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출판면의 고참기자 고명섭의 서평집이 출간됐다. <즐거운 지식>(사계절, 2011). 서평집으론 <지식의 발견>(그린비, 2005), <담론의 발견>(한길사, 2006)에 이어지는 것으로 저자의 지속적이고도 일관된 책읽기와 관심사를 보여준다. 서평집으로도 앎과 사유의 두께를 만들어낸 경우다.
한겨레(11. 03. 12) 책 읽는 기쁨에 빠져 보세요
‘책 탐닉’이란 말을 그 스스로는 싫어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지적 항해’라는 말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770쪽 두툼한 분량에 4년 남짓 까다로운 안목으로 골라 읽은 인문 지식의 첨단이 담겼다. “게걸스럽게 지식을 물어뜯었음”을 자백하고 있거니와, 앎을 향한 그 항해의 나침반은, 세이렌의 유혹을 넘어 난바다를 건넜던 저 오디세우스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딸림제목도 ‘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가 아닌가.
<즐거운 지식>은 <한겨레> 책 담당 기자로 있는 고명섭씨가 2006년부터 써온 신간 리뷰 기사를 묶은 책이다.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은 “앎의 유혹”이었으니, 그 유혹에 넘어가면 과거와 현재의 지식을 얻을지언정 “그 자신은 미래를 저당잡히고 끝내 삶을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지은이는 인지하고 있다. <즐거운 지식>의 항해에 또다른 나침반은 니체다. 니체에게 앎은 “유혹과 위험과 공포 사이를 질주하는” 항해다. 지은이의 주 관심사는 서양 철학, 또는 지금 세계 읽기를 감행하는 정치사상이다. 책은 사상, 인문, 교양 ‘세 바다’로 짜였는데, ‘사상의 바다’로 가는 항구에는 지젝, 네그리, 가라타니 고진, 데리다, 바디우, 랑시에르, 샌델, 아렌트, 칸트, 니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포진해 있다. ‘인문의 바다’에는 괴테, 밀턴, 톨스토이, 베버의 삶과 함께 프로이트와 융의 분투가 넘실댄다. 지은이에게 니체와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여기 실린 187편의 책 리뷰는 ‘지식의 즐거움’에 기꺼이 가닿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든든한 나침반 구실을 해줄 것 같다.
11. 03. 13.
P.S. 개인적으론 추천사를 쓰기 위해 책을 미리 읽어봤는데, 이미 지면에서 한번 읽은 글이 많았지만 모아놓으니 한결 '세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책에 관한 책’을 두 권 냈지만, 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은 내게도 언제나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이 우리를 매혹하면서도 두려움을 안긴다.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디쯤 읽고 있는 것일까란 물음에 한번이라도 붙들려본 독자라면 ‘일등 항해사’의 고마움을 알 수 있으리라. 그 바다의 유혹과 폭풍에 맞서 ‘두려움을 모르는 자’ 고명섭 기자는 오랫동안 내게 그런 ‘일등 항해사’였다. 서평을 일삼아 쓰면서도 그는 ‘앎의 기쁨’과 ‘배움의 즐거움’을 항상 누리고자 했고 전달하고자 했다. 덕분에 나도 기쁘고 즐거울 때가 많았다. 『즐거운 지식』은 그런 기쁨과 즐거움을 그러모은 선물 보따리이자 묵직한 도전장이다. 한번 읽어보라고 그가 우리 앞에 던져놓는 ‘프로블레마’다. 이 갑판 위의 씨름이 한 번 더 흥겹고 즐겁다. 문제를 사유하는 자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