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들, 그래서 대개 (사지는 못하고) 보관함에 넣어두거나 (일부) 도서관에 주문해놓는 책들을 또 몇 권 적어둔다. 눈에 띄는 신간이 그다지 없다 싶은 한 주였는데, 구내서점에서 '이거다!' 싶은 책을 발견했다(그래서 '감히' 책을 사들었다).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 제1권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가 그것이다. 도이처의 책이라면 이전에 한번 번역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이들도 있을 텐데, 사실이다. 이전에 두레출판사에서 <트로츠키: 한 혁명가의 생애와사상>(1985/1992)란 제목으로 나온 것이 그것. 하지만, 그 책의 역자는 신홍범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의 역자는 언론인 김종철이다(<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과는 동명이인이다).

 

 



 

그렇다면, 새 번역이 나온 것인가? 그건 아니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그간의 사정이 기술돼 있다. 19년 전 초판이 나온 책의 경우 당시 해직 언론인으로서 재야단체 대변인을 맡고 있던 역자 대신에 출판사 사장의 이름으로 책이 나왔던 것. 이번에 다시 출간되면서, 비로소 본 역자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그런데, 역자의 기억대로 1985년에 초판이 나왔다면, 19년 전이 아니라 20년 전이다. 꼬박). 나는 두레에서 나온 두툼한 <트로츠키>를 기억하고는 있지만, 좀 낡고 완간이 아니어서 (안 읽은 것은 물론이고) 사두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새로운 판형으로 원래의 역자까지도 복원한 것이 반가워서 그만 사들었다.

트로츠키에 대한 (내가 아는 한) 가장 방대한 전기를 쓴 아이작 도이처는 1907년 폴란드 태생이고, 젊은 시절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해서 트로츠키주의자로 활동하다가 반스탈린주의적 활동으로 인하여 1932년 당에서 제명당했다고 한다. 이후에 영국으로 망명하여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러시아 혁명가들에 대한 평전들을 집필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3권으로 이루어진 <트로츠키>이다(그의 <스탈린>(한림출판사, 1972)과 <레닌의 어린시절>(두레, 1982)도 오래전에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현재는 물론 절판됐지만). 이 3부작의 1권이 <무장한 예언자>(1879-1921)이고, 2권이 <비무장의 예언자>(1921-1928)이며, 3권이 <추방된 예언자>(1929-1940)이다. 1950년대에 저술된 책들이니까 이미 반세기 전의 책들이다.

 

 

 

 

비록 현실에서의 권력투쟁에서는 패배했지만,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사>(풀무질, 2001-04)에서는 물론 <스탈린>, <배반당한 혁명>(갈무리, 1995) 등을 통해서 스탈린이 자신에게 붙인 '혁명의 적'이란 타이틀을 자신의 적들에게 되돌려주고 있으며,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도이처의 기본적인 의도 또한 러시아 혁명의 '적통'으로서 트로츠키를 복원/복권시키고자 하는 것임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소 편향적이라 할지라도 이 책은 그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는데, (옮긴이에 따르면) 트로츠키 자신의 유언에 따라 1980년까지 공개가 금지돼 있던 (하버드대학의) 트로츠키 관련 자료를 이미 1950년대에 (트로츠키 부인의 특별한 배려로) 열람하고서 쓴 저작이라는 것.

레닌과 스탈린에 관해서라면, 아직도 러시아에서 많은 전기와 관련 연구서들이 나오고 있으며, 이들 책들은 역시나 이념적으로 다소간 편향적이라 하더라도 러시아의 1차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1929년 추방되어 망명지 쿠바에서 스탈린에게 암살당한 트로츠키의 총체적인 면모를 재구성하는 일은 오히려(당연한 일이지만) 러시아 ‘바깥’에서야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러시아에서의 트로츠키 연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주로 <러시아혁명사> 등의 저작 정도가 소개돼 있는 정도이다. 트로츠키의 생애와 관련해서는 물론 그의 자서전 <나의 생애>(범우사, 2001)이 가장 요긴한 참고문헌이지만, 제3자의 시각에서 쓴 평전으로 가장 권위있는 저작이 바로 도이처의 <트로츠키>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번쯤 읽을 만하다.

