가 예민하고 꼼꼼한 시선으로,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쓴 19권의 책에 대한 서평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은 모두 우리 학자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현실을 진단하고 바꿔보려 한 노력의 산물들이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 학자들이 쓴 책 19권에 대한 서평집이라는 것.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아서, 그리고 목차에 대한 정보가 뜨지 않아서 19권의 목록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름대로 한가닥하는 식견과 의식을 갖춘 저자이기에 읽어봄 직하겠다(내게 고기자는 '벤야민'의 표기를 '베냐민'으로 고집하는 기자로 각인돼 있는데, 시집을 낸 경력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생각건대, 그러한 고집은 기자의 것이 아니라 시인의 것이지 않을까?).

요즘은 이름이 잘 눈에 띄지 않아 퇴직하거나 휴직한 게 아닐까 생각되는 이로 역시 한겨레의 이상수 기자가 있다. 기자생활과 병행하여 그는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었는데, 그 부산물이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길, 2001)이었고, 내가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이 책의 일부는 고등학생들 논술 수업에 활용하기도 했다). 해서, 고기자의 <지식의 발견>은 내게 이기자의 <오랑캐의 즐거움>과 나란히 놓인다. 억지스럽지만, 둘을 섞어서 <오랑캐의 발견>이나 <지식의 즐거움>이란 책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으므로 그냥 그렇게 놓도록 하겠다. 하긴 이런 조합도 가능하군. '지식(인)=오랑캐' '발견=즐거움'.

 

 

 

 

네번째 책은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역사비평사). 서평마다 미국의 잡지 <애틀랜틱 먼스리>의 헌사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은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다." 물론 대중에 대한 혐오와 독설로 가득 차 있는 책 자체는 세기의 책에 값하진 못하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20세기를 관통하는 것이기에 <대중의 반역>이 갖는 대표성을 얼마간 인정 못할 것도 없겠다. 나는 이전에 한마음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 보다 좋은 번역본이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책이 역사비평사에서 나왔다는 건 다소간 의외인데, 우나무노와 함께 20세기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러시아에도 가세트의 책들은 문고본으로까지 나와 있다) 철학자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론 철저한 엘리트주의자로 평가되는 가세트이기에(이런 점을 표나게 강조한 이가 문학비평가 이동하였다), 내가 알기로 '민중의 역사'라는 역사관을 내세우는 역사비평사와는 뭔가 안 맞지 않은가란 생각 때문.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지만, 한겨레와 동아일보의 서평은 각기 다른 입지점에서 씌어졌다. 먼저, 한겨례: "당시 가세트가 목격한 것이 주로 파시즘의 군중 대열에 선 대중의 신념에 찬 얼굴이며 '유럽의 몰락'과 동시에 등장한 소비에트 정권과 미국의 대량산업 사회의 군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지금은 자연현상이 된 대중사회가 서투른 '원시성'을 지닌 채 막 등장하던 시대에 성찰한 대중사회 초입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그의 분석은 유익하다. 그래서 '평균'과 '편의'의 안위에 길든 현대인이 바로 가세트의 대중은 아닌지 다시 성찰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리고 동아일보: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에서 이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다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따돌림당하는 '왕따 현상'과, 평범함이 비범함보다 우선되는 반지성주의, 그리고 대중의 '직접 행동'을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겨레는 현대인과 대중간의 간격을 도입하면서, '우리 가세트의 대중은 되지 말자!'라는 자기반성을 유도한다는 데에서 책의 현재적 의의를 찾고 있고, 동아일보는 참여민주주의라고 에둘러서 표현한 현 참여정부('포퓰리즘 정권')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같은 책에서 발견한다. 이런 제각각의 읽기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반역'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반역>은 '고전'에 근접한다.  

 

 

 

 

