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3일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분신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때맞춰 각 언론마다 지난 40년의 세월과 현재의 노동현실을 재조명하는 특집기사을 마련하고 있다(경향신문의 '왜 다시 전태일인가' 연재 참조). 이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책 세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서울과 노동시>(실천문학사)는 미간이다).
경향신문(10. 11. 02) 노동자 피땀으로 세워진 빈곤과 차별의 도시 서울
“나는 평화시장의 일급 미싱사/ 손이 안 보이도록 옷을 만들지…이 옷을 누가 입을까 나는 관심이 없어/ 죽어라 뺑이치며 미싱만 밟을 뿐/ 이 옷이 얼마에 팔릴까 나는 몰라/ 하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밀려드는 잠 쫓으려 타이밍을 먹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어 옷을 만들지/ 미싱을 타는 지금은 철야 이틀째”(김해자 ‘미싱사의 노래’)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고, 70년대 이후 많은 노동시들이 쏟아져나오게 된 모태가 됐다.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실천문학사에서 일제 시대인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동시들을 한데 모았다. 청량리와 서울역, 평화시장과 구로공단,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도시 공간이 노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노동시를 통해 바라보는 작업이다. 실천문학사는 오는 13일 ‘서울과 노동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임화부터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최근 시집을 출간한 송경동 시인까지,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90년에 걸쳐 서울을 배경으로 창작된 노동시 300여편이 수록됐다.
1920년대부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노동시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식민지 수도 경성은 근대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으며 한쪽에서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거리가 생겨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도시빈민들이 토막을 짓고 살았다. 이 시기에는 ‘카프’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프로시’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서 시를 창작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노동시와 경성의 만남은 농촌의 빈곤화와 경성의 근대화 과정이 중첩되면서, 경성에 모여든 농촌 출신 빈민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가 임화의 ‘네 거리의 순이’, 백철의 ‘날은 추워오는데’, 오장환의 ‘수부’ 등이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노동시의 ‘침체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 진보적 목소리는 억압당했고 노동시들은 ‘서랍속의 불온시’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노동자와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들을 시로 표현해냈다. 이시영은 ‘후꾸도’에서 도시에서 좌판을 벌여 먹고 사는 사내의 과거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 농촌공동체의 따뜻함을 도시의 삶과 대비시킨다. 농촌과 도시라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으로 자리잡는데, 이는 정호승의 ‘마지막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 정희성의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노동의 생산성과 활력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쓰여졌다. 김광규는 ‘쓰레기 치는 사람들’에서 쓰레기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들로 노동자들을 형상화했고, 김지하는 ‘서대문 101번지’에서 흙과 노동의 싱그러움을 노래했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70년대의 노동시들은 직업 시인들에 의해 쓰여지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노동이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성과에 대해서 침묵하며 정치·사회적인 것과 계급노동자의 얽힘에 대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노동시는 ‘르네상스’를 맞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이 이 시기에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1980년대는 군사정권의 파시즘 체제와 자본의 무한 확장이 결속하여 만들어낸 시대”라며 “이를 심층에서부터 비판한 것이 노동시”라고 말한다. 박노해, 백무산이 대표 주자였으며 박영근도 “노동이란/ 굶주림의 추억으로부터 사슬의 두려움으로부터 일어나/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땅에 서는 것이다”(‘노동2’)라고 읊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황규관, 송경동, 문동만, 김사이 등의 시인들은 도시의 불모적 삶과 노동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송경동은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 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질까 두렵다”(‘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고 노래했다. 안현미는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거짓말을 타전하다’)며 노동과 시쓰기를 병행해온 여성 시인의 성장통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또한 최근 하종오 등의 시인들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성호는 “서울에서 쓰여진 노동시편들은 길음동, 이태원, 평화시장, 화곡동, 구로동, 아현동을 돌면서 고되고 핍진한 노동 현실을 일관되고 견고하게 증언해왔다”고 평했다.
<서울과 노동시> 편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노동자로서의 계급 의식이 선명하지 않았을 당시의 서울, 노동자 계급의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을 무렵의 서울, 계급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진 서울, 계급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 계급이 갖는 욕망에 주목해야 하는 서울 등 노동자와 서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며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욕망의 풍경을 통해 서울을 과장되지 않게 정직하게 응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영경 기자)
문화일보(10. 11. 01) [AM7] ‘88만원 세대’ 노동의 의미를 묻다
올해 11월13일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사실상 최초로 주도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근로 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다. 그러니 전태일의 외침은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등 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가 힘을 합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하기 위한 ‘너는 나다’(손아람, 하종강 외)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나라들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영광스럽게도’ 1위다. 1,600만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어선 유일의 나라다. 1990년대에 비정규직을 많이 늘렸던 나라들이 2000년대 들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직 수를 점점 줄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도 줄여가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불명예 1위는 또 있다. 연간 노동 시간, 성별 임금격차,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 등도 모두 1위다. 40년 전 전태일은 하루 열다섯 시간의 중노동을 줄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를 자랑할 정도가 된 지금, 젊은이들은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기 위해 투쟁한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여전히 30%대다. 전국 600여 개의 편의점을 조사해보니 66%가 넘는 곳에서 4110원의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청년들이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의 ‘알바’를 동시에 여러 개 뛰어도 적자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몸 혹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임금에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등장해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조차 힘겨운 사회적 구조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학점, 자격증, 토익, 자기계발, 외모 등에 어떤 세대보다 열심이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열에 아홉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것인가라는 ‘사치스런(?)’ 고민이 아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전태일의 후예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공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책은 이 시대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한기호_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Weekly경향(10. 11. 02)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펴낸 엄기호씨
<이것은 왜 청춘이…>는 문화인류학 강사인 엄기호씨(39)가 덕성여대·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20대의 삶,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등을 토론하고 공유한 기록이다. 20대를 다룬 책은 많다. <88만원세대> 이후 꽤 많은 ‘20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왜 또 20대일까.
책을 쓴 이유는.
“나 역시 그동안 출판된 20대, 대학생에 대한 담론 대부분을 섭렵했다. 솔직히 나는 그 ‘20대 담론’이 불온하다고 생각한다.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20대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20대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20대가 소비지향적이 되었다든지, 탈정치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만나본 학생 중에서 이를 테면 G세대로 호명되는 그 20대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비판의 대상에는 <88만원세대>도 포함되는가.
“<88만원세대>가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돌려서 생각해보자. 왜 갑자기 88만원세대가 사회문제가 되었나.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살았던 애들이 못살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사실 명문대를 제외하고 지방대는 1997년 IMF 이전에도 88만원세대다.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실제의 보편적 대학생들은 각종 세대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20대와 다르다는 건가.
“이를 테면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쓰는 조건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은 일부 잘사는 집을 제외하고 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비도 워낙 비싸니까 부모가 주는 돈으로 감당 못한다. 생활비도 높다. 아주 기본적인 휴대전화나 교통비만 하더라도 훌쩍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도 갖지 말고 버스도 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20대는 항상적 빈곤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내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애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불온하다고까지 느끼는 것은 애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건 자기네들 살고 있는 삶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처럼 쓰는 것이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지금 쟤네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해야 하지 않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들(20대를 비난하는 윗세대)도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면 솔직하게 각자가 어떻게 지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서로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에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논의될 수 있다.”
10. 11. 02.
P.S. 벌써 오래전 영화가 돼버렸는데(영화 촬영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건만)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을 찾아봤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시 조감독이던 이창동 감독이 썼다.