 

 

 


'무장한/비문장의 예언자'란 제목을 도이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가져왔는데, 책의 서두에 인용되고 있는 대목은 이렇다. "따라서 모든 무장한 예언자들은 승리했고 비무장의 예언자들은 파멸했다. 이런 점 외에도 민중의 본질은 변화무쌍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민중을 설득하기는 쉽지만 그들이 설득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그들이 더 이상 밎지 않게 될 때는 무력에 의해 그들이 믿도록 조치를 위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명가 트로츠키의 '부상'을 다루고 있는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는 그 '승리'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이제는 러시아에서조차도 잊혀지고 있는 1917년의 현장기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리드가 쓴 <세계를 뒤흔든 10일>(두레, 1986)이다(이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고, 최근까지도 책이 나오고 있다. 워렌 비티가 제작/주연한 <레즈>는 존 리드와 러시아 혁명에 관한 영화이다). 뒷이야기이지만, 스탈린은 자신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10월>(1927)은 혁명을 재구성하면서 존 리드의 책에 근거하고 있는바 원래는 트로츠키의 비중이 훨씬 높게 그려져 있었는데, 이미 20년대 후반 트로츠키 격하 분위기 때문에 그에 관한 내용이 축소되고 약간은 희화화되었다('지식인'이자 멘셰비키였던 트로츠키는 레닌의 볼셰비키 노선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몇 차례 등장한다).

그런 수정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이 영화 이후에 영화감독으로서 에이젠슈테인의 운명 또한 꼬이게 되는데(그는 10년간 변변한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다), 그가 다시 영화감독으로 '재기'하는 것은 스탈린 예찬이란 은밀한 메시지를 담은 애국주의 영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1938)를 완성하면서부터이다(이 영화는 출시돼 있고, 소장품이기도 한 이 영화를 나는 작년에 모스크바에서 TV로도 한 번 더 보았다). 그가 스탈린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건 40년대에 3부작으로 계획했다가 완성 짓지 못한 <이반 대제>(1943-6)에서였다(<폭군 이반>으로 출시되었던가?). ‘전제주의 일시적 진보성’을 다룸으로써 스탈린상까지 받은 이 영화의 1부와는 다르게 그 폭력성을 건드린 2부는 스탈린 비판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에이젠슈테인의 명을 재촉했다. 자신의 영화를 공개할 수 없게 된 그는 1948년에 화병으로 사망한다.

소련 전문가로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기도 했던 도이처는 문학 평문들도 남기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대한 혹평이다. 그런 평론가적 안목에 있어서 트로츠키 또한 빠지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 최고의 이론분자였던 트로츠키가 남긴 건 <문학과 혁명>인데, 이 책은 우리말로 두 종의 번역서가 있다. 물론 영역본을 옮긴 것인데(<문학과 혁명>이란 제목으로 묶인 러시아어본은 훨씬 두툼한 분량이다), 먼저 나온 <문학과 혁명>(한겨례, 1989)의 공역자 중 한 사람이 소설가 공지영이다. 그래서, 내게 공지영은 트로츠키와 연관하여 떠오르는 이름의 하나이다.

 

 

 



소설가 공지영의 신간도 지난주에 나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봉순이 언니> 이후 7년만의 장편소설이라는데, 작년에 나온 단편집이 호평을 받았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사전지식이다. 소개된 글에 따르면, “이 소설은 강간, 살인죄로 사형수가 된 27세의 청년 정윤수와 냉소적인 30세의 대학교수 문유정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서 이미 내용이 짐작되는 소설이긴 하므로, 자세한 건 다른 이들의 서평을 참조해야겠다.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사, 1994) 정도를 완독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공지영은 '감상적 계몽주의' 작가이자 ‘바른생활’ 소설을 쓰는 작가이다(그래서 마치 연기자 차인표를 보는 듯하다).

일종의 선입견일 테지만, 신간과 관련의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그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취재하던 중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선입견이 오해만은 아닌 듯하다(물론 우리는 ‘상식’도 가끔씩 깨닫곤 하지만). 해서 일단 나의 선택은 500원 더 싼 마르케스의 최신작이다. 원작이 작년 가을에 나왔다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민음사). 분량상으론 중편소설인데, 자전적이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솔직히 사형수보다는 창녀들의 이야기에 나는 더 끌린다.