네번째 책은 그러한 가세트의 대중들을 '당나귀들'로 호명하는 배수아의 장편소설 <당나귀들>(이룸)이다. 1995년에 첫 소설집을 냈으니까 올해는 작가가 데뷔한 지 만 10년이 되는 해이고, 그간에 열댓권 이상의 책을 냈으니까 제법 부지런한 작가군에 속한다. 한국 소설 읽기에 둔감은 내가 제대로 읽은 작품은 한 권도 없지만, 이런저런 풍문을 통해서 그녀의 향방에 대해서는 얼마간 가늠하고 있다. 병무청을 그만두고 독일에 둥지를 튼 것까지도(고고학을 배우러 떠난 시인 허수경이 아마 그녀의 말벗이 돼 주는지).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좀 특이한 여자애' 소설쓰기에서 점차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적 대중 비판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재작년에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던 걸로 기억되는(그리하여 소위 문단의 '주류'로 인정받게 되는) 작품 <일요일 스키야기 식당>(문학과지성사, 2003)이 그런 방향으로의 전환점이 아닌가 싶고(아직 '독자'가 아닌 나로선 확증할 수 없지만).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소설이란 '미학적 형식'은 그녀에게 이전만큼의 제어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하다. "계몽의 시대가 도래했어야 할 바로 그 적절한 순간에 굶주림의 시대에서 천박의 시대로 바로 월반해 버린 윌반해 버린 우리의 역사"(25쪽) 같은 대목에 대해 한겨레의 최재봉 기자는 '울림 깊은 문장'이라고 평하지만 내가 보기엔 소설의 문장으로서 천박하다. 그런 문장들로 재단되고 구획될 만큼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나는 작가가 세상에 대한 혐오감(혹은 '복수심'이라도 무방하다)을 그런 서툰 방식(최재봉 기자는 소설의 3요소가 빠진 '독후감 소설'이라고 평했다)이 아니라 보다 본때나는 방식으로 형상화해주기를 바란다. 혐오도 경우에 따라선 '위대한 혐오'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배수아의 신작과 나란히 나온 소설집은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문학과지성사)이다. 배수아와 마찬가지로 내가 별로 읽은바 없는 젊은 작가이지만, 나는 그가 영화를 너무 많이 베낀다는 불만은 한켠에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 불만은 교정되지 않게 돼버렸다. 짐작에 소설은 배수아의 그것보다 재미있을 것이며 더 많이 팔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 쓴 소설'들의 최상급은 김영하의 소설 정도이다(돈벌게 해주는 '포스트잇'을 쓰는 게 작가이다. 역사도 팔고, 사랑도 팔고, 때론 운명도 팔면서). 해서, 나로선 매끈한 김경욱보다는 천박한 배수아를 지지하겠다. 그가 아닌 그녀에게 베팅하겠다. 신용불량자가 되어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경욱의 인물은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겨우 존재할 수 있다"(9쪽)고 말하지만, 배수아는 어차피 장국영도 없는 세상에서 당나귀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증언한다. 내가 편드는 건 소설의 테크닉이 아니라 작가의식이다.

05. 06. 04.

P.S. 그밖에 마크 롤랜즈의 (미디어2.0)도 눈길을 줄 만한 책이다. "소크라테스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까지 SF 영화로 본 철학의 모든 것"이란 부제 때문에 이미 좀 팔려나가고 있는 책인데, 원제 "The Philosopher at the End of the Universe"(2003)대로 했다면, 다소 무겁게 여겨졌을 법한 책이다. 이른바 SF영화라는 당의정 속에 철학적 주제를 담아놓은 것이 될 텐데, 그런 것에 얼마간 식상한 나로선 별로 새로운 게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저자는 <동물의 역습>(달팽이, 2004)을 전작으로 갖고 있는 철학자이다. 해서 신간보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구간이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그 책은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좌파출판사로 유명한 영국의 Verso Books의 Practical Ethics Series(실천윤리학 시리즈) 중 한 권"이고,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인간사랑, 1999)에 비견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핵심적 주장은 "동물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주제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Peter Singer가 1973년 발표한 <동물해방>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Mark Rowlands가 2002년 발표한 이 책은 더욱 세련되고, 더욱 설득적이며, 더욱 읽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아마도 <동물해방>에 못지 않은 새로운 걸작이라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철학자 데리다가 말년에 숙고한 주제 또한 이 '동물(성)'인데,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조만간 가볍고 묵직한 책들이 여러 권 더 선보일 것이다.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주제들로 나는 (죽음 대신에) '노인/노년'과 (타자 대신에) '동물'을 꼽고 싶다. 물론 이때의 동물은 우리 안의 '동물'을 포함하는 것이다. 동물(짐승)과 신 사이의 존재로 인간을 규정했던, 그리하여 "동물에서 신으로!"란 구호를 내건 형이상학이 상승의 철학이라면, 하강의 철학으로서 탈형이상학의 관심은 "신에서 동물로!" 향한다. 아마 이 대목에서 형이상학에 고질적으로 고정된 인간의 지능/두뇌는 고전을 면치 못할지도 모르겠다. 해서, 인간을 대신하여 철학(궁리질)을 담당할 동물들이 나서야 하는지도. 누구? 들뢰즈의 진드기? 데리다의 고양이? 카프카의 물벼룩?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를 대신할 호모 사피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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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6-04 18:41   좋아요 0 | URL
배수아의 신간소식은..로쟈님을 통해 처음 듣네요.*^^ 감사..
정치인을 위한 변명,과 지식의 발견,대중의 반역..등도 관심이 갑니다.여러책 소식들,늘 감사하게 잘 보고 있어요.*^^ 추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물론.

