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0분쯤 친 내용을 날리는 바람에 다시 친다. 같은 내용을 다시 치는 일이 내키지는 않지만, 오기는 못말리는 법이다. 하지만, 대단한 오기는 아니기에 내용은 대폭 삭감한다...

문제의 발단은 어제 날짜 한겨레에 실린 한 서평이다. 신간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아트북스)에 대한 서평(24면)을 쓰면서 고명섭 기자는 줄곧 '벤야민'을 '베냐민'으로 표기했다. 제목까지 '베냐민에서 보드리야르까지...'로 달고서. 이 독일의 문예이론가 W. Benjamin에 대해 관례적인 표기는 물론 '벤야민'이다. 벤야민이나 베냐민이나 발음상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아마 고기자가 고집을 부리는 데에는 표기원칙이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설사 표기원칙에 따라 '베냐민'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더라도, 이 표기체계의 일관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용에 따라 축적된 문화적 관행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베냐민'은 (무슨 비타민이나 약이름도 아니고).'벤야민'이 갖고 있는 문화적 의미, 혹은 좀 과장해서 아우라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나치를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다가 청산가리를 먹고 죽은 사람을 베냐민과 짝짓지 못한다. 원음주의도 아닌, 이상한 표기원칙 때문에(게다가 이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원칙이다. 베냐민이란 이름으로 검색되는 책은 아직 한권도 없다), 그런 문화적 의미를 박탈당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학식있는 기자에게서 간혹 이런 만용을 볼 때(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유감스럽다.

유사한 다른 사례들도 있다. 프랑스철학 좀 전공했다고, 관례화된 '베르그송(Bergson)' 대신에 '베르크손' 운운하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원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원음주의는 한가지 원칙이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한 가지 원칙일 뿐, 절대적 타당성이나 객관성을 갖는 건 아니며, 교육부의 표기원칙과도 다르다(창작과비평에서도 원음주의를 선호하여 '소쉬르'를 '쏘쒸르'로 표기하는데, 좀 짜증스럽고,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혐오스럽다).

흔히 원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원칙이 한 가지 원칙이라고 말하는 대신에(원칙 중에서는 좀 순진한 원칙인데), 올바른 원칙이고, 진리에 근접한 원칙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베르그송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동안 베르그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라고. 그런 주장은 물론 사실이 아닐 뿐더러, 혐오스러운 상징폭력에 다름아니다(부르디외라면, 티내기로서의 '구별짓기'라고 말할 것이다). 프랑스에서조차 외국어 저작이나 인명 표기에 있어서 자기들식의 원칙/체계를 충족시킬 따름이지 원음주의 어쩌구 하는 수작은 부리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들이 현학취 이상의 의미를 갖는지 의심스럽다. '베르그송'과 '베르크손'을 절충해서 '베르그손'이라 표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과연 그게 목숨걸 일인지. 옆에서 보기엔, 이런 수작들이 무용하지만은 않다. 이런 표기를 근거로 베르그송 연구자들의 세대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정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문학 (연구서도 아닌) 소개서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젊은 베르터의 슬픔'으로 옮겨놓은 걸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이미 '베르테르'란 번역 표기가 굳어져 있는 상태이고, 더군다나 대다수 독문학자들이 그렇게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르터'란 표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그게 원음에 가까운가? 과연 씩씩한 '베르터'가 유부녀 때문에 자살할 위인인가? 게다가 '베르테르'란 우리말(!)에 담겨 있는 문화적 의미를 '베르터'가 다 접수할 수 있는가? 이 역시 좀 모자란 이들의 현학취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바흐친(Bakhtin)을 '바흐찐'이라고 표기해야지만 되고 '바흐친'이라 표기하는 건 무식의 발로이며, 영미식의 왜곡된 바흐친 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같다. 초기에는 '바흐틴'도 있었고, 심지어 '박틴'도 있었다. 사실, 어느 것이래도 무방하다. 우리말 체계에서 '차이'만을 가지면 되는 것이니까. 거기에 '이해수준'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비뚤어진 전문가주의이다. 번역으로 책을 읽고 무얼 쓰는 건 다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외국인명의 표기는 원칙에 따라 두 가지가 공존할 수는 있다. '마르크스'와 '맑스'처럼. 그리고 거기에 무슨 우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원칙적 일관성과 관례, 표기의 경제성 등이다. 그리고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가급적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왕 하나로 통일돼서 쓰이고 있는 표기라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무슨 치명적인 이유가 없는 한. 엉뚱하게 좀 튀어보려는 수작들은 이젠 그만 사라졌으면 싶다...

덧붙여 말하자면, 튀는 공유명사 표기가 말해주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무식이거나 교만이거나. 계몽철학자 '디드로(Diderot)'를 '디데로'로 표기한다든가, 문학비평가 '바르트(Barthes)'를 '바데스'로 표기하는 건 '무식'이고, (이미 합의된) '후설(Husserl)'을 '후세를'이나 '훗설'로 표기하는 건 교만이다. 둘다 학문에는 유익하지 않다...

03.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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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4-03-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 동감, 정말 동감입니다!!! 베냐민에 반대하신다 해서, 깜짝 놀라 읽어보니, 벤야민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군요... 저도 베냐민에 반대합니다. 넘 황당한 표현이네요.

로쟈 2004-03-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지시군요^^

sayonara 2005-04-1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만... 또는 허영이 아닐까여!?

로쟈 2005-04-1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적어도 '이상한 고집'쯤은 되는 것 같습니다...

딸기야놀러가자 2005-06-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다른이야기입니다만.
국제기사에서 이름/지명 표기는 '아우라'가 아닌 '이데올로기'의 문제인 경우가 많거든요. '한국식/관행적 표기법'이라는 것이 대략 서구 식민주의자들->일본어 발음 거쳐서 온 것들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저는 현지발음을 살려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번번이 벽에 부딪칩니다. '관행적 표기' '외래어표기법'을 들고나오는 교열부의 벽에 말이죠. ^^

로쟈 2005-06-0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식/관행적 표기법'이라는 것이 대략 서구 식민주의자들->일본어 발음 거쳐서 온 것들"이란 지적은 일리 있지만, 일반화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지발음'이라는 건 상상적인 것일 뿐이어서(가령, '톨스토이' 대신에 '똘스또이'라고 하면 현지음에 가까운 것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현지음을 고려하면 '딸쓰또이'쯤으로 표기해야 됩니다. 이게 권장할 만한 표기인지는 의문입니다), 그걸 표기에 다 반영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의 난점은 해당 언어의 '정확한' 발음을 모를 경우 표기를 역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상당히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창비사에서는 경음 표기를 선호하는데, 가령, '데까르뜨' '싸르뜨르' 등, 하지만, 그게 '현지발음'에 더 부합하는지도 의문일 뿐더러 '탈식민주의적' 표기가 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론,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면피용 혹은 생색용) 알리바이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벤야민', '베냐민'은 사실 현지발음과도 전혀 무관하기에, 저로선 기자의 양식을 좀 의심하게 됩니다(즉 허영이 아닐까 싶은 거지요).

비로그인 2006-11-0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 김용옥식의 표기법도 싫어 하시겠군요.ㅋ

로쟈 2006-11-01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원칙은 관행/관례과 일관성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은 사실 발음과는 무관하기에 '김용옥식 표기'와도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