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성경이 아니다"

리링의 <집 잃은 개>를 둘러싼 논쟁 소개기사에 이어서 국내 논어 번역사를 일별해준 기사도 옮겨놓는다. 논어 읽기에 참고할 만하다.  

 

교수신문(11. 08. 16) 국내 논어 번역 어떻게 전개됐나 

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논어 번역의 시작은 1908년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소년>의 제9호 (1909년 8월)부 터 제12호(1909년 11월)까지 실린 「소년논어」에서 찾을 수 있다. <소년>이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면서 「소년논어」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년논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논어 번역’이란 자리에 손색이 없음은 물론이고, 시간을 뛰어넘어‘번역의 전범’이라 평가받아 마땅하다.  

「소년논어」의 탁월성은 일제강점기에 번역된 두 종류의 번역서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1922년에 유교경전강구소에서 간행한『諺譯걩語』와 1932년 이범규가 간행한『言解四書』는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쳤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최남선은「소년논어」를 통해 전통을 근대로 번역하는 가치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번역이 한자어를 중심으로 우리말토를 붙이거나, 한문을 단순히 한글로 바꿔 놓았을 뿐 우리말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던 것에 비해, 광복이후 1960년까지의 논어 번역은 전면적으로 우리말을 중심으로 번역문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하게 다르다. 따라서 이들 번역서는 논어의 내용을 당시의 언어생활의 변화추세에 맞춰 새롭게 번역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유가철학원전의 대표격인 논어를 번역대상으로 삼았기에 내용상으로는 전통적인 것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전통적 표현방식과의 결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는 논어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계승한 것과 결별한 것
50년대의 대표적인 번역서로 1956년 통문관에서 간행한 이가원역『논어신역』을 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논어의 첫 번째 문장에 나오는 ‘學而時習’을‘배운 글을 복습한다’고 번역하고 있으며, ‘有朋自遠方걐’또한‘함께 연구하는 벗’으로 번역하고 있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익힌다는 것인지 불분명한 이전의 번역에 비해 ‘글을 익히는 것’을 학문의 구체적 대상으로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본분을 글을 배우는 데 국한하고 있으니 이는 원문이 지닌 실천적 의미를 놓친 셈이다. 또‘벗이 찾아와 나와 함께 연구한다’는 번역문을 봐도 실천적 행위보다는 강단학자의 연구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아쉽다.

60년대의 논어 번역서로는 1969년도에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차주환역 『논어』를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비슷한 시기의 번역서들이 ‘성경의 존엄성’을 말하거나 ‘총명한 성인의 가르침’운운한 것과 비교할 때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논어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또 기존의 논어가 모두 원문을 번역문의 앞뒤에 병기하고 있는 데 비해 이 책은 원문을 책의 말미에 따로 엮어두었다. 번역문만으로 논어를 읽게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보인다. 또 논어 첫문장의‘不亦說乎’와‘不亦樂乎’를 풀이하면서‘說’은‘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희열’이고, ‘樂’은 ‘사람들과 학문성취에 뜻을 두고 같이 공부하는 즐거움’이라고 풀이해 ‘열’과 ‘낙’의 차이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번역에 반영한 점이나, ‘불역군자호(불역)’를 “군자답지 아니하냐”라고 번역한 점 등은 이전 번역에 비해 정확도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70년대에는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 많은 양의 논어 번역서가 간행됐지만 그 중 주목할 만한 책으로는 단연 이을호역 『한글논어』를 들 수 있다.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된 이 책은 기존의 번역서는 물론이고 당시의 일반적인 번역의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는 뛰어난 성과물이다. 이 책은 원문의 함의를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 언어로 바꿔 번역했으며,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다. 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명료하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린 탁월한 번역이다. 게다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권위의 굴레를 벗고 일상 속으로 다가오는 공자를 보여주고 있다. 

