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이중톈을 읽고 있다. 그의 책을 대부분 갖고 있지만 나는 지난 여름 <초한지 강의>(에버리치홀딩스, 2007)와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을 흥미롭게 읽으면서 비로소 그의 독자가 됐다. 최근 읽고 있는 건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 2008)인데, 발행일이 2008년 5월 15일이고 구매일도 똑같다. 책이 나오자 마자 구했다는 걸 알겠다('이중톈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놓은 날도 5월 15일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다른 책들에 떠밀린 듯하고 정작 손에 든 건 3년도 더 지난 다음이다. 독서도 다 때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제국을 말하다>에 이어서 <제국의 슬픔>(에버리치홀딩스, 2007)과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은행나무, 2008)까지 독서목록에 올려놓고 있다(책을 어디다 두었는지 조만간 찾아봐야겠다). 저자 스스로 대표작이라 꼽기도 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니 작년 여름 것이 있기에 참고삼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0. 07. 24) 중국제국의 재건과 ‘역사 망각’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퍼부은 독설에 가까운 촌철살인의 풍자다.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시나브로 국력이 쇠잔하고 분열이 이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껍데기만 남은 제국이었다.

중국이 초강대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며 제국은 더욱 아니라는 엄살 섞인 항변을 들고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볼테르의 명언이다. 현대 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를 당부할 때만해도 그런 이중성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부르짖는 지금의 중국이라면 사뭇 달라진다. 중국은 동양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이래 2132년 동안 제국으로 호령한 화려무비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기 역사저술가 이중톈은 화려한 중국 역사의 겉면보다 쓰라린 실패와 아픈 기억을 <제국의 슬픔>이란 책으로 담아낸 바 있다. 이중톈이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자신 있게 말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에서 과거 중국제국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제국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재구성했다. 이중톈이 진시황 이래 청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유지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官員代理) 세 가지로 요약되는 시스템이다. 진시황이 군현제와 그에 걸맞은 관원대리라는 하드웨어를 창조했다면, 한무제는 여기에다 윤리치국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해 완벽한 제국의 틀을 만들었다. 윤리치국이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가운데 유가를 정치의 도구로 채택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이후 모든 왕조는 이 트로이카를 앞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20세기 초 들어 강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이 시스템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만이 미래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처방했다. 중국 학계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몰라도 이중톈은 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중톈이기에 그의 한마디는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제국이란 제도는 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무너진 제국은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진다.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제국이 재건된다.

중국이 또다시 세계 제국으로 굴기하는 걸 보면 순환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과시한 ‘한·당(漢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이미 제국의 야욕을 세계 만방에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 때나 당나라 때나 한민족의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중국의 행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 제국이 될 지 모른다는 점을 확연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역사적 교훈은 제국이 혼자 강압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국계 미국 석학인 에이미 추아는 명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필요조건으로 ‘관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베이징의 봄 이후 중국은 청년 정신까지 성장을 멈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중톈도 지적하듯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리라.(김학순 기자)  

11. 09. 07. 

 

P.S. 이중톈과 함께 또 몰아서 읽으려는 저자는 이중톈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중국사학자 레이 황이다. 그의 책도 번역된 건 모두 갖고 있는데, 일단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푸른역사, 2001)를 책상 가까이에 옮겨놓았다. 진순신의 <중국사 이야기>까지 더하면, 내내 중국사 이야기를 들으며 올가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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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의 위대함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11-09-08 06:08 
    요즘 중국을 보면 저 나라가 공산당 나라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사회 경제 제도에 자본주의의 요소들를 파격적으로 도입하고도공산당은 엄연히 존재하고 평범한 서민의 집 벽에 모택동 초상화가 걸려있는 현상은 참 묘하다.러시아의 초기사회주의자들은 농노를 해방시킨 짜리를 암살했다. 러시아는 혁명초기에 마지막 황제의 가족을 총살시키고 암매장했다.마지막 황후의 언니는 산 채로 우물에 던져졌다. 새 러시아에서 마지막 황제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베르톨루치의 <마
 
 
미국사람 2011-09-08 00:49   좋아요 0 | URL
에이미 추아를 석학으로 <제국의 미래>를 명저로 꼽는 것은 약간 심한 느낌..
여러가지 책을 잘 섞어서 배낀 정도의 책입니다.

그것보다는 애 키우는 법 소개서인 타이거 마더(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 정도가 에이미 추아에게 맞는 듯 합니다.

예일대 교수 이긴 하지만 법대교수이니 수준에 오른 역사 서적을 쓰기에는 조금 힘이 부친 듯 합니다.

로쟈 2011-09-09 09:51   좋아요 0 | URL
독자에 따라 평가는 다른가 봅니다. 그래도 한국에선 예일대 교수란 후광이 있지요...

2011-09-08 0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