 

 



 

 

세 번째 책은 다나 해러웨이의 대담집 <한 장의 잎사귀처럼>(갈무리)이다. 동물학자, 페미니즘 이론가, 문화비평가로서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동문선, 2002)의 저자이기도 한 해러웨이는 흔히 ‘사이보그 페미니즘’ 이론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나는 이전에 그녀의 책을 읽어본바 없지만, 좋은 입문서도 나온 김에(대담집의 역할은 그런 것이다) 한번 읽어볼 참이다. 해러웨이와 관련해서는 아이콘북스로 나온 <도나 해러웨이와 유전자 변형식품>(이제이북스, 2003)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해러웨이의 책과 함께 꼽을 수 있는 건 <이탁오 평전>(돌베개).

 

 

 



돌발 퀴즈. <한 장의 잎사귀처럼>과 <이탁오 평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단적 사상가’? 내가 안 읽어본 책들에 대해서 넘겨짚어 말할 수는 없고, 두 책의 역자들이 이전에 한번쯤 해당 저자의 책들을 옮긴 적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해러웨의 책을 옮긴 민경숙 교수는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역자이며, <이탁오 평전>을 옮긴 홍승직 교수는 이지(이탁오)의 <분서>(홍익출판사, 1998)의 역자이다(<분서>의 다른 번역본은 한길사에서 2004년에 나왔다). 요컨대 전문 번역자의 번역 작품이라는 얘기다. 턱없는 전문가들도 없진 않지만, 하여간에 이 책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 남은 건 어디서 시간과 돈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네 번째 책은 원로비평가 유종호 교수의 <시 읽기의 방법>(삶과 꿈)이다. 잡지 <삶과 꿈>에 연재된 글들을 책으로 묶었다고 하는데, 내 기준으론 10년 전에 나온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와 짝이 될 만하다. 같이 묶으면, “시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 정도가 될 것인바, 시를 좀 읽어보고 싶지만 자신이 없는 이들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유종호의 시비평은 온건하고 상식적이지만 단단하고 단아하다(그는 정지용을 높이 평가하는 대신에 이상이나 김수영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시를 읽지 않거나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의 ‘말’들을 나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묵하거나 행동하면 된다. 떠벌이지 말고.

 

 

 

마지막 다섯 번째 책은 내가 드물게 꼽아보는 산문집이다. 소설가 서재영의 산문집 <진다방 미스 신이 심은하보다 이쁘다>(부키). “세월을 견딘다는 것. 견뎌 내면 무엇이 있으리라는 것. 그 무엇도 알고 보면 허망하다는 것. 그러나 끝까지 가야하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답답한 마음을 털지 않고는 하루의 시작이 시원찮다는 것. 그래서 샘으로 가 찬물로 머리라도 감아야겠다는 생각의 꿈틀거림...” 같은 인용문에서 알 수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은 ‘지지부진’이고, ‘지지부진한 삶’이다.

 

 



 

문화일보의 서평에서 그 자신 시인이기도 한 배문성 기자는 이렇게 쓴다. “소설가 서재영씨의 산문집 <진다방 미스 신이...>는 전형적인 논다니 생활에세이다. 양아치 인생관이기도 하고 게으름뱅이 생활예찬이기도 하다. 에세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인생은 어떻게 하면 읍내 은하수 다방에 새로 온 '레지'와 한 말씀 나눠보느냐와 삼성당구장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잃지 않고 시간을 때우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이런 유의 에세이가 쉬 넘어가 버리는 '시골살이의 행복'을 다룬다거나 섣부른 사회성을 드러내 자학성 고지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상찬할 만하다. 저자의 내공은 자칫 제 삶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안정돼 있다. 그 공력이 바탕이 된 속 깊은 문장을 읽는 맛도 남다르다.”