로쟈 2005-06-04 18:48   좋아요 0 | URL
감사까지야... 그런데, 이번엔 파란여우님보다도 먼저 다녀가셨군요.^^

Phantomlady 2005-06-05 02:36   좋아요 0 | URL
배수아의 팬으로서 조금 더 보충하자면 전환점은 그 이전에 쓴 '동물원 킨트'와 '이바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첫사랑'으로 절정에 이른 뒤 좀 삐딱하게 변해버렸죠 아마 이 작가 특유의 반골기질 때문인 거 같습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자신의 전환을 문학적으로 검증받은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요?

어제 주문한 '당나귀들'을 받고 앞 페이지 몇 장이지만 읽고나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갈 때 까지 가려는 거 같습니다. 불안한 길이지만 팬으로서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겠죠.

배수아는 자신 안에 '길들이지 않은 짐승'이 산다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날짐승이 길이 들고나니 우리(밖)를 박차고 나가는 위험한 기운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람(안)을 향한 흉폭함만 남은 거 같아요. 전 아직도 그녀의 최고작은 '심야통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기대를 버리고 있지 않습니다.

배수아가 김경욱보다 영악한 것은 문화적인 아이콘을 빌려오더라도 상당히 쿨한 걸 가져온다는 겁니다. 일례로 상당히 오래 전에 2pac을 말한 적이 있죠.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김경욱의 질문은 시효가 지난 촌스러운 뒷북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아무도 너바나를 듣지 않거든요.

에고, 너무 길어져서 민망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생각이 나서요 ㅡ_ㅡ;;;

로쟈 2005-06-05 14:22   좋아요 0 | URL
보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alefire 2005-06-09 13:47   좋아요 0 | URL
에이젠슈테인 전집이 러시아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나왔다니 반갑네요. 국내에 번역된 에이젠슈테인 관련 문헌들은 모두 영어 아니면 일어의 중역들(특히 일어중역)이었죠. 에이젠슈테인이나 지가 베르토프와 같은 감독들, 그리고 말레비치나 메이어홀드와 같은 사람들의 문헌도(사실 국내에 아직 나오지도 않은) 러시아어 원전을 통한 번역본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모 소식통을 통해 지가 베르토프의 [KINO Eye:The Writings of Dziga Vertov]가 번역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책([KINO-Eye])은 Annette Michelson이라는 탁월한 영화학자가 감수하긴 했지만 영역본을 중역하기 때문에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앞의 짧은 선언문도 걱정이지만 뒤의 그 수많은 일기는 어쩌려고;;) 이런 사례로 알고 있는 가장 최근 경우는 벨라 발라즈의 [영화의 이론](주어캄프에서 독어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본 중역)이 있겠군요. 참, 그리고 보드웰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는 보드웰 특유의 꼼꼼한 쇼트분석은 마음에 들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Jacques Aumont의 [Montage Eisenstein](불어원본/영역본도 있음)이 에이젠슈테인의 이론적 변천과 영화적 실천을 조감하는데 더욱 충실해 보입니다.

palefire 2005-06-09 13:49   좋아요 0 | URL
그리고, [SF철학]은 '정말로 눈길만 주고 말' 정도로 허접스러운 책입니다. '철학으로 영화보기'란 말이 오도되는 가장 전형적이고도 천박한 사례라는 혹평을 던질 수 있어요.

로쟈 2005-06-09 14:21   좋아요 0 | URL
'창백한 불꽃'(에서 따오신 게 맞다면)님의 전공이 확실히 드러나는 댓글이네요.^^ 지가 베르토프에 관한 문헌은 저로서도 러시아에서 구경한 적이 없습니다. 번듯한 책이 나온 적이 있을지 좀 의심스런 경우입니다. 언젠가 참조한 적이 있는 영어 연구서가 그래도 제가 본 가장 훌륭한 책이었구요. 보드웰의 책은 제가 갖고 있는지 어쩐지도 지금 잘 알지 못합니다(책들이 숨어 있길 좋아해서). 그리고, 오몽의 책에 대한 소개는 다른 분에게서도 들었고 현재 주문중입니다. 보충하자면, 에이젠슈테인 전집은 이전에 한번 나왔었고, 요즘 나오고 있는 것은 '영화박물관'에서 새롭게 편집한 것으로 현재 네 권이 나와 있습니다(그새 더 나오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