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아리랑>(2011)이 이번 칸느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상을 수상했다. 오전에 기사가 뜬 걸 보고, 점심을 먹고서는 예고편으로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봤다. 영화제에서의 수상 자체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폐인' 상태에까지 갔었다는 그가 감독으로 재기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으면 싶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1. 05. 23) 김기덕 감독이 목 놓아 아리랑을 부른 이유는

그는 목놓아 아리랑을 불렀다. 2008년 이후 한국영화계에 담을 쌓고 은둔의 생활에 들어가 폐인이 됐다는 소리까지 들은 그는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한을 토해내는 듯 자신의 부활을 알리는 아리랑을 불렀다.  

김기덕(51) 감독의 아리랑은 수상소감이었다. 칸 영화제 폐막 하루 전날인 21일 밤(현지시각) 프랑스 휴양도시 칸 드뷔시관에서 열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시상식에서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의 ‘스톱드 온 트랙’과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공동 수상한 뒤 출품작 ‘아리랑’으로 수상의 기쁨을 토해냈다.

그의 수상 덕분에 한국 영화는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연패하는 개가를 올렸다. 아울러 김 감독 본인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에 이어 칸 영화제까지 한국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을 섭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김 감독의 작품은 고국보다 외국에서 더 대접을 받는 기묘한 상황이 다시 한번 연출된 것이다.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2004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과 함께 대표적인 공식부문으로, 주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그는 데뷔작 ‘악어’(1996)부터 ‘비몽’(2008)까지 15편의 영화를 만들며 각종 국제영화제를 석권한 국내를 대표할 만한 감독이었지만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유명한 감독이었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노골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그린다는 호평도 있지만 국내에선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한다는 악평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매년 1편씩을 꾸준히 만들어온 왕성한 창작자였다.특히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과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아지자 3대 영화제의 최고봉인 칸 영화제와도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활’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으며 2007년에는 ‘숨’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칸 영화제 수상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악재가 찾아오면서 2008년 ‘비몽’(이나영 오다기리 조 주연) 이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영화 ‘비몽’을 찍으면서 주연 여배우 이나영이 숨질 뻔한 사고가 발생한 데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자신의 조감독 출신인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를 놓고는 배급사와 소송전을 벌였다.

지난해 연말에는 장훈 감독이 메이저 영화사와 계약하면서 그를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으며 급기야 김기덕이 폐인이 됐다는 뜬 소문까지 번지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논란이 일자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장훈 감독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과 그가 하는 영화 일에 지장이 생기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칸 현지에서 공개된 김 감독의 새 영화는 ‘의형제’의 장훈 감독을 실명 거명하며 격하게 비판해 파문이 일었다. “깨끗이 떠난다고 말했다면 내가 안 보낼 사람이 아닌데 아무런 상의도 없이 떠났다. 자본주의의 유혹에 떠난 걸 안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배신이라고 하지만 그냥 떠난 거다. 슬펐다”  

김 감독은 몇몇 연기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은 채 “악역이 제일 쉽다고? 악역을 통해서 자위하는 거잖아. 니네들은 가슴 안에 있는 성질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거잖아. 악역 잘한다는 거,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는 거야”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김기덕 감독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작품인데도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국가가 상을 주는 “삶의 아이러니”도 비꼬았다.

<아리랑>은 감독 자신의 15년간의 영화인생을 반추하는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지난 영화적 괘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번민하고 대답하는 형식이다. 본인의 영화인생을 되돌아보는 사적 영화이지만 한국 주류 영화계와 독립영화계의 충돌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서울을 떠나 어느 시골의 오두막에서 김 감독은 스스로 묻고 답한다. “매일 술만 먹고 영화는 안 찍을 거냐. 그러니 배신당해서 폐인이란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고 심하게 다그친다. 강한 어조의 질문자 김기덕과 달리, 대답하는 김기덕은 눈물을 글썽이며 심정적인 동요를 한껏 드러낸다. 그는 “일련의 사건 이후로 시나리오가 안 써지더라. 그래서 지금은 슬픈 시기다”라고 입을 연다. “<비몽>을 찍기 이전까지는 육상선수가 계속 트랙을 달리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다. 야생적이고 순수하고 계산이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박이 찾아왔다”며 공장 근로자, 폐차장 인부 등으로 일하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이 되기까지 자신의 소회를 드러냈다.  

‘아리랑’이란 말이 마치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의미로 들린다는 그는 영화 속에서 절규에 찬 민요 ‘아리랑’을 직접 불렀으며, 거친 욕설까지 입에 담으며 그간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스스로 자신을 고민하는 건 처음이라 설레고 무척 떨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그는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가졌던 원망과 분노를 직접 제작한 권총을 동원해 해소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일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판타지를 오가는 장르의 실험. 스태프 없이 혼자 캐논 디지털 카메라 촬영을 시도한 점 등 <아리랑>은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시사 후에서 일부 영화기자들과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나 일부 관객들은 중도퇴장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영화웹진 <에크랑 누아르>는 트위터를 통해 “김기덕의 신작은 굉장히 매혹적이고 급진적”이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문화월간지 <테크니카르>는 “칸영화제를 향한 구조 요청과 같은 영화”라고 전했다.

한편 칸 심사위원상은 안드레이 지야긴트세프 감독의 ‘엘레나’가, 감독상은 모하마드 라소울로프 감독의 ‘굿바이’가 차지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는 개·폐막 작을 포함해 모두 21편이 초청됐으며 한국영화는 김 감독의 ‘아리랑’,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진출했다.(김도형 선임기자) 

11. 05. 22.  

P.S. 기사 말미에서 심사위원 수상자로 거명된 '안드레이 지야긴트셰프'는 <리턴>의 감독 '안드레이 즈뱌긴체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이름이 제대로 표기된 기사가 드물다). <아리랑>과 함께 이번에 같은 부문에 출품됐던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2011)도 기대작이다. 두 영화를 한국에서도 곧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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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기덕 감독을 조용히 응원해 왔어요
세계에서 거장임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학력이 달리고 남달라 무시받는 느낌이 참 싫더라고요. 물론 싫어하는사람들 그 이유가 아니라고 말하지만요

로쟈 2011-05-24 00:01   좋아요 0 | URL
대중에겐 가장 과소평가된 감독 중 하나죠...

아웅 2011-05-2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감독작업 나쁜남자는 좋았는데 외국에서 김기덕 감독의 작품 활이 주목을 받은 개인적인 생각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업은 그의 다른 작품보자 현실과는 개연성이 적은 망망 대해에서의 노인과 젊은 남녀 mythical, fantasy like 상황의 전개는 서구인에게는 신기해보였을것 같습니다. 오희려 빈집이나 나쁜남자는 배경을 경험(직접이 아니더라도) 한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으니까요

로쟈 2011-05-27 08:36   좋아요 0 | URL
<빈집> 이후의 <활>은 개인적으로도 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갈 수 있는 자리에서 주춤거린 걸로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