80년대에는 70년대보다 오히려 적은 양의 논어 번역서가 출판됐지만 내용면에서는 번역의 정확성이 향상됐기 때문에 질적으로는 어느 시기보다 풍성하게 결실을 맺은 때이기도 하다. 이 중 거론할 만한 번역으로는 1984년에 간행된 안병주외역『논어』, 1989년에 간행된 김학주역 『논어』와 김종무저『논어신해』, 1990년에 간행된 성백효역 『논어집주』가 있다. 이 중 안병주외역 『논어』는 유학, 한국철학, 동양철학 전공자 8명이 참여해 번역한 공역으로 번역의 정밀도 부분에서 기존 논어의 문제점을 상당히 해소한 역작이라 할 만하다. 또 중국문학전공자의 번역인 김학주역『논어』도 전공자의 장점이 돋보이는 정밀한 번역과 상세한 주석 등 여러 가지 장점을 겸비한 책이다. 아울러 1989년에 간행된 김종무역『논어신해』또한 거론할 만한 논어번역서이다. 이 책은 실질적인 ‘역자’인 김종무를 ‘저자’로 표기하고 있을 정도로 새로운 해석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번역은 대체로 역자가 주희의 주석이나 정현의 주석을 임의로 선택하여 번역하고 있는데, 이 책은 기존의 주석을 대체로 비판하면서 번역자 자신의 견해를 중심으로 전혀 새로운 내용의 논어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80년대에는 새롭고 참신한 번역서가 많이 간행됐지만 그 중에서 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번역을 들라면 1990년에 간행된 성백효역 『논어집주』를 들겠다. 성백효역 『논어집주』는 지금까지 전공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문을 학습하는 교재로 꾸준히 읽히고 있다. 『현토완역 논어집주』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 당시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던 주희의『논어집주』를 완역한 번역서다. 무엇보다도, 당시까지 본문 번역과 주석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거의 유일한 번역이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 또한 높다. 또 이 책은 이후 유사한 아류번역서들이 나올 정도로 학습에 편리하게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를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축자역을 하고 있어서 한문을 정확하게 익히려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주석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조선조의 독서인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주자집주』를 처음으로 완역함으로써 학술적 균형을 도모했으니 번역사적 의의 또한 매우 크다.

90년대의 논어 번역은 완전 한글 번역이 주류를 이뤘다. 1998년에는 한필훈역 논어 『한글로 읽는 논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나왔고 1999년에는 김형찬역 논어 『논어이야기』가 나왔다. 이 두 책은 한글 번역문을 앞에 놓고 원문은 뒤로 보내 번역문 만으로 논어를 읽을 수 있게 배열했는데 모두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편안하고 쉽게 공자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2000년에 나온 황희경역 『논어』는 ‘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헌책 중의 헌책’인 논어에서 새로운 생각거리를 찾을 때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은 공자를 신성시하거나 완전한 존재로 가정하지 않고 우리가 공자를 넘어서서 생각해볼 만한 여러 문제를 제안하고 있다. 논어 밖에서 논어를 바라보는 길을 터주는 독창적인 저자물이다. 



2002년에 나온 배병삼역 『논어』는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전하는데 각별히 공을 기울인 참신한 번역이다. 예를 들어, 덕치나 효에 대한 공자의 말이나, 계강자와의 대화에서 보여준 공자의 말을 정치적 맥락으로 풀이한 내용은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서 논어를 정치학적 관점에서 읽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할 만하다. 



최근에 나온 논어 중 주목할 만한 번역서로 2010년에 이지형이 완역한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와 올해 나온 박성규역 『논어집주』를 빼놓을 수 없다. 『논어고금주』완역은 한대와 송대의 경학 전통을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문제의식으로 가로지른 우리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논어주석서의 완역이라는 점에서 노작 중의 노작으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 박성규역 『논어집주』는 ‘주자와 제자들의 토론’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주희의 집주를 단순히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주석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사서혹문』,『 주자어류』,『 주자문집』등을 추적해 주희의 견해가 성립된 근원을 탐색하고 있다. 논어를 읽으면서 주자학의 장대한 세계관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디딤돌을 딛지 않는 학계 풍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남선이 근대적 의미의 논어 번역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하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아직 이런 결과물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연구자라 해도 일반적으로 우선 만나는 논어는 번역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번역서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없으니 우리는 아직도 ‘논어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학계에서조차 논문을 쓸 때 원전을 인용하면서 이들 번역서를 참고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논어를 번역하는 번역자들 또한 앞선 번역을 참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번역서는 연구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디딤돌 같은 것. 디딤돌을 딛지 않고 거센 물살을 잘 건너기는 어려운 법이다. 좋은 번역서를 잘 활용하면 원문을 제대로 만나는 건 물론이고 원문을 뛰어넘어 더 다양한 사상의 줄기 안에 들어서는 즐거움도 맛본다. 오랜 시간 공들여 번역한 결과물을 연구자들이 읽지 않는다면 번역의 노고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전호근 경희대·한국철학) 

11.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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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11-08-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주환 역 논어로 논어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다시 보니 반갑네요.

로쟈 2011-08-22 21:45   좋아요 0 | URL
저는 최근에 황종원 베이징대 교수 번역본으로 다시 구했습니다...

홍승진 2011-08-2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성규 역주 논어집주가 걸작입니다. 학교에서 그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번역에 대한 원칙이 매우 철저하고 엄격하신 분입니다. 풍우란의 <중국철학사> 번역자로서 중국철학에 대한 넓은 이해도 가지고 계시며, 주자 철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주자 집주에 관하여 누구보다도 능통하십니다. 언젠가는 철학과 시간강사실에 직접 찾아가서 출간을 축하드리고 선생님 책에 저자 서명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로쟈 2011-08-27 22:13   좋아요 0 | URL
아 풍우란 번역자시라면 믿어봄직하겠네요. 저도 구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