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에서 환경운동가를 거쳐 '파리의 산책자'가 된 정수복 씨의 새 책이 나왔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 2011). 아침에 주문을 해놓고 보니, 이 책을 읽으려면 '완전한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프로방스 예찬은 익히 들어본 것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완전한 휴식'은 뭔가 끄는 게 있다. 완전한... 휴식이라...

한겨레(11. 03. 24) “느릿느릿 걸으면 햇빛이 날 치유하지요”

‘파리의 산책자’ 정수복(56·사진)씨가 이번엔 프로방스의 햇빛을 가득 담은 책을 내놓았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의 출간에 맞춰 현 거처인 파리를 잠시 비워두고 서울에 왔다. 23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자신을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서 나룻배로 양안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프로방스 예찬에 입이 말랐다. “최창조 선생이 마음이 편하면 명당이라고 했죠. 프로방스에 가면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프로방스에는 영혼을 고양시켜 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휴식 같은 것이죠. 반 고흐, 알퐁스 도데 같은 예술가들이 거기서 휴식을 취한 것은 다 이유가 있지요. 프로방스의 핵심은 바로 햇빛이지요.” 



사회학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다시 걷는 사람 ‘산책자’로, ‘분류가 불가능한 지식인’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그는 빠르게만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버리고 느릿느릿 발소리를 낮춘 채 ‘프로방스’의 작고 한적한 마을들을 걸어보라고 속삭인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그가 남프랑스의 햇빛이 주는 휴식과 치유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태운동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적게 쓰는 삶이 답입니다. 적게 소유하지만 훨씬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1990년대에 사회학자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환경운동에 몰입하다, 2002년 문득 그만두고 집을 내놓고 6년 유학생활의 장소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는 이를 ‘정신적 망명’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쓴 홍세화 선생은 정치적 망명을 하신 분입니다.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제 의지로 떠난 정신적 망명자입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적응을 강요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당시 귀농운동하던 이병철 선생께 여쭈었죠. ‘프랑스 남부로 가서 귀농해도 귀농이죠?’라고. 그랬더니 당황하시면서 ‘어, 귀농이지’ 하고 답하더라고요. 환경운동을 10년가량 하면서 한계를 느꼈죠.” 



그는 파리에서 9년 남짓 생활하면서 파리를 걷고 또 걸었다. 리옹, 브르타뉴, 프로방스 등등 프랑스 전역을 걷고 여행했다고 한다. 2009년 파리 산책기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을, 지난해엔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을 펴냈다. 걷기는 사색이요 영감의 원천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책에서 오늘의 국내 사회학이 현실과 호흡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술지 논문평가 제도화로 학자가 논문제조기로 전락했다” 비판한다. 그 자신을 좌도 우도 아니고, 사르트르 팬이지만 때론 카뮈에 가깝게 다가가는 그런 지식인,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는 개인주의다. 그는 한국에서 건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야기했듯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답이 안 나오지만 그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입니다. 그러려면 문학, 예술, 교양을 책을 통해 폭넓게 체험해야겠지요.”(허미경 기자) 

11. 03. 25. 

 

P.S.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과 같이 주문한 책은 <전쟁은 없다>(인간사랑, 2011)이다. 정신분석 잡지 '엄브라(Umbra)'의 번역으로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인간사랑, 2008)에 이어서 나온 것이다. 2년 터울인가, 3년 터울인가. 그러고 보니 연간으로 나오던 <뉴레프트리뷰>도 3호가 나올 때가 됐다.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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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2011-03-25 23:48   좋아요 0 | URL
학술지 논문평가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제도가 없었을 때 한국의 학자들이 아주 대단하고 독창적인 업적을 남긴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하기 이전의 한국학계의 생산력이란 논문 갯수로 평가하는 지금보다 더 훌륭했다고 결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제도 시행 이전의 한국 학자들이란 다수가 1년에 논문 한 편도 안 쓰는 경우가 허다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누구나 갯수 채우기 위해서 몇개씩이라도 쓰려고 하죠. 강제적인 제도가 없었을 때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았으니, 이런 강제적 제도가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이런 제도를 불평하기 이전에 스스로 논문을 잘 쓸 생각부터 먼저 해야죠.
그런데 프랑스에서 지내는 한국 지식인의 눈에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는 치유의 기능을 갖고 있나 봅니다.

로쟈 2011-03-27 18:16   좋아요 0 | URL
문제는 갯수로 평가하는 방식도 아니라는 거지요. 업적이 갯수에서 나오진 않으니까요. 그냥 연구업적이나 활동을 공개하는 식으로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요. 그가 어떤 학자인지...

雨香 2011-03-26 03:00   좋아요 0 | URL
건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특히 왜곡된 집단주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에서는요.
개인적으로 '파리를 생각한다'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8년에 짧게 파리에 다녀왔었는데 파리 방문전에 출간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 했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역시....

로쟈 2011-03-27 18:18   좋아요 0 | URL
저는 책만 모아놓고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파리에 갈일이 한번 생기면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