그런 촌스러움이라면 지방의 소도시에서 청춘을 보낸 나에게도 낯익은 것이다. 그건 ‘운동’과도 다르고(‘4.19’와 무관하며), ‘교양’과도 다른 어떤 것인바(‘시민정신’과도 무관하다), 그간에 나는 ‘공기’ 정도라고 이름붙이고 있었다(나는 이런 게 ‘노마디즘’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마디스트들의 반발을 우려해 그냥 ‘논다니즘’이라고 해두겠다. 이 논다니스트들의 꿈은 가급적 일없이 어딘가에 죽치고 있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무슨 재밌는 일이 없나 쭈뼛쭈뼛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아무튼 이 산문집의 공기는 좀 다르다. 그러니, 어찌 안 읽어볼 도리가 있겠는가?..

05.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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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5-04-19 14: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인사는 처음 드리는 것 같네요.
최근에 나온 책들 시리즈를 잘 보고 있습니다(물론 제가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이 많긴 합니다만). 이탁오 평전은 저도 보관함에 넣었다 뺏다를 반복 중입니다. 이러다 언젠가 슬며시 장바구니로 가겠지요.

로쟈 2005-04-19 14:32   좋아요 0 | URL
보관함에 넣는 것 정도야.^^ 저는 보관함에 거의 500권이 묵혀 있습니다...

주니다 2005-04-19 16:26   좋아요 0 | URL
덕분에 또 보관함에 책이 늘었습니다. 대문 그림이 책 읽는 로쟈가 아니라 베이컨의 자화상인 듯 하군요. 영국 작가들의 그로테스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 같아요. 그 동네의 자연환경 탓인지...몇년 전 EBS에서 우연히 베이컨의 작품세계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봤었는데, 대단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베이컨의 작품은 물론이고 그걸 분석해내는 시각도 역시.

로쟈 2005-04-19 18:19   좋아요 0 | URL
'자화상'이던가요? 제 기억에 그의 (동성애) 모델이었던 것 같은데(확인해 봐야겠군요). 저도 베이컨의 책들에 대해서는 서평을 쓴 적이 있고, 그의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주니다 2005-04-19 23:39   좋아요 0 | URL

인상이 베이컨과 닮은 듯 해서 무심결에 '자화상'으로 짐작했었는데, 로쟈님의 말씀을 듣고 찾아보니 다행히(?)자화상이 맞는 듯 합니다. ^ ^ 3점의 연작 중 하나이군요. (이 자료가 정확하다면....ㅎㅎㅎ) 



STUDY FOR SELF-PORTRAIT - 1985

그나저나 '화가의 잔인한 손'을 들춰보다가 발견한 건데요, 책의 뒷편 날개에  '대담' 시리즈 근간으로 예고되었던 책 2권은 안나오고 말았나봐요?


로쟈 2005-04-20 10:4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베이컨의 화집을 본 지 오래돼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네요.^^ 이미지는 그냥 후배가 저장해놓은 게 눈에 띄길래 갖다 썼습니다. <대담> 2권은 누구에 관한 것인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그것도 베이컨?)...

바람구두 2005-04-20 14:43   좋아요 0 | URL
드디어... 드디어 다시 나오는군요. 아이작 도이처... 이왕이면 완간된다면 좋으련만...

로쟈 2005-04-20 15:13   좋아요 0 | URL
바람구두님이라면 이미 갖고 계실 듯한데.^^ 글쎄요, 완간은 당분간 좀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마냐 2005-04-20 17:58   좋아요 0 | URL
배부장의 뽐뿌질, 강력했죠....제목도 기이한 책.

로쟈 2005-04-20 18:06   좋아요 0 | URL
'뽐뿌질'이란 표현을 쓰는가 보군요.^^

바람구두 2005-04-21 09:31   좋아요 0 | URL
제 동생 녀석은 복사본으로 가지고 있는데... 제가 그러지말구 형 좀 주라 하면 동생은 저보고 원서를 읽고 번역하라고 놀렸었지요. 흐흐. 번역된 책이 있는데... 뭐...괜한 수고를 할 필요도, 능력도 없으므로... 기다렸답니다. 나머지도 번역된다면 좋겠네요.

2006-07-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04 13:57   좋아요 0 | URL
**님/ 그건 더 큰 '생색'이